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님] ㅡ kjm / 2022.9.25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은, 임금이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벌거벗은 채로 거리를 돌아다닌다는 줄거리의 이야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임금님이 벌거벗은 모습이 아니라, 사기꾼들(아첨꾼들)의 야바위짓이고, 나아가서는, 사람 보는 안목이 미숙한 임금의 리더십 부재다.
동네친구같은 가까운 사람들, 같은 업계의 동업자같은 친숙한 사람들,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지거나 얽혀 있는 사람들, 같은 신앙으로 뭉친 사람들, 그리고 부인과 친인척들. 그리고 돈 주면 부릴 수 있는 야수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만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가 아닌가.
어차피 세계는 '결핍의 세계'다. 즉,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 모두를 채워줄 수 없는 세계다.
에너지와 식량 등의 자원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설사 남아돌아도 인간이 갈구하는 욕망에는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야만의 시대는 약탈의 시대였고,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와 노예를 필요로 했다.
그짓을 계속 반복하려 한다면,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해서 우위에 놓은 '인간의 지위'를 포기해야만 한다.
인간의 지위를 다른 약육강식의 동물들 위에 놓기 위해선, 이성적 지위와 도덕적 지위를 설정해야 했다.
구대륙 유럽의 경우를 본다면, 식량 자원의 부족한 나머지 부분을 '정신적 포만감'으로 채우는 지혜를 낳았다고 본다. 그래서 유럽에서 철학과 문학과 예술이 번성하지 않았을까.
가령,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식의 정치철학과 경제철학으로..
나는 철학과 윤리 등의 인문학이 경제학의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자본이 풍족한 사회라 하더라도, 모든 욕망들을 채워주기엔 턱없이 부족하겠기에 말이다.
"최강 미국에서, 미국민들은 왜 가난할까?"라는 트럼피즘의 태동도, 맞는 해법은 아니겠지만, 결국 같은 이유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문제이고, 결국 '자산불평등'의 세계문제로 귀착된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어리석은 시도가 현재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계획 실행되고 있다. 즉, 부족한 것을 100% 물질로 채우려는 어리석음이다.
반성을 모르는 윤석열 또한 바보 행진을 계속할 것이다.
'정신적 고갈'은 '물질적 투쟁'만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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