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95 · 끝) 요한 묵시록
주님의 날을 준비하여라
- 신약 성경의 마지막 정경인 요한 묵시록은 주님의 날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갖추라고 권고한다.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 1536~1541,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요한 묵시록은 읽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정경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성경의 여느 정경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많은 상징을 담은 ‘환시’를 통해 종말에 드러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1)를 전달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요한 묵시록을 읽고 그 내용을 제대로, 올바르게 이해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상 교회의 권위 있는 주석과 주해를 바탕으로 요한 묵시록을 대해야만 이 정경을 제대로 읽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신약 성경의 마지막 정경입니다. ‘계시’ ‘묵시’ ‘묵시록’으로 번역된 헬라어 성경 본문을 ‘아포칼립시스(Αποκαλυψιs)’라고 합니다. 아포칼립시스는 우리말로 ‘가려져 있는 것을 열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곧 알지 못하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묵시문학과 예언서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묵시문학에서는 한 인물에게 어떤 초월적인 내용이 전달됩니다. 그 내용은 시간적으로는 종말에 관해, 공간적으로는 천상 세계에 관해 계시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계시받는 사람이 그 받은 내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천사나 다른 어떤 존재가 해석해 줍니다. 구약의 다니엘서와 신약의 요한 묵시록이 묵시문학에 속합니다. 물론 예언서에도 환시가 등장합니다. 아모스·예레미아 예언자가 환시를 보았지요. 또 예언서도 ‘주님의 날’인 종말에 관해 말합니다. 아모스·즈카르야·말라키 예언자가 종말을 경고했지요.
하지만 묵시문학의 종말은 예언서의 그것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예언서는 종말을 말하지만 세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고한 종말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국의 멸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묵시문학의 종말은 현재의 세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 역사의 흐름이 단절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시작됨을 나타냅니다. 묵시문학은 미래에 닥칠 종말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세사 전체를 하느님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앞이 보이지 않는 현재를 하느님의 계획 일부로 이해하도록 이끕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Αποκαλυψιs Ιωαννου(아포칼립시스 요안누)’,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pocalypsis(Apocalypsis B. Ioannis Apostoli)’, 한국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요한 묵시록’으로 표기합니다.
교회는 요한 묵시록의 저자를 넷째 복음서를 쓴 요한 사도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과거부터 넷째 복음서와 묵시록은 한 저자가 썼다고 하기에는 문체와 신학이 너무 다르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 예로 요한 복음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육화의 그리스도론이 중심인데 반해 요한 묵시록에는 육화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오늘날 성경학자 중에는 팔레스티나 지역에 살다가 유다 전쟁(66~73년) 이후 소아시아 지방으로 이주한 유다인 출신 순회 예언자 중 한 명이 묵시록을 저술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로마의 황제 숭배 의식이 강요되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통치 말기의 박해 상황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어 95년께 쓰였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요한 묵시록의 수신인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입니다.(1,4.11; 2-3장) 에페소·스미르나·페르가몬·티아티라·사르디스·필라델피아·라오디케이아 교회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요한 묵시록은 이 일곱 교회에만 보내진 종말에 관한 계시가 아니라 소아시아 전체 교회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이라고 설명합니다.(22장 참조) 가장 큰 이유는 ‘7’의 상징성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일곱, 곧 7은 하느님의 세상 창조에 필요했던 시간으로 이후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요한 묵시록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약속된 것만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서부터 주어진 하느님의 구원을 위한 약속이 실현되는 과정을 드러냅니다.
요한 묵시록은 22장으로 일곱 교회에 보내는 짧은 편지(1-3장)와 환시들(4-22장)로 구성돼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일곱 교회에 ‘니콜라오스파’를 경계하라고 경고합니다.(2,6) 이들은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2,2), “사탄의 무리”(2,9), “발라암의 가르침을 고수하는 자들”(2,14), “이제벨이라는 여자”(2,20), “사탄의 깊은 비밀”(2,24)로 우상 숭배를 조장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입니다.
요한 묵시록의 환시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환시는 ‘어좌에 앉은 분’과 ‘어린양’에 대한 환시로 이뤄져 있습니다. 어좌에 앉은 분은 하늘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어린양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12번에 걸쳐 표현되는 스물네 원로는 천사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구약 성경에 나오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제들과 성가대를 나타내는 숫자에서 왔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1역대 24-25장 참조) 또 사자·황소·사람·독수리로 묘사된 네 생물은 네 복음서를 상징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종말의 모습을 악의 세력과의 전쟁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 사이에 ‘천 년 통치’라는 중간 시간을 계시합니다. 이 시기는 ‘평화의 시대’(이사 11,1-9)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실현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환시입니다.(마태 19,28)
신약 성경의 마지막 정경인 요한 묵시록은 우리에게 주님의 날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갖추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1월 3일, 리길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