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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6월 15일(일).
청량산 : 경북 봉화군.
▣산행코스 : 입석주차장-응진전-산꾼의집-청량사-김생굴-자소봉-탁필봉-연적산-하늘다리-장인봉-금강대-청량지문-청량사주차장.
▣산행시작 : 입석 주차장 09시 51분.
▣산행종료 : 청량사주차장 14시 56분.
▣전체거리 : 약 8.5km.
▣전체시간 : 05시간 05분.
▣운동시간 : 04시간 25분.
▣휴식시간 : 00시간 40분.
▣누구하고 : 다함께산악회..
09 : 51 입석 주차장.
10 : 10 응진전.
10 : 18 풍혈대.
10 : 22 어풍대.
10 : 27 산꾼의집.
10 : 32 청량사.
11 : 10 김생굴.
11 : 40 자소봉.
11 : 53 연적봉.
12 : 35 하늘다리.
12 : 56 장인봉.
14 : 10 금강굴.
14 : 35 청량지문.
14 : 56 청량사주차장.
▲ 09시 48분 : 입석주차장.
▲ 천년고찰 청량사를 품은 청량산에서 다함께 산악회와 같이 2025년 6월 15일의 하룻길을.. 길위의 벗이되어 함께 걸어니..
적어도 "5천겁의 인연"들이다~ㅎㅎ.
▲ 조선의 문신이었던 권성구가 1706년에 쓴 유청량산록 (遊淸凉山錄) 시비가 있다.
몇해전 금강산 관광때에도 가보지 못해서 내내 서운했었는데.. 이제는 부지하세월이다.. 시의 내용이 현대에도 딱 들어 맞는다.
▲ 09시 51분 : 원효대사 구도의 길이라는 입석들머리 계단에 첫발을 올리고 출발..
청량산은 1982년 8월에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3월에 청량사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공원 일부가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23호로 지정되었으며.. 내청량사.. 외청량사 등의 고찰과 유적이 많다.
▲ 계단에서 뒤를 돌아다 보니 청량산과 마주하는 축융봉 기슭의 밀성대가 보인다.
▲ 청량산의 암석은.. 풍화, 침식에 매우 강한 중생대 백악기 화산암류로 이루어진 기암들의 백화점이다.
▲ 09시 58분 : 응진전 갈림길.. 응진전을 경유하여도 청량사로 갈수가 있다..
▲ 처음부터 계단이 목에 힘을 주고 치켜세운다... 청량산은 85%가 계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어제 전국적으로 내린비로 습도가 높아서 가파른 길이 아님에도 벌써부터 등줄기로 육수가 줄줄이다.
▲ 땀도 들일겸.. 첫 전망대에서..
▲ 버스로 올라온 청량사 계곡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데.. 한가지.. 바람이 없다.. 계곡입구에서 좌측이 안동쪽이다.
조선후기 학자인 해은 강필효는 봉화군 명호면에서 안동시 도산면에 이르는 아홉구비 물길을 대명산구곡이라 이름짓고 퇴계를
그리워 하는 마음에서 청량산을 5곡으로 삼기도 했다.
▲ 원효대사가 구도의 길을 걸으며.. 잠시 쉬어 갔음직한 바위에서.. 나도 잠시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음미해 본다.
쉰다는 뜻의 휴(休) 자를 살펴보면 사람(人)이 나무(木)를 만난다.. 힐링엔 역시 숲이 제격이란 이야기다. 꽃보다 나무가 그리운
시기가 왔다. 유월의 숲은 싱그럽다. 해가 들기 시작하면 연초록 나뭇잎이 연신 산소를 토한다. 나무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바람은
이를 모두 모아 사람에게 전한다. 피톤치드는 둘째치고 그저 숨쉬는 것만으로 즐겁다.
▲ 기분좋은 휴식을 하고 길을 한모퉁이 돌아서니..
▲ 응진전 부속건물인 무위당(無爲堂)이 보이고.. 그 위로.. 하늘이 활짝 열리고..
▲ 응진전 동풍석(動風石)이 보인다..
▲ 응진전에서 앞으로 가기전에 우측으로 보이는...
▲ 열려있는 사립문으로 들어가면..
▲ 어마무시한 바위아래에.. 감로수가 있다.. 총명수.. 청량약수.. 김생폭과 더불어 청량산 4대 우물이라고 한다.
▲ 감로수는 원효대사가 식수로 사용하였다는 물이다... 수도꼭지를 열고 한바가지 담아 마시니 이루 말할수 없이 시원하다.
▲ 감로수 위쪽의 바위를 올려다 보고..
▲ 응진전으로 돌아와서..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663년에 세워진 곳으로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응진전은 금탑봉 중간절벽 동풍석 아래에 위치한 청량사의 부속 건물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앞뒤가 모두 절벽인데 뒤쪽 절벽 위에는 동풍석이 있고.. 또한 법당 앞에는 사방을 조망 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주세붕은 자신의 자를 따서 경유대라 이름하였다...
▲ 응진전 뒷쪽의 동풍석(動風石)을 확인 한다.
응진전의 이름은 나한에서 유래한다. 산스크리트어 '아라하트'의 음역, 음사 한 것이 아라한이고, 그 준말이 나한 인데그 뜻이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수행이 있다는 뜻인 '응공'또는 진리에 응하여 남을 깨우친다는 뜻에서 '응진(應眞)' 이라고 한다.
청량사 응진전은 고려말 노국공주가 16 나한상을 모시고 기도 정진한 곳 이라고 한다.
▲ 당겨 본 동풍석(動風石).
응진전 동풍석(動風石)의 설화..
어느 스님이 좋은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자리를 찾았다. 다만 금새라도 떨어질 것 같은 바위 하나를 치워야 했다.
그래서 힘센 스님이 절벽 아래로 그 바위를 밀어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떨어진 바위가 제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절을
짓지 않았다. 현재 응진전 뒤 높은 절벽 위에 바위가 버티고 있는데 여러 사람이 세게 밀어도 건들거리지만, 한 사람이 밀어도
건들거리고 바람이 불어도 건들거릴 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동풍석(動風石)이라고 부른다.
▲ 풍혈대 가는길..
▲ 2분이면 올라간다.. 갔다 오는건 당근..
▲ 10시 18분 : 풍혈대(豊穴臺)는...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이 치원암에 머물면서 총명수인 석간수를 마시고 바람이 통하는 풍혈대에서 독서와 바둑을 즐겼다고 한다.
▲ 연화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 총명수는...
최치원이 마신 뒤 더욱 총명해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데.. 보다시피 관리를 안해서 바가지는 오염되어 있고.. 물속에는
올챙이들의 놀이터다.. 저 물을 마셨다가는 총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멍청해 질것 같다.. 멍청수..ㅋ~..
▲ 10시 22분 : 어풍대에서 바라 본.. 연화봉과 청량사..
▲ 어풍대에서 바라 본.. 자소봉 능선
청량산은 옛부터 불교의 흔적이 산 전체에 남아 있던 곳이다.
이러다 보니 청량산의 봉우리들도 그 명칭이 보살봉, 의상봉, 반야봉, 문수봉, 원효봉 등과 같이 불교식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544년(중종 39) 당시 풍기군수이던 주세붕이 청량산을 찾아 열두 봉우리의 이름을 일부 고치고 새로 짓기도 하였는데
그 명칭이 지금의 열두 봉우리의 이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는 주자가 여산(廬山)을 명명한 전례에 따라 주세붕이 청량산을 명명한 것이다
청량산가(淸凉山歌) -- 퇴계 이황 --
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나니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지지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하노라...
이후 퇴계는 주세붕이 명명한 열두 봉을 인정하면서 이를 '청량산 육육봉' 이라 부르며 주자의 중국 무이산 육육봉과 연결시켜
청량산을 조선의 무이산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청량산은 불가의 산에서 유가의 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 어풍대에서 바라 본.. 청량사 전경..
▲ 등로의 안전펜스는 잘 되어 있지만... 발을 잘못 디디면.. 아차!~ 하는 순간.. 저차!~~ 되는 곳이다..
▲ 청량사 갈림길.. 청량사를 다녀 왔다가 자소봉으로 가려고 한다..
▲ 산꾼의 집... 그리고 청량정사..
▲ 산꾼의 집은..
옛날에는 달마도를 잘 그리는 이대실씨가 있었는데 지금은 시인 김성기 님이 거주하고 있다.
▲ 청량정사(오산당)는..
1991년 5월 14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244호 청량정사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5월 15일 경상북도의 기념물 제176호
현재의 명칭으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에 안동부사를 지낸, 이황의 숙부 송재(松齋) 이우(李堣)가 청량산에 건립하여 조카인 온계(溫溪) 이해(李瀣), 이황을
비롯하여 조효연(曺孝淵), 오언의(吳彦毅)를 가르치던 곳이다. 《오산당중건기(吾山堂重建記)》에 따르면, 이황이 공부하던
곳에 사림(士林)들의 합의로 1832년(순조32)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청량정사는.. 일명 "오산당"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오산’은 중국 송(宋) 주자의 시 구절 ‘명명직조오가로(明明直照吾家路)’에서
따온 것으로 ‘우리집 산’이라는 뜻이면서 ‘유가(儒家)의 산’이란 뜻도 내포하는 것이다.
▲ 청량사 설선당.
▲ 청량사 5층석탑과 삼각우총(三角牛塚) 소나무..
소나무에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옛날 청량산 아래 마을에 <남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집에 뿔이 세 개나 달린 송아지가 태어났다.
이 송아지는 자람도 빨라서 몇달 만에 낙타만큼 크게 자라났다. 이 송아지는 힘은 셌지만, 성격이 사나웠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들은 원효스님께서 이 송아지를 절집으로 데려와 무거운 짐을 산 위로 오르는 데에 썼다고 한다.
그러자 송아지는 애초의 사나운 성격을 잊은 듯.. 양순하고 부지런하게 일을 잘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자 소는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절집 사람들은 소를 정성껏 묻어주고 왕생을 빌어 주었다.
얼마 뒤 소를 묻어준 자리에서 소나무가 자라나서 소의 머리에 뿔이 세 개 나있던 것처럼 세 갈래로 가지가 갈라지는 모양을 했다는
것이다... 삼각우송(三角牛松)이라고도 한다.
▲ 청량사 삼각우송(三角牛松).. 보호수다.
▲ 청량사 5층석탑.. 절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불교도는 아니지만..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불심가득한 석수의 손으로 한땀한땀 정성 담긴 정으로 쪼아서 만든 탑이 아니라..
너무나 기계적인.. 매끈(?)함이 아쉽다.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세운 절로 법당은 지방유형문화재 47호인 청량사 유리보전이 보존되어 있다.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히는데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고 청량사(淸凉寺)는 연꽃의
수술자리라고 한다.
▲ 청량사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부처가 태자였을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하여.. 중생구제라는 큰 뜻을 품고 고뇌하는 태자사유상에서 유래한것이라고 한다.
▲ 청량사에서 금탑봉아래 산꾼의 집으로..
▲ 청량사는 '선덕여왕'과.. '워낭소리'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에 쫓긴 천명공주가 김춘추를 낳고 국선 문노를 찾아나서는 장면이 이곳을 무대로 촬영되었다.
산세가 워낙 수려한 데다 산사의 정갈함과 전각들의 날렵한 배치가 드라마 선덕여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손색이없었다.
▲ 여기서 바로 치고 올라도 자소봉으로 갈수 있지만.. 나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량사 갈림길로 되돌아 간다..
▲ 다시 돌아온 청량정사와 산꾼의 집..
▲ 청량사 갈림길..
▲ 10시 56분 : 경일봉 갈림길..
청량사 왕복으로 일행들의 꼬랑지도 안보이고 졸지에 혼자다.. 산대장님이 부여한 하산시간이 넉넉하니 천천히 즐기며 가자..
▲ 여태까지 인색하기만 하던 바람이 그늘사초를 지나는데.. 불어 준다.. 시원하다 못해 바람이 달다.
▲ 11시 00분 : 김생굴(金生窟)..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서예가 김생(金生, 711~?)이 여기에 정자를 짓고 10여년 동안 글씨공부를 하였다는 동굴이다.
김생은 이 굴 앞에 암자를 짓고 10여 년간 공부를 하며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청량산의 모양을 본뜬 자신만의 독특한 필체인
'김생필법(金生筆法)'을 확립하였다.
그는 당시 왕희지체, 구양순체가 유행하던 시기에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독특한 서법을 구사함으로서 가장 한국적인 서풍을
이끌어 냈으며.. 이로 인해 해동서학(海東書學)의 종조(宗祖)로 여겨져 한국서예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퇴계는 김생을 일러 '천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솟아난 이 몸일세'라고 극찬했다.
9년동안 글씨 공부를 하고 하산 하려던 김생이 길쌈 매는 청량봉녀와 실력을 겨룬 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1년 더 공부를했다는
김생과 청량봉녀 설화는 한석봉과 그 어머니의 일화와 많이 비슷하다.
▲ 김생폭포(金生瀑布)...
김생이 글씨공부를 하면서 붓을 씻었다고 하는 곳이다.
▲ 지금부터 본격적인 자소봉 오름이 시작된다.
▲ 오작교(烏鵲橋).
문득 조선 최고의 여성문장가인 허날설헌(허초희)이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규원가"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천상의 견우직녀는 은하수가 막혀 있어도
칠월칠석이면 만나는 일년에 한 번 있는 법도의 기약을 잃지 아니하거든..
우리 님 가신 후에는 대체 무슨 약수(弱水 : 건널 수 없다는 전설의 강)가 임과 나 사이를 가렸기에
온다 간다 하는 소식조차 없는고~..
▲ 만일암터.
▲ 일제강졈기때 송진채취의 아픔이 80년이 넘었어도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안쓰럽다.
▲ 자소봉 오름계단..
▲ 자소봉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 온다.
▲ 11시 40분 : 자소봉(紫霄峯).. 일명 보살봉이라고도 한다.
▲ 실제적인 자소봉 정상은 오를수가 없다.
▲ 청량산과 마주하는 축융봉..
축융봉(祝融峰)은 외청량산에 유일한 봉우리로 '축융'이란 말은' 남방의 불을 담당하는 화신(火神)을 의미하며, 주세봉이 중국
남악(南嶽)의 이름을 본 따서 지은 것이라 한다.
▲ 탁필봉..
▲ 탁필봉은 올라갈수가 없기에 정상석이 아래에 있다.
▲ 탁필봉 뒷쪽..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