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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8 글에 있던 기사에 덧붙여서...
snut-어의 구명은 어찌 되었나? 오랜만에 와서...
5. 18은 결코 민주화운동이 아니었다.
좌익이 주도한 무장 폭동이었고, 지금 우리 역사학계에서도 5. 18 등의 민주화운동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시민군이 중무장한 채 장갑차 몰고 다니는 민주화운동도 다 있나?
광주사태 때 북한군 특수부대가 투입되었다는 것은 북한에서는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만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질문 하나 하겠다.
광주사태 때 민간인이 몇 명 죽었지?
아는 훌 대답해봐라...
(답을 생각했다면 아래를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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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명이다.
군경이 27명이 사망했다.
아는 훌도 많이 있겠지만 이렇게 작은 숫자였는지 놀라는 훌도 없지 않을 것이다.
162 명이 작은 숫자는 아니지만 보통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몇 만 명 쯤 되지 않냐?"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것이 바로 선전 선동의 위력이다.
광주사태는 엄청나게 부풀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민간인 사망자 중 117 명이 M1과 카빈소총에 의해 사망했다는 의학적 진단이 나왔다.
우리 국군은 M16을 사용한다.
우리 군이 사용하지 않는 M1과 카빈소총에 의한 사망...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북한 특수군이 침투했다는 사진 증거는 많다.
각자 찾아봐라.
자유보수진영 사이트에 얼마든지 있으니...
내가 본 사진에서 예를 들면...
국군복장을 한 남자의 머리가 장발이었다.
장발을 한 국군도 다 있나?
국군이 머리를 그렇게 기를 수 있나?
어떤 사진에서 전경복장을 하고 있던 자가 다른 쪽 사진에서는 시민군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것도 있었다.
서로 싸우는 것처럼 위장을 한 것이다.
국군복장으로 위장한 북한군과 시민군은 무고한 민간인에게 위해를 가했고, 그것이 국군에 대한 나쁜 여론으로 증폭되었다.
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무기고를 탈취했고 무장하였고 반정부활동을 벌이는 집단을 어떻게 진압해야 하나?
미국 같이 민주주의가 발달된 곳에서도 경찰의 옐로우라인을 시위대가 건드리면 경찰의 무차별 공격이 이루어진다.
우리 사회는 좌익의 데모가 일상 생활이 되어 있어서 데모대의 죽창에 전경의 눈이 찔려 실명을 해도 그런 일이 있었나보다 하는 식이다.
미국 같으면 그것은 살인미수죄에 해당되며, 경찰이 총기를 사용하여 사살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비상시국에 무장한 폭도들이 광주를 점령한 상황에서 군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했을까?
마지막으로 광주사태를 그렇게 왜곡시키고 부풀린 자들이 누구일까?
북의 통전부의 지령을 받은 이 나라의 좌익과 좌익 편향적인 언론이다.
그리고 그 모든 잘못은 "전두환이 광주를 학살했다"라는 유언비어의 유포를 통해 눈에 가시였던 전두환에게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학살자 전두환은 다시 반미운동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반일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광주에 군을 파견한 책임자는 전두환이 아니라 당시 광주계엄군 사령관이었던 광주 사람 정웅 소장이다.
그리고 그 자칭 민주화운동의 후광을 입고 들어 선 자들이 지금의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의 사람들이다.
(저들이 정권을 잡은 10 년 동안 순식간에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이 발생했고 - 나는 이 이야기할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이것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숫자냐고 - 북에다 수십 조를 퍼주더니 김정일이 핵개발을 했다.
그리고 대학 나오면 곧 실업자가 되는 한심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kbs, mbc 등 어용언론은 가무, 스포츠, 연예계 이야기로 국민들의 정신 - 특히 젊은이들의 정신을 빼앗으면서, 진실을 은폐하기에 여념이 없다.)
2월 22일 세실레스토랑에서 있었던 탈북 북한군의 기자회견 요약 내용, 5088 글에 있던 기사, 그리고 광주사태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간략한 평가를 첨부한다.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 투입됐다"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 ´자유북한군인연합´ 기자회견
"5.18 광주사태는 김정일 정권의 대남전략 증명시키주는 현장"
2006-12-20 15:15:13
◇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들이 20일 광주민주화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윤경원 기자
광주5.18민주화항쟁에 북한군 특수부대 1개 대대가 투입됐다는 주장이 북한군 출신 탈북자들에 의해 제기돼 충격이 예상된다.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자들로 구성된 자유북한군인연합은 2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세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광주사태는 (북한의)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한 백색테러이자 김정일 정권의 대남전략을 증명시켜 주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자유북한군인연합 임천용 대표는 “광주사태의 발단과 시발점은 민주화봉기였다고 인정하지만 수많은 인명이 무참히 살상되고 끔찍하게 도륙당한 유혈적인 사건은 김정일 정권에 의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테러행위”라고 밝혔다.
그는 그 증거로 ▲당시 봉기상황이 북한으로 실시간 생중계된 것 ▲봉기자들이 뒤에서 총에 맞아 죽은 것 ▲현재까지 미해명으로 남아있는 신원 미상자 ▲전기톱에 의해 두개골이 파괴된 시체 ▲봉기군이 봉기군을 사살한 것 ▲봉기군의 아지트와 봉기군이 탈취한 탱크·장갑차·윤전기재 안에서 대량 발견된 술병의 진의 ▲방위산업체·감옥·방송국 등 국가기관 점거와 군 능력을 초월해 전면전을 불사한 것 등을 언급했다.
그는 또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광주사건과 관련한 발언을 했다며 입수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임 대표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지금까지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세 번 놓쳤는데 그중에서 광주가 제일 아까워. 우리 준비가 너무 부족했고 태만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김 주석이 1986년 1월 6일 평남도 덕천 교도지도국본부에서 열린 지도국산하 여단장 정치위원을 위한 군사정치일군 상학(수업)에서 발언한 내용이며 전 인민군에 배포된 정치상학 자료에서 출처를 얻었다고 임 대표는 밝혔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광주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길 수 있었지만 결과는 진압됐다. 땀이 적었고 훈련부족이다. 교도지도국은 남조선해방의 전초병이다. 언제든지 나가라면 당장 나갈 수 있게 만단의 동원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이는 김 위원장이 1982년 3월 북한특전여단들이 북부지구에서 벌린 쌍방 게릴라 훈련장에서 발언한 것이며 출처는 교도지도국 각 여단 참모부 및 대대참모부라고 밝혔다.
임 대표는 당시 현장에 투입됐다 북한으로 귀대한 참가자들의 증언을 확보했다며 그들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A씨:<내가 참가했던 조는 시위대 쪽에 편입되어 행동했다. 반반씩 나뉘어 절반은 시위대 쪽에서 움직였고 절반은 계엄군 쪽에서 활동했다…우리 대대에서 나갔던 사람들 중에 창석이(당시 중대장), 광만이(정치지도원)를 포함해 세 명만 돌아왔다…생사람 죽이는 일을 처음 해봤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내손으로 죽였다고 생각하니 끔찍할 정도였다…도망가는 여자들 등에다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정말 떨리는 일이었다…우리는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는 명령을 따라야 했다. 남조선 사방에서 들고 일어나서 지원세력이 몰려오면 될 수 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 자체는 조직적인 단합이 없고 동내패거리 싸움식이었다. 우리가 드러나게 되면 일이 커지게 돼 있고 봉기의 성격이 바뀌었을 것이다.>
B씨: <우리도 죽었지만 남조선 사람들이 정말 많이 죽었다. 그 사람들은 누구총알에 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것이다. 양쪽을 교란하고 싸움을 붙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시위대들이 많이 죽이 않으면 일이 그렇게 커지기도 불가능했다. 괴뢰군이건 시위대건 양쪽에 피해가 생겨서 서로의 마찰이 커져야 의도대로 되는 일이었다.>
C씨: <우리도 알 수 없는 별도의 특수조가 움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우리행동과 좀 다르게 현장의 분위기를 만드는 작업을 했을 것이다…우리가 갈 때는 공해상에 그쪽 애들 두 척의 뜨락선이 마중 나왔는데 사복을 입었고 밤이었기 때문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임 대표는 “허울을 쓴 민주화 인사들이 북한정권과 입을 맞추며 광주의 희생을 자시들의 정치적 자신으로 역이용하고 특정집단의 상징적인 업보로 선동하고 있다”며 “파괴되는 국가사태 앞에서 더 이상 입을 다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북한 사회안전부 대위 출신 김용화 씨는 “봉기 당시에 북한 인민군 중위로 있었고 황해북도 송림에 위치한 사회안전부 연봉부대에서 자동차를 관리하며 인민군의 수송을 담당했었다”며 “그 당시 ‘너구리 작전’이라고 해서 대동강 하류를 따라 남한군의 옷을 입고 자동보총을 들고 나가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다. 밤 1, 2시가 되면 10명 정도를 태운 배가 조용히 빠져나갔고 그때는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졌다”고 그 때 빠져나간 북한군들이 광주에 가기위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광주사건은 북한에서 계획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 와서 그것을 민주화항쟁이라고 하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북한교도지도국 대위출신의 최준일씨는 “북한특수부대출신들은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것을 거의 다 알고 있다”며 “그 당시 나는 완전 전투태세로 무장한 채 광주사건에 대한 24시간 긴급속보 전해 들으며 20여일간 출전명령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야 상관들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대대가 광주에 투입됐고 희생도 많았고 공로도 있었다고 들었다. 3분의 1이 희생되고 나머지 2는 귀대했다”고 말했다.
[윤경원 기자]
광주사태의 원인은 아직까지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기본 원인은 (1) 5. 15 서울역집회의 연장선상에서의 5월 18일의 광주시위가 발단이 되었다는 것, (2) 북의 남침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 - 이것은 중국의 정보계통에서도 확인한 것 - (3) 5월 22일 김대중이 혁명내각을 수립할 계획이었다는 것, - 김대중은 '내각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 내각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반역을 의미한다고 한다 - 이 세 가지다.
광주사태가 실패로 끝난 후 북은 전두환을 비방하는 집요한 대남 선전선동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전두환은 국민의 뇌리에 살인마, 학살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
명백한 무장 폭동, 그것도 북한군이 침투한 상황에서 발생한 162 명의 민간인 사망자 - 더구나 그중 상당수가 폭동세력에 의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 로 인하여 전두환은 학살자가 되었고, 그렇게 전두환을 학살자라고 선전하고 정권을 잡은 자들은 무려 300만을 굶겨죽이고 30만명을 강제수용소에 가둔 김정일정권에게는 단 한마디 비판도 하지 않은 채 돈을 퍼주어 정권을 계속 유지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일해공원 명칭과 관련한 기사가 다음, 네이버 등 포털에 뜨는 일이 자주 있다.
거기에 어떤 댓글이 달리고 어떤 식으로 분위기가 조성되는지 한번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1세기에 무슨 이런 코미디가 다 있는지...
두서없이 적었으니 이해하기 바란다.
대중이의 당시 계략이야 너가 쓰기전에도 이전에 이미 내가 대중이의 거짓말 목록글에서 다썼었다.ㅎㅎㅎ 그정도도 파악안하고 이문제를 건드릴만큼 내가 븅신으로 보이냐?ㅋㅋ
그리고 지금 너의 리플엔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이 없다. 너의 논리를 설명하려면 김대중이 북에서 지령을 받고 광주를 선동한 증거들(너도 그쪽논리가지고 있으니 얼마든지 올릴수있잖아?)없이 그저 과잉진압 발단설을 부정하려고만 하지. 아무리 진실을 가리려고 귀와 눈을 막아봤자 소용없다. 과잉진압이 떡밥 및 기폭제가 됐다는건 엄연한사실이고 그에반박하는 논리(총검착검 부정설, 사전 무장안했음 등등)를 주장한사람들의 발표와 거짓말이 외신기자들과 당시의 보고서와 사진에 모두 나와있다.ㅎㅎ
북한군이 M1하고 카빈 쓰드냐??ㅉㅉ 정웅이 그때 사령관이지만 당시 정권을 쥐는 전두환이의 묵인하에 있던거지 갸 혼자 했냐? 보고 개무시할라고 했다만ㅉㅉㅉ
위에 국군이 사용하지 않는 M1... 이라고 이미 정정이 되어 있다. 정웅이 혼자 했다고 안 했고 계엄군 파견을 정웅이 했다고 했음.. 글을 잘 읽고 댓글을 달도록.. 그런 사소한 거를 태클건다니..
이미 광주에선 5-18전에 4월말-5월초에 시위가 진행돼고 있었다. 너가 말한 전경 3명 사망 사건은 서울역집회에서 당시 아직 민간인이 죽지도 않았는데 유시민이 광주에서 사람죽는다고 떡밥던진거지. 난 위 리플들에도 달았지만 민간인보다 전경이 먼저죽었따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남의 리플을 다읽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해석하는지?
그리고 넌 비난이라고 하지만 비난과 비판은 분명다르다. 주장과 논거를 갖춘것이 비판이지. 넌 그저 나한테 20권읽었음뭘해~ 통찰력없다~ 라고 넘어가려고만 하지 정작 내가 달은 리플근거들에 대한 명확한 반박이 하나도 없다. 난 과잉진압떡밥 및 기폭제설에 관한 수많은 근거들(CIA보고서 부터 시작해서)부터 시작해서 여러 근거를 댔으나 넌 그중 하나도 제대로 읽지도, 반박도 안하고 그저 날 눈뻘개졌다는 식으로 비난이나 하고있다.
입장을 바꿧으면 슬금슬금 넘어간다라. 난 예전에 5.18글 쓸때도 분명히 밝혔지만 북한군 개입 의혹 문제 와 김일성의 동태를 싣어놨고 김상원의(김상원이 누군진 너도 알지? 광주의 문제에 있어서 말이지) 좌익전력에 대해 분명히 싣었다.
국군이 사용하지 않는 M1이라...
양쪽입장을 공정하게 살펴보고 얻은결론이다. 더군다나 현장을 당시에 방문했던 한국인기자들(월간조선 조갑제씨부터시작해서)모두 과잉진압을 지적하고있는데 정작 당시에 현장을 가보지도,당사자들의 말을들어보지도,가본자들의 논리를 보지도 않고 그저 빨갱이 폭동으로만 해석하는 사람들의 사진과 떡밥들을 보고서 그저 좌익폭동론으로 몰아부치는 너의 오류는 생각해보지 않는지?
토니야... 나 다음달에 예비군 훈련 가거든? 근데 예비군 훈련가면 카빈 소총이 아직도 있다고 하더라고? 내가 예비군 훈련가서 실수로 카빈 소총 발사하면 나는 순식간에 북한 특수부대가 되는거야?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늙은이...
그리고 뭐 댓글들을 지워? 좀 어이가 없다 ㅋㅋㅋ 댓글 지웠다는 증거와 근거들을 제시해보도록. 난 5.18토론 관련글은 단한건도,관련리플도 지워본적 없으니까.
"뭔 남을 비판하려고 리플들을 정신없이 쓰는지"<-그럼 넌 상대 논리에 반박하거나 주장을 제시할때 리플이나 글을 막 많이 쓰지 않냐? 너랑 내가 빨갱이들 깔때 좌르르르 쓰는건 논리적인 비판이고 반대편이 비판논거를 제시하면 그건 정신없이 쓰는 비난논리냐?
토니야... 너 최소한 현역으로 군복무 한 적은 없구나? 바이올린 777이랑 어쩜 그렇게 똑같냐... 518은 북한의 공작이라고 하면서 군사 관련 지식을 늘어놨는데 막상 알고 보면 구라로 일색... 안보니 뭐니 하면서 떠들거면 최소한 군대라도 제대로 갖다오던가... 아님 제대로 알고 있떤가
정신없이 쓰는지에서 드러난다. 넌 내 리플들을 모두 읽지 않았을뿐더러 내 주장과 내 논지 자체를 모르고있다. 임천용씨가 저 인터넷 기사에서 주장한것 말고도 전에 "5.18"에 대해 증언한것을 찾아보도록. 임천용씨는 공정한 입장에서 말을했지 그저 광주 빨갱이 폭동이란식으로 매도하지 않았다. 한국논단 검색해보면 나올꺼야. 그사람이 전에 저증언관련한글들 ㅎㅎㅎ
내 리플들을 모두 읽지 않았따는 증거는 난 분명 리플에 전경사망사건 시점을 광주의 민간인 사망시점보다 앞으로 잡은 리플을 달았음에도 넌 그저 내가 모른단식으로 말한것. 통찰력이 없다고?ㅋㅋ 그저 광주폭동논리 관련 인터넷글 몇개와 기사 몇개만 읽고 (그것도 정신있는놈들이 쓰는 논리면 모르겠다. 친일이 애국이고 독립운동은 빨갱이었단 분들의 글들이니.) 상대논리에 대한 정확한 반박과 그 근거 없이 글을 쓰는 너야 말로 통찰력은 커녕 주제를 잡고 토론할때 사전배경지식조차 갖추지 않은행동이라고 볼수있다.
열내서 써서 미안한데 말이다. 난 토니 너를 싫어하지 않아. 다만 토론을 할때 상대의 논거와 근거들을 제발 제대로 파악하고 반박플을 쓰든 나한테 통찰력이 없다든 말을해봐라. 5.18 전부가 빨갱이짓이고 그저 북한만 잘못했단식의 논리제시는 여순,순천 반란사건이 여순,순천 해방운동 이었다고 주장하는 좌익들의 논리와 별반다를바없다.
근데 푸딩형 그문제는 그게 아니지. 당시 광주진압군은 M1 소총을 쓰지 않았어. 모두 m-16으로 무장했지. 토니가 말하고자 하는것은그걸꺼야.
그리고 토니가 올린 글에 보면 맞는말들도 많아 예전에 나도 저문제로 조사를 했었지만 확실히 장갑차 몰고 다니고 조직적으로 점거에 성공한건 뭔가 북한의 핸드링이 없고선 불가능한 일이야. 일례로 당시 광주에서 일이 터졌을때 주변지역에서도 봉기가 일어났지만 토니의 글에도 나오듯이 조직적 점거나 중장비 운용은 불가능했고 할능력이 돼는사람들도 없었지.
무엇보다도 신원미상의 시체들과, 80년당시 북한에서 광주문제로 그들나름대로의 유공자?;;(ㅅㅂ)가 됀 사람들이 있었다는것 자체가 굉장히 의심스럽지. 또한 북한은 예전에도 지금도 지역봉기유발이나 혹은 부분지역혼란으로 남한 흔들려는 작전들을 연구/개발해 왔고 말이지.
아 씨발 뭐야 왜 어제 내가 열내서 쓴 전경사망 리플 쓴게 없어. 그리고 그전에 유시민 낚시 유포 리플도 분명히 달았는데 이걸로 5개를 달았는데 왜 어제 새벽 내가 달아놓은 앞뒤 리플이 없지? 아 다음 왜그러냐 요즘 몇일전에도 HOF에 글다써서 글쓰기 누르고 올렷는데 사라지고 아씨발 좆됐다
토니 사과 ㅋㅋㅋ 너가 오해할만했다. 전경 사망껀 및 유시민 낚시 난 리플어제 분명히 달았는데 다음씹빠빠 서버가 씹어버렸다.
혹시나 오해할까봐 보태지만 전경사망에 관한건 이미 알고있었다 .못믿겠으면 옜날훌천 찾아가서 내글보면 됄꺼야.
그리고 토니가 올린글도 그렇지만, 80년대의 한국의 여러 민주화 운동 사건이나 관련일들,사람들 중엔 수상한 점이 드문드문있다. 실제로 내가 이 문제들을 조사했을때 발견한 서적들은 존내 시뻘건 책들도 많았고.
모든 사건이 그렇지는 않았겠지만,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이 수면위로 들뜰것이다. 그것이 광주의 일처럼 떡밥을 이용한 김일성의 계략이든,말그대로 사전부터 끝까지 빨갱이들이 기획/제작한 일들이든,대남고정간첩의 계략이든 기타등등
과거 동독이 북괴돼고 독일이 통일을했을때 통일후 10년간 여러 진실들이 밝혀졌다. 과거 서독의 노동자 운동,시민운동,사회운동중 적지 않은 부분들에 동독 스파이들이나 좌익계열들의 떡밥 유포나 혹은 선동 기획이 스며든 부분이있었고 이 내용에 관한 여러 글들과 책들이 나왔었지.
공산권은 애초에 자유진영의 민주화운동이나/사회/시민운동/노동자 운동등을 많이 이용해먹으려고 이런저런 떡밥을 많이 뿌렸다. 심지어 멀쩡한 교황을 나치또라이로 몰아서 조질려고 하기도했지.(지금교황말고 예전에 소련있었을때 교황있다.)
여튼 토니에게 내 결론을 말하자면 광주의 문제에 북한군이 개입했단 증거들은 타당하다고 볼수있는 증거들은 많지만 모든것이 애초에 북한의 기획의도 감독,제작,편집은 아니었다는것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강도가 늘 어떤 부잣집을 벼르고 있었는데 그부잣집에서 머슴들이 시위를 했고 그과정에서 그집에 불이났고, 강도는 몰래 머슴인것처럼 위장하여 침투해서 그불을 격화시킨후 부잣집을 태운후 금고만 가지고 유유히 빠져나가려했으나 실패했다의 정도겠지.
고로 그 과정에서 애꿎게 죽은 부잣집의 시위냈던 머슴들, 부잣집의 시위진압하려 했던 머슴들의 죽음 전체와 그들이 원했던 일이 모두 폄하돼선 안됀단뜻이다.
너와 내가 지금 가지고 토론하는 주제는 언젠가 정일이 모가지를 따서 서울시앞에 전시하고 주석궁을 수색하면 나올 수많은 비밀문건들이 진실을 밝혀줄것이다. 옛날에 동독이 붕괴돼고 서독의 학자들이 동독의 비밀문건들을 보고 과거 서독내의 여러 사건들에 동독이 개입됐음을 밝혔듯이말이지. 그때까지 너나 나나 섣불리 판단해선 안됀다고 생각한다.
한국 시민군은 다른나라의 시민과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예비역 대학생과 시민이 그냥 시민이냐??? 전부 군대 말년병장까지 빡시게 지내고 나온 예비역들이다.... 한번 무기 탈취하고 반격시작하면 솔직히 현역과 비교해서 절대 밀리지 않는 전투력을 가진게 대한민국 예비역 일반시민들이다.... 고작 시민군이 너무 강했다.... 라는게 518이 빨갱이 선동이었다는 증거가 될 순 없다....
장갑차 HID가 못모니까 예비역 전차부대 출신들도 못몬다는거냐???? HID 애들이 전차 못모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특기 자체가 다르잖아.... 현역보다 예비역에 그런특기 가진사람이 더 많을 수 있다는건 생각 못하나??? 교묘하게 어긋나는 비교를 하여 사람 현혹하려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