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청(天聽)이 막연하오매 구고(九臯)의 학(鶴) 울음소리가 어찌 들리오리까. 세월이 잠깐이오라 하마 70의 늙은 나이로 등에는 태어(鮐魚)의 무늬가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중심에서 우러나는 정성을 다하와, 높으신 청문(聽聞)을 번거롭게 하옵니다. 그윽히 생각하옵건대 상지(上智)의 공(功)은 능히 이(理)가 지극하여 기(氣)가 다음 되고 하우(下愚)의 학은 반드시 기(氣)가 주장되어 이(理)는 따라가는 것이니, 수양이 통일하지 않음을 말미암아 쇠해지는 것이 각기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은 지금 환갑이 지내고 또 5년을 더했으니, 진강(晋絳)의 춘추와 같사옵고 사지(四肢)는 쇠해서 이미 뜻과 같지 않아서 진숙(秦叔)의 여력(膂力)과 비슷하오니, 비록 적심(赤心)은 나라에 이바지 하고자 하나 백발은 집으로 물러가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그래서 아래 금문(金門)에 사유를 고하고, 행장을 단속하여 녹야(綠野)로 내려가려 하였던 것이온데 감히 주밀하신 온어(溫語)를 생각하오면 일각(日角)이 머리에 임한 것 같사옵고 따라서 거유(去留)에 대한 유시를 더하시니 몽매한 가슴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어찌 총명(寵命)이 이 지경에 이르단 말씀이옵니까, 가만히 분을 헤아려 보면 실로 분에 한계를 넘었사옵니다. 신 더러 황유(皇猷)를 윤색(潤色)한다 이를진대 장구(章句) 선비로 조전(雕篆)이나 수식할 따름이옵고, 신 더러 성화(聖化)를 경륜(經綸)한다 할진대 두초(斗筲)의 그릇이라 배작(杯勺)에도 바로 기울어질 뿐이오며 장년(壯年)에도 오히려 남의 업신여김을 받았사온대 늙마에 더구나 임금의 사용에 합하오리까. 하물며 질병이 얽히어 정신이 초최하오니, 오직 조석에 죽느냐 사느냐는 걱정뿐이오며 다만 토목(土木)의 형해(形骸)만이 머물러 있사옵기로 이에 두 번째 모독하는 죄를 무릅쓰고 드디어 빨리 부르짖으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신의 말이 딴마음 없이 폐부(肺腑)에서 나온 것을 짐작하시고 신의 뜻이 본래부터 연하(烟霞.자연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양찰하시와 특별히 윤음(綸音)을 내리시어 시골집으로 돌려 보내주시오면 신은 삼가 천년을 한 봄으로 삼아 봉인(封人)의 수부(壽富) 다남(多男)의 축(祝)을 이어 바칠 것이오며 세 번 자고 주(晝) 땅을 나가서 시골 친구가 나를 기다린 귀래(歸來)의 편을 답하겠사옵니다. (끝)
註: 걸해(乞骸)란 늙은 재상(宰相)이 나이가 많아 조정에 나오지 못하게 될 때 임금에게 그만두기를 주청(奏請)함을 이른다. 즉 자기 일신은 주군(主君)에게 바쳤으나 그 해골은 내려 주시면 좋겠다는 뜻으로서 사직을 간절히 청하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