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거제시조選-205」 남해바래길과 상여길' 김 현 길 지리산 꾀꼬리가 섬진강 따라와서 아름다운 울음소리 앵강만 파도 됐다네 해설사, 그럼 ‘바래길’은 개발 다니던 길이란다. 팔월 염천 상여길 가풀막 오르면서 ‘어허럼 어허럼차’ 상여소리 흉내내다 나 혼자 중도에 포기하고 아이스께키 사 먹었다. ◎ 시련과 명품 • 2 삭풍에 팽나무 가지가 울어 쌓더니 입춘 지나자 잠잠해졌다. 내가 옮겨 심은 팽나무와 함께한 세월이 30년이다. 옮겨 심을 때 심하게 잘린 가지로 해서 몰골이 말씀이 아니었던 팽나무였는데, 용케도 상처를 잘 치유하여 부챗살 모양으로 가지를 펼친 그 위용이 자못 당당하다. 나무는 자라면서 가지를 만들어 낸다. 가지에서 또 가지가 생기고 잎이 무성해지고, 마침내 우람하게 자란다. 세월 속에 더러 삭정이가 되는 가지도 있다. 삭정이는 옹이를 남기는데 목재의 흠이 되기도 한다. 옹이가 잘 아물면 아름다운 무늬가 되어 목재의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잘못되면 몸통 속에 동공(洞空)을 만들어 큰 나무를 통째 쓰러뜨리기도 한다. 옹이 없는 나무가 없듯 세상사는 하나같이 상처 투성이다. 흠결 없는 삶이 어디 있으리오만 흠결이 때로는 유익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경험은 지혜가 되고,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 그리고 사랑이 되어 삶의 향기로 되살아난다. 아픔의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상흔이다.
아름다움은 ‘앓음다움’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해 보인다. 상처 때문에 아픈 게 아니라 상처 덕분에 아름다움을 얻는 것도 있다. 바로 진주조개 이야기다. 진주조개의 아름다움은 조개의 속살에 생긴 상처 때문에 얻어진 것이기에 진주를 만드는 과정이 흥미롭다. 진주는 조개가 모래알에 상처를 입은 후 형성되는 유기질 보석이다. 조개가 먹이를 먹을 때에는 모래 등 이물질이 조개 속으로 들어온다. 이물질은 여린 조개 속살에 상처를 입히게 되므로 다른 조개는 그것을 걸러낸다. 그러나 진주를 만드는 조개는 상처를 보호하고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몸속에서 하얀 우유빛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그 화학물질들이 상처를 동그랗게 계속 덮어 쌓아가면서 점점 층을 겹겹이 쌓아 진주가 탄생된다. 진주는 패각이 자개처럼 광택이 나는 조개만이 생성할 수 있다. 천연 진주가 큰 형태로 만들어지려면 약 3~5년 이상 걸리는데, 0.5㎜ 두께의 진주에는 약 1천 겹 정도의 진주층이 형성되어 있다. 그만큼 진주는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몸에서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상처 입은 몸을 감싸면서 여인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진주로 승화된다. 진주조개는 외부의 자극을 많이 받을수록 더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 낸다. 진주조개에게 상처는 평생 흉허물이 되는 아픔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자신을 드높이기 위한 고통의 과정인 셈이다. 모래에 상처 입은 속살을 다독이며 우유빛 분비물로 천겹 만겹 층을 쌓아 마침내 태어난 진주 터져 나온 환호성. -拙詩, ‘진주조개’, 전문 20세기 여성패션에 혁신을 불러일으키면서 ‘샤넬’이라는 패션 제국을 건설한 샤넬(Gabrielle Chane), 코코(CoCo)라는 별칭으로 전 세계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녀에게는 남들보다 불행하고 고생이 심했던 깊은 상처가 있었다. 그녀의 상처를 두고도 진주조개에 비유하기도 한다. 샤넬은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린 시절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는 미국으로 훌쩍 떠나 버렸다. 병약한 어머니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가난과 싸웠다. 하지만 그 어머니마저 그녀가 12살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 자매는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기로 수녀원에서 자랐다. 18살에 보조양재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동생들을 보살폈다. 그녀는 자신들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토하면서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내 성공의 비결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맹렬하게 일하는 데 있다”고 할 정도로 그녀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손이 붓고 굳어질 정도로 필사적으로 일했다. 그것이 ‘샤넬’이란 브랜드 못지않게 유명한 인물이 되게 한 이유였다. 혼신을 다한 노력과 아버지에 대한 노여움의 에너지 위에 자신의 꿈을 쌓아 전설의 향수 ‘샤넬 No.5’와 화려한 클래식 브랜드 ‘샤넬 룩’을 창시하여 패션과 향장에서 세계 굴지의 사업을 일구었다. 1971년 파리의 리츠호텔에서 쓸쓸히 홀로 숨을 거둘 때까지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은 그녀는 생전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자신을 단련시켜야 하고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작업장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부채에 시달렸던 30수 년의 세월을 그런대로 버티어 왔다. 우스개로 ‘신불 삼십 년’이라 했더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신용불량 삼십 년’이란 설명에 웃는 이가 더러 있었지만 따라 웃을 기분은 아니었다. 불행에는 용기 있게 직면하는 것이 절망에 빠져 있는 것보다 훨씬 덜 고통스럽다. 크고 깊은 상처는 그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강인한 인내심과 불굴의 열정을 선물해 준다. 상처 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들 듯 상처를 딛고 일어서자. 아무렴 사람이 조개만 못할 손가. (이후 다음 주에 계속) 《감상》 시조 작품 〈남해바래길과 상여길〉은 거제 ‘섬&섬길’팀의 초청명사로 참여한 남해바래길 탐방길에서의 감흥을 2수 연작으로 읊은 김현길 시인의 작품이다. 남해바래길은 총 20개 코스로 구성된 24Km에 달하는 걷기 여행길이다. ‘바래’라는 말은 남해 토속어이다. 남해의 갯가 어머니들이 가족들의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바닷물이 빠지는 물 때에 맞추어 갯벌에 나가 파래나 조개, 미역, 고둥 등 해산물을 손 수 채취하는 작업을 일컫는 말인데, 이곳 거제에서는 ‘개발’이라고 한다. 상여길은 산자락에 있는 마을 공동묘지에 가는 길이다. 앵강만은 남해군 남면 당항리 일대의 만이다. 앵강만은 남해의 명산인 금산이 굽어보고 있는 만이다. 멀리 노도가 보인다. 삿갓을 벗어 놓은 것 같은 노도, 역사 저편에 이곳에 유배왔던 서포 김만중이 보인다고들 말한다. 앵강만에서는 한려수도 남해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굴이나 멍게를 키우는 흰색 양식장 부표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해삼이나 전복 등 종자를 방류하여 자연 상태에서 키우고 있기에 바다를 깨끗하게 유지 보존하여 갯게, 기수갈고둥, 흰발농게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 지역을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하여 관리 보존하고 있다. 앵강만의 파도소리도 아름다운지 / 지리사 꾀꼬리가 섬진강 따라와서 / 남해 금산에서 노닐다 / 아름다운 울음소리 앵강만 파도 됐다네. / 하고 탐방길의 해설사가 말했것다. 앵강만의 ‘앵’자는 꾀꼬리 앵(鶯)자다. ‘바래길’은 개발 다니던 길이라고 거제 토속어인 ‘개발’을 덜먹였다. 그날 비지떡 같이 땀이 흐르던 / 팔월 염천 상여길 가풀막을 오르면서 /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었을 지니, 가풀막은 경사가 심한 고갯길을 이르는 사투리다. 그냥 걷기도 힘든 차에 어릴 때 들었던 ‘어허럼 어허럼차’하는 상여꾼의 소리를 흉내까지 내었으니 가풀막을 어찌 오를 수 있었으리오. 더구나 시인의 첫 시조집 ‘육순의 마마보이’의 발간년도인 2019년을 미루어 보아 시인의 나이가 낼 모래 70일 테니 들숨 날숨이었지 싶다. 그래서 일행들이 “행님은 고마 점방에 가서 비비빅이나 사묵고 있으소” 했으리라. 비비빅이 아니고 ‘아이스께키’란다. 개발이니, 가풀막, 아이스께키 등 하나 같이 귀에 익어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남해 바래길은 2010년 오픈하였고, 2020년엔 오픈 10주년을 맞아 리모델링 하였다고 들었다. 필자는 남해유배문학관에서 개최되는 ‘서불과차 세미나’에 주제 발표차 수차례 방문하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남해보다 거제가 유배객이 훨씬 많았으니 말이다. 더구나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전통을 지닌 유산을 잘 보전하고 사람들이 찾는 남해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개발에 적극적인 남해를 보면서 보전과 개발의 균형 감각을 지닌 앞선 사람들이라고 찬 했다. 전국적인 둘레길 열풍 속에서 남해의 바래길은 단연 돋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거제 사람 열 사람이 남해 사람 한 사람은 못 당한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능곡 시조 교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