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증후군
햄릿증후군(결정장애)는 선택 과잉의 시대에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끊임없이 망설이기만 하는 모든 소비자들의 심리를 일컫는 말로서 결정장애에서 오는 트랜드라고 한다. 결정장애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을 고르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을 의미한다. 결정장애란 우유부단함을 이르는 말이다.
햄릿증후군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대사에서 온 것으로 햄릿의 우유부단한 성격 그 자체를 이야기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로 강박증의 한 가지 증상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정보 과잉 시대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망설이는 대중을 의미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우리 인생의 삶은 부단히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에 매사에 결정을 잘 해야 한다. 선과 악에서 악을 선택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햄릿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확실한 주관도 없고, 분명한 가치관도 없고, 확실한 신앙관도 없는 답답한 사람이요, 매력이 없는 사람이다. 특히 햄릿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지도자가 되어서는 않된다.
미국의 유명한 지도자였던 케네디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아이젠하워 전대통령을 찾아가서 자문을 받게 되었다. 그 때에 아이젠하워는 젊은 신임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임무는 결단하는 것입니다” 우유부단하거나 우왕좌왕하는 지도자는 국민의 신임을 받지 못한다. 상황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속히 결단하여 행동에 옮기는 지도자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 중에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기회가 주어지지만 기회는 우리가 결단하기까지 언제나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다. 신속하게 결단하는 사람만이 기회를 잡아 남보다 앞서가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우 논리적이고 신중한 사람이지만 매사에 신속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칸트는 한 여인과 사귀고 있었는데 도무지 구혼을 하지 않았다. 여인은 견디다 못해 먼저 칸트에게 청혼을 했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청혼을 받은 칸트의 대답은 간단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칸트는 그때부터 결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결혼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글을 읽으며 연구에 몰입했다. 그리고 여인과 결혼하기로 최종결론을 내렸다. 드디어 칸트는 청혼을 받아 들이기 위하여 여인의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그때 여인의 아버지가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 늦었소. 내 딸은 이미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결단을 속히 내리지 못하는 햄릿증후군에 걸리면 않된다. 그리스도인들 앞에는 선택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을 계속 만나게 된다. 좁은 길로 갈가 넓은 길로 갈까? 의를 선택할까, 불의를 선택할까? 인생을 망치더라도 욕심부리며 살까, 아니면 고난의 길을 걷더라도 의의 면류관을 받아 쓰는 믿음의 길로 갈까? 주님의 말씀대로 행할까, 내 생각대로 행동할까?... 이런 때 우리는 항상 속히 결단을 내려 행동해야 한다.
다니엘은 비록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하여 채식을 먹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모세가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된 것은 주님의 뜻대로 결단하고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바울이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도 참 진리를 발견한 후에 그동안 좋아하던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리는 확실한 결단을 내리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서 과감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기로 결단을 내려 멋진 인생의 승리자가 될 뿐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를 의의 길로 인도하는 선구자가 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