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어즈앤스포츠=김민영 기자] 최혜미(30·웰컴저축은행)가 지난해 프로당구 역사상 첫 동호인 출신 챔피언으로 이름을 올리며 당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했다.
지난 11월 열린 'NH농협카드 LPB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혜미는 LPBA 역대 14번째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2019년 PBA-LPBA 출범 원년 프로당구 선수로 데뷔한 최혜미는 2019-2020, 2020-2021 두 시즌 동안 이렇다 할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2021-2022시즌 2차 투어 'TS샴푸 챔피언십' 8강에서 '당구여제' 김가영을 세트스코어 2-0으로 제압하고 준결승에 올라 당구 팬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2022-2023시즌 휴온스의 간택을 받은 최혜미는 PBA 팀리그에 합류했으나 팀리그 적응과 팀의 부진이 개인 투어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한 시즌 동안 단 한 번의 32강 진출로 시즌을 마쳐야 했다. 결국 팀에서도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2023-2024시즌 반전이 펼쳐졌다. 극적으로 웰컴저축은행의 지명을 받은 최혜미는 'NH농협카드 챔피언십'에서 '신데렐라' 돌풍을 일으켰다.
최혜미는 '일본 여자3쿠션 전설' 히다 오리에(SK렌터카)와 용현지(하이원리조트), 김민영(블루원리조트) 등을 연달아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 '최연소 LPBA 챔피언' 김예은(웰컴저축은행)마저 세트스코어 4-2로 꺾고 생애 첫 프로당구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동호인 출신 첫 프로당구 챔피언이다. 당구를 배운 보람이 있다.
사실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당구장 알바'가 되게 편하다고, '꿀알바'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서 직장을 잠시 쉬는 중에 생활비라도 벌어볼까 시작한 거였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다.
당구는 당구장에서 일하면서 배운 건가? 당구 경력은 얼마나 된 건가?
22살 때 당구장 알바를 시작하면서 손님들이 치는 걸 어깨너머로 보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7~8년쯤 된 것 같다.
이전에 직장 생활을 할 때와 당구장에 일하면서 당구선수를 병행하는 것 둘 중에 어떤 게 더 만족도가 높은가?
지금이 훨씬 만족도가 높다. 당구선수 하기 전에도 손님들이랑 같이 당구 치는 게 즐거웠다.
최혜미에게 당구란?
공이 좀 안 맞을 때는 정말 보기도 싫은데 잘 맞으면 계속 당구만 치고 싶은 걸 보면 '애인' 같은 존재다. 당구랑 밀당 아닌 밀당을 자꾸 하게 된다. 이런 마음은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당구선수가 돼 볼까, 결심한 이유는 뭔가?
사실 대한당구연맹 때는 '굳이' 선수를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냥 그때의 삶에 만족했다. 당구장에서 매니저로 일하면서 손님들이랑 웃고 떠들면서 같이 당구 치는 게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제일 즐거웠고, 지금도 다시 돌아가라면 돌아가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프로당구 PBA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뱅크샷을 치면 2점을 준다는 경기 룰에 솔깃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뱅크샷에 원래 자신이 좀 있었나 보다.
그건 아니다. 가끔 당구장에서 손님들이랑 게임할 때 뱅크샷을 치면 2점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똑같은 뱅크샷을 치고 1점으로 할 때와 2점으로 할 때 긴장감이 다르다. 그때부터 2점제가 더 재밌다고 느껴서 PBA가 생겼을 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구를 치면서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딱히 당구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은 없지만, 지금 내 주위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당구를 칠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당구를 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승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누구였나?
아빠가 대회장 가장 앞자리에서 응원해 주고 계셔서 우승하는 순간 아빠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 그리고 대회장까지 와서 응원해 준 친구들과 지인들, 비록 대회장까지 오지는 못했지만 전화로, 문자로 응원해 주고 축하해 준 사람들에게도 너무 고마웠다. 심지어 내가 우승한 후에 운 친구도 있다고 하더라.
가장 의외의 반응을 보인 사람은 누구인가?
PBA 심판 중에 친구가 한 명 있는데, 항상 시합에 떨어질 때마다 냉정하고 모질게 질책하는 친구다. 이 친구가 결승전 때 앞에서 끝까지 지켜보고 울었다고 하니까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고맙더라.
프로 당구선수로 데뷔하면서 세운 목표가 있었을 텐데.
당연히 모든 선수들이 우승을 목표로 프로에 도전한다. LPBA에서는 우승도 우승이지만, 팀리그에 들어 가는 게 모든 여자 선수들의 목표이기도 한데, 나는 그 안에서 그 사람들과 비등한 실력으로 경기를 하는 게 더 큰 목표였다.
목표를 이제 거의 다 이룬 건가? 우승도 했고, 팀리그도 들어갔다.
아니다. 아직까지는 내가 이 선수들과 대등한 실력으로 겨루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 우승을 한 번 하긴 했지만, 이것보다 지금 목표는 팬들이나 다른 선수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실력으로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당구 시작한 지 7년 만에 첫 우승을 한 건데 빠르다고 생각하면 빠른 성장이지 않나?
솔직히 운이 좀 많이 따른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우승을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야 비로소 내 실력으로 우승한 것이라고 증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최혜미는 어떤 사람인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다. 경기에서 이기거나 지거나 크게 영향받지 않는 편이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시간 낭비더라. 오히려 실패를 거울 삼아 그럴 시간에 공을 한 번 더 굴려보고 연습을 한다.
롤모델인 선수가 있나?
김가영 선수의 카리스마나 압도적인 포스가 너무 멋있고, 부럽다.
그럼 최혜미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자신감 있는 모습. 자신감 있게 시원하게 공을 치는 것. 이게 나의 장점인 것 같다.
반면, 이건 고쳐야 하는데 싶은 부분은?
너무 시원하게만 치려고 하다 보니 성급해 보이는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은 고치면 좋을 것 같다.
휴온스로 PBA 팀리그에 합류했는데, 한 시즌 만에 방출됐다. 다행히 웰컴저축은행에서 재지명 했는데, 기분이 어땠나?
솔직히 다른 팀에서 지명할지 기대하지 못했다. 웰컴저축은행에 와서는 팀리그 두 번째 시즌이라 좀 적응이 됐고, 우리 팀 여자 선수인 김예은과 히가시우치 나쓰미와는 애틋함도 많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팀에 한국 남자 선수들이 많다 보니 너무 잘 알려주고, 경기가 좀 안 풀려도 서로서로 격려를 많이 해줬다.
또 회사에서는 여자 선수들을 위해서 특별 레슨을 받을 수 있게 지원해 줘서 여자 선수 3명이 실력이 엄청 늘었다.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됐다.
'쿠드롱팀'이 됐다는 기대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쿠드롱의 이탈로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물론 기대했던 것도 있지만, 서현민 선수로 채워진 것도 좋았다. 같이 혼합복식을 하면서 너무 반했다. 힘도 많이 안 들이고 각대로, 엎드리면 그냥 맞았나 보다 할 정도로 공을 정교하게 치더라.
원래 남자 선수들 경기를 잘 챙겨 보지 못하는데, 최원준 선수가 결승전 할 때 그분 공 치시는 걸 처음 봤는데,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간 것 같은데 공이 너무 잘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공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경기를 보다가 닭살이 돋았다.
이제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다. 이번 시즌 목표는?
계속 꾸준히 실력 향상을 하는 게 제일 우선 되는 목표고, 그 외에는 우승을 한 번 더 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그래야 내 실력을 조금이라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서른 살이 된 최혜미의 목표는 무엇인가?
꾸준히 당구를 치면서 재밌게 지내는 것, 당구를 더 즐기는 것. 그리고 최혜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아, 잘 치는 선수지' '최혜미, 잘 치지' 이런 평가를 듣고 싶다.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승을 한 게 실력이 아닌 운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더 나은 모습으로 실력이었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게 내가 더 노력할 테니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사진=이우성(675스튜디오)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출처 : 더빌리어즈 https://www.thebilliards.kr/news/articleView.html?idxno=25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