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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3. EAM 보고. 유낙준주교.(2018.9.26.- 10.1)
하느님이 우리 대한성공회 성직자들을 무진장 잘 돌보시고 계십니다.
1. 도착:2018.9.26. 수요일.
고애단신부님과 김동진신부님이 하와이 호눌루루공항에 오셔서 환대해 주시고 랜터카로 환대해 주셨다. 저보다 나이 드신 두 분이 저희들이 주교라 해서 환대해 주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선물을 준비도 못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따뜻한 밥이라도 대접해 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짐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애쓸수록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차분하신 이경호주교님이 선물들을 준비해 오셨을 거라는 추측이 갖는 불안과 함께 잠깐의 여유를 자신에게 주면서 말이다. 그래도 의장주교로 미국서 외롭게 선교하시는 성공회 한인사제들에게 무언가를 위로해 주고 힘 주는 선물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 준비됨 없이 온 듯하여 무진장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김동진신부님은 임내규신부님과 이기찬신부님이 사마리탄병원서 임상목회를 공부하는데 연이어 세인트제임스교회의 주일설교를 맡기셨다고 하시어 더욱 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교회도 어려우실텐데 설교비까지 마련해 주시는 김동진신부님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알라 모아나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근처에서 점심을 하였다.
1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1시까지 모여 점심을 먹는다는 뜻을 잘못 알아 늦게 모이게 되었다. 내 실수였다. 짬봉을 먹었고 케이티 세인트제임스교회의 주임사제(57세, 26세의 딸 심리학공부, 20세의 아들 보스톤에서 저널리즘 공부)는 먼저 드셨다고 하셨다. 이때 점심값을 내야 하는데 내가 못내고 이경호주교님이 우리 것만 냈다. 선배님들의 점심값을 지불했어야 했다. 달러지폐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어진 실수였다. 이를 김동진신부님은 기억하시듯 하셨다. 주교가 이러한 실수를 하면 안 되는데 더 잘하려다가 더 실수를 한 모습이었다. 나는 이곳이 처음 방문이라 어리벙벙한데 반하여 이경호주교님은 전에 이곳을 방문하셨기에 여유로워 보였다.
오후 3시에 김동진신부님의 랜터카를 타고 150년의 역사를 지닌 미국성공회 하와이교구 성 앤드류 대성당에 도착하였다. 로버트를 밥으로 약식으로 부르는데 밥주교님이 이 교구의 주교님이셨다. 실지 이름은 로버트 펠리패트릭주교님이다. 1923년에 트롤로프(조마가)주교가 하와이교구의 요청으로 상업학교를 나오신 조광원 노아 전도사를 미국에 보내 신학공부를 하게 하여서, 내쇼다대학서 신학공부를 마치고서 1931년 5월 1일 조광원 노아신부님이 당시 하와이교구장이신 하링톤 리틀주교님에 의해 사제서품을 받았다. 1944년까지 성루가교회에서 시무하셨다. 대성당 옆에 박요한신부님(1936.5.6.-1999.5.16.)의 명패가 붙어 있었다.
성앤드류대성당의 마당에 올리브나무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올리브나무이고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것으로 2000년이 넘은 나무라 하였다. 예수님과 올리부 나무와 대성당과 주교인 나와의 연관을 지은 순간이었다. 그 앞에는 하와이에 나는 많은 나무로 우산처럼 생긴 나무인데, 그 의미가 정렬, 화산, 우산의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하였다. 그 옆에는 또 다른 나무가 있었는데 위에 붙은 나무줄기에서 뿌리가 내려와 땅에 닿는 나무가 있는데 나는 이 나무를 성육신나무 Incarnation Tree라고 불렀다. 하늘에서 내려와 뿌리를 땅에 댄다는 나무였기 때문이다.
밥주교님이 우리들을 환대해 주셨다. 목에 넛으로 된 목걸이를 걸어 주셨고 나는 CCEA때 만든 이콘을 선물로 드렸고 이주교님도 준비하신 선물을 밥주교님께 드렸다. 역대 하와이교구의 주교님들을 소개해 주셨다. 중국인 주교님도 계셨다. 현재의 대성당이 위치한 이 땅을 하와이 왕국의 왕과 왕비가 성공회에 봉헌한 땅이라고 하였다. 대성당 안에 왕비와 왕의 그림이 크게 걸려 있었다. 이 지역 사람들이 많이 공경한다고 하였다. 성당 입구의 유리창의 화려한 스테인글라스에 왕과 왕비가 그려져 있었다. 이 화려함을 오직 제단에 선 사람만이 온전히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대성당의 제단 뒷 모양이 런던의 맨체스터대성당의 제단의 뒷 배경과 같은 모양으로 지은 것이라 하였다. 퉁가와 꽘이 하와이교구에 속하고 이 교구에는 40개의 교회가 있다고 하였다. 주정부건물이 바로 대성당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행정구역과 성공회가 함께 위치한 것은 제정일치의 비젼이 공동체를 살려 나갈 길로 그려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국가교회로의 성공회를 그린 미국사람들의 생각이 제 머리에 이어졌다.
2012년 부부사제가 하와이 교구의 한 교회에 한인사제로 발령났고 사목을 하다가 성소수자에 대한 사제의 이해가 문제가 있어 지금은 한인교회와 한인사제가 하와이교구에는 없다고 하였다. 한인교회가 사라진 것에 대해 매우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곁에 계신 이경호주교님께 가능하면 한인사제를 파송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선교에 대한 여러 조건들을 생각하시는 얼굴이셨다.
대성당 안에 벽의 한 부조를 설명해 주신 밥주교님의 말씀에 따르면, 2차 세계전쟁 때 파괴된 배와 쇠로 전쟁으로 인해 죽어간 이들을 위한 부조를 만든 것이라 하였다. 대성당은 전쟁으로 인해 죽어간 병사들과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거룩한 기도의 장소임은 분명하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과의 연결하는 교회는 인간에게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거룩한 공간으로 미래세대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때 신알랜주교님과 문클라라사모님이 오셨다. 함께 비를 맞아가면서 식당을 찾아 김예인신부님-닉신부님부부와 닉신부님의 부모님들과 오가왼신부님과 함께 삼겹살을 먹었다. 고신부님이 내셨다. 식당 안이 고기굽는 냄새로 가득찼다. 비와 냄새와 소음들이 어색하게 어울린 곳에서 조화를 향한 출발로 분주하신 김동진신부님의 모습이 아름다우셨다.
2. EAM 첫날:2018.9.27. 목요일.
아침 식사를 와이키키해변이 보이는 식당에서 신알랜주교님, 이경호주교님, 고애단신부님, 케이티신부님, 김동진신부님, 저와 함께 자리를 했다. 김동진신부님이 식사를 내셨다. 대한성공회를 사랑하시는 신부님들과 주교님들의 논의가 진행되었다. 대한성공회의 공동체를 더욱 더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제 퇴직기금의 재정확보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성직자 퇴직기금을 더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땅을 내서 고층건물을 짓는 것이 관건이라는 이야기였다. 대전과 부산교구의 지대가 낮아 고부가의 가치를 세우는데는 어려움이 있기에 서울교구의 지대가 높은 곳이 더 효과가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대한성공회에 하느님의 기운이 넘쳐 나야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기도가 매우 많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느낌이 다가왔다.
고애단 신부님이 일하시는 성 재임스교회에서 운영하는 우수한 초등학교를 대전교구랑 연을 맺어 1월 방학 중에 3,4,5,6학년생 각 4명씩 16명을 2주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이다. 한 신부님이 이를 운영해 보자는 안이었다. 비행기 값은 제외하고 미국인 집서 홈스테이하고 함께 공부하고 오후에는 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성공회를 통해 복음을 전도하자는 것이다. 한 신부님이 이를 전적으로 맡아야 할 것이라고 이경호주교님이 강조하셨다. 성 재임스학교처럼 세종시에 세우는 길도 괜찮다고 고애단신부님이 말씀을 주셨다. 성공회 선교의 장이 되는 계기를 자주 많이 만들자는 생각이 겹쳐서 다가왔다.
아침을 하고 논의를 하고 나서 해안가 좁은 모래사장을 걸었다 바로 그곳이 와이키키해변이라는 것에 놀랐다. 우리 대천해수욕장이 훨씬 크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왔었다는 인증사진을 찍는 것이 그래서 어설펐다. 두 발짝 건너의 백사장위에 누워서 햇빛을 받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긴 고통에 순간의 희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애단신부님이 아시는 분의 아파트에서 머무신다고 하길래 와이키키해변의 길 건너에 있는 숙소 6층에서 올라 잠시 머물렀다. EAM에 관구장으로 참여를 해야 한다는 말씀에 뒤늦게참석한다고 해서 호텔숙소의 문제가 발생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애단신부님과 김동진신부님이 호텔의 숙소 밖에 있는 지인의 아파트에 머무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선배신부님들만 고생시키는 주교라는 생각이 들어 죄송한 마음이 더 짙게 들어왔다. 의자 위에는 한복을 펼쳐 놓으셨다. 한국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알리시려는 뜻으로 준비해 놓으신 것이었다. 고애단신부님과 김동진신부님의 애국심과 준비하시는 마음이 겹쳐서 들어와 가슴이 울컥거렸다.
점심을 간단하게 김밥으로 2층 회의실 앞에서 먹고 설윤정의 도움을 받아 한국보다 싸게 구두를 샀다. 발이 험해서 구두가 자주 낡아지는데 오래 신기를 바랬다. 호텔에서 대성당으로 버스로 이동했다. 하와이교구 성 앤드류 대성당의 예복실에서 기다리는데 마이클 커리 미국대주교님이 오셨다. 로체 스미어를 하기만 하고, 붉은 영대를 하지 말자고 하셨다. 오직 두 주교만이 예복실에서 있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힘이 넘치는 주교님이셨다. 기쁘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 얼굴이 전부이셨다. 피곤하실 때 누가 도우실까를 생각해 보았다. 주교관 프리지던트라는 직함의 가진 여성이 있었는데 의장주교을 잘 돌보는 봉사자 그룹에서 한 분이 이 직함을 정규직으로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옥상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자유하게 의장주교를 만나야 하는데 그 사이에 담이 하나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자연하였다. 그 부자연함을 무시하고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웃어가며 서로의 관심사를 나눴다. 스테파니 캐논여성사제가 커리대주교님을 보좌하고 비서역할을 한다고 하셨다. 하와이에 필핀교회를 크게 하시는 신부님 부부가 오셔서 커리대주교님과 제게 환대의 꽃걸이를 목에 걸어주셨다. 신알랜주교님과 이경호주교님이 아직도 오시지 않아 애태우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5분전인데도 오시지 않으셨다. 대성당 입구에 가보니 이곳에 모여 계셨다. 다른 방에서 예복을 입으셨다고 하셨다. 다들 붉은 영대인데 나와 마이클 커리대주교님과만 로체 스미어 예복이었다.
이성훈 로랜스와 윤은수 힐다가 대성당 입구에서 미사 시작 전에 만났다. 커리대주교님과 함께 저랑 사진을 같이 바로 미사직전에 대성당 입구에서 찍었다. 힐다가 잘 되길 항상 바랬다고 말을 전했다. 광혜원성당에서 사목할 때 참으로 순수한 청년들이었다. 시카고성당에 다니는데 이곳에 주인돈신부님과 함께 오신 것이라 하였다. 너무나 반가웠다.
커리대주교님의 설교는 대단했다. 신앙인에게 산이 주는 의미를 설교하셨다. “모세도 산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예수님도 산에서 기도를 하였고 산에서 가르치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산이 어디입니까? 우리에게 하느님을 뵙는 기도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교회이다.” 설교단에 서시지도 아니하시고 한 중앙길을 오가시며 설교를 정열적으로 하셨다. 이후 성체분배를 저와 이경호주교님이 성당입구에서 하였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이곳에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성체를 교우들에게 주었다. 대성당에서 성직자단 전체 사진을 찍었다. 신알랜주교님이 이 미사를 집전하신 것은 밥주교님의 배우자가 갑자기 아프셨기 때문이라 그러셨다. 스테프니 대주교 비서실장 개논신부님이 곁에 계셨다. 커리대주교님은 다음 날에 사이판으로 가셔서 미사를 집전하신다고 들었다. 대성당 마당에서 저녁을 하였고 복사실에 예복을 벗고서 제 안경을 놓고 온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후에 고신부님이 가져다 주셨다. 잘 챙기는 것이어야 하는데 챙기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고생시키는 것을 경험했다.
3. EAM 둘쨋날. 금요일. 2018.9.28.
아침식사를 한인들끼리 모여서 호텔 입구에 있는 한 식당에서 하였다. 긴 줄이어서 기다리다가 문자로 이경호주교님께 보내니 안에서 오셔서 들어오라고 하여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미리 선약을 한 것이니 들어와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때 또 늦은 지각생이 되었다.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나인데 그것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이곳서 보았다. 김동진신부님이 눈치를 주시지도 않는데 저 스스로 눈치를 받는 모습으로 처신하게 되었다. 최상석신부님, 주인돈신부님, 이문연신부님, 신알랜주교님, 강화 로랜스부부, 광혜원 로랜스부부, 배요셉신부님, 고애단신부님, 김동진신부님, 이혜숙신부님, 임대빈신부님, 김예인신부님과 배우자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 기뻤다. 외국서 선교사역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예민한 감각이 들어있는 비언어까지 알아차려야 사목이 되는 것인데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들의 삶에 복을 넘쳐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니 그들이 예수님의 얼굴처럼 보였다.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아침기도 후에 김예인신부님이 사회로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스테프니 비서실장신부님의 예수운동을 발제하고, 멜리사 스켈톤 캐나다 관구장주교께서 저보다 한달 먼저 관구장 되신old sister’s bishop 주교님이 교회발전(회중의 성장)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이후 임대빈신부님이 카나다에서 회중성장에 대한 1주간 교육을 년에 1번, 두 번의 교육을 받도록 하면 좋겠다고 대한성공회의 사제들의 참여를 권유하셨다. 이 제안을 멜리사대주교님께 건의했더니 좋은 제안이고 그러자고 말씀하셨다. 이후 데이비 고트너 버지니아 선교학 교수신부님을 만나 양제레미신부님과의 관계를 제게 말씀해 주셨다. 시카코의 신학교에서 일하다가 그 학교가 문을 닫자 버지니아대학으로 옮겨 가르친다고 하였다. 노스 카롤라이나교구의 클린톤의 사무엘신부님이 당신의 제자라고 하였다.
오후강의에는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신알랜주교님의 일본에서의 생활, 한국에서의 생활, 미국에서의 생활이야기를 하셨고 화해사역자인 헤이디김 여성 선교사의 북 출신인 아버지와 남한서 미국으로 와서 자란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기타가와신부님(68세)은 일본의 고아로 미국에 와 사제로 살다 은퇴하고 봉사자로 일한다고 하셨다. 이후 강의에는 ‘심리학으로 출발하여 관계맺기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정체성의 핵심’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운동의 한 부분이라고 하였습니다. 피터 황 중국인 사제는 캘리포니아서 사목활동을 하는 이로 이 강연이 좋았다.
저녁식사를 2층 연회실로 가지 않고 주인돈신부님과 함께 이경호주교님을 모시고 와이키키해변의 일식집으로 광혜원출신의 로랜스가 냈다. 자전거인력거를 힐다와 다리 아픈 막달라랑 타고 식당까지 간 것이 기억된다.
4. EAM. 셋쨋날. 토요일.2018.9. 29.
아침 5시 반에 와이키키해변으로 배요셉신부님과 호텔로부터 걸어가 해수욕을 길게 하였다. 롱아일랜드 주교님의 신뢰를 받는 배요셉신부님이 예뻐보였다. 사목도 잘하시고 사람들을 잘 섬기시는 사제로 잘 사는 모습을 본 듯하였다. 그리고 아침을 1층 모퉁이에서 식사를 하고 그리고 이후에는 신알랜주교님과 대전교구 사제 년피정을 지도하실 것이어서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제들의 광야와 사제들의 꿈과 현실의 문제에 변화된 삶을 세우는 리더쉽을 강화하는 사제들의 년피정이기를 서로가 바래는 마음이었다. 신알랜주교님의 실용적인 삶의 태도가 나에게는 참으로 부족한 것을 느꼈다. 매 순간 배우는 내용이 많기에 알랜 주교님을 만나는 게 좋았다.
도시락을 받고 배신부님의 랜터카를 타고 섬 동쪽해안가에서 점심 먹었다. 다시 북쪽에 있는 몰몬교에서 운영하는 폴리네시안 박물관에 1인당 150달러를 주고 입장하여 하와이 퉁가, 사이판 , 뉴질랜드의 문화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EAM주최측의 비싼 곳의 방문은 각자에게 맡기는 방식이면 나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덥고 비싸다는 생각이었다). 이때 고애단신부님과 미국에서의 한인사제의 삶과 대한성공회의 사제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애단신부님은 대한성공회와 미국성공회와의 친밀한 관계를 세우는데 공헌하신 신부님이시다. 지금도 더욱 더 친밀한 관계를 세우고자 하셨다. 대한성공회의 세 교구가 더욱 더 긴밀하게 연결하여 선교의 꽃을 잘 맺기를 바라시는 마음을 말씀해 주셨다.
저녁을 그곳서 먹고 배신부님의 랜터카를 타고 숙소에 와서 샤워하고 쉬었다. 그리고 배요셉신부님과 문클라라사모님과 미국성공회와 대한성공회와의 제 관계의 향상을 위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CCEA를 통해 우리 대전교구의 사제들이 국제적인 행사를 처음 치뤘는데 이 일을 하면서 사제들의 결속이 강해졌다는 점이 가장 큰 열매였고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게 되었고 사제들의 시야가 성공회적인 시야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하느님이 주신 은혜였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대전교구의 사제들이 더욱 더 결속해 지고 소진하는 싸움을 하지 말고 하느님만 향하는 선교하는 교구이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마음을 받은 시간을 가졌다. 대전교구가 선교를 잘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무진장 받는 교구가 되면 대한성공회가 더욱 더 발전될 것이라는 위로의 말씀을 받는 시간이라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다.
배요셉신부님이 미국성공회의 예수운동에 대해 자료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예수운동을 가르치는 대한성공회에서의 프로프절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몬교가 폴리네시안박물관에서 수익을 올려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듯이 대한성공회가 그러한 프로잭트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대한성공회가, 대전교구가 성직자퇴직기금을 안정적으로 세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지? 더 구체적으로 생각이 깊어지길 바랬다. 우선 대전교구가 정신을 잘 차려 나아가길 기도했다.
5. EAM. 넷째날. 주일. 2018.9.30.
배요셉신부님의 차로 성 루가교회에 들어갔다. 레이몽드 우라는 중국인 신부님이 계셨다. 폴쾅대주교님과 LA에서 함께 신학공부를 하셨다고 하셨다. 말씀의 전례는 우신부님이, 성찬의 전례는 신알랜주교님이, 축복기도는 이경호주교님이 하시고 제가 설교를 맡았다.
“소음이 있는 소란스러운 세상 – 불평이 많은 세상에 모세의 기도로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민수11:4-6)은 유모가 젖먹이를 돌보는 사제의 삶을 가르쳐 주신다(민수11:12). 이 모세의 기도는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죽여 달라고 외친다(민수11:15). 나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이 기도의 출발이다. 남을 위해 기도하면 죽음서 구원얻고 죄용서를 받는다(야고5:20)는 서신말씀이다. 기도는 그렇게 사람의 아픔을 하느님 앞에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매우 긍정적이고 미래에 적극적이기에 인류의 처음인 하와의 생명을 이어가게 된다(창세기3:1-6). 그렇지 않으면 부정적인 ‘하느님을 잊고 사는 하느님을 배제하는(호세2:15)’ 뱀의 삶을 이어가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생명을 이어가는 삶이다.”
한인사제들과 교우들이 모여 미국에서의 성공회 한인선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전교구에서 준 15권의 기도서를 나누어 주었다. 옛 지도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도력을 세워 내자는 의견이 나왔고 내년에는 시카코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대한성공회에서의 미국에 파견하는 사제의 질적인 문제에 대해 주교원에서 숙고하는 차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하셨다. 미래세대를 위한 관구선교특별위원회를 가동하는데 대한성공회가 주력하고 있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다. 이후 미카엘김(김현배신부(청주대 학장)님의 아들)의 아내 조이김의 묘지에 가서 신알랜주교님과 이경호주교님과 제가 가서 기도를 하느님께 올렸다. 고애단신부님의 사목에 대한 안내는 참으로 놀라웠다. 미카엘 김교우께서 참으로 감사한 마음의 표현이 우리들 마음에 닿았다.
하와이 남부 해안가에 갔다. 제주도 중문단지와 비슷하였다. 고애단신부님이 마신 것을 내셨다. 이경호주교님과 배요셉신부님과 저 셋이서만 해수욕을 하였다. 와이키키보다 이곳이 조용하고 더 좋았다. 오는 차를 타다가 신알랜주교님의 머리에 상처가 났다. 제 마음이 미안했다. 제 다음으로 타시다가 머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주일 저녁 만찬장에 피곤해서 자느라고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갑자기 의장주교로 이야기 하라 해서 ‘식탁나눔의 자리가 영적인 나눔의자리로 이어지길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설윤경학생이 통역을 해 주었다. 아주 짧게 했다. 밥상 앞에서 길게 한반도상황을 이야기 하기에는 아닌 듯하여 그렇게 했다. 단상서 내려와서 신알랜주교님께 여쭤보니 그것이 좋았다고 하셨다. 내가 하기 전에 필리핀 파차오대주교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길어 보였다. 한인식구들이 공연을 하였다. 오소서를 함께 불렀고, 판소리로 옥중가를, 모두 아리랑을 불렀다. 한철수씨가 놀랬다. 서울대학교에서 춘향전으로 석사학위를 했다고 하셨다. 한남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셨고 지금은 하와이서 사신다고 하셨다. 내가 옥중가를 한 것에 기뻐하셨다. 많은 참석자들이 옥중가를 힘차게 하는 열정적인 노래였다고들 하셨다.
EAM은 필리핀 모임이 가장 컸다. 일본인이 적고 중국인이 많고 한국인이 적었다. 인도인과 남부아시아인들(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성공회 선교작업이 활발해지길 기도했다. 하와이에 300명의 필리핀교회가 있고 크다고 했다. 미국서 인도 파키스탄인들이 1950년대 이후에 미국본토에 의료진이 부족하여 인도 파키스탄 의사들의 미국진출이 많아 상류층에 진입을 했고, 그 후 필리핀이 의사 간호사로 진입을 하여 중류층에 위치했고 그 이후 가정부로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고 그 이후 한국인의 자리를 보면 이해할 거라 하셨다(주인돈신부님).
미국에 사는 한국인에 대해 성공회의 역할이 활발해질 것을 대한성공회의 지지와 기도와 연대로 이끌어 가자는 것이 김동진신부님의 제안이셨다. 서로 잘해보자는 이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6. 다섯째 날. 월요일. 2018.10.1.
아침을 호텔입구 1층에서 하였다. 사모님들끼리 모여서 이러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셨다. 성직자들끼리 서로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들을 나눴다. 문클라라사모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느꼈다. 신알랜주교님이 아침을 내셨다. 한국서 온 주교들을 배웅하시기까지 고애단신부님과 김동진신부님의 후의에 하느님의 자비심을 요청하였다. 이 모든 일들을 고애단신부님과 김동진신부님의 돌보심에 이루어졌다. 대한성공회가 이러한 위로의 힘을 받았으니 대한성공회의 미래가 더욱 더 밝아질 것이다. 공항에서 과자를 선물로 내미시는 이경호주교님의 손길을 만났다. 대전에 오다가 두 곳의 휴게실서 자다가 왔다. 대전 집에 오니 밤 11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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