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처럼 예언할 것인가? 야료할 것인가?]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삼상10:9,10]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고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삼상 18:9,10]
요즘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분노가 치미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인들 단체 관광객들에게 무비자를 상시화 하겠다고 정부가 검토한다고 한다. 왜 이렇게 친중 정책을 펴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건강보험 제도를 악용하고 있고 토지와 건물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규제로 대출을 막아놓고 중국인들은 대출 규제를 피해 아파트와 대한민국 토지를 사들이고 대학교에 가보면 우리 자녀들은 재수 삼수해서 가는데 그들은 외국인 전용제도를 이용 쉽게 대학가고...거기에다 범죄와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얼마나 많은지... 뉴스마다 국민들 스트레스와 분노 지수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접하는 주님의 성도들에게 정의로운 분노가 타오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정상적인 양심을 가진 건전한 사람들이 질식할 것처럼 의인들이 고통받는 세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사탄은 거룩한 분노를 미움으로 바꾼다. 시기와질투로 바꾼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은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 예언하지 않고 야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본문의 말씀을 영어로 보면 전자는 the Spirit of God came upon him, and he prophesied among them이고 후자는 he prophesied in the midst of the house로 둘다 prophecy란 단어로 예언을 한다는 말과 야료하다 라는 말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야료하다"란 말의 뜻은 까닭 없이 시비를 걸거나 트집을 잡으며 함부로 떠들어대는 것을 의미한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야료하다"는 주로 어떤 문제나 상황에 대해 근거 없이 비난하거나 소란을 피울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특별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비난하며 시끄럽게 떠드는 경우, "야료를 부린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예언하는 것은 성령께서 사울에게 임하셔서 그를 감동시켰을 때 선지자들 가운데서 그가 예언한 것인 반면 야로했던 때는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신이 그에게 임했을 때 혼자서 집에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시도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시고 성령님과 함께 거함으로 성령님의 촛대가 옮겨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울은 어찌하다가 예언을 하는 자에서 야료하는 자가 되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왜 사울을 택하셨을까? 사울은 키가 크고 준수한 외모를 가진 소년으로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고 부모를 존경했던 자였으며 사환의 말도 경청하는 겸손한 자였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날때는 예물을 준비하여 만나고자 하는 마음도 가진 자였다. 그는 사무엘이 자신을 기름 부어 왕으로 삼고자 할 때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며 베냐민 지파중에서도 가장 미약한 가족의 일원이라 말한다. 한마디로 겸손한 자이기에 하나님께서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암몬 사람이 야베스 사람을 치려할 때 일어나 그들을 멸절시키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그는 초대 이스라엘 왕이다. 그 전에는 친히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다스리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왕을 원했고 이에 세워진 왕이 그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자 그는 이러한 영적 질서를 무시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벌어지는데 사울이 늦게 도착하자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사울을 대신하여 자기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성경은 이처럼 영적 질서를 깨는 행위를 망령되이 행하였다고 말한다. 늦게왔기 때문이라 변명할지는 몰라도 영적 질서는 시간과 상관없다. 믿는 성도들은 시간을 초월해 사는 사람들이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망령되이 행하면 성령은 촛대를 옮기신다. 성령께서 떠나시면 그는 인간적인 이성으로만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백성들에게 맹세를 시켜 원수에게 보수하기 까지 아무 식물도 먹지 못하게 하고 먹으면 저주를 받게될 것이라 하여 백성을 곤란하게 한다. 이로인해 그 맹세를 듣지 못한 자기 아들 요나단은 공을 세우고도 죽을 위기에 맞게 되지만 백성들이 그를 살린다. 여기까지도 사울은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한번의 결정적 불순종을 하게 된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멸하고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성령이 떠나고 온전히 회개하지 않은 사울에게는 성령이 아닌 이성이 작동한다. 아말렉과 싸워 이기고 아각왕을 사로 잡아 왔지만 사울과 백성은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기름 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진멸시키지 않고 가치 없고 낮은 것들만 진멸시킨다. 하나님 말씀 청종하는 것보다 승리품 챙기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사무엘은 이로인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을 전하였고 사울은 그제사 회개하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무엘과의 관계도 완전히 끝났다. 사무엘은 사울의 모습을 슬퍼하며 평생 그를 보지 않았다. 그렇게 버림 받은 사울은 악신이 임해 예언이 아닌 야료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입술에는 시기, 질투, 버림받음에 대한 분노가 머물렀고 야료하며 번뇌가운데 지내기 일수 였다. 특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다윗이 성령에 충만함을 받아 골리앗을 물리치고 나자 이스라엘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기름을 붓자 그의 분노는 더욱 불타 올라 성령의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을 죽이려 온갖 인간적인 술수를 다 찾아 행하게 된다.
최근 한 대형교회 목사가 그런 설교를 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자. 우리는 거룩한 하강을 하자. 요지는 겸손하게 살자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다. 왜냐하면 1등이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금매달을 따기 위해 그는 수많은 날을 자신과 씨름하며 자신의 한계를 넖히고 결국 1등이란 영광을 얻은 것이다. 우리는 1등을 존경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노력하여 1등이란 자리에 오른 사람을 존경하며 그와 같이 되고자 우리도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자칫 성도들은 그냥 1등과 가진자를 비난하며 난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거짓과 사기, 편법과 뇌물로 1등이 되어서는 안된다. 법대로 경기를 해서 1등이 되고 겸손하게 성령님과 동행해야 한다. 1등이 되려는 노력조차 안하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말하는 것은 예언이 아닌 야료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우리도 일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다. 그분이 내 안에 사시니 우리도 주와 함께 왕노릇한다. 그렇게 사는 자는 사울처럼 1등을 시기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해 준다. 천천이요 만만이요 하는 말도 개의치 않는다. 사울은 교만과 불순종, 탐심, 인간의 이성이 틈타 성령임을 지속적으로 모시지 못했다. 그가 겸손하고 순종하며 주님처럼 not my will but thy will하며 겸손히 끝까지 성령님을 모셨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베드로는 말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1~3] 예언할 것인가? 야료할 것인가? 오늘 성령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다. 주여 숨쉬듯 주님을 모시고 살게 하소서.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