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상태로 통제된 미래 사회… 기준에 맞지 않는 약한 자를 솎아내 갈등 없는 평등을 유지했답니다 역사 기억할 임무를 맡은 주인공… 약자 배려 않는 사회에 실망해 떠나
읽고 싶은 책을 빌리거나, 조사를 위해 각종 문헌을 뒤적여야 할 때 우리가 먼저 찾는 장소가 있어요. 바로 도서관이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서관으로는 1945년에 개관한 '국립중앙도서관'이 있지요. 국립중앙도서관은 도서관법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발행하는 모든 책을 수집해 보관하고 있답니다.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기록 집합소인 도서관은 거대한 '기억 저장고'라고 할 수 있어요. 기억 저장고에 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거의 기억을 꺼내 볼 수 있고, 그 기억을 보유할 자격을 갖춘 셈이기도 하죠. 그런데 만약 과거의 기억을 꺼내 보거나 보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단 한 명뿐이라면 어떨까요?
▲ /그림=이병익
미국 청소년 문학의 대표적 작가 로이스 로리가 쓴 '기억 전달자'는 유일한 기억 보유자가 될 열두 살 소년 조너스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조너스가 살아가는 미래 사회는 언뜻 보면 굉장히 평화로워요. 갈등, 욕망, 고통 등 분란을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모두 제거된 사회이기 때문이지요. 각종 규칙과 통제로 한 치 오차도 없이 프로그램화된 이 사회는 가족 구성도, 직업도, 삶의 방식도 모두 사회에서 정한 대로 따르게 돼 있어요. 이렇게 정해진 대로 살면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게 되면 '임무 해제' 명령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임무 해제실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주인공 조너스 역시 이 시스템에 맞춰 살아왔어요. 원로위원회의 까다로운 심사 끝에 기초 가족으로 묶인 사람들과 또 맞춤형 직위를 기다리면서 말이에요. 직위 수여식이 있던 열두 살 기념식에서 조너스는 다음 '기억 보유자'로 선택됩니다. 인류의 역사를 비롯한 과거의 기억을 지닌 이전 기억 보유자는 이제 기억 전달자가 돼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을 조금씩 그에게 전수해주죠. 조너스는 기억을 전달받으면서 전에는 몰랐던 차원이 다른 감정을 느끼고 배우게 됩니다. 또한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각종 조건이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죠. 심지어 기후와 계절, 그리고 색깔까지도 말이에요. 원래는 선택 가능했던 것들이 왜 한 가지 상태로 정해졌는지 의문을 품는 조너스에게 기억 전달자는 이렇게 대답해줍니다.
▲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는 '더 기버: 기억 전달자'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돼 지난해 국내에서도 개봉됐어요. '기억전달'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개봉 전부터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죠. /와인스타인 컴퍼니 제공
"우리가 그쪽을 선택했어. '늘 같은 상태'로 가는 길을 택했지. 내가 있기도 전에, 이 시대보다도 전에, 아주 오랜 옛날에 말이야. 우리가 햇볕을 포기하고 차이를 없앴을 때 색깔 역시 사라져버렸지. (…) 그럼으로써 우리는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었지.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단다."
서로 다른 피부색 때문에 발생하는 인종차별과 그에 따르는 부정적 감정을 없애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지워버린 이 선택을 놓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늘 같은 상태'는 사회를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한다는 목적 아래 이뤄졌죠. 하지만 이를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은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살게 됐어요. 자기들도 모르게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것이죠.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만일의 사태에는 이 모든 기억을 가진 기억 보유자를 찾아가 경험에서 우러나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어요. 하지만 그마저도 근본적 변화가 아닌 현상 유지를 위한 임시방편에 그쳤을 뿐이에요.
#이야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등은 완성도가 높아 호평을 받은 영화인데도 대기업 투자 배급사의 물량 공세에 부딪혀 악조건에서 상영해야 했어요. 결국 개봉관도 점점 줄어들었죠. 관객들이 선택하기 힘든 장소와 시간대에 상영됐지만, 이대로 묻히기엔 아까운 영화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재관람 열풍이 일어났어요. 관련 영화 제작사 관계자들은 대기업 독점 체제의 폐해를 호소하며 공정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을 요구하기도 했어요. 이처럼 자본이라는 거대한 힘 아래서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다양성과 개성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고 말겠죠.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은 "개성을 파멸시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모두 전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답니다.
기억 전달자 속 사회는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성장이 느린 아기들, 나이가 많은 노인에게 '임무 해제'를 명합니다.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의 특권으로 임무 해제가 결국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사회의 절대적 안정을 위해 조건이 맞지 않는 자는 임무 해제돼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순간, 조너스는 자신이 살던 사회에 회의를 느끼고 변화를 갈망해 떠나게 돼요. 약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 실패나 실수가 전혀 용납되지 않는 사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견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는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암담했어요.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기준에 다다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임무 해제를 내리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 같네요.
[함께 생각해봐요]
실패와 위험이 뒤따르더라도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대신 안전이 보장된 것 중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고 싶나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말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