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봉동 파출소앞(07:30)→동강동천병원앞(07:35)→동천체육관(07:40)→홈플러스옆(우리요양병원(07:45)→
동덕현대(07:55)→우정선경 (08:00)→태화로타리(08:05)→시청(08:10)→공업탑로타리(08:15)→신복로타리(08:25)→천산읍사무소(08:35)→언양서울산IC(08:45)
부계봉(783.9m) - 치키봉(757m) - 가 산(902m) - 가산바위(860m)
◈산행일 : 2026년 2월 15일 일요일 ◈
◈들머리 : 한티재휴게소--경북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1245(득명리 산108-1)
◈날머리 : 가산산성 진남문 주차장--경북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629-1
◈코스 : 한티재-부계봉-치키봉-할매.할배바위-가산정상-중문-가산바위-남포루-진남문-주차장(트랭글10.6km 램블러10.3km)
◈소요시간 : 5시30분
▣ 산악회제공: 아침식사없음(집에서하시고 오세요)및 하산주 (식당)제공합니다.
▣ 산행회비:55,000원( 농협(한영옥)302-0602-5270-81)
■ 선 입금 시행합니다📍
☎연락처
회장 010-2728-1575 ,
사무국장 010-8974-0774
산행대장 010-2680-568 ,
한울관광(경북75바1747)장일환(010- 4578-6774)
송림사' 와 '벽돌로 쌓은 전탑' 신라시대 오악신앙(五岳信仰)의 중심인 명산 팔공산,그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10Km 떨어진 해발 901.6m의 가산은 경상도 지리지 팔거현조에 명산 가사산(架士山)재현북(在縣北)이라 하였는데 가산은 가사(갓의 음차,변,말-팔공산 연봉 서북쪽 끝)산→갓산→가산으로 이름된 명산으로서 일명 칠봉산이라고도 불리며 군내 최고봉으로 가산면 가산리에 있다.7개의 봉이 7개의 골짜기를 이루어七谷이라 한 것이 오늘의 칠곡(漆谷)이되었다.1640년(인조18년)에 가산성을 쌓고 칠곡도호부의 치소가 약180년간 산성내에 있었다.6,25때는 이곡에서격전이 있었다. 선조의 호국의지가 깃들어 있는 가산산성과 가산바위 등 명소가 많으며 울창한 수림,계곡의 석간수는 한여름에도 서늘함을 느낄만큼 시원하여 가족 단위의 등산객이 많이 찾고 있다. 가산바위는 산성 서쪽편에 있는 80여평의 넓은 바위로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의 중 道詵(827-898)이 산천을 편력하면서 탑을 쌓거나 철상을 땅에 묻어 지기를 다스렸다 하는데 가산바위에는 쇠로 만든 소와 말의 형상을 묻어 지기를 눌렀다고 전한다.용의 모습을 닮은 용바위,신선이 노닐었다는 유선대는 가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다.가산에서 유명한 볼거리 중의하나가 송림사이다.송림사는 진흥왕5년(544)명관(明綰)이 중국에서 가져온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절이다.고려 선종9년에 유명한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전쟁으로 소실되엇던 것을 조선 숙종 12년에 다시 중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대웅전의 편액은 이때 숙종이 직접 쓴 숙종의 친필로 전해지고 있다.이 대웅전 안에는 높이3m의 불상이 있는데,이 불상은 향나무로 만든 것이라 한다.우리나라에는 향나무로 만든 불상이 거의 없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조선 초기까지는 아주 큰 사찰이엇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로서는 그리 큰 사찰은 아니다.여기에는 우리나라에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벽돌로 만든 송림사 오층전탑(보물제189호)이 있다.1959년 이 탑을 수리하기 위해 해체하면서 탑 안에 있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토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의 다양한 유물들이 하나의 탑 안에서 발견된 점으로 보아,보수가 여러 차례 있었음을 알 수 있다.1층 탑신에서는 나무와 돌 그리고 동으로 만든 불상이 각각 2구씩 나왔고,2층에서는 신라의 사리 장신구들이 나왔다. 얇은 금판을 오려 만든 섬세한 장식물들이 붙어있는 금동제 사리탑과 녹색 유리로 만든 목이 긴 사리병, 옥과 진주가 붙어있는 유리잔들이 채색된 거북 모양의 돌로 만든 함 안에 있었ㄷ다.3층에서는 나무 뚜껑이 덮있는 돌 상자 안에서 부식된 종이들이 발견되었으며,5층 위에 있는 머리 장식부인 복발(엎어놓은 대접모양의 장식)안에서는 상감청자로 만든 원형 합과 금동으로 만든 원륜2개가 발견되었다.그 중 상감청자원형함은 국화 꽃무늬와 덩굴무늬로 장식한 것으로,유약 색깔과 문양으로 보아 12세기후반 상감청자의 전성기때 작품으로 보이는 뛰어난 작품이다.절 마당에 서있는 오층전탑은 벽돌로 된 탑이라 겉보기에 상당히 독특한 모양을 하고있다.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온 석탑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앞서 말했듯 이 탑은 흙으로 구운 벽돌을 이용해 쌓아 올렸다.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벽돌이 아닌 화강암을 이용하여1단으로 마련하였는데,기단의4면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塔身)은 모두 벽돌로 쌓아올렷다.2층 이상의 몸돌은 높이가 거의 줄어들지 않아 전체적으로 높아 보이나,각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이 넓은 편이어서 안정되고 온화하다. 지붕은 벽돌로 쌓은 점을 고려한 듯밑면의 받침부분 외에 위의 경사면까지 층급을 두어 쌓았다. 꼭대기에는 금동으로 만든 머리장식이 남아있는데,이는 1959년에 해체하여 복원작업을 하면서 원형대로 모조한 것이다.비록 모조품이긴 하나,통일신라시대 금동 상륜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최근에 이같은 송림사 유물들에 대한 보존노력이 촉구되기도 했었다. (( 유 정열의 한국 1000명산 견문록에서 발췌))
입금완료입니다
감사합니다
신복탑승
정경두님 동천 탑승
처음 참석합니다
혹시 법원 탑승 가능할까요?
입금하였어요
네^^ 폰번호 주세요?
감사합니다
메모 보내기가 안되어
8시10분에 법원 버스 정류장에 있겠어요
김동호님 개인사정으로 취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