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구두
김남권
아버지의 구두 뒤축은 늘 밖으로
닳아 있었다
새 구두를 사고 석 달만 지나면
오른쪽 뒤축은 15도, 왼쪽 뒤축도 15도
기울어진 막걸릿잔처럼
몸 밖으로 길을 내고 있었다
안으로만 감싸고 돌았던 어머니의 신발은
안쪽으로 닳았지만 밖으로만 돌다가
밖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구두는
언제나 밖을 향해 닳고 닳았다
아버지의 구두는 아직 신발장 맨 위에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체온이 남아있는 구두 속엔
평생을 떠돌던 발바닥의 흔적이
닳아 없어진 15도의 기억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버지의 구두 옆에 나란히 자리 잡은 내 구두도
15도로 닳아 있다
평생을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역마살을 타고 난,
몸이 기억하는 유전자는
막갈리 한 잔 속 거나해지면 나오던
"그대의 싸늘한 눈가에 고이는 이슬이 아름다워
하염없이 바라보네,
내 마음도 따라 우네,
가여운 나의 여인이여~"
아버지의 허전한 '빈잔'을 가득 채우고,
밤은 깊어가고
두 컬레의 구두는 말이 없다
사잣밥
할머니 이승 떠나시던 날
문밖을 기웃거리던 짐승이 있었다
몇 날 며칠을 굶었던지
눈은 퀭하니 십 리는 들어가고
허리는 굽은 채 끈 떨어진 갓을 쓰고 있었다
어머니는 작은 소반에 밥 한 그릇을 담고
나물 몇 가지와 전을 담고
동전 세 닢을 담아 사립문 밖에 내놓았다
밤새 달빛이 먼저와 입맛을 다시고 새벽녘
첫닭이 울었다
문밖을 기웃거리던 짐승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어머니의 소반에 담긴 음식도
절반은 사라졌다
우리 할머니 어디쯤 가셨을까
배는 곯지 않으셨을까
살아서 오르내리던 대금이 고개 어디쯤
나를 마중 나와 계실까
시집 『오후 네 시의 달』 시와 징후 2024
김남권 시인
1994년 조병화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와 시문학 신인우수작품상을 수상,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계간 문예지 '시와징후'의 발행인 겸 주간, 한국시문학문인회 회장, 한국국제문학협회 회장, 강원아동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발간 저서로 베스트셀러 시집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를 비롯해 최근에 발간한 <오후 네 시의 달>외에 10권의 시집이 있으며 동시집 <쉿, 비밀이야>외 4권, 그림동화 '진주연못의 비밀' 등 다양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