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에 대한 이런 철학적인 접근 외에, 언어학에서는 은유의 해석 문제가 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최근 인지언어학에서 은유는 하나의 언어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인지과정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은유에 대한 인지언어학적 연구는 Lakoff & Johnson(1980)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주로 일상 언어 표현에 은유가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언어적 은유들이 사실은 더 추상적인 개념적 은유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후 Lakoff 및 Johnson에서 은유의 논의가 계속 진행되며, 특히 Lakoff에서는 추상적인 개념 중에서 ‘화’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Lakoff 및 Turner는 은유에 대한 논의를 일상의 언어적 은유에 국한시키지 않고, 일상의 언어적 은유에 적응하는 개념적 은유가 시적 은유를 이해하는 데 적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Sweetser(1990)는 개념적 은유에 대한 또 다른 응용으로서, 지각동사의 의미 변화와 서법동사의 다의성 현상을 개념적 은유로 설명한다. Lakoff(1992)에서는 은유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데 이용하기에 이른다.
-<인지언어학과 의미>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위의 글을 보다가 갑자기 능력과 실력이라는 게 떠오른다. 뭐든 일을 잘 해내려면 실력을 쌓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대단한 실력으로 능력이 빛나면 그가 해내는 일에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그는 이른바 성공이라는 것을 이루게 된다. 그 성공의 잣대가 풍족한 재물은 아니고 자신이 세운 목표라고 할 때,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만족감일 것이다. 물론 채워지지 않는 게 만족감이지만, 그걸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든다. 그 과정을 보면 내가 하는 노력은 참으로 미미하게 보인다.
여기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은 며칠 전 <생활의 달인>에서 본 음식점 주인들을 말한다. 최고의 쫄면을 만들기 위해, 최고의 냉면을 만들기 위해, 최고의 불고기를 만들기 위해, 최고의 순대를 만들기 위해 상상 이상의 노력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과연 나는 글쓰기 전파를 위해 그들만큼 노력하고 있는가?
가장 창의적인 글쓰기는 서로 무관한 것들을 연결시켜 글로 써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빛나는 것이 은유다. 서로 비슷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 만나 공통점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잘 엮으면 두 개가 가지고 있지 못하는 창조적 발견이 뿜어져 나온다. 그것이 최고의 글쓰기이고, 그것이 둔감한 우리의 감각을 확 깨우친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문장으로 된 것을 보니 몸에서 새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은유의 인지언어학적 원리다. 삶 자체가 은유이고 언어적 표현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그들의 연결 실력은 정말 존경스럽다. 돌배를 갈아서 밥을 한다는 것, 그 어느 책에서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열심히 살려고, 최고의 순대를 만들려고, 그렇게 생활 속에서 나온 그분만의 결실일 것이다. 그게 최고의 삶이고 최고의 은유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언젠가 부산에 가면 그 순대를 꼭 맛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