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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3일(주일) 주일설교 스가랴3:1~10 '아름다운 옷을 입으려면' 새찬송가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우리가 가정에서 늘 하는 일이 빨래입니다. 옷에 따라서 손 빨래도 하지만, 대부분 세탁기에 빨래를 합니다. 빨래를 하는 이유는 더러운 옷을 깨끗이 빨기 위해서 입니다. 저도 매일 매일 집에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그 날 입었던 셔츠와 바지를 빠는 일입니다. 샴푸나 바디워시를 풀어서 조물 조물 해주고 널어주면 그만입니다. 이제 빨래 하는 일이 루틴이 된 것 같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는 일은 늘 기분 좋은 일입니다. 더러운 옷은 벗어던지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탄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탄을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의 죄를 제거하여 더러운 옷을 벗기기도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고 정결한 관을 씌워주십니다. 4~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누가복음 15장에 유산을 탕진하고 거지로 돌아온 탕자에게서 더러운 옷을 벗기고 깨끗한 옷을 입히는 탕자의 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아버지는 멀리서도 아들을 알아보고 불쌍히 여기고 막 달려갑니다. 옷에는 돼지 오물 냄새가 배어 있을 겁니다. 언제 씻었는지 더럽기가 한이 없습니다. 그래도 씻고 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줍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데려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엇을 줍니까? 제일 좋은 옷을 입힙니다. 이는 아들의 신분 회복을 의미합니다. 또한 가락지를 깨워줍니다. 가락지를 끼워주는 것은 아들의 권세 회복입니다. 가락지는 그 당시 인감도장과 같은 겁니다. 아버지는 또한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신발을 신깁니다. 당시에 종은 신을 신지 못합니다. 신발은 자유인이나 주인만 신었기 때문입니다. 신발을 신기는 행위는 돌아온 탕자가 이제는 죄와 세상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참 자유를 누리는 존재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악기를 동원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잔치를 벌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서 놀라운 환상을 계속해서 보는 가운데 네 번째로 하나님의 종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사자 앞에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가 입은 옷은 ‘더러운 옷’입니다. 때묻은 옷, 먼지 묻은 옷, 진 흙투성이가 된 핏자국이 있는 옷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사단이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를 고발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죄를 상징하는 더러운 옷을 그의 사자의 손에 의하여 벗기시고 그 대신에 사죄를 상징하는 아름답고 깨끗한 옷을 입혀 주시겠다고 하십니다(1-5절). 스가랴는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혀 주시며 이어서 대표자 자격으로 선 여호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약속을 받는 장면을 봅니다.
우리도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옷을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의 말씀을 통해 주의 음성 듣고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으려면 첫째, 내가 죄의 옷을 입고 심판대 앞에 서 있는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1~3절).
천사 앞에 서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죄를 상징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마치 욥기에 보면 하나님 앞에서 욥을 고발하고 있는 사탄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면 “사단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1절)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탄은 사람들에게 “내가 사탄이니까 나를 따르라”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다. 뿔 달린 사탄이 그 정체를 사람 앞에서 드러내며 공격해 온다면 피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사기꾼이 내가 사기꾼이다 하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다가오면 속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지요.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점령하려 들어올 때는 ‘회개하는 영’처럼 들어옵니다. 사탄은 마치 겸손의 허리띠를 띤 ‘광명한 천사’와 같이 분장해서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쉽게 속아넘어갑니다. 사탄은 심지어 우리가 예수를 잘 믿고 겸손한 자와 같이 생각할 때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들어와 사람의 마음에 교만을 심어 주고 하나님 앞에 범죄케 하고 하나님의 뜻을 멀리 하게 만듭니다. 또한 우리가 조금이라도 영적인 잠을 자고 기도하지 않고 깨어 있지 않고 방심하고 있을 그 때 사탄이 곧바로 우리에게로 오게 되고, 우리로 하여금 사탄의 유혹에 끌려가게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탄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여호수아를 신랄하게 고발한다고 해서 그냥 당하고 있을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이 택한 당신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8:35-39 KRV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성경에서 죄로 인해 고난받은 유다를 회복시키시고, 유다를 괴롭힌 이방민족을 벌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불에서 꺼내어 그슬린 나무같이 새까만 죄인인 여호수아를 대적하는 사탄을 책망하십니다(2절). 예루살렘을 택하신 여호와께서 “내가 택했는데 사탄인 네가 왜 고발을 하느냐 예루살렘은 너의 추천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택했다. 옷이 더러워도 내가 갈아 입힐 것이고 잘못을 했어도 내가 용서하면 그만이다” 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요 사랑’입니다. 이와 같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구원도 없고 소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지은 엄청난 죄, 사람에게 말 못할 죄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택함을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내 생명의 주되십니다” 라고 믿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곧 택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고백한 것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자신이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스스로는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자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더러운 죄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시고 또한 우리의 죄를 책망하고 고발하는 사탄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비록 죄가 많은 우리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이상 사탄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선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선택하고 불러주시고 성령으로 인쳐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칭해주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때문입니다. 이를 믿으십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죄의 옷을 입고 심판대 앞에 서 있는 자임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나의 죄인 중의 괴수’(딤전1:15)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주님을 그런 나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에게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십니다.
적용)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어디 입니까? 내가 ‘더러운 옷’으로 인정하고 벗어야 할 죄책감이나 습관은 무엇입니까?
둘째, 아름다운 옷을 입으려면, 내 의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 내가 죄 사함 받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4~5절).
하나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입고 있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그에게 4절에 “네 죄악을 제거하였으니 이제 아름다운 옷을 입히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를 벗기시고, 죄악을 제거하시며, 아름다운 옷과 정결한 관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할렐루야~
4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여기서 옷을 바꿔 입혀주신다는 것은 ‘신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왕은 왕의 옷을 입어야 왕노릇 할 수 있습니다. 옛날 영국에서 한날, 한시에 한명은 왕궁에서, 한명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에드워드와 톰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학대 속에 자라던 톰은, 소년이 된 어느날, 더 이상 학대를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옵니다. 정처없이 걷다가 자신도 모르게 왕궁까지 오게 됐는데, 화려한 왕궁을 구경하려던 톰은 우연히 왕자를 만나게 되고, 톰을 측은히 여긴 왕자 에드워드는 그를 왕궁 자기 방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한 치 앞을 모른채 호기심에 옷을 바꿔 입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던 호위병들이 거지 옷을 입고 있는 에드워드 왕자를 무조건 궁 밖으로 쫓아 내버립. 우여곡절 끝에 왕자는 왕위를 물려주는 대관식이 있는 날, 다시 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왕자가된 거지톰의 도움으로 온전히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얘기입이다.
여러분 어렸을 적 동화책 많이 읽으셨을텐데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얘기들이 많이 있었죠? 그 중 스릴도 있고, 반전도 있는 꽤 괜찮은 동화가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입이다. 이 동화를 쓴 사람은 또 다른 책, ‘톰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입이다. 왜 그는 이런 스토리의 책을 썼을까요? 마크 트웨인은 1835년에 가난한 미국 개척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자라나서도 그는 계속 가난과 싸워야 했고, 그러한 자신을 포함한 가난한 사람을 보는 세상의 눈은, 그리 곱지 만은 않았던 것입니다. 특히 외모, 그중에서도 입은 옷에서 드러나는 차별성을 그는 심각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삐뚤어진 사회를 비관하며 이 동화를 썼던 것입니다.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인데.... 옷 만 바꿔입어도 하루 아침에 왕자가 될 수 있는데... 단지 외모가 이렇다는 이유로... 이런 옷을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세상을 비판한 것이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게 되면 새 이름을 받고,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는 신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라고 회개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제하여 버렸습니다(4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구원은 우리의 의로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우리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믿으십니까? 요한복음 5:24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구원받은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이런 믿음을 소유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과 정결한 관’을 씌운 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 왕래하게 하리라” 즉 하나님의 은혜로 신분의 변화를 겪은 후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인생의 가치관으로 삼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보호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편 1편 1~3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고 인쳐주셨다고 해서 방심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살지 않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이전 보다 더욱 더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해야 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게 하고 하나님의 뜰을 지키게 하며 이 집에서 왕래케 하시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본문의 대제사장 여호수아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자기 죄가 제거되는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서,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 하나님만이 내 죄를 제거하실 수 있는 분임을 확실히 믿고 말씀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셋째, 아름다운 옷을 입으려면,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구원의 초대자가 되어야 합니다(8~10절)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8절에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여기서 ‘싹’은 바로 모든 사람의 죄를 제거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우리 온 인류에게 허락하신 최고의 큰 은혜는 ‘내 종 싹’으로 표현된 예수님의 오심입니다.
[요한복음 1:9~14]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죄악을 하루만에 제거하심으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 가운데로 믿은 사람을 초대하십니다.
[이사야 55:1-5]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은 무너진 성전과 예배를 회복시키는 모퉁이돌이 되시며, 이 땅의 모든 죄악을 십자가 사건으로 하루에 제거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스가랴 선지자가 전한 싹의 예언이 이미 성취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짐으로 죄가 용서받는 예수님의 집,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서로 초대받고 초대되는 축복의 시대를 살고 있고 그런 축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옷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는 비록 불에 그슬려 아무 소망이 없어 보이는 지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며 영적인 풍성함으로 서로 교제하며 그리스도의 풍성함으로 초대하는 영혼구원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적용)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지금 주님의 평안으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큐티인 간증] 탈모로 찾아오신 주님 김윤지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이자 ‘성결의 옷’을 뜻합니다.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사도바울은 모든 어둠의 일을 이제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성도들에게 도전합니다. 빛의 갑옷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면 됩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골로새서 3장 12절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골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수정교회 공동체가 사탄의 온갖 방해와 고발에도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성도 각자 각자가 죄의 옷을 입고 심판대 앞에 서 있는 자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내 의가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 내가 죄 사함을 받았음을 알게 하시고, 날마다 주의 도와 규례를 지키므로 맡기신 사명 잘 감당하는 구원의 초대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