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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2-21
여리고 기도 작전 / 변한규 목사
12.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니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수3:6
13.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니라 수6:4
14. 그 제 이일에도 성을 한번 돌고 진에 돌아 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15.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번 도니 성을 일곱번 돌기는 그날 뿐이었더라
16. 일곱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수6:20
17.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수2:4
18.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신7:26, 신13:17, 수7:1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찌니라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21.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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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부터 20일 여리고작전 새벽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영적전쟁이 시작된 셈입니다. 20일 동안 묵상할 책이 마련되었는데 여기 한군데를 읽어봅니다.
"여리고작전은 무엇인가? 무너뜨리기 작전이다. 무엇을 무너뜨려야 하는가? 우리 앞에 놓인 여리고성이요, 민족 앞에 놓인 여리고성이다. 여리고성은 어떤 성인가? 죄악의 성이요 장벽의 성이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려하는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라.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도록 시험에 들지않게 기도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 복지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막는 엄청난 장벽이 있는데 여리고성입니다. 여리고성은 마지막관문이기도합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려야만 그토록 염원했던 가나안 복지에 들 수 있습니다. 여리고성은 그 둘레가 무려 770m, 높이는 9m나 된다고 합니다. 그 벽은 안팎으로 되어있는데 안 벽은 두께가 1.8m가 되고 바깥 벽은 5m나 되는 성입니다. 아주 견고한 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탱크나 불도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떤 장사가 이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엄청난 여리고성이 삼풍백화점 무너지듯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무기 '기도'로 이러한 이적을 만든 것입니다. 기도가 탱크, 불도저를 대신한 것입니다. 결국 여리고작전은 기도의 작전이요,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우리는 물어야할 것입니다. "우리를 막고있는 여리고 장벽은 도처마다 있는데 우리의 가정, 건강의 여리고성은 없는가" 사실 여리고성은 어디에나 있는데 국가, 교회, 정치, 경제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20일 여리고 기도작전을 통해서 이러한 성들을 무너뜨리는 승리를 가져올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의 주제는 "여리고 기도작전"입니다.
첫째, 행군 기도작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성주변을 행군했습니다. 엿새동안은 하루에 한 바퀴 행진을 했고 이레되는 날은 마지막날인데 성주변을 일곱 번 행군했습니다. 합하면 여리고성 주위를 열 세 번 돈 셈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리고성 주변을 여러차례 돌게 하셨을까?
많은 주석가들이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내, 순종하는 믿음을 기르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성을 돌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은 그들을 감동시켜서 믿음을 키우고 감격을 키우고 하나님 앞에 헌신을 다짐하는 좋은 기회로 만들어주시지 아니했나 싶습니다.
이렇게 키운 믿음이 어떠한 믿음입니까? 행군하는 믿음 곧 순종하는 믿음이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내하는 믿음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엿새동안 날마다 성주변을 돌았으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징조가 나타나지도 아니했습니다. 보통사람같으면 그냥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분부인지라 꾸준히 행군했습니다. 그 믿음이 인내하는 믿음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들은 인내하면서 성을 돌고 또 돌면서 기도하고 감사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본받아야 될 믿음이요, 순종인 것입니다. 그들이 승리를
염원하면서 행군할 때 지녔던 특징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 잠잠했다.
10절 말씀에 보면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고 행군할 때 잠잠하게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행군한 것입니다. 여기 입을 열지 말라, 잠잠하라는 말은 "불평하지 말라, 의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이러한 전쟁이 있느냐? 성을 계속해서 돌라고만 하느냐? 이것이 여호수아가 만들어낸 작전이냐?"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잠잠하라" 말씀하신지라 잠잠했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교회에도 이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불평은 금물입니다. 짜증내는 일은 가는 길을 더디게할 뿐입니다. 그리고 지도자를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할진대 우리는 잠잠할 때에 잠잠해야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잠잠히있다가 함성을 터뜨리라고도 했습니다. 얼마나 순종을 잘 했던 행군인지 모릅니다.
②질서를 잘 지켰다.
행군을 할 때 질서를 지키지 아니하면 혼란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생각하면 교회에도 질서입니다. 그들은 무장한 군인들, 나팔부는 제사장, 법궤를 멘 제사장, 백성들.. 이렇게 질서정연했다는 것입니다. 왜 행군할 때에 질서를 지켰습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어지러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는 법과 질서가 있습니다. 믿음생활도 어떻게 보면 질서 생활이라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많은 기관들이 있습니다. 기관들이 질서를 지키면서 의무를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있어야 될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③ 사명을 다했다.
법궤를 메는 사람은 법궤를 메고 나팔을 부는 사람은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지를때에는 온백성이 함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믿음생활에서 저마다 승리하기를 원하는데 그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남이 하는 일을 탓하지 말고 내가 할 일을 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집사는 집사의 일, 장로는 장로의 일, 목사는 목사의 일 즉 자기의 일만 감당하면 됩니다. 궤만 메고, 나팔만 불고, 함성만 지르면 됩니다. 그리하면 승리는 이스라엘에게 돌아올 것이 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아내, 자녀 각자 자기의 사명만 잘 감당하면 부흥하는 가정,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기도해야합니다. 어떤 기도를 해야합니까? "하나님이여, 눈 앞에 있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주시옵소서"해야 합니다.
둘째, 승리 기도작전
승리는 이스라엘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여리고성이 와르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견고한 성이 무너질 수 있었습니까? 칼과 단창으로 무너진 것도 아니고 작전계획이 사람 생각에 그리 훌륭한 것도 아닙니다. 성을 돌고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질렀을 뿐입니다.
그런데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 방법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이기네 찬송합니다.
히11:37은 이 장면을 "믿음으로 칠일동안 여리고를 두루 돌아다니매 성이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믿었습니까? 수6: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이리라" 바로 이것을 믿은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백성들도 이 말씀을 믿고 돌았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열심히 기도하십니까? 기도할 때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해야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① 새 힘을 얻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새 힘이 필요합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릴려고 하면 이 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사40:30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새 힘은 새로운 힘입니다. 우리가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는 힘입니다. 그런데 이 힘 받는 비결은 믿음으로 기도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이 가까이하십니다.
능력많은 하나님이실지라도 멀리 계시면 내게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 능력많으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면 내가 힘을 얻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빠가 곁에 안계시면 쩔쩔매면서 곁에 계시면 어깨를 으시대는 것 볼 수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시145:18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고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③ 사죄의 복을 받습니다.
인생들이 죄를 범하고 그 죄를 지니고 있으면 무거워서 행동을 바로 못합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도 못합니다. 죄짐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사죄의 복을 받습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하실것이요" 얼마나 확실한 보장입니까.
"기도하면 깨끗케하실 것이요" 결단코 부도낼 말씀이 아닙니다.
④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왜 우리가 무능력합니까? 세계를 향한 선교사업을 제대로 못합니까? 아직도 우리에게는 힘이 부족한 탓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충만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기도를 해야합니다.
눅11:13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⑤상황이 바꿔집니다.
하만의 경우를 보십시오. 모르드개를 달려고 장대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울부짖는 자의 기도를 외면하지 아니하십니다. 모르드개를 달고자한 장대에 도리어 하만을 달아 죽게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모세의 손이 무엇입니까? 기도의 손입니다. 기도가 전쟁 같은 삶속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힘인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까? 쾌락? 다이나마이트?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 주변을 돌기만 했습니다. 한 바퀴 두 바퀴.. 돌기만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전쟁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도는 그것이 승리하는데 영향을 주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돌 때에 믿음으로 돌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이적은 하나님께서 만드십니다. 그런데 그 이적이 사람의 꾀로 되는 것 아니고 욕심과 지혜로 만들어진 것 아닙니다. 믿음이 만듭니다. 어찌 이적뿐이리요, 축복도 믿음이 만듭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경의 원리는 꼭 같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면 축복이지만 불신앙으로 불순종하면 지옥입니다. 우리의 승리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새벽기도작전
본문 12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고 했고 15절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왜 여리고 작전이 새벽에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새벽에 무너뜨리도록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기도작전은 언제 해야 될 것인가?
새벽이 적기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면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과 같이 기독교의 역사는 새벽에 이루어졌습니다. 새벽에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십계명을 주시고, 만나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새벽에 기도하시고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계22:16에 예수님을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했고 따라서 예수님께서 새벽에 재림하실른지도 모릅니다.
막13:35이 근거가 됩니다. "깨어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른지 혹 새벽일른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 새벽에 오실른지도 모릅니다.
왜 새벽기도를 해야합니까?
① 주님께서 새벽에 기도했기 때문
② 주의 종들이 새벽에 기도했기 때문
루터는 새벽 2시간 동안 기도하지 않고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고 했고 허드슨 테일러는 새벽기도를 통하지 않고 선교사역에 승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새벽제단을 쌓지 아니하는 잠자는 성도들 가정 가정을 돌아다니면서 똑똑 노크하면서 "새벽기도, 새벽기도" 외치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③ 새벽에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때문
시46:5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다윗은 시57:8에서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고 했습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뜻 하나는 하나님을 깨운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51: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둘째, 하루를 늘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은 시간을 버는 사람입니다. 새벽부터 농터로 나가는 농부는 많은 수확을 얻을 것이고 새벽부터서 문을 여는 상인은 수입을 더 올릴 것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은 하루를 이틀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셋째, 축복을 만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새벽을 사는 사람치고 복받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새벽을 사는 민족치고 부강하지 아니하는 민족이 없습니다.
왜 새벽에 복을 받습니까?
하나님께서 유별나게 새벽에 복을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여, 주여"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주님을 외면할 때, 배반할 때도 많습니다.
20일 여리고작전 새벽기도를 통해서 우리주님을 만나 뵙는 축복도 있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무리 고급차라도 기사가 없으면 꼼짝하지 아니합니다. 인생은 목자 없는 양 같고 기사 없는 자동차와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시고 신령한 의미에서 기사도 되십니다. 고물차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도 달릴 수 없습니다. 덜컹거릴 뿐입니다. 그러나 엔진을 갈아끼우면 120km라도 거뜬히 달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엔진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에게 엔진이 있습니다.
성도에게 엔진이 있습니다. 믿음,
기도의 엔진입니다.
갈아끼우고 싶지 아니합니까. 홀로된 할머니 한분이 낡은 집을 목수에게 팔고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가봤더니 아름다운 집으로 바꿔진 것 우리는 잊지 말아야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주인이 그 집이 새로워지듯이 인생의 주인이 바꿔지면 사람이 새로워집니다. 새출발합니다. 거듭납니다. 능력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불꺼진 캄캄한 방도 벽에 붙어있는 전기스위치를 올리면 대낮처럼 밝아집니다. 그러나 다시 스위치를 내리면 방은 캄캄해집니다.
제4수원지에 있는 물이 철철 넘쳐도 수도 파이프로 공급받지 아니하면 밥 지을수 없고 빨래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에너지원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필요를 공급받는 통로입니다. 신령한 스위치요, 파이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요한복음 15장에 있는 포도나무비유를 기억하십니까.
우리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 모두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으면 절로 공짜로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그러나 가지가 나무를 떠나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삼손은 힘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힘을 잃어버렸을 때에 머리 깍이고 눈 뽑힘을 받은 삼손 영영 쓰러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머리 깍인 삼손처럼 무력한 성도는 없습니까?
왜 성도가 무력합니까?
우리 주님 안에서 살아야 될 그 성도가 주님 밖에서 방황하면서 서성거리면서 힘을 다 잃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여,
주 안에서 용기백배해야 합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어야합니다. 칠전팔기해야 합니다.
민족이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켜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했는데 빛, 소금노릇 못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있는 성도들 어떻게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될 수 있겠습니까. 금번 시행하는 새벽제단을 통하여 없었던 힘을 되찾고 잃었던 우리 주님을 다시 만나뵙는 축복을 함께 누리실 수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