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번 뵀던 선배의 친구에게 쪽지를 맡긴 나는 곧장 옥상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이미 현후와 유란이가 형진 오빠에게 책의 내용 중 우리를 놀라게
했던 내용을 듣고 있었다. 형진 오빠가 작년에 읽을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
다던 사자성어였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책에 우리 얘기가 나온단 거야?"
'응, 내가 작년에 창고정리하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읽었던 적이 있는데, 이
한문 꼭 사자성어 같잖아.. 내가 아는 사자성어에는 이런 것들은 없었거든?
나중에 고사성어 같은거에서 찾아보자 생각하고 잊어버렸던 것들인데... 어
제 보니 이 이상한 문자로 이루어진 문장 옆의 네 문장은 고사성어 같은것
이 아니라 무언가를 지칭하는 말이 었던거야.'
"그게 지칭하는 것이 힘을 가진 네 사람이고.. 고로 그게 우리랑 맞아 떨어
진다는 거지?"
현후가 아주 잘 알아듣는 관계로 형진 오빠는 별 설명없이 책에 대한 서론을
말하고 있었다. 이 책을 발견한 것또한... 우연이 아니 었을 꺼다.. 이 책에
써있듯이 아주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저자는 알수 없지만
아마 우리 전생과 관련되어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
다. 어쨌든 형진 오빠의 말은 이어졌다.
'바로 맞췄어! 어제 이 문장을 읽으며 뜻을 생각하고 있는데 세은이가 뭘 중
얼거리더라고, 세은아 어제 뭐라고 했는지 다시 말해줄래?'
"응, 유란이는 따뜻한 바람.. 현후는 전기.. 승호 선배는 물.. 형진 오빠는
불인거 같고... 라고 했어"
'자, 그럼 이 한문을 봐 여기엔 이렇게 써있어. 노심요수, 연명업화, 난풍심
명, 전격래천! 알겠어?'
형진오빠는 언제 형상화 하는 법을 익혔는지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열심히
현후에게 말했다. 형상화란 평소 귀가 물체와의 동질성을 잃음에 의해서
모든 사물을 통과하게 되는 성질을 벗어나 세상에 개입할 수 있는 상태로 변
하는 것을 말한다. 여전히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을테지만 귀들
이 당황해하는 사람 들에게서 생기를 뺏어가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
다. 어떻게 보자면 귀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인간들에게 보여주고 싶을때 사
용하는 방법이라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흔히 폴더가이스트 현상이라는 것도 물체를 만질수 있게 형상화 한 귀들이
하는 장난이다. 일부 귀들은 현생에 약간의 힘을 지니고 있어 염력으로 폴더
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보통 귀들은 힘이 없어서 직접 물체를
잡고 띄우는 번거로운 일을한다. 뭐, 현세에 힘이 없었다고 해도 분노나 증오
를 품고 있다면 충분히 폴더가이스트 현상 정도는 일으키곤 하지만 말이다.
전에는 형상화 하는 방법을 몰라서 무릎베게를 해주려다가 못해줬었는데 지
금은 어찌된 일인지 버젓히 사물을 손에 쥐고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
었다.
형진 오빠는 나뭇가지로 한문을 가리키면서 또박또박 읽어 줬으나 그들이 알
아볼수 있는 고사성어나 한문이 아닌이상 어떤 한문이 쓰였는지 조차 알아볼
수 없는 현후나 유란이로써는 이 문장을 해석할수가 없는것 같아 보였다. 형
진 오빠는 그들이 잘 해석해 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말을 이었다.
'노심요수. 성낼 노, 마음 심, 흔들 요, 물 수. 연명업화. 사랑할 련, 목숨 명,
일 업, 불 화. 난풍심명. 따뜻할 난, 바람 풍, 마음 심, 밝을 명. 전격래천. 전
기 전, 칠 격, 올 래, 하늘 천!'
"앗?! 이건!!"
'이제 알았어? 이 네가지 문장은 우리의 힘을 지칭하는 거야. 어제 봤지? 승
호가 화를 내자 요동지던 물. 즉 노심요수. 따뜻한 바람으로 마음을 밝게하
는 유란. 즉 난풍심명. 전격은 하늘에서 왔다, 전격을 사용하는 현후. 즉 전
격래천. 목숨을 사모하는 불. 사후가 불확실한 나. 즉 연명업화. 그앞에 써있
는건 이상한 문자라.. 해독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이건 아직 뭔지 잘 모르겠
어. 남은건 세은이니까 세은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해. 뭐, 아직
해독하지 못했으니까 알 수는 없지만!'
"으음....!"
현후가 한문으로 된 문장을 해석하는 형진 오빠의 설명에 무언가 깨닳은 듯
한 표정으로 책을 주시했다. 유란이가 책의 내용을 궁굼해 하자 현후가 다섯
문장의 앞을 읽어 나갔다.
"이 책을 펼치게 되었을때, 모든게 준비 되었을 때, 저주받고 잠들었던 영혼
들이 각성하기 시작할때. 그 공... 황... 을.. 막을 이들이 각성을 완성 할 때..
..?"
'그 앞뒤는 모두 이상한 언어라 아직 읽을 수가 없어. 몇몇개는 알아 보겠고
, 본문을 제외한 나머지는 영 모르겠는 글잔데, 얼핏보면 그 뜻을 알것도
같고.. 아무튼 이상해.'
"이 글자... 전생에 주로 썼던 글자야.. 이건 그 나라의 언어인데... 여기에
씌여져 있다는건 이 책이 그 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이던가, 아니면 환생한
누군가가 자신이 예견한 것을 적은 것이라는 거겠지."
전생을 대체적으로 잘 기억하고 있는 현후로서는 이 언어가 낮설지 않았나
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몇 천년 전인지 이미 파악할 수도 없을 정도로 까
마득하게 먼 전생이였던 지라 알아보는것 외에 해석하거나 하는 것은 일체
불가능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그의 일생과 자신의 주변 사람 이였고, 그
들 중 제일 기억나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모인 이들이였다.
"형 같은 경우는... 천황, 부천황을 보좌하던 친위대의 장이던 진요호(眞要
虎) 였어. 형은 지금 각성하는 것 같은데.. 처음 볼 때는 몰랐는데 지금 형
의 기운을 보자면 분명히 당시 열성적 무예를 펼치던 진요호가 맞을꺼야."
'흠~ 그렇다면 난 전생에서 부터 세은이를 보호하고 있던거야? 재밌는 인연
이네.'
"뭐, 그렇지... 그리고 승호 선배.... 아, 아니야.. 이건 됐다."
"?"
현후가 어정쩡하게 말을 끊자 형진 오빠가 장난 스럽게 웃었다. 그나저나
역시 정해져 있었던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뒤의 해석하지 못한 부분은
분명 우리의 장래를 적어 놓은 것일텐데.. 비록 해석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그래도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인가 보다. 이제는 승
호 선배에게 이 책을 보여주며 우리의 관계를 얘기할 일 만 남아 있었다.
현후가 책에 적힌 괴담들을 읽어나가면서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세은도
한번 거쳤던 책이라 그런지 현후가 얼굴을 찌푸리는 이유를 알것도 같았다.
"내용이 영, 이상한데? 이거 진짜 학교 괴담 맞아?"
'맞을꺼야. 몇몇개는 실지로 아직까지 교내에 7대 불가사의라는 이름하에 전
해져 내려오고 있어. 아, 너는 7대 불가사의 아직 못들었겠다? 아직 1학년
이잖아.'
"7대 불가사의? 그거 나도 아직 못들었어."
'세은이 너도? 음, 드디어 괴이한 사건이 그쳤나보구나. 그 괴담들이 안 돌
다니.. 뭐, 어쨌든 설명하자면 이래. 7대 불가사의 그 첫번째. 이건 너희도
다 아는 거야. 바로 이유없이 수영장으로 미끄러짐과 동시에 다리에 쥐가나
익사하는 일이 다분하다는 수영장 괴인력(怪引力) 사건. 이건 아주 다분한
일이긴 하지만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대부분 무언가가 자신을 잡아 당기는
기분이 든다는 데서 괴인력 사건이라 불리기 시작했어.'
"그렇군... 근데 형진 형.. 꽤 괴담에 대해 박식하다?"
'하하하! 아직 몰랐나 보구나? 나도 동아리 유령제였어.'
"어? 형이?"
'그래. 에휴, 그리고 두번째. 이건 그 괴담책 봐봐. 12쪽.'
현후가 들고 있던 책의 12쪽을 폈다. 특이하게 이 페이지에는 그림까지 그
려서 친절하게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 현후와 유란
이를 생각해서 형진 오빠는 나뭇가지를 들고 그림을 찬찬히 가리쳤다.
'이 그림. 어딘지 알겠어?'
"응, 방송실 같이 생겼는데?"
'그래. 이건 우리학교 방송실 그림이야. 가본적 있어?'
"아니 없어, 중학교 때는 있지만.. 고등학교 들어서는...."
"우리도 방송실은 가본적 없어."
우리 셋이 모두 고개를 젓자 형진오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책에 써있어서 다들 봤겠지만. 우리 학교 방송실은 가끔 한밤중에 불이 켜
져있거나, 불 꺼지고 잠겨있는 방에서 우는 소리나 웃는 소리가 들리곤 해.
그러다가 가끔씩 아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방송 스위치가 켜지면서 스피커
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오고.. 내가 1학년 때 까지만 해도 그런 일은 다반사
였어.'
"지금은 그런일 전혀 없는데..?"
'맞아, 그럴꺼야. 내가 2학년일 때 초반에 조금 그런일이 있더니 얼마 뒤부
터는 그런일이 없어졌거든 3학년 때는 한번도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하지만 1학년때 내내 그런 일이 있었다 보니, 불가사의가 아니라고 하기에
도 애매해 졌지뭐냐. 그래서 여전히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남은 거야. 거
기다 지금은 학교측에 의해 방송실에서 일어났었던 일 중 일부는 아예 뭍혀
버렸어. 예를 들어 그 방송실에서 방송을 준비하던 여자애 사고 같은거.'
"사고? 그 사람 다쳤데?"
'다친걸로 끝났으면 학교측에서 쉬쉬 할리가 없잖아. 걔 죽었어. 날카로운 것
에 목을 베였지.'
"형은, 그 여자가 왜 죽었는지 알아? 평소에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유령제도 관심을 가졌을거 아냐."
'응 알아.. 당시 유령제의 부부장이였거든. 부장이랑 둘이 가서 어떻게 된건
가 대충 짐작해 봤어.'
형진 오빠가 나뭇가지를 빙빙 돌렸다. 유란이나 현후에게는 보이지 않았지
만 내가 볼때 형진 오빠는 꽤나 고뇌하고 있는 듯 했다. 무엇을 보았고, 무
엇을 알게 됐기에 저렇게 망설이게 되는 걸까..
'일단 우리가 방송실에서 찾아낸건 기다랗고 하얀 머리카락 한 웅큼. 그리고
이상한 거울이였어.'
"거울?"
'그래, 거울. 아주 오래된 거울이였는지 기이하게 비틀어져 있었어. 머리카
락이 발견된게 거울 밑이였고. 일부는 거울에 붙어있었어. 거기다 이상하게
깨진모양도 없는데 거울 중간에 뾰족한 모양으로 여학생의 피가 묻어 있었
어. 거울 조각으로 목을 벤 거라면, 깨져 있거나 깨진것을 붙였다는 티가 날
거 아니야, 금이 간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런데 그 거울엔 그런게 없었어.
그렇다고 해서 다른 흉기가 발견된 것도 아니야. 주위에 날카로운 것은 전혀
없었어. 그래서 유령제는 긴가민가 하면서 감귀(鑑鬼:거울귀신)의 짓으로
판명했지만, 누가 믿겠냐 깨지지도 않은 거울로 사람을 죽이는 걸. 그게 아
무리 귀라 할지라도 말이야..'
이상한 상황이였다는 건가? 거울 귀신의 짓으로 치부하기에..? 그러나 거울
중간에 묻어 있다는 피가 꼭 흉기에 묻는 모양과 비슷했다는 것도 이상하긴
매한가지였다. 귀의 짓이 아니라고 본다면 도대체 누가 그런짓을 할수 있
었겠는가. 나는 형진오빠의 말을 들으면서 등이 싸늘해 짐을 느낄수 있었다.
첫댓글 귀가 귀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