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방식의 교육은 본질적으로 위로부터, 혹은 밖으로부터 무엇을 부과(賦課)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이제 겨우 조금씩 성숙해 가면서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인의 기준과 내용과 방법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 사이의 간격은 매우 크기 때문에 배우고 행동하도록 요구되는 내용과 방법은 어린이들로서는 감당하기에 생소한 것이다. 그것들은 어린 학습자가 이미 지니고 있는 경험으로써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억지로 부과할 수밖에 없다. 비록 훌륭한 교사는 이러한 거친 모양을 덜 보이기 위하여 기술적인 방법을 써서 억지로 부과하는 것이 안되게 하려고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별로 다를 바는 없다.
아동의 의무는 오직 명령하는 대로 행하고 배울 뿐이다. 배운다는 것은 단지 이미 책이나 어른의 머리 속에 있는 바를 습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가르쳐지는 내용은 본질적으로 정태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것은 완결된 결과물로서 가르쳐지고, 애초에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다든가 혹은 미래에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든가에는 거의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든 참된 교육은 경험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험이 다 같이 교육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경험과 교육은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경험이든지 다음에 오는 경험의 성장을 저지하거나 삐뚤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경험은 비교육적인 것이다. 어떤 경험은 무감각을 일으킬 수 있으며, 감수성과 감응성을 결하게 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장래에 더 풍부한 경험을 가질 가능성을 제한해 버린다. 어떤 경험은 당장은 즐길 만한 것이지만, 방만하고 경박한 태도의 형성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후속 되는 경험의 성질을 왜곡시켜 그 경험이 해야 할 기능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또한 어떤 경험들은 서로 관련성이 없어서, 각각은 그 자체로서 즐길 만하고 감동적이기까지도 하지만 집합되어 있다는 상태 그것으로서는 서로 연결이 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 활동력은 낭비되고 사람은 산만해져 버린다.
경험의 필요를 고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한 경험을 동반하는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모든 것은 경험의 질에 달려 있다. 교육자의 임무는, 학생을 위하여 싫증을 일으키지 않고 그의 행동에 열중할 수 있는 동시에, 즉각적인 쾌감을 초월하여 장래의 유리한 경험을 촉진시키는 그러한 종류의 경험을 학생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학생의 활동이 바람직한 미래의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촉진시키는 것이어야 하므로, 교사의 역할은 한편 학생으로 하여금 싫증내지 않고 오히려 활동에 열중하게 하고 그러면서도 즉각적인 즐거움 이상의 것이 되도록 하는 그러한 종류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마치 사람은 누구나 자기 혼자서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어떤 경험도 따로 따로 고립되어 존재할 수는 없다. 모든 경험은 다음의 후속 되는 경험들 속에 계속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 중심 교육의 중심 문제는 미래의 의미 있고 창조적인 경험의 전형을 현재의 경험들 중에서 선택하는 일이다.
- 존 듀이, 「경험과 교육」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