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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이다.
우리는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의견제시, 댓글 달기 등의 글쓰기를 한다.ㅅ
수필은 원래 '붓가는 대로'', 즉 가벼운 글쓰기라고 하였다. 그런데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하면서 무거운 글이
되었고, 자아 표현을 주장하면서 허구가 아닌 사실을 표현하기 어렵게 되었다.
수필쓰기에서 이 둘을 조화롭게 담아낼 수 없을까 하여, 써본 글입니다. 어렵더라도 조근조근 읽어보시면 수필쓰기에 하나의 방법이 됙겠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수필쓰기
(치유로서 글쓰기)
이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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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디지털 시대라고 말한다. 글쓰기라는 측면에서 디지털 시대를 명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는 문자 기호를 정해진 규범에 맞추어서 배열함으로 자신의 사유 세계를 바깥에 드러내는 행위이다. 우리는 글을 철학적이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문자의 도움으로 의식을 표출한다. 문자는 단순히 기호가 아니고 하나의 의식체로 인식한다. 자신의 행위도 글의 모체인 의식에 따르려 하고, 또 따른다. 글쓰기는 의식의 표현이다.
문자 기호는 자체로서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매개체로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도 있다. 오늘에는 정보 전달 능력을 오히려 더 강조한다. 나의 생각을 문자에 담아서 전달하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내포한다.(*정치란 나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인터넷에서 댓글 달기가 이에 해당한다. 종이에 글쓰기를 할 때와는 다르다. 익명성, 일시성 그리고 당장 지울 수 있으므로, 담는 내용이(인터넷 글쓰기이고,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이다.) 솔직하고 더 진실하다. 전통적인 문학의 정의로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수필이 무거운 글쓰기라면 디지털 글쓰기는 가벼운 글쓰기이다.)
문자로 고정시키는 작업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디지털 시대와 차이가 있다. 최초의 문자는 수멜인이 점토판에 남긴 설형문자이다. 바위에 새긴 각석(刻石) 문자도 고대에 속한다. 문자로 남기기 위해서 점토판을 불로 굽는 작업이나 정으로 돌을 파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글쓰기보다 ‘형태화 작업’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한다. 경제적 부담까지 요구한다. 글이 마지막으로 글자판에 담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 많은 사유의 순간을 거친다. 가벼운 글쓰기가 아닌 무거운 글쓰기일 수밖에 없다. 최종으로 남는 글은 기념비성을 지닌다.
종이가 발명되고, 인쇄가 발달하면서 기념비적 글쓰기에 변화가 왔다. 종이 표면에 문자를 남기는 것은 기념비라기보다는 기록이다. 새기는 기구 대신에 손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펜이나 붓을 발명하였다. 쉽고, 빠른 글쓰기는 보존 보다는 소모적인 기록으로 바뀌어 갔다.
중국 서법에서 보면 필사의 재료에 따라 글에 담기는 의식에도 변화가 왔다. 죽간에 쓸 때는 획이 각을 짓는다. 즉 방절(方折)이라고 한다. 그러나 종이가 발명되면서 글의 획은 원전(圓轉)이 되면서 속도도 빨라지고 의식에도 변화가 왔다. 필사의 재료가 우리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롤 보여주는 좋은 예증이다.
기술의 변화가 일어나면 미의 개념에 변화를 일으켰다. 종이 위에 펜으로 빠르게 쓰는 글은 사유가 중단되지 않고 논리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 글 전체를 계산한다. 수정을 위해서 글쓰기를 멈추고 생각을 다듬기도 한다. 글 전체의 흐름에 통일성을 추구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종이에 글을 쓰는 아날로그적이라는 글쓰기 방법을 통하여 우리의 사고를 다듬고 정비해 왔다.
오늘의 글쓰기는 종이와 펜에 의한 필사의 시대를 지나서 기계 장치에 의존한다. 기계 장치에는 스스로 제어하고, 정비하는 실존적인 장치가 없다. 워드프로세스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글을 쓸 수 있지만 이미 기계화가 일어난 글쓰기에서 우리 의식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내가 쓴 글을 텍스트(의견이 담긴 글 내지 기타)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문자 기록은 완성된 제품이 아니다. 타자에게 완성을 요구하는 반제품인 것이다(독자의 의견도 수용하는). 익명의 타자에게 나의 글쓰기를 완성시켜 주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글쓰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커무니케이션적(소통적)이고, 의미 전달적이고, 중개자적이다. 소통 방식의 글쓰기는 자신의 글을 독자들이 편안하게 수용해주기를 바란다. 거부하지 않고 읽어주기를 바란다. 지시적인 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독이 쉬워야 한다. 왜냐면 전달된 메시지를 모든 독자들이 같은 해석을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표현주의적 커무니케이션은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독자가 쑤용하든 말든 나의 의사를 제시하는 것이 글쓰기의 목적이다.) 암시적이고, 애매모호한 메시지를 보내서 어렵게 읽혀지기를 바란다. 말하자면 문학적 글쓰기를 말한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의 타자를 위해서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과대망상이다. 의식의 작용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철학적이다,라는 믿음 때문이다. 나의 사고를 타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정치적 의식을 표현 하는 증상일 뿐이다. 텍스트는 독자에게 전달될 뿐이고 수용 여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따라서 글쓰기란 독자라는 타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중개자로서 쓰기를 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나의 의견을 전달한다는 의미와, 나의 의견을 드러낸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 치유 효과가 있다. 인터넷에 댓글을 달거나 컴퓨터를 통해서 글을 쓰는 것은 글쓰기에 의한 치유 효과를 노리는 행위라고 융이 말했다. 글쓰기를 통해서 자기 개발을 하고, 자기를 알리고, 자기를 발견한다. 구어체를 사용하고, 자기만의 말투를 뱉으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치유 효과가 있다(화를 욕설에 담아 쏟아내고 나면). 구어체를 문어체로 바꾸는 작업도 의미가 있는 행위이다.
텍스트(담론=의견이 담긴 글)는 표현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텍스트를 통해서 감명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인터넷 글은 인쇄가 되지 않은 체 전자 기계를 타고 떠돌아 다닌다. 인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화 구조가 관여해야 한다. 이제 텍스트를 디지털 방식으로 글쓰기란 주제로 말해보자. 텍스트는 담론(의견이 있는 글이나 말 등)이므로 문자 기호화 된 담론은 텍스트를 완성시켜 주기를 요구하면서 독자에게로 향한다.
움베르트 에코는 오늘의 디지털 글쓰기를 정보이론적 관점에서 보았다. 대중문화의 유형으로 설명하면서 끝없이 소비하는 부르주아지 문화 유형으로 보았다. 손가락을 툭툭 치면서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담론은 열린 글쓰기이다. 열린 글쓰기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 글쓰기는 의식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내면을 표현함으로 융의 말대로 치유의 효과는 분명히 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타자에게 자기의 주장을 하고, 내면을 표출하고, 고백하는 수필은 문학적 글쓰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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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언어인 문자라는 매개체를 사용한다(자기의 생각을 문자라는 매개체에 담아서 표현한다.). 문자가 소통의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언어가 문화의 구조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수필은 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의식은 문화적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의식이 관여하는 수필쓰기는 소통을 문화구조 속에서 일어나게 하는 문학적 각색이다.
(*문화의 구조 속에 갇혀 있다는 말은,.-- 문화란 생활 방식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같은 생활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수필을 문자로 표현하면, 그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이해가 가능하고, 수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때의 문자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문화양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같은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보다는 어렵다는 것이다.)
문학이란 인간의 생활체험을 언어로 기록한 것이다. 체험은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어떤 대상과 마주칠 때 나타나는 반응 전부를 말한다. 반응은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내면화(심리화)하여 의식과 감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언어로 기록할 때는 기록하는 자의 의식 세계를 경유하지 않고는 나타낼 수 없다.
치유란 나를 찾아가는 작업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구어가 문어화 될 때는 언어놀이라는 변주를 통하여 새로운 양상으로 표현된다. 문예창작이 문화로 짜여 있는 지식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모방이든, 창조이든 하나의 모델 속에(문학 형식에 맞추어서) 자신의 체험을 짜 맞춘다. 이것이 고전적 문예창작의 이론적 틀이다. 치유란 지식의 바깥에 있는 어떤 것을(자기를) 찾아가는 작업을 요구한다.
(치유는 무의식에 갇혀 있는 자신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는(이것이 자기를 찾아가는) 작업이다.)
차주환이 내린 정의에 ‘수필은 산문 문학의 한 유형으로 생활과 관련된 모든 사물을 소재로 하고, 자아(Ego)의 표출을 기본으로 하되 ---’라고 하였다.
작가는 주관적 개성을 가진 나를(글의 주인공) 고백의 형식으로 드러낸다. 몽테뉴는 ‘내가 묘사하는 것은 나 지신이고, 나를 통째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라고 하였다. 바로 자아를 드러낸 것이다. 수필에서 자신을 얼마나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느냐, 고 질문할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자아는 의식의 바깥에(무의식) 있기 때문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다.
작가가 삶의 체험을 이야기로 바꿀 때는 몇 단계를 거친다. 존재물(또는 사건)을 인지하고, 인지한 내용을 기억한다. 기억을 다시 회상으로 불러내서 글쓰기를 통해 수필로 재현 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의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의식의 작용에 의하여 서술자의 이미지가 표현됨으로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의식으로) 가공하여 변형된 모습으로 재현한다.(무의식에서 의식이 될 때느 무의식 그대로가 아니고, 의식에서 표현될 수 있도록 가공(바꾸는)한다.) 즉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미지는 이미 자아를 벗어난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자기예찬적인 글쓰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참모습인 자아는 수필의 뒤에 숨어버리는 일이 많다. 그러나 허구로 자아를 은폐하거나, 진실하지 못한 표현은 수필의 정의에서 벗어난다.
수필은 거의 90%가 과거형 문장으로 쓰여진다. 회상 형식의 글쓰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회상은 현재의 경험이(2차 경험 또는 사후 경험)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주므로 과거의 기억(보존된 1차 경험)을 일깨워낸 결과물이다. 시간의 순서는 1차 경험 -> 인지 -> 기억 -> 이차 경험 -> 회상(기억을 불러냄) -> 글쓰기가 된다. 지난 경험을 환기할 때는 서술자의 강한 욕망(무의식)이 작용함으로 글에서는 왜곡,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필쓰기 방식은 심리 분석에 그대로 적용된다. 꿈으로, 또는 환상으로 떠오르는 표상을 탐구함으로 마음 속에 감추어 둔 진실을 찾아간다. 진실은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마음의 아픔을 고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이것은 의식 바깥에 있는 또 다른 구조 속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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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표출이 수필쓰기라면 수필 작가는 내가 누구인가(자아)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형성된 자아가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김국환이 부른 노래 가사에 ‘내가 나를 모르는데 --- ’라는 구절이 있다. 노래 말에는 ‘내가’ 와 ‘나를’이 있다. ‘내가’는 노래하는 나이고, ‘나를’은 노래 말 속에 담겨 있는 나이다. 내가는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쓴 나이고, ‘나를’은 가면 되에 숨어 있는 나이다. 가면 뒤의 나는 복잡한 심리구조가 양파처럼 겹겹이 싸고 있는 나이다. 바로 자아이다.
자아는 나라는 존재의 외양(페르소나)이 아니고 내면에 숨어 있는 나 자신이다. 외부에서 자극이 올 때 반응하는 나의 행동은 겹겹으로 된 내면에서 복잡한 심리작용이 일어난 결과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드(Id), 이고(Ego), 초자아(Superego)라는 세 개의 심급(마음을 구성하는3요소)이 상호작용을 한 결과이다. 세 개의 심리영역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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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배가 고프면 울고 보챈다. 본능적인 반응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이 세상에 어울려 살려면 자신의 욕구(배고픔)를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즉 금지를 배운다. 우리를 둘러 산 사회에서는 금지하는 것이 많다. 도덕, 법률, 관습, 교육, 어머니의 세세한 간섭들, 아버지의 태도, 등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심리 영역에 저장함으로 개성이 생긴다. 쉽게 말하자면 이드는 본능적 욕구에 가깝고, 금지를 담당하는 심리 영역을 초자아라고 한다(양심과 아주 비슷하지만, 양심과 다르다). 이드의 욕구와 초자아의 금지를 교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도록 형성되는 심리 영역이 자아이다. 인성도 되고, 인격이 되는 바탕이다. 자아에는 본능적 욕구도 포함되어 있고, 자신을 감독하는 양심도 있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자기애 등 온갖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정받지 못하는 욕구가 초자아에 의하여 금지당하면 의식 세계에서 추방당하여 무의식 속으로 숨어버린다. 욕구가 있던 심리의 자리는 텅 빈 구멍처럼 되어 버린다. 빈 자리를 욕망이라고 한다.(비어 있으므로 욕망을 결핍이라고도 한다.) 빈 자리는 메워져야 한다. 메우지 못 하면 마음의 병이 되기 때문이다. 욕망을 완벽하게 메우는 방법은 결코 없다. 불완전하지만 메우는 방법은 환상(상상)이다.
(길거리에서 양아치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면 집에 와서 이불 밑에 누워서, 내가 태권도 유단자가 되어 양아치를 두들기는 상상을 하면서 즐거워한다. 이것을 '이불킥'이라고 한다. 정식 심리용어이다.)
어린이는 놀이를 통하여 환상을 실현한다. 어린이의 놀이는 어른의 눈에 유치히게 보이지만 어린이들은 (환상을) 현실세계처럼 느낀다. (놀이는 현실을 상징 또는 은유로 대체한 것이다.) 어른도 환상 또는 몽상(=백일몽=낮꿈)으로 욕망의 빈자리를 메운다. 어린이와 달리 어른은 환상에 빠져서 모래성을 쌓는 일을 수치스러워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이어서 마음 속으로만 품고 있으려고만 한다. 환상은 상상 행위로서 욕망과 다름 아니다. 자신의 심리 영역 안에서 일어나면서 자아를 포함한다. 수필쓰기의 과정(일차경험 - 기억 - 이차경험 - 회상 - 글쓰기)에서 환상은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깊이 관여한다.
환상은 과거, 현대, 미래의 시간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현재의 경험이 욕망을 일깨우면 욕망이 충족되었던 어린 시절이나, 과거의 어느 때로 되돌아 가기도 한다. 아니면 미래의 기대 속으로 데리고 가서 결핍을 채워준다. 수필쓰기는 현재의 경험 내지 강한 인상을 과거를 일깨워낸다. 환기된 욕망이 기억의 문을 드드리면 기억은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서 결핍을 충족시켜 준다.(회상은 사실이 아니고 아름답게 채색되어서 나타난다.) 프로이트는 예술작품이야말로 작가의 몽상이라고 했다.
(*이 말들은 수필은 사실 그대로가 아니고, 가공되어서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필쓰기에서 유년, 어머니, 고향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런 기억 속에는 잃어버린 유토피아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의 유토피아가 아니고, 환상으로 채색한 유토피아이다. 그래서 유년의 추억은 환상으로 나타남으로 현실의 도피라는 말도 한다. 프로이트는 예술 작품은 환상에 다름 아니다, 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수필도 역시 환상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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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은 환상을 부끄러운 욕망으로 느끼므로 글쓰기를 할 때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욕망의 은폐, 또는 자아의 은폐—이런 행위가 자신을 무겁게 한다.-무겁게 한다는 것은 자기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무거워지면 솔직한 자가 표현을 하지 못한다.) 자화자찬적인(자화자찬을 따져보면 자신을 무거운 사람으로 포장한 것이다.) 글쓰기를 한다. (나르시시즘도 원초적인 인간 심리의 하나이다.) 독자들은 욕망을 감추지 않고 드러 낼 때(솔직할 때) 더 진한 감동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수필에서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덮개로 가리고 다른 형태로 변형하여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덮개-기억)
수필의 치료적 효과는 자기 성찰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바라 볼 때 나타난다. 왜곡이 심하게 나타난 수필에서는 작가 자신도 자기를 정확하게 보지 못한다. 작가는 환상(수필)의 뒤에 숨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치료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융이 말한 치료 효과이다.)
내 안에 있는 감정을 꺼집어 낼 수는 있지만, 우리는 바람직하지 않는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있다. 감정은 정적이고, 얌전하게 쉬고 있는 것이 아니다. 힘이 있는 에너지이다.(욕동) 배출하지 못한 감정은 나에게 행패를 부린다. 우울하기도 하고(정신적), 노곤해지며 힘이 빠지기도 한다.(육체적) 이처럼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기억의 흔적’이라고 한다. 자신의 아픈 기억을 바깥으로 배출해야 치료 효과를 거둔다. 배출의 방법에 수필이 있다.(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나니 마음의 병이 났더라는 이야기. 수필쓰기도 일종의 말하기 이다.)
환상은 마음의 고통을 줄여준다. 환상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과 대화를 나눈다. 환상은 자신의 감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환상의 자리에 수필을 놓으면 수필은 자신의 감정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이야기꾼이 된다.
심층 심리의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었던 기억을 불러내면 오히려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내면 깊숙이 감춰둔 것은 부끄러운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융은 ‘나의 그림자’라고 하였다. 억압되어 있는 기억은 부끄러운 기억임으로 우리의 의식 세계가 합리적으로 사고를 하는 데 방해를 한다. 무의식이 감정에 작용하여 의식적 사고가 반사적으로 일어나도록 한다. 고아로 자란 아이들은 용감하게 살아야 한다. 울지 말아야 한다.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 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어른이 되어서 울어야 할 상황이 되어도 울지 못한다. 감정을 가슴 속에 쌓아두기만 한다. 쌓아둔 감정이 반사적으로 용감한 척 하도록 한다. 이때는 용감한 척 하지 말고 울어버리는 것이 치료이다. 울게 되면 고아 시절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고아로 자랐다는 것은 열등감을 일으키므로 숨기려 한다. 고아라는 사실을 드러내면 고통스럽다.) 그 고통을 극복할 때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치유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공부를 잘 해야, 착해야, 얌전해야 잘 산다. 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 왔다. 어릴 때의 이런 말들이 윤리의식을 만든다. 윤리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어린 시절에 억압해버렸던 비윤리적 감정들이 무의식 속에서 찌꺼기 감정으로 남아 있다. 일상 생활에서 분노와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를 어려워 한다. 심리 영역의 초자아는 자기를 감시하고 벌을 주기 때문이다. 수필에서 예술 표현이라며 허용하는 것을 이용하여 은근슬쩍 은유하거나, 농담을 이용하는 기법 등등으로 찌꺼기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런 기법도 사용할 줄 모른다. 수필쓰기에서 은유나 농담을 사용하는 법도 익혀두면 좋다.
말하자면 수필쓰기는 자기 성찰이다. 성찰을 통하여 성장기에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 규범을 듣고 자라므로 사회적응을 어렵게 하는 초자아가 되어서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아직까지는 디지털적인 방법의 수필쓰기가 어떠한 것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댓글 달기식의 글쓰기를 문예창작의 방법으로 받아들이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수필쓰기에서 그러한 방법론에 한 번쯤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의식에 덮여서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나의 진실을 댓글 달기처럼 가볍게 드러내는 방법은 없을까? 해학적 표현이라는 농담 방식도 있고, 또 다른 방식도 있을 것이다. 문학의 엄숙주의, 경건주의에 매몰되어서 감히 드러내지 못 하는 나의 내면을 찾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있을 것이다.
(*디지털 글쓰기는 가벼운 글쓰기라는 뜻이고, 가벼운 글쓰기이다 보니 자기 자신을 담아내야 하는(수필처럼) 무거운 글쓰기가 아니므로, 자기의 생각을 솔직하게 나타낸 수 있다. 수필에서 디지털 글쓰기를 가저오려면, 어떻게 하여야 수필에 적용하여 솔직하게 글쓰기를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자기 성찰을 통하여 자신을 어떻게 찾는가에 관한 사례를 드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겠다.
신앙생활에 지나치게 철저한 젊은 목회자가 있었다. 자신의 신앙생활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신도들에게도 지나치리만큼 엄한 규율을 강요하였다. 어긋나면 노골적으로 나무라는 말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화낸 얼굴로 질책을 하는 것이 그가 주는 인상이었다. 신도들은 그를 떠나면서 교회는 점점 쇠락해 갔다. 목회자의 부인은 목회자와 전혀 다른 태도로 신도를 대했다. 부인 때문에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였다. 목회자는 자신이 하느님께서 성실하지 못한 탓이라고 자책하면서 용서를 구했다. 교회 규칙에 철저한 목회자는 아내가 신도들에게 싹싹하게 대하는 것도 하느님의 율법에 어긋난다면서 나무랐다. 급기야는 부부사이도 금이 갔다.
보다 못한 노 목사가 젊은 목사를 조용히 불렀다. ‘이보게,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기 이전에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해 보게나.’ 라고 말하였다.
젊은 목회자는 군에 근무할 때 동경에서 머물렀다. 약혼녀를 두었을 때 그는 한국의 서울로 휴가를 갔다. 우연히 거리의 몸 파는 여인을 만나서 하룻밤을 지냈다. 동경으로 돌아가니 약혼녀가 와서 기다렸다. 순간 그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죄책감으로 몸을 떨었다. 이후로는 약혼자를 볼 때 마다, 목회 일을 할 때 마다. 약혼자가 부인이 되고 난 뒤에도 죄책감에 시달렸다. 죄를 보속하는 일은 하는님께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고 믿고, 열심히, 지나치도록 열심히 교회 일에 충실하였다. 신도들에게도 엄격한 신앙생활을 요구하였다. 목사는 자신을 도덕적으로 충실한 하느님의 사도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은 아내도, 신도들도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을 나무라는 것은 자신의 죄의식이 그들에게 투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성직자라는 문화의 구조에서 형성된 초자아가 자신을 벌주고 있었던 것이다.(삶에 아주 무거운 가치를 부여하여서) 그는 깊은 자기 성찰을 하면서 환상 뒤의 자기를 찾아보고는 자기를 벌주는 대신에 용서하였다. 자신을 하나님에게 인정받으려 하기 보다는 죄도 짓는 나약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를 용서하는 것이다. 이후로는 인간관계도 좋아졌고, 부부의 금슬도 좋아졌다고 하였다.
우리는 수필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통찰함으로 마음 치료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얼마나 솔직하게 자기를 보느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젊은 목사님은 자신의 삶을, 의식을 너무 무겁게 하였다. 그러나 좀 가볍게 할 수 없을까(솔직한 자기를)가, 노 목사님의 충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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