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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잃지 않으리라(9월 22일 오전 예배 설교)
마가복음 9:33-50(신약 70)
내일은 우리 교단의 정기총회가 있는 날이고, 이번 주간에는 대부분의 교단들이 정기총회를 하는 주간입니다. 우리 교단 뿐만아니라 몇 년 사이에 가장 심각한 이슈는 목회자 정년 연장에 대한 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 정년을 연장하자고 주장하는 분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목회자들의 정년을 늘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과 교회 성장이 급속도로 저하되면서 신학을 지원하는 학생들이 적어짐으로 목회자 부족 현상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서는 목회자의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 정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입장입니다. 우리나라 교회들이 급성장 하던 때의 상황을 보면 40-50대 목회자들이 부흥을 이끌었던 때였습니다. 그분들이 연세가 많아지고 은퇴를 하시고 후임자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후임이 되신 분들이 자신들의 정년을 늘려서 목회를 하시려고 하고 한국교회 담임 목회자들의 연령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남과 동시에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연세가 드신 목회자들이 젊은 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젊은 세대들과 공감 능력이 떨어짐으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그 결과로 신학대학이 미달이 되고 정원의 50%도 되지 않는 신학대학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교회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하고 젊은 세대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정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우리 교단에서도 정년을 연장하는 헌법 개정안이 상정되었습니다.
저는 교단에 저와 우리 교회는 이번 정기 총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통보를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결정한 것은 그동안 줄기차게 목회자 정년 연장안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외치던 분이 갑자기 정년 연장안을 찬성하는 것을 보고 회의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정직하게 정년 연장 개정안을 찬성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교회에서 설교할 때도 그렇게 하셨다고 하고, 본인 교회 장로님이 여러분 계신 상황에서 저에게 분명하게 자신은 정년 연장을 반대한다고 열변을 토하신 분이 어느 날 갑자기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서 정년 연장안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정년 연장안이 통과 되도 정년을 지키겠다고 말하면서 연장안을 적극 찬성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그런 분들과 같이 가거나 돕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총회에 대해서도 더 이상의 협력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통보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자신들의 정년을 연장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 좋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즉 자신들을 좋게 하고 자신들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좋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참여할 생각이 없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좋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말씀하신 내용은 크게 보면 세 가지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고,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상을 잃지 않으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1.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9장 앞부분에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라고 말하매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29절에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을 것이지만 삼일만에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가버나움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셔서 집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길에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크냐?”에 대한 논쟁을 했습니다.
33-34절을 보면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9: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버나움으로 오는 길에서 서로 논쟁을 한 것을 아셨고 그 논쟁의 내용도 무엇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논쟁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면서 물어보신 것입니다. 너희가 길에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께서 길에서 토론한 것에 대해서 질문을 하시자 제자들은 차마 자신들이 누가 크냐는 논쟁을 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상황을 보면서 이제는 예수님의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자들 뿐만 아니라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그런 말을 했을 것이고 제자들은 이제 곧 예수님께서 왕이 되실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시대가 열리면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논쟁을 했던 것입니다.
이 말은 제자들은 각자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고 능력이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높은 자리에 앉게 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누가 크냐의 논쟁을 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5절을 보면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제자들이 누가 크냐 즉 예수님의 나라가 임하면 우리 중에서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논쟁한 것에 대해서 예수님이 아시기 때문에 그들이 대답을 하지 않았음에도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에 대해서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자신들이 생각한 일에만 몰두하고 있어서 자신들이 주님의 나라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높은 자리에 앉고 싶으면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야 하고, 또한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높아지고 싶은 욕망이 있고, 대접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섬기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높은 자리를 원하면 낮은 자리를 택하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그리고 이 나라 대한민국의 교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앉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낮은 자리를 찾아가고 있나요? 나는 섬기는 자로 살아가고 있나요? 주님은 낮은 자리에 앉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영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6-37절을 보면
9: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예수님은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시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다음에 어린아이를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분 즉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높은 자리에서 대접을 받고 싶어 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영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과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약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2.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예수님은 낮은 자리와 섬기는 자가 되고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속해서 결코 상을 잃지 않는 영적 비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금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38-39절을 보면
9: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요한이 예수님에게 와서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않으므로 못하게 했습니다. 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따르지 않고 우리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다고 해도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을 의탁해서 능한 일 즉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능력을 역사한다면 그런 일을 하고 즉시 나를 즉 예수님을 비방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정상적인 사역은 금하지 말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고 예수님을 비방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을 금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 것인데 다르게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신격화하고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하는 것에 대해서도 금하지 말하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단적인 요소가 없이 순수하게 성령 충만을 받아서 성령의 능력으로 성경적인 역사를 하는 것은 금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성경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0절을 보면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라면 우리를 비방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우리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시면서 예수님을 반대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의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귀신 들려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라고 비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나를 비방하거나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내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나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1절을 보면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는 성도들이 고난을 받게 될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던 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잡혀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에 대한 말씀을 먼저 하셨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나서 예수님이 부활하시기는 하지만 승천하심으로 제자들을 떠나게 되고 그 후로 교회가 세워지게 될 때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물을 대접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올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인정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을 대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대접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같은 교회 성도가 아니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를 인정하고 서로 돕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접하고 섬기면 결코 상을 잃지 않습니다. 서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섬기고 대접하면 반드시 상을 받는 것입니다.
3.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대접하고, 섬기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함께 더불어 일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속해서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화목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2절을 보면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여기서 언급된 ‘이 작은 자’는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믿음을 지니고 있지만 연약하여 쉽게 깨어질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 세상에서 천시와 멸시를 받는 자, 무엇하나 떳떳이 내세울 것이라고는 없는 자 등을 의미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나를 믿는’이라는 단서 조항을 달아서 지금 예수님의 공동체에 속해 있거나, 또는 잠재적으로 예수님을 믿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의 신앙공동체까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문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대접하면 상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이 작은 자 즉 마음이 여린 사람, 믿음으로 살지만 살아가는 것이 힘든 사람, 소외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 어린 아이 같이 잘 삐지고 상처 받는 사람 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나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예수님을 믿던 이 작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서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누구 책임일까요?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반드시 그 책임을 지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빛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고, 아픔을 주지 말고, 위로와 격려를 받고, 중보 기도로 힘을 얻어서 작은 자가 아닌 큰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항상 말을 조심하고 성도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애인으로 라도 영생에 들어가는 나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3-49절까지를 보면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4 (없음)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6 (없음)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예수님은 네 손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버리고, 너의 발이 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버리고, 네 눈이 범죄 하게 하거든 빼어버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장애인이 되는 한이 있어도 범죄 하게 하는 지체는 차라리 제거하는 것이 몸이 온전한 채로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로 욕심을 따라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을 철저하게 버리라는 말씀이고 내 마음이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사탄의 악한 유혹에 넘어가려고 할 때 과감히 그것을 끊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떠나 살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하고 그것을 버릴 때 아픔이 있어도 견디어 내면서 끊을 것을 끊고 버릴 것을 버리고 잘라 내야 할 것은 잘라 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지옥에서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뜨거운 불에 소금을 던지면 소금이 불에서 튀듯이 그런 상황들을 지옥에서 겪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을 굳게 믿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영원한 생명을 얻는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금을 두고 화목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0절을 보면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은 사람에게 좋은 것이고 사람의 삶에 있어서 맛을 내기 위해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소금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소금은 33-42절 까지의 내용을 생각해 볼 때 어린아이와 같은 작고, 미미한 사람을 섬기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섬김을 위한 자기 희생, 겸손, 사랑,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김, 절제와 경건 등으로 나타나는 삶의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이런 삶은 세상에 맛을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성도로 살고, 소외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섬기고, 희생과 겸손과 사랑과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면서 절제와 경건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화목한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때 결코 상을 잃지 않고 천국 백성으로 살아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상을 잃지 않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참빛 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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