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도 쯤이었나??...당시 저는 선동열과 김성한등이 스타로 군림하던 야구의 광팬이었습니다(전 해태팬...)...당시 만 8살...ㅡ.ㅡ;;;어느날 저는 아버지께서 열심히 티비시청을 하고있는 장면을 목격합니다...호기심에 아버지 옆에 앉아 같이 봤드랬죠...(아버지께서는 현대팬이셨습니다...)그런데 유독 한 선수가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그때 그 선수가 3점라인에서 슛을할때 상대선수의 반칙으로 넘어지면서 던진슛이 들어가며 카운트까지 얻어내는 모습이 저의 눈을 사로잡게 됩니다...전 그래서 아버지께 물었죠..."아빠!!저 선수 누구에요??"...아버지 왈 "이충희 아이가!!자가 울나라에서 젤 잘한다"(경상도 분이십니다...ㅡ.ㅡ)그뒤로 저는 이충희에게 매료되어 소속팀이던 현대전자의 경기를 빠짐없이 봤었습니다..,당시 이충희 선수는 아시아 최고 슈터로서 70년대 농구강국인 중국...도 아닌...필리핀에게 아시안게임때 한국이 승리를거두고 우승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신동파씨의 계보를 잊는 최고의 선수였습니다...여기서 이충희선수(선수라고 하겠습니다...)의 실업팀 입단 에피소드를 잠깐 얘기하자면 당시 80년초반 농구계의 양대산맥인 현대전자와 삼성전자가 그를 입단 시키기위해 엄청난 경쟁을 벌였습니다...삼성은 백지수표까지 제시했지만 이충희는 3억2천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현대에 입단하죠...(여기서...83년인가 당시 야구의 최동원선수가 8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것이 센세이션이었을정도...그리고 선동렬선수가 84년입단할때는 1억4천만원인가 받았던걸로 압니다...이충희선수의 입단년도는 82년입니다...)
그는 한국 농구계의 황제로 불리며 농구대잔치 사상 최초 4000점 돌파 한 경기 최다 득점 인 64점등의 위업을 이루며 전성기를 맞이합니다...하지만...그에게도 시련은 있었으니 바로 당시 대학농구 최강이던 중앙대선수들을 대거 흡수한 기아의 창단이후로 그는 점점 쇠퇴해갑니다...당시 기아는 현대를 무조건 10점이상으로 스윕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하죠...이충희는 당시 기아의 정덕화(지금 SBS감독이죠)라는 전담마크맨에게 막혀 경기당 10점이하로 묶이고(그때는 정덕화씨가 왜 그렇게 싫던지...) 부상까지 찾아와 말년에 은퇴를 하고 대만으로 진출하게 됩니다...전자슈터 고 김현준을 2인자로 머물게한 그였습니다...제게 농구라는걸 처음 알게해준 이충희감독..
지금의 조던보다 그때 저에게는 더 위대해 보였던 그였습니다...감히 말할수 있는건 다른건 몰라도 슛하나만큼은 허재나 조던보다 떨어지지 않던 그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하루에 1000개이상의 슈팅연습과 엄청난 훈련으로 그는 그렇게 최고의 선수가 될수있었습니다...물론 당시 슈터위주의 한국농구가 지금의 국내농구 수준을 퇴보시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으나 그는 농구천재는 아니였을지 몰라도 슛의 천재라고 저는 감히 말합니다...80년대 아시아 농구계에서 가장 무서운 선수는 바로 그였으니까요...
죄송하지만요 딴지는 아닙니다...그러나 엔베이 그렇게 쉽게 갈수있는곳이 아닙니다..이충희선수로써 훌륭한 선수였지만...하부리그후보선수정도도 못할 수준이라고 확신합니다....이건 농구는 아니지만 박철순이 미프로야구에 있다가 우리나라로 건너와서 그해에 20승합니다....그러나 어디에 소속이었는지 아십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마이너 더블리그에서 있다왔습니다...또 우리나라에서 썬썬그러면서 선동열씨 함참 띠워줄때도 보통 우리나라 에이스 투수정도가 더블리그 수준이고 썬이 트리플리그 정도 수준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과민반응 한건 아닌가 싶지만.... 쉽게쉽게 말하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썬이 트리플 수준이라......ㅡㅡ; 그 말씀에는 솔직히 좀 어폐가 있는 것 같네요. NBA와 국내리그의 차이는 하늘과 땅 수준일지 몰라도 MLB와의 차이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동렬에 관한 얘기는 미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도 상당히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님도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건 아닐런지..
강정수와 유재학은 2번보다는 1번에 가까웠었죠. 강정수 중앙대 시절부터 위기때의 3점.. 클러치능력이 있었죠. 유재학은 정말 센스있는 플레이였는데.. 아이솔레이션하다가 크로스 후 점퍼.. 수비가 블락슛하려고 뜨자 공중에서 바로 골밑의 센터에게 패스.. 정말 멋진 두 선수였다는..
선동렬 대학시절에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시키고 그대회에서 최고구속157Km를 뽑냅니다...저번 시드니 올림픽에 일본대표였던 마쓰자카 기억하시죠? 미국과의 개막전에서 10이닝2실점인가 했던.. 이선수평가가 MLB 10승이상이었는데 선동렬 선수는 그당시 마쓰자카를 훨씬 넘는 잠재력과 임팩트를 지녔었습니다
한마디만 더하자면 그때의 한국야구 수준은 지금의 수준과 비교도 안되었습니다. 불혹을 넘겼던 백인천 감독(물론 일본에서 잘했었지만- 당겨치기의 귀재였다고 하죠)이 타격왕 먹을 정도로 투수도 약하고 타자도 약하던 시절이었죠 83년에 일본서 전성기를 지난 장명부가 30승을 할 정도로..
첫댓글 이충희선수 별명이 슛도사 맞죠? 하하 정말 멋진 별명입니다. 엔비에이 갈 수도 있었다던데 좀 아쉽네요..
정덕화가 그당시 기아의 주장이었죠...싸움났을땐 왠지 안보이던...^^ 사실 그당시 저도 현대 팬이었는데 기아와의 대전에서는 허재는 그리 두렵지 않았습니다...유재학,강정수 쌍포가 더무서웠었죠...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랬던거 같습니다...벌써 15년전이네요...
죄송하지만요 딴지는 아닙니다...그러나 엔베이 그렇게 쉽게 갈수있는곳이 아닙니다..이충희선수로써 훌륭한 선수였지만...하부리그후보선수정도도 못할 수준이라고 확신합니다....이건 농구는 아니지만 박철순이 미프로야구에 있다가 우리나라로 건너와서 그해에 20승합니다....그러나 어디에 소속이었는지 아십니까...
어디소속이었는지도 말씀해주시고 가시지요..-_- 진짜 모르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마이너 더블리그에서 있다왔습니다...또 우리나라에서 썬썬그러면서 선동열씨 함참 띠워줄때도 보통 우리나라 에이스 투수정도가 더블리그 수준이고 썬이 트리플리그 정도 수준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과민반응 한건 아닌가 싶지만.... 쉽게쉽게 말하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썬이 트리플 수준이라......ㅡㅡ; 그 말씀에는 솔직히 좀 어폐가 있는 것 같네요. NBA와 국내리그의 차이는 하늘과 땅 수준일지 몰라도 MLB와의 차이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동렬에 관한 얘기는 미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도 상당히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님도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건 아닐런지..
강정수와 유재학은 2번보다는 1번에 가까웠었죠. 강정수 중앙대 시절부터 위기때의 3점.. 클러치능력이 있었죠. 유재학은 정말 센스있는 플레이였는데.. 아이솔레이션하다가 크로스 후 점퍼.. 수비가 블락슛하려고 뜨자 공중에서 바로 골밑의 센터에게 패스.. 정말 멋진 두 선수였다는..
유재학은 나름대로 국내에서 포인트가드의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구요..강정수는 거의 2번이었죠...사이드 구석에서의 3점슛은 잊기 힘든 그만의 메뉴였죠...
재밌군요.선동열이 트리플리그수준이라...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들이 탐내던 선동열을 모르시나...-_- 30대중후반의 나이에도 지금의 보스턴에서 스카웃 제의를 했었슴다.
다른건 다 제쳐 놓고, 선동열이 트리플리그 수준이란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얘기군요...
선동렬 대학시절에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시키고 그대회에서 최고구속157Km를 뽑냅니다...저번 시드니 올림픽에 일본대표였던 마쓰자카 기억하시죠? 미국과의 개막전에서 10이닝2실점인가 했던.. 이선수평가가 MLB 10승이상이었는데 선동렬 선수는 그당시 마쓰자카를 훨씬 넘는 잠재력과 임팩트를 지녔었습니다
또 박철순 선수가 더블A에 있었던건 사실이지만.. 거기까지밖에 못간게 아니고 거기까지 간 상황에서 빅리그에서 큰 성공은 거두기 힘들겠다 싶어 귀국한거지 더블A가 한계가 아녔거든요?인용은 정확하게 해주시길..
한마디만 더하자면 그때의 한국야구 수준은 지금의 수준과 비교도 안되었습니다. 불혹을 넘겼던 백인천 감독(물론 일본에서 잘했었지만- 당겨치기의 귀재였다고 하죠)이 타격왕 먹을 정도로 투수도 약하고 타자도 약하던 시절이었죠 83년에 일본서 전성기를 지난 장명부가 30승을 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