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천룡天龍 화상의 법손 무주婺州 금화산金華山 구지俱胝 화상
처음에는 암자에 살았는데, 실제實際라 부르는 비구니가 삿갓을 쓰고주장자를 들고 와서 대사를 세 번 돌고 난 뒤에 말했다. “바로 말하면 삿갓을 벗으리라.” 이렇게 세 번 물었으나 대사가 모두 대답치 않으니, 비구니가 그대로 떠났다.
이때에 대사가 말했다. “해가 이미 저물었으니, 하룻밤 묵어가라.” “바로 말하면 자고 가겠소.” 대사가 또 대답이 없으니, 비구니가 떠났다. 대사가 탄식하였다.
“나는 비록 대장부의 형체를 갖추었으나 대장부의 기개가 없다.” 그리고는 암자를 버리고 여러 지역으로 참문參問을 떠나려 하니, 그날 밤에 산신이 나타나서 말했다. “이 산을 떠나지 마시오. 오래지 않아 큰 보살이 와서 화상께 설법을 해주실 것이오.”
과연 열흘 뒤 천룡天龍 화상이 암자에 오니, 대사가 나가 맞이하고서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천룡이 한 손가락을 세워서 보였는데, 이에 대사가 곧바로 크게 깨달았다.
이로부터 배우는 스님이 오면 대사는 오직 손가락 하나만을 세울 뿐 따로 법을 제창하는 일은 없었다. 동자 하나를 데리고 있었는데, 밖에 나갔다가 남들이 “화상께서는 어떻게 법의 요체를 말씀하시던가?”라는 힐문을 받고 동자가 손가락을 세우고는, 돌아와서 있었던 일을 대사에게 말하니,
대사가 칼로 그의 손가락을 끊었다. 동자가 펄펄 뛰면서 달아나는 것을 대사가 한마디 부르자, 동자가 머리를 돌렸다. 대사가 손가락을 세우니, 동자가 활연히 깨달았다.
대사가 세상을 떠나려 할 때에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천룡의 한 손가락 선禪을 얻고서 일생 동안 썼어도 다하지 않았다.”말을 마치고 열반에 들었다.
[장경長慶이 대중을 대신하여 말하기를 “맛난 음식도 배부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현사玄沙가 말하기를“내가 그때에 보았더라면 손가락을 꺾어 버렸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현사가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운거雲居 석錫이 말하기를 “현사가 그렇게 말한 것이 그를 수긍한 것인가, 수긍하지 않은 것인가?
만일 수긍한다면 어찌하여 손가락을 꺾어 버린다 했을까? 수긍하지 않는다면 구지俱胝의 허물이 어디에 있을까?”라고 하였다.
선조산先曹山이 말하기를 “구지가 알아차린 곳이 거칠어서 단지 한 근기, 한 경계, 한 종류만을 알았으니 손뼉을 치고 손바닥을비비는 것은 서원西園이 어리둥절케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현각은 또 말하기를 “또 말해 보라. 구지가 깨달은 것인가? 만일 깨달았다면 승당처承當處를 말하라. 만일 깨닫지 못했다면 한 손가락으로 선禪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라. 또 말하라. 조산曹山의 의지意旨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