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오늘 제2독서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참성소의 모조품”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든 성소”가 아니라 “바로 하늘에”(히브 9,24) 들어가셨다고 말합니다. 참성소는 하늘 성전을 가리키는데, 이는 지상의 성전이 하늘 성전의 모습대로 지어졌음을 암시해 줍니다. 참고로, 하늘 성전의 ‘존재’는 이사 40,22과 묵시 11,19에 언급된 바 있습니다.
고대 근동인들은 한처음의 혼돈을 제압하고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가 안식을 취하는 곳이 신전이라 여겼습니다. 창세기도 천지창조 뒤 하느님의 안식에 대해 알려줍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2,3). 그런데 이 안식은 피로회복의 개념이 아니라 ‘세상이 평화롭게 되었다.’라는 방증입니다. 곧 삼라만상의 질서가 자리 잡혔기에 하느님께서 더 일하실 필요없이 평화롭게 쉬실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세상의 평화를 보장하며 안식하시는 곳이 성전이라는 점은 시편 132,8에 나옵니다: “주님, 일어나시어 당신의 안식처로 드소서. 당신께서, 당신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 여기서 “권능의 궤” 곧 계약 궤를 모셔 두던 곳은 성전이었으므로, 주님의 ‘안식처’란 성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비롯한 고대 근동인들은 성전 또는 신전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 창조 질서에 해가 되는 일이 발생하면, 하느님께서 안식을 멈추신다고 봤습니다. 이스라엘에 위기가 닥쳤을 때 백성들이 바친 기도가 시편 44,24에 나옵니다: “깨어나소서, 주님, 어찌하여 주무십니까? 잠을 깨소서, 저희를 영영 버리지 마소서!” 이사 51,9에도 비슷한 호소가 나옵니다: “깨어나소서, 깨어나소서, 힘을 입으소서, 주님의 팔이시여. 옛날처럼, 오래 전 그 시절처럼…” 이 두 구절 다 세상의 평화가 깨졌으니 주님께서 안식을 멈추시고 질서를 회복해 주시기를 청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스라엘과 고대 근동인들은 세상의 평화를 상징하고 또 보장받는 의미로 하늘 성전의 모형을 지상에 지었습니다. 히브 8,5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지휘 아래 봉헌한 광야 성막 역시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모형대로’ 지었다는 점(탈출 25,8-9)을 알려줍니다: “모세가 성막을 세우려고 할 때에 지시를 받은 대로, 그들은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상이며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성소에서 봉직합니다. 하느님께서 ‘자,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준 모형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손으로 쓰인 기록에 들어 있다. 그분께서는 나에게 이 모형의 온갖 세부 사항을 분명히 알려 주셨다”(1역대 28,19). 말하자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 셈입니다. 그런데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뒤에는 주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우리 인간이 성령을 모시는 성전이 되므로(1코린 3,16),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섭리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다고 하겠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11월 10일(나해)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