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협소한 직원 탕비실 문을 닫고 주전자를 불에 올렸다.
이것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나는 차를 끓인다. 한 잔은 나를 위해, 또 한 잔은 과업을 위해. 나는 과업을 초대하여 마주 앉는다. 미친 짓거리로 보일 테고 누가 나한테 미친 짖이라고 한다면 나도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로써 나는 쓸데없는 고심에 빠져들지 않고 좌절과 낙담에 배출구를 제공할 수 있다. 자신 있게 말하건데, 나의 소소한 다례는 백 퍼센트 심리학자가 보증한 행위다. 어쨌든 최소한 나의 담당 임상심리학자는 찬성했다.
난제를 초대한다. 함께 자리에 앉는다. 차를 마신다. 난제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난제에게 내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계획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그런 식으로 어떻게든 계획을 강구해낸다. 아주 막연한 계획이라도. 악에 받쳐 발휘되는 생산성.
나는 맞은편 찻잔에 대고 얘기했다. 진공청소기를 갖고 와서 유리 가루를 치울 거야, 그다음에 책상과 책장 위를 정리한 다음 또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거지. 네가 날 괴롭히게 놔두지 않을 거야. 해야 한다면 그 망할 것들을 맨손으로 집을 수도 있어. 네가 날 괴롭히는 걸 좌시하지 않을 거라고.
머그잔이 조롱하듯 나를 향해 김을 피워올렸다.
"그걸로 되겠어?" 내가 말했다. "그 정도로 날 절망에 빠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난 미친 여자야. 나를 무너뜨리려면 좀더 힘을 내야지. 난 빌어먹을 찻잔한테 말을 거는 여자야. 난 뭐든 할 수 있어!"
나는 차를 다 마시고, 맞은편 잔을 집어들어 싱크대에 차를 부었다. 나만의 정화의식이었다. (집에서는 차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화분에 부어준다.)
- 『사서 일기/앨리 모건 지음/문학동네』에서
첫댓글 ㅋㅋ 재미있는 작업이네요. 어떤 일이든 그렇게 직면하는 작업을 하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