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장군 조사는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아들 조괄 또한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병법서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외웠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조사와 병법을 논함에도
막힘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조사는 왕에게
아들의 관직을 청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한 부인이 조사에게 물었다
"아들의 능력이 출중한 데 관직을 청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인!
전쟁터의 일은 변화가 많아 판단하기 어렵소!
그래서 전투를 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요
그러나 우리 아들은 그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확신에 차서 말을 하오.
그래서는 낭패를 보기 쉽상이오"하고 답했다
그래서 조괄은 성년이 될 때 까지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조사는 아들이 장수가 되지 못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얼마 뒤 서쪽의 진나라가 쳐들어 오자
조나라 왕은 조사의 아들 조괄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조괄의 어머니가 왕을 알현하고 아뢰었다.
"부디 제 아들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지 마시옵소서"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
"저의 부군께서 아들은 장수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했나이다"
"허허~ 그럴리가 있느냐
조괄은 명장 조사의 아들이고
뛰어난 병법으로 이미 천하에 이름이 자자하거늘
너는 그만 물러가 쉬거라"
조괄의 어머니는 여러번에 걸쳐 간청을 했으나
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조괄의 어머니는 왕에게
"마지막 청이 있나이다
아들이 대사를 그르치더라도
가족에게는 죄를 묻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알았다 내 그리하마"
드디어 조괄은 40만 군사를 이끌고 전장에 나갔다.
40만 병력은 당시 조나라 군력의 90% 정도 됐으니
국가의 운명이 조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리하게 공격을 하다가
적의 속임수에 넘어가
보급로가 끊기고 포위를 당했다.
40여 일간 포위된 채
굶주림과 싸우던 조괄은 탈출을 시도하다
전사하고 나머지 병력은 항복을 했다.
적장이었던 진나라의 장군 백기는
미성년자 300여 명 만 조나라로 돌려 보내고
나머지 군사 40만 명을 생매장 해 버렸다.
이 일로 백기 장군은
'인간백정'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 전투가 중국 전국시대의 가장 유명한
장평 전투인데 이 패배로 조나라는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현실성 없는 쓸데없는 이론이라는 뜻의
고사성어 "탁상공론" 은
조괄로 인해 생긴 말이다.
*♡*
첫댓글 처음 밝힙니다만 애독자 중 한명입니다.
자금까지 올리신 모든 글을 탐독했습니다.
특히 동서고금을 망라한 잠언. 미담. 일화 등을 좋아합니다.
아~! 교훈적인 역사적인 사실도요.!
지속적으로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길 바라마지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