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칼럼]
정의연도, 박유하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제국의 위안부’는 無罪였지만
박유하 주장이 옳다는 건 아냐
‘동지애’ ‘매춘적 강간’ 주장
피해자에 대한 혐오 불러
정부는 ‘정의연 독주’ 방관만
진정한 사과 이끌 외교 절
----박유하 교수가 지난 10월 2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한 것과 관련 무죄 판견을 받은 뒤
심정을 밝히고 있다----
< 남강호 기자 >
일본 저널리스트 도이 도시쿠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덕경의 일생을
추적한 책
‘기억과 살다’
에는 매우 논쟁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도야마의 군수 공장을 탈출한 자신을
붙잡아 강간한 뒤 군 위안소로 끌고 간
고바야시 헌병에 대한 강덕경의
증언이다.
고바야시는 15세 소녀를 지옥 구덩이로
던져 넣은 악마지만,
“가끔 주먹밥과 건빵을 갖다주고 뱃놀이도
데려가 준 사람이었다”
고 강덕경은 회고한다.
“고바야시에게서만 그런 일을 당했다
면 위안부로 신고하지 않았”
을 것이라고도 했다.
가해자를 향한 증오와 애착의 공존에
저자는 범죄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한다.
매 맞는 아내가 남편에게서 도망치지
못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듯,
물리적·심리적 감금 상태에 있던 위안부들은
생사여탈권을 쥔 일본군이 사소한 자비를
베풀 때 과도한 애착과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교수의
해석은 달랐다.
그는 강덕경 같은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 군인에게 느낀 감정이 ‘사랑’ 또는
‘동지애’일 수 있다고 해서 논란을 불렀다.
황국신민으로 애국자 역할도 담당해야
했던 조선인 위안부에겐 일본군과의
동지적 관계가 긍지가 되어 살아가는
힘이 되었고, 일본군을 간호하고 사랑하고
함께 웃던 기억을 은폐하는 건 그들을
또 한번 노예로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박유하의 문제적 저서
‘제국의 위안부’
가 사법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책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분노하게 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루 수십 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여성들에게
‘동지애’란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이는 여성 폭력에 대한 무지이자,
피해자가 아닌 ‘제국의 시각’에서 위안부를
바라본 ‘인간에 대한 몰이해’다.
일본의 국가적 책임 유무를 결정하는
두 요소 ‘강제 연행’과
‘위안소의 매춘적 성격’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여성을 직접 끌고 간 주체는
포주나 업자이지 일본군이었던 경우는 적어
국가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매춘적 강간’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통해
매춘을 목적으로 한 조선인 위안부도
적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군 위안부 제도는 그것이 강제
연행이든 사기든, 성폭력이든 성매매든,
일본군과 사랑을 했든 안 했든,
국가 조직인 군대가 여성에게 가한
명백한 폭력이다.
군 당국과 행정기관의 비호와 묵인 없이
위안부 동원이 불가능했다는 건 일본
학자들도 동의하는 바다.
박유하가 주요 근거로 삼은
센다 가코의 책 ‘종군 위안부’조차 ‘군의
명령에 의해 전장으로 끌려가 제1선
장병들의 성욕 처리 용구로 이용됐던
여성’으로 위안부를 정의한다.
‘제국의 위안부’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윤명숙의 일본 박사 학위 저술
‘조선인 군 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 제도’
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와 증언이
빼곡하다.
물론 ‘제국의 위안부’는 과도한 민족주의를
등에 업고 위안부 담론을 독점한 채 일본
정부에 강경 일변도로 대응해 온
정대협(정의연)의 운동 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일본 정부가 왜 그토록 법적 배상 책임을
거부하는지도 소상히 밝힌다.
문제는 박 교수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썼다”
는 이 책이 아베 정권과 일본 극우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조차
“매춘이 자랑이냐”
“가짜 위안부 색출하라”
는 모욕과 멸시가 쏟아졌고, 좌파와
정의연은 이를 반일 선동에 이용했다.
박 교수는
“좌우 모두 내 책을 오독했다”
고 했지만, 누구를 위한 화해인지
오독하게끔 글을 쓴 건 저자의 책임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30년이
흘렀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일차적 책임은 정의연의 독주를
수수방관한 정부에 있다.
박근혜 정부가 아베 정권과 우여곡절 끝에
타결한 합의마저 문재인 정부가 휴지
조각으로 만든 뒤로는 단 한 걸음의
진전도 없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겼다”
는 이용수의 분노처럼 한일 양국 간
협상에서도, 정의연과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도
할머니들은 언제고 소외됐다.
이제라도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일본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는 주장에
분노해 위안부 피해 신고를 했던 강덕경은
“일본 정부가 진상을 밝혀준다면
배상을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대구에서 만난 이용수 할머니는
“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 죽기 전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은 것”
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결국 외교로 풀어야 한다.
일본 총리가 고개 숙여 할머니들 손을
잡아드리는 일이 그 첫걸음이다.
그건 대통령과 정부만 할 수 있다.
김윤덕 선임기자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동방삭
학술저서 문제점은 학술반박 하면되나 //
할머니들 등쳐먹고 출세의 도구삼은 //
정대협 윤미향이는 엄중처벌 해야해
해결사
정의연은 윤미향 지갑을 하기위한 도구 였다
밥좀도
한국은 지도자의 부패나 무능으로 혹은 미약한
국력으로 숱한 외침과 시련을 겪었다.
다시는 그런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부국강병과 경제 발전, 동맹 강화, 국민 화합에
매진해야 한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통해서 제발 교훈을 얻자.
김정산
<위안부피해자법>
제2조 1호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 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를 말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일제'에 대해 정의연과 여가부는
'일본군'이라고 명시했다.
그렇다면, 일본군에 의해강제로 동원되어, 일본군에
의해 성적 학대를 받으며,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가 곧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김윤덕에게 묻는다.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240명의 소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중에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여자가
누구인지 말해보라.
위안부는 포주와 계약을 맺고 성적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돈을 번 성매매여성이자
직업인이며, 일본군은 그들의 고객일 뿐이다.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하고, 성적 학대를
하고, 위안부 생활을 강요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범죄이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확정된
판결이다.
김윤덕은 범죄의 증거, 즉 확정된 판결을
제시할 수 있는가?
참고인
남의 불행을 이용하여 이득보려는 악마들이
문제다.
박 교수야 역사학자로서 여러 사실을 기록했을 뿐
특별히 매춘적 강간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접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이용하여 이득을
챙기고 사회 혼란을 야기한 사람들은 악마라
불릴 만하다.
chan chan
진정한 사과 이끌 외교 절실?
또 공자 말씀하네.
이제 그들의 눈물은 우리 정부와 우리가 나서서
닦아줍시다.
우리가 못나서 당했던 일 입니다.
김정산
1966년 대법원 판례(66다1635, 1636)에
'일상생활에 있어서 위안부라 함은 매춘행위를
하는 여자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버는 직업인,
즉 매춘부를 말한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지역에 설치되어 일본군의 관리/감독을 받는
위안소에서 일한 여성을 일컫는다.
그런데, 일본에는 일본군위안소가 설치되지
않았은 지역이니, 강덕경이 성매매 생활을 했다면
일본군 위안소가 아닌 일반 성매매업소에서 일한
위안부다.
더구나 강덕경이 '일본군위안부피해자'라면
일본군에게 강제로 동원되어 일본군 위안소에서
일본군에게 성적학대를 받으며,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했어야 한다.
김윤덕은 강덕경이 '일본군위안부'인 동시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보라!
jk11
그래도 박유하는 정의연처럼 남의 등을 쳐먹지는
않았다.
이 칼럼을 읽고나면 어딘가 박유하의 말로써 정의연의
악행을 변명해주는 듯한 개운치 않은 느낌.
김정산
정대협에서 발간한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에는 강덕경의 증언이 실려있다.
강덕경은 헌병과 운전병에게 납치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고바야시가 천막으로 끌고가서 '당분간 여기
있으라'고 명령하고, 상등병인 고바야시가 수시로 와서
자고 가고(일본군 위안소에서 숙박은 장교만 가능),
강덕경에게 '하루에'라는 예명을 지어주고,
고바야시가 군대에서 옷이랑 주먹밥, 건빵을 갖다
주었고, 군인들이 이름을 부르면 담요를 들고
따라나갔으며, 진찰 같은 것은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강덕경은 '일본군위안부'와 거리가 먼데다
고바야시는 영락없는 포주 모습이다.
김윤덕은 아직도 고바야시가 상등병 계급장을
단 일본군 헌병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증거를 제시하라!
알렉시스더든 코네티컷 대학 역사학 교수는
"만약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면,
그 주장은 진실이 아니'라고했다.
terra
끝없는 사과와 끝없는 위로를 요구하는것 또한
자가당착이다.
언론의 각설이타령일뿐, 우리가 위안부들을 어떻게
해주면 속이 시원해지겠는가?
그만 좀 하자...제발!
사실과자유
김윤덕의 주장도 옳다는 건 아니다..
언급한 일본군 위안부라는 김학순,이용수 등의
증언집 내용을 읽어 보기라도 했나?
강덕경의 주장은 사실과 얼마나 부합한가?
어디에 일본이 제도적으로 군이 강제로 끌고 가서
위안부 삼았다는 말이 나오는가.
군인 개인의 일탈과는 구분 되어야 한다.
일본인들이 쓴 위안부에 대한 책은 다양하다..
니시오카의 ' 위안부 문제의 진실' ,
하타 이쿠히코의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한국인이
쓴 '반일 종족주의'와 '빨간수요일'도 읽어 보기
바란다.
여가부 등록 240명의 실태와 정의연의 날조와
왜곡을 정밀 취재해서 구체적으로 글을 쓰라.
알라딘4U
남한에 있는 좌익들과 공산당에 묻고 싶다.
지금 이 시간 미국 내에는 6만명의 한국인
매춘부들과 일본 내에도 20만명의 젊은 한국인
매춘부들이 매일 밤낮으로 성노리개가 되고 있고
한국내에는 100만명이 넘는다는 것은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우리의 어머니 누님들을 지켜 드리지 못한 아픔과
고통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말하는
종북좌익빵 갱ㅇㅣ들이 정말 싫다.??
여기서
글의 중심은 주장이 근거있는 사실이냐 아니야 있지
않고 저자가 누구 편인가에 있다.
인격체가 아닌 국가가 진정한 사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어떤 정치인이 가장 감동적인 모습으로 사과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이득에
따른 정치적인 행위이다.
진정성을 들먹이는 순간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이며 그냥 영구적으로 싸우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