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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획연재 -미국의 여성 불교 >
그녀의 가슴 속에는 밝은 태양이 들어 있다
일상의 언어를 통해 불법을 전하는
여성 불교 지도자
실비아 부어스틴
(Sylvia Boorstein)
글 / 홍성미(본지 취재기자,
컬럼비아 대학 아동미술학과 박사과정)
Tricycle Online 위크샵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실비아 부어스틴
실비어 부어스타인은 미국불교계에서 널리 알려진 여성 지도자. 1980년대 나로파대학에서 열린 불교와 기독교간 대화에서 미국 불교의 대표로 나섰다. 또 1993년 불교의 서양 전파와 관련된 어려운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달라이 라마와 만나 대화를 한 미국불교 대표중의 하나였다. 그녀는 또한 불교인의 종교적 헌신과 정체성의 결합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어 온 미국인 법사 중의 한 사람. 그는 자신을 독실한 유대교인이자 불교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시간을 뉴욕주 캣츠킬 유대인 교육센터에서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9년 8월호에 홍성미씨가 업스테이트에 있는 ‘겔리스 인스튜어트’에서 실비아 부어스틴이 지도하는 명상지도 행사를 소개한 적이 있다.
It’s Easier Than You Think”, 생각보다 쉽다 - 행복으로 나아가는 불교의 가르침
“That’s Funny, You Don’t Look Buddhist”, “Don’t Just Do Something, Sit There”, “Happiness is an Inside Job”, “Pay Attention, for Goodness Sake” 등의 저서가 있다.
-편집자 주-
실비아 부어스틴(Sylvia Boorstein)은 “유대인 할머니 보살 (Jewish grandmother bodhisattva)” 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한다.
1936년 생으로 올해 84세가 되는 그녀에게 할머니라는 호칭은 그리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실재로 그녀는 네 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이자 일곱 명의 손자 손녀를 둔 할머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를 직접 만난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분명 머리카락은 하얗고,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주름들이 선명하지만, 그녀에겐 여전히 젊음의 향기와 싱그러움 같은 것이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에너지는 마치 요정의 날개처럼 밝고 가벼웠고, 실타래 풀리듯 술술 흘러 나오는 그녀의 이야기 보따리속 일화들은 마법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그녀는 마음의 평화(peace)와 자애심(loving-kindness)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말보다 먼저 사람들은 그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평화와 자애심을 배우는 것 같다. 마치 입안 가득상큼한 오렌지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그녀의 유쾌한 목소리에선 금방이라도 오렌지 과즙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고, 이야기도중 예고없이 터져 나오는 그녀의 즉흥적이고 경쾌한 웃음소리, 그리고 멋쩍게 번지는 미소는 마치 따뜻한 햇님이 길 가는 나그네의 무거운 외투를 벗게 하듯, 닫혀 있던 사람들의 마음 빗장을 스르르 열리게 만들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어쩌면 밝은 태양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빛은 아주 작은 틈으로도 거대한 밝음을 만드는 것 같았다. 실비아 부어스틴(Sylvia Boorstein)은 할머니의 인자함과 지혜로움, 그리고 천진난만한 아이의 순수함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동유럽에서 건너 온 유대인 이민 3세
실비아 부어스틴 (Sylvia Boorstein)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통해 자신이 만났던 불교의 가르침을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이야기 들려주는 사람, storyteller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자신의 가족이나친구, 이웃과 동료 등 그녀 주변의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왠지 우리도 그들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실비아 부어스틴은 자신의 친할머니로부터 불교를 처음 배웠다고 말한다. 외동딸로 태어난 실비아 부어스틴은 그녀의 부모가 모두 일을 했기때문에, 어린시절 친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어린 손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잘 들어 주는 인자한 할머니였지만, 한가지 그녀의 할머니가 들어주지 않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실비아는 할머니에게 “난 행복하지 않아”라는 불평을 자주했는데, 그럴 때마다 조용한 성품의 할머니였지만, “도대체 어디에 넌 항상 행복해야 한다고 적혀 있니?” 라며 훈육을 하셨다고한다. 그리고 약 4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불교의 사성제를 처음 배우며 실비아 부어스틴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고한다.
실비아 부어스틴의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1910년대 즈음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유대계 이민자였다. 당시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어진 경제 대공황,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등을 겪으며 사회를 다시 새우기 위한 새로운 인식의 틀이 요구되고 형성되는 시기였다.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던 그녀의 조부모들은 투표를 통해 국민이 지도자를 직접 뽑을 수 있다는 것, 공평한 교육의 기회 등이 가진 가치에 대해 어린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 줄 만큼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한 교육의 영향이었는지, 성인이 된 후 실비아 부어스틴 (Sylvia Boorstein) 역시 네 명의 어린자녀들의 손을 잡고 남편과 함께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 동참하는 등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활동을 했다.
불교와의 만남
독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했던 그녀는 마흔 살이 되던 1977년 위빠사나 명상 리트릿에 참가하며 불교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미국 불교 1세대로 불리는 명상 지도자 잭 콘필드, 샤론 살즈버그와의 인연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실비아 부어스틴에게있어서 이들은 불교 입문의 스승이자 함께 명상을 지도하는 불교 수행의 도반이 되었다. 현재 실비아 부어스틴은 잭 콘필드, 조셉 골드스타인, 샤론 살즈버그가 설립한 통찰명상협회 (Insight Meditation Society)의 수석 명상 지도자이자, 1985년 잭 콘필드가 캘리포니아에 Insight Meditation West로 시작했던 Spirit Rock Meditation Center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인도와 남방불교를 통해 불교를 처음 접했던 초기 미국 불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실비아 부어스틴의 가르침은 테라바다(남방상좌부불교)에 입각한 통찰명상(Vipassana)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녀의 가르침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그녀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주란 무엇인지? 이러한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보였다. 대신 불교 사성제(Four Noble Truths)의 가르침을 통해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진정한 평화,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을 철저히 생활 속 언어와 예시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설명한다.
고(苦), 괴로움이란 우리가 감당하기에 충분하다
그녀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였다. 물론 훗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며 심리치료사로서 환자들을 상담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법에 익숙한 과학적 사고와 태도를 가진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사성제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그녀의 접근법 역시 그랬다. 그녀는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대신 자신이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데 모든 노력을 했다.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인생은 고(苦: 괴로움)라는 부처님의 진리를 배웠다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무상한 인생에 집착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집(集)의 공허함을 배웠다고 말한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인생이 온통 핑크빛이었을 것만 같은 그녀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어린시절 그녀의 어머니는 활달하고 호탕한 성격의 사람이었지만 늘 건강이 좋지 않았고 실비아 부어스틴이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고한다. 사랑하는 아내, 딸, 어머니를 잃은 가족들의 슬픔은 컸고, 그녀 역시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며칠후 모든 장래 절차가 끝나고, 그녀의 아버지는 다시 일터로 향하며 슬픔에 잠겨 있는 그녀에게, “내가 뭘 할 수 있겠니?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인생은 그렇게 흘러 가는 거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야” 라는 말을 했다고한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두 번의 재혼을 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게임에 100%의 승률을 확신하고 있는 승부사처럼 보였다. 그녀는 인생이 괴로움이고, 집착이 부질없음에 대한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듯 보였고, 더불어 모든 고통은 관리가 가능하고 우리에게는 그 고통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완벽한 확신이 있었다. 그녀는 왜 인생이 고행인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녀의 시작점은 어떻게 매 순간 마주하게 되는 내면의 괴로움을 잘 관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천적 행동을 도와주는 다양한 조언들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은 지혜라고 불렀다.
실비어 부어스틴
자명함은 그녀가 가진 가장 큰 매력
샤론 살즈버그의 스승이었던 인도의 성인 디파마 (Dipa Ma)에게 자애 명상 (Loving-Kindness)을 배운 실비아 부어스틴 역시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과 친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녀는 우리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오직 지혜로울 수 있고, 그지혜만이 우리에게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덜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자애심이 충만할 때 우리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자애 명상 (Loving-Kindness) 수행과 깨어있음을 통해 이러한 사랑의 마음과 친절함이 자신에게 늘 흐르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녀의 가르침에는 마치 계단을 하나씩 오르며 나아가는 수행의 고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뱀이 자신의 고리를 입으로 물고 있는 듯 수행의 시작과 끝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부처란 카필라 왕국의 왕자였던 싯다르타 고타마, 고타마 붓다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깨달음을 얻은 모든 사람을 칭하는 말이며, 우리 모두에게는 이러한 불성이 잠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녀에게 불교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불성을 행동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불교의 수행이며, 그러한 불성을 일상 속에서 발현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부처라는 것이다.
그녀는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그녀가 가진 “자명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정확히 자신이 알고 있고,또 확신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말을 한다. 자신이 하는 말과 삶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그녀는 자연스러웠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그녀의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은 그녀의 실패담이다. 어떻게 자신이 평정심을 잃었는지,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를 힘들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깨달음을 통해 어떻게 어긋났던 관계를 회복했는지, 사실 우리 역시 일상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겪는 친숙한 상황들을 그녀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쉽고 친절하게 들려 주고, 자신이 깨달았던 더 나은 선택과 방법들을 제시해 준다.
미국 불교의 비전
그녀는 자신을 불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 신자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근간을 이루고 있는 유대인으로서 종교, 유대교를 배척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불교와 유대교는 자신의 본성을 깨닫게 도와주는 협조적 관계의두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모태 종교인 유대교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유대인 커뮤니티만을 위한 불교 명상워크샵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실비어 부어스틴
그녀의 동양의 불교는 종교적 형식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마치 자신의 유대교가 종교적 전통이나 규범의 틀에서 과거와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동양의 이민자들에 의해 시작된 그리고 신앙적 믿음의 바탕 위에 있는 불교 역시 그러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양인들에 의해 시작된 미국 불교는 좀 다르다고 말한다. 미국 불교는 신앙적 형식이나 규범에서 훨씬 자유롭고, 이러한 종교적 유연성은 더 나은 사회, 그리고 개인의 행복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인 방법과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보살이란 단어는 대승의 언어다. 필자는 철저하게 소승적 불교를 지향하는 서양의 불교 명상가들이 보살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이들이 말하는 보살의 의미가 무엇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곤 했다. 사실 필자 역시 보살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알지 못한다.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자리이타”의 길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 실비아 부어스틴의 이야기를 들으며, 필자는 서양의 불교 신자들에겐 어쩌면 별도의 대승 교리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문화 속에는 사회참여, 공익을 위한 연대라는 감성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불거진 죠지 플로이드의 사망과 관련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평화시위를 비롯해 필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크고 작은 미국의 평화와 인권 운동들을 목격해 왔다. 새내기들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이 집에 있는 종이나 골판지에 자신의 작은목소리를 표현한 문구를 손으로 적어,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가는 모습을 보며 이러한 공익을 위한 사회참여가 그들에겐 무척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였다. 실비아 부어스틴은 테라바다(남방상좌부불교) 불교 수행에 기반을 둔 통찰명상(Vipassana)을 지도한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평화, 인권, 환경 문제 등에 관심이 많았고, 불교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도 있었다. 미국의 불교는 앞으로도 쉼 없는 진화를 거듭해 갈 것이다. 하지만 굳이 미국 불교의 현재를말하자면, 사회 참여와 공익을 위한 연대라는 서양의 보편적 문화와 마음의 평화에 방점을 둔 테라바다 불교의 랑데뷰 지점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미국 불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명상 워크샵들이 무기한 연기된 상황에서도 실비아 부어스틴은 뉴욕에 기반을 둔 불교 잡지 트라이시클(Tricycle)의 화상을 통한 명상 워크샵을 진행하고, 다른 많은 명상 단체들과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지금도 활발하게 대중과의 만남을 유지하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었다.
실비아 부어스틴의 저서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상황에 대해 Online 인터뷰 중인 실비아 부어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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