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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의 망치
단기3960년 늦겨울 슈체친 유럽 연합 1군단 지휘부
프랑스군으로 구성된 유럽 연합군 1군단을 이끌고 있는 마지 장군은 요즘 미칠 지경이었다.
빌라봉성에서 당한 치욕을 갚을 수 있게 해달라며, 루이 13세에게 무릎 꿇고 빌면서까지 얻어낸
자리가 1군단 사령관직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슈체친을 함락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합 함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슈체친을 함락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를 1군단장에 앉힌 루이 13세에게
면목이 서질 않았다. 수 차례 포병을 위시한 대규모 공격을 했지만, 대한제국군이 쌓아올린 시멘트
방벽은 바위보다도 더 튼튼했다. 대한제국군의 방벽은 프랑스 포병대가 쏘아올린 수십 발의 포탄을
견뎌내고 있었다.
“워싱턴 사령관님께서 보낸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꽝’
부관의 말에 마지 장군은 책상을 발로 찼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1군단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군단은 오드리강을 넘어 진격에 진격을 하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해”
부관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온 우군 사령관 전령이 두루마리 하나를 마지 장군에게 건네주었다.
전령에게서 받은 두루마리에는 유럽 연합군 1군단 2군단 3군단을 총괄하는 워싱턴 사령관의 불만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젠장. 다른 놈들은 전투다운 전투라도 했냔 말야 ? 운도 지지리도 없어.
연대장급 이상 장교들 다 모이라고 해. 당장.”
사령관 전령에게 문서를 받았다는 확인 서명을 해준 마지 장군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워싱턴은 은근히 1군단장을 교체할 뜻을 밝히고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특별한 전공을 만들지 않으면,
굳이 워싱턴이 아니더라도 루이 13세가 그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우군 사령부에서 새로운 명령이 내려왔다. 조미니 장군은 보병 이만 명과 함께 여기 남아 슈체친을
포위하고, 적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기병부대와 나머지 보병부대는 단치히까지 앞으로 20일 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쾌속 진군한다. 12시간 안으로 부대 이동준비를 끝내고 보고하도록. 이상”
“장군님 ? 보병만으로 이곳을 함락할 수 없습니다.
대한제국군이 보유한 철마라는 것이 어떤 놈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
“알고 있어. 누가 함락하라고 했나 ? 그냥 포위만 하고 있어. 조미니 장군은 그것도 못 하겠나 ?
이쪽에서 가만히 있으면 저쪽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 철마라는 그놈. 그놈 그림자라도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이곳 공격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질문 없으면 해산.”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마지 장군은 이곳에 남게 될 조미니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고립되긴 했지만, 후미에 대규모 적을 남겨두고 진격하려니
영 뒤끝이 개운하지 않았다.
이태리 반도 로마
바티칸을 되찾으려는 교황령 영주들과 토스카나 대공의 명령을 받은 피렌체 군대가 로마로 몰려들었다.
바티칸을 점령한 2천명의 공수 여단은 로마 시대를 장악하는 것을 포기하고 바티칸 주변에 거대한
차단막을 형성하고 방어에 나섰다. 항모 비행단의 폭격을 받고 만신창이가 되어 바티칸에 몰려든
패잔병들은 공수 여단에게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못 했다.
“034방향에서 로마로 접근하는 무리가 발견되었다. 가까이 접근해서 확인하겠다.”
항모에서 이륙한 꼴뚜기 편대 제비호 2대가 곧게 뻗은 대로를 따라 움직이는 행렬을 발견하고
고도를 낮췄다. 티레니아 해 상공에서 24시간 대기하며 항모와 공수여단간의 통신을 연결하고 있는
봉황에게서 얼마 후 확인 요청이 들어왔다.
“꼴뚜기 편대. 상황확인 바란다.
“여기는 꼴뚜기 편대. 야포를 동반한 천 여명의 기병부대가 로마로 접근하고 있다.
타격 편대를 보내주기 바란다.”
“알았다. 독수리 편대가 발진하기 시작했다.”
꼴뚜기 편대는 로마를 정점으로 반지름 100킬로미터의 원을 그리며 로마로 접근하는 군대를 감시했다.
대부분의 군대는 발견 즉시 항모전단에서 발진한 독수리 편대들이 제지하고 나섰고,
그 뒷처리를 공수여단 1개 중대가 잠자리를 타고 와서 깔끔하게 처리했다.
“우린 할 일이 없구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봉황과 꼴뚜기 편대간의 통신을 듣고 있던 공수여단장이 하품을 해댔다.
첫날에 잡아들인 포로들의 심문이 끝나고 방어선이 굳건해지자, 여단장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가끔 야음을 틈타 바티칸 주변까지 진입에 성공한 적들이 있었고, 그들의 산발적인 공격 있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산발적 공격은 공수여단을 귀찮게 할 뿐이었다.
“전단지가 빨리 만들어져야 잠잠해질텐데.”
여단장은 항공모함으로 이송된 교황이 마음을 바꿔 대한제국에게 협력하길 바라고 있었다.
온갖 협박과 감언이설로 교황을 설득하려 했지만, 5일째 교황은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단장은 새로운 교황감을 찾아보라는 이상한 명령까지 내려놓고 있다.
단기3960년 이른 봄 슈체친 기계화 사단 사령부 저녁 무렵
오드리강 하구가 유럽 연합군에 넘어가면서 완전히 고립된 4111 기계화 사단은 초긴장 상태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4111사단을 지원하기위해서는 먼저 바닷길을 열어야만 하는 원정군 사령부로서는
4111 사단에게 기동행위를 중단하고 거점 방어만을 명령해 놓고 있었다.
다행히 슈체친은 두어 달 간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보급품을 챙겨두고 있었다.
“저것들을 그냥 밀어버리면 좋겠구먼. 안 그래 박대위 ?”
김병한 대위가 큰소리로 떠들며 대대 전술 회의실에 들어섰다.
“좋지. 자네가 한번 나가보겠나 ? 내친 김에 파리까지 갔다 오라구.”
회의실에 중대장들을 기다리고 있던 대대장이 김대위의 잡담을 들은 모양이었다.
“충성”
김병한 대위가 대대장을 발견하고 경례를 올렸다. 그의 눈은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여단장님은 내게 맡기고 자네는 천마 정비나 해 놔. 오늘 한번 나가보자구.”
대대장의 농담에 다른 중대장들이 애써 웃음을 참고 있었다. 김병한은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며 눈을 내리 깔았다. 오드리강 하구를 점령한 유럽 연합군은 해군까지 동원하며 슈체친을
공략했지만 천마로 무장한 4111 사단이 지키고 있는 슈체친은 한달 이상을 버티고 있었다.
4111사단을 적지 한 가운데에 버려두고, 비스와 강 방어선까지 썰물처럼 후퇴한 원정군은
숨을 고르며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조만간 우리 사단에 기동 임무가 부여될 거라는 소식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천마를 잘 손질해 놓도록. 한대라도 고장 나는 중대는 각오하라는 사단장님의
엄명이 계셨다. 우리 대대 소속 천마가 고장 나면 그 소속 중대장, 소대장은 물론이고
천마 구성원 모두를 강제 퇴역 시켜 버릴 거니까 불명예 제대하고 싶으면 알아서 해.
그리고 각 중대 보급계는 보유 보급품 목록을 다시 한번 점검해서 보고하도록.
그리고 대공초소에 감시병을 배치하고”
“네. 알겠습니다.”
대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병한이 고함치듯 대답 했다.
엷은 미소를 흘리며 김병한을 바라보았다.
‘땡땡땡 때대대대대’
“1급 경보. 공공삼 오공”
경보음과 더불어 사령부 전투 지휘실에서 접근하고 있는 적의 정보를 알려왔다.
1대대가 맡고 있는 북쪽으로 범선 5척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듯 했다. 범선들은 4111사단이
가지고 있는 중기관총의 사거리 밖에서 함포를 쏘아대곤 했지만 큰 위협이 되진 않았다.
가끔 사거리 안으로 들어온 범선은 중기관총에 작신 두들겨 맞고 하구로 떠내려갔다.
“또 시작이군. 눈먼 탄에 맞지 않도록 조심하고.”
대대장이 그만 나가보라는 손짓에 중대장들이 경례를 하고 뛰어나갔다.
스몰렌스크 주변 공군기지
만주 평야에서 국영 농장을 지원하던 윤형식 중위가 투덜거리며 활주로를 걸어갔다.
스몰렌스크 전투비행 사단으로 배속된 이래 4개월간 폭격 훈련을 마치고 전장에 투입되는 줄 알았던
그는 다시금 기총 훈련 과정을 밟으라는 명령을 접수했기 때문이다.
“불쌍한 놈. 이건 걸 달고 있으면 괜히 거추장스럽기만 하지.”
자신의 애마를 어루만지던 윤형식은 날개 상부에 볼 쌍스럽게 삐죽 삐져 나온 20미리 기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한제국 공군이 보유한 비행기는 제비호를 제외하고는 기총을 장착하기 않고 있었다.
하지만 바르샤바 보급창이 유럽군이 운용하는 기구에 의해 공격 당하자,
공군은 부랴부랴 신형 천붕에 20미리 기총을 장착하고 시험 운행에 들어갔다.
자살공격과 다름없는 공격이었지만, 앞으로 똑 같은 자살공격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기총은 대부분 공장에서 장착된 것이 아니라 스몰렌스크 공군기지에서 개수된 것이라
조종사와 정비사들은 이번 조치에 불만이 많았다. 윤형식 중위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계기 점검 다 했나 ?”
“네. 아닙니다. 지금 하려 했습니다.”
기장 이무민 소령이 다가왔다. 잠시 딴생각에 빠져있던 윤형식 중위는 얼른 사다리를 타고 후위석에
앉았다. 이무민 소령이 앞 자리에 앉아 계기판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무민이 계기판과 수십 개의
장치들을 일일이 호명하면 윤형식은 그 이상 여부를 확인했다.
10분 동안 계기판 점검을 마친 이무민 소령이 관제탑에서 이륙허가를 받아냈다.
주변 활주로에서도 신형 천붕 10대가 이륙 준비를 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곧 이어 굉음을 내며 10대의 천붕이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이번이 처음 훈련이라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착륙할 때 쯤이면 모두들 저격수가 되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10호기부터 진입하라.”
편대장의 목소리가 끝나고 10번기가 훈련 공역으로 진입해 갔다.
때를 맞춰, 지상에서 대기중이던 요원이 커다란 풍선을 메달고 있는 줄을 끊었다.
수소를 가득 채운 지름 1미터의 풍선이 하늘 높이 올라가며 천붕의 표적이 되어 주었다.
‘타타타타타’
‘잘 안되네’
첫번째 기총사격에서 무수한 총탄을 허공으로 보내버린 윤중위는 계속 올라가는 풍선을
허무하게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잘 해봐.”
이무민 소령은 윤중위를 격려하며 기체를 상승시키며 선회하기 시작했다.
조준관에 풍선이 들어오길 기다리던 윤중위는 빨간 풍선이 십자선 안에 들어오자 순간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수십발이 총신을 빠져나와 빨간 풍선을 뚫고 지나갔다. 풍선이 펑 터지며 불꽃이 피어 올랐다.
“좋았어”
10대의 천붕이 하늘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풍선을 뒤쫓아 갔다. 천붕이 놓친 풍선은 일정 상공까지
계속 상승하다가 스스로 터져 나갔다. 전투비행사단의 전장 투입이 임박해 올 무렵 아프리카 남단에
배치된 대한제국의 또 다른 항모 전단이 북상을 시작했다.
유럽 연합군 총사령부
거의 600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려온 유럽 연합군은 비스와 강을 앞두고 대한제국군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렸다. 40만의 유럽 연합군이 비스와 강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을 막기위해 대한제국 5군단과
6군단을 주축으로 한 대한제군 15만명과 폴란드 북부군 일만명이 방어선을 형성하고 유럽 연합군을
화끈하게 맞이했다.
“곳곳에서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전선이 고착되면 저희에게 불리합니다.
연합 함대를 움직여야 합니다.”
유럽 연합군 총 사령부는 오드리강을 너머 계속 진격했던 겨우 내내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던 것이 비스와 전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점점 분위기가 암울해 졌다.
그런 와중에 토스카나 공국에서 날아온 바티칸 점령사실은 유럽 연합군 총사령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신항을 바로 치고 싶나 ?”
영국 출신 총 사령관 헤럴드 알렉산더가 리즈 백작을 보고 물었다.
“아닙니다. 신항은 바다로 향한 해안포만 100문이 넘습니다. 방어가 튼튼해서 해군 단독으로
공격해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치히는 가능합니다. 지금 당장 오드리강 하구에 있는
연합 함대를 단치히 공격에 투입하시고, 마지 장군의 경질을 요구합니다.”
리즈 백작의 말에 모두들 놀란 얼굴로 헤럴드 알렉산더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영국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있는 리즈 백작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 발언인 듯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은 ?”
“딱히 마지 장군은 해임할 이유가 없습니다. 1군단이 고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군단은 전투다운
전투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지금 1군단장을 해임하면 다른 군단장 역시 해임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함대는 먼저 슈체친을 공격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산발적인 공격으로는 절대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유럽 연합군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프엥카레 참모는 리즈 백작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다.
직책은 신무기 개발 및 정보 참모에 불과한 리즈 백작이 연합군 총사령부를 좌지 우지 하고 있다는
느낌에 다른 참모들 역시 프엥카레 의견에 동조하는 눈빛을 사령관에게 보냈다.
하지만 총사령관은 지긋이 눈을 감고 다른 참모들의 눈빛을 외면했다.
“맞습니다. 후미에 강력한 적 철마부대를 남겨놓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후환을 남겨두는 거와 같습니다. 단치히를 치기 전에 먼저 슈체친을 쳐야 합니다.
함대가 가지고 있는 신형 함포를 동원하면 슈체친은 단숨에 무너집니다.”
“안됩니다. 그건 전혀 불필요한 일입니다. 단치히를 함락 시키고 전선을 돌파하면 슈체친은
얼마 버티지 못 합니다. 우리는 불필요한 화력을 낭비 할 여력이 없습니다. 슈체친에 있는 철마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연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1군단은
전멸했을 것입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적을 공격하기위해 귀중한 장비를 노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슈체친은 다른 방법으로 공격할 것입니다.”
“그것이 뭡니까 ?”
“갈릴레이 교수가 만들었다는 것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리즈 백작과 참모진간의 설전을 말없이 듣고만 있던 총사령관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가 고개를 들어 각국에서 파견된 참모진을 바라보았다.
주위가 조용해지길 기다린 알렉산더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마지 장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마지 장군을 해임하게. 후임으로 코르테스 장군을 임명하도록.
이 사실을 다른 군단장에게도 알리고 전 전선에서 총공격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려놓게.
이번에 비스와 전선을 뚫지 못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지 몰라. 그리고 연합함대에게 단치히
공격을 명령한다. 연합 함대의 단치히 공격과 때를 맞춰, 모든 군단은 전 전선에서 돌파를 시도한다.”
조용이 울리던 사령관의 목소리는 말을 더해 갈수록 힘이 들어갔다.
그는 마지 장군을 희생양을 삼고자 하는 리즈 백작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추가 병력 모집은 잘 되고 있나 ?””
“계속해서 후속 병력이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급할 무기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쇠스랑을 들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든 들려 일단 전선으로 보내. 각 군단장에게 재량권 이용하라고 하고,
무기 제작에 더 박차를 가하게. 리즈 백작이 수고 좀 해줘야 겠어.
그나저나 큰일이군,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빨리 바티칸을 회복해야 하는데.”
이런 중요한 때에 범기독교 연합의 정신적 지주가 적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착찹했다.
“계속 로마를 공격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올 것입니다.”
“그래야지. 아무튼 이 사실을 가능하면 숨기도록 해야겠습니다.
아라곤 함대를 지원해 줄 함대가 없다는 것이 못 내 아쉽군요.”
유럽 연합측은 수에즈 운하를 봉쇄하기에 앞서 모든 함대를 발틱으로 집결하도록
이동 명령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리즈 백작님은 빈과 뮌헨을 다녀오셔야 겠습니다. 그 쪽 무기 생산 공장에 한 번 들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리즈 백작이란 사람은 이국적인 풍모를 물씬 풍겼지만, 군사 지식을 비롯한 다방면에 탁월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그는 유럽의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지만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단지 영국의 명망 있는 가문의 후계자로 많은 공부를
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단치히 항구
발틱함대 기함 전투함급 2418함과 초계함 6503, 6502함이 외항에 정박하고 그 주위로 수십 척의
물자 수송선과 해양 순시함이 떠 다녔다. 슈체친 하구를 기습 공격으로 잃어버린 발틱함대는
먼 바다까지 봉황을 띄워 바다로 접근하는 함대를 감시하고, 바닷속에서는 잠수함 전대가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다.
해안가에 바짝 붙어 단치히로 이동하는 연합 함대를 처음 발견한 것은 역시 광범위한 정찰 능력을
보유한 봉황이었다. 불과 하루 거리에서 움직이는 대규모 함대를 놓칠 리 없었다.
수백 척의 연합함대가 봉황의 감시망에 들어오자, 그 소식은 바로 단치히에 있는
4121 기병사단 사령부와 발틱함대 기함에게 전달되었다.
“최소 300척이란 말이지 ?”
안사협 대령은 발틱함대의 화력을 가늠해 보았다. 기함과 초계함 두 척을 제외하면 모두 300톤 내외의
소형 선박으로 300척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였다. 발틱함대에 4척의 잠수함이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4척의 잠수함이 상대할 수 있는 적함은 많이 잡아야 40척에 불과했다.
“전 함정에 전투명령. 4군 사령부에 항공지원 요청하도록.
각 잠수함은 함장의 재량 것, 개별 공격에 들어간다. 수송선들은 신항으로 신속히 회항하도록.
적 함이 단치히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숫적 열세에 놓여 있다면 탁월한 기동성과 타격력을 믿어볼 수 밖에 없었다.
바다에 나온 안사협은 유럽 연합의 대함대의 위용에 숨이 탁 막혔다.
얼마나 많은 배를 끌로 나왔는지, 함교에 있는 레이더 화면이 온통 하얀 점으로 가득 찼다.
“그새 레이더 성능이 향상됐나 ?”
이격거리 20킬로미터였는데도 유럽 함대는 특이하게도 2418함에서 쏘아대는 레이더 조사파를
확실히 반사하고 있었다. 두 함대가 가까워질수록 그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목선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었기에 안사협 대령이 레이더 사관을 바라보았다.
자기 모르게 레이더를 손볼 리가 없었지만 이상했다.
“아닙니다. 목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밀집 대형이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일단 부딪혀 보면 알겠지. 항공지원은 ? 그리고 봉황은 ?”
“스몰렌스크 기지에서 이륙한다는 전문이 도착해 있습니다. 최고 속도로 이동하면 한 시간 이내에
도착합니다. 늦어도 한시간 30분 안에는 상공에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봉황은 함대 후미에 있습니다.”
“예상 일몰시간은 ?”
“두시간 뒤입니다.”
부사령관이며 2418함을 맡고 있는 정운재 중령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대령은 유럽 함대와 교전에
들어갈 시간을 가늠했다. 아무래도 천붕은 교전이 시작되기 전에 도착하기는 불가능 해 보였다.
“함대 정지. 교전 중 절대 독자행동을 하지 마라. 고립되면 당한다.
항상 주변에 있는 전우를 보살펴라. 소형함은 3척씩 짝을 지어 함대 고속전을 실시한다.
우리가 다 죽더라도 상륙만은 막아야 한다.”
함대 통신망을 개방한 안사협 대령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지금 단치히에는 한 개 군단이 한달간
사용할 물자가 하역을 완료하고 이동 대기상태에 놓여 있었다. 유럽함대중 단 한 척이라도 침투에
성공해서 함포를 쏘아대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30척이라. 그것도 전부 소형이란 말이지 세 척만 빼고. 너무 적군.”
아우스트리아 함대 사령관은 자신을 마중 나온 대한제국 함대에 대한 보고에 의아함을 느꼈다.
“총사령부에서 내려온 정보 문건에 의하면 발틱함대는 주력이 소형 함정입니다.
대형 함정 3 척만 처리하면 나머지는 별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함포 사거리에 있어서는
우리와 비등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전방에 나타난 함대가 대한제국이 가용할 수 있는 전체라고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넬슨 제독이 사령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섰다.
“그 정보 문건이 맞다면 그렇겠지. 각 함정은 대공화기 점검하고, 넓게 산개하며 공격에 들어간다.
적 함대를 중앙으로 몰아라.”
함대 사령관 기함에서 불빛 신호가 각 함에게로 전파되었다. 수많은 범선들이 무리를 지어 흩어지며
발틱해를 가득 메웠다. 사방이 온통 유럽 함대 소속 돛단배로 가득 찼다.
‘펑 꽈광’
벌써 교전거리에 다가왔는지 함포탄이 작렬했다. 확실히 대한제국 함포는 자신의 것과 차이가 났다.
선두에서 함대를 이끌던 소형 갤리온선 하나가 함포를 뒤집어 쓰고 불타 올랐다.
마스트가 꺾여 바다로 떨어지는 것이 단안경에 잡혔지만 선도함은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해 갔다.
“아이런 애로우 준비”
영국에서 설계하고 신성로마제국과 이태리에서 생산된 신형 함포, 아이런 애로우가 포탄을 장전하고
발사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종이로 싼 작약을 사용하여 장전 속도와 비거리를 향상시킨
아이런 애로우는 족히 4마일은 날아갔다.
“발포”
‘꽈과과광’
기함에서 아이런 애로우가 발포되는 것을 시작으로 연합 해군에서도 함포가 발사되었다.
순식간에 수백발의 함포탄이 발틱 함대 진영에 무수히 물기둥을 만들며 떨어져 내렸다.
“소형함대 발진.”
안사협 대령은 적 함포에서 발사된 함포가 함대 진영에 정확히 떨어지는 것에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함포 사거리가 초계함 75미리 함포와 거의 동급에 이었다. 소형함이 장착한 50미리 함포는 기껏해야
3킬로미터를 날아갈 뿐이었다.
“잠수함은 어디 있는 건가 ? 잠수함에 공격명령.”
이상하게도 바닷속에 있을 4척의 잠수함은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고 몸을 사렸다.
함포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는데 아직까지 어뢰 공격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
요동치는 바닷속으로 공격명령이 전달될 지 의문이었지만, 소리장은 연신 공격을 알리는 고주파를
물속으로 쏘아댔다.
“6703함 피격”
신항에서 세 번째로 건조된 소형함이 최초로 적 함포에 피격되며 피해가 발생했다.
가장 선수에 있던 6703함은 3발의 명중탄을 맞고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6703함 피해 보고. 2명 사상 5명 부상. 기동력 상실. 하지만 침몰할 때까지 싸우겠다.
50미리 기관포는 아직 멀쩡하다.”
“6703함을 보호하라”
안사협 대령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10명 승무원중 7명이 전투력을 상실했지만 나머지 3명이
기관포로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뜻을 알려왔다. 6703함의 통신은 함대 공용 통신망으로 들어와
전 함대에 그대로 전해졌다. 함대 사령관의 명령이 앞으로 달려가던 소형함 전대 하나가
6703함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모든 화력을 집중해서 적의 중앙을 공격한다.”
“사령관님. 적 함대가 우릴 포위하려 합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물러날 수 없다. 좀더 버티다 천천히 후퇴한다.”
“6614함 피격”
앞으로 내보낸 소형함 전대의 피해가 계속해서 들어왔다. 함포에 불타 오르는 전함은 유럽측이
월등히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형함 전대의 피해도 계속 늘어났다.
‘꽈과광 꽈과과광’
양쪽함대가 급속히 가까워지며 2418함의 127미리 함포가 연신 명중탄을 만들었다.
기함이 맹공을 펼쳤고, 좌우로 나란히 항진하는 초계함에서도 75미리 주포 3문과 부포가 불을 뿜었다.
불꽃이 일며 피탄 된 적함에서 불기둥이 솟았지만 침몰하는 함은 극히 드물었다. 함대 최전방에서
연진 50미리를 발포하던 소형함들이 계속되는 피탄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씩 침몰하기 시작했다.
“6708함이 대형을 이탈에 안으로 진입합니다.”
“뭐야 ?”
안사협 대령은 쌍안경을 들고 범선 진영 안으로 급속도로 들어가는 6708함을 찾아 나섰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교묘히 포탄을 피해가던 6708함이 범선 진영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6708함 호출해서 당장 빠져 나오라고 해”
“저쪽에서 호출에 응하지 않습니다.”
“야 윤재용이 당장 나와. 너 이 새끼. 빨리 나와 ?”
호출기를 뺏어 들고 안대령이 소리쳤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사령관님. 윤재용 대위입니다. 적함은 장갑을 둘렀습니다. 고폭탄으로는 침몰시키기 어렵습니다.
공성탄을 사용하십시오. 총병이다. 고속전진. 으악”
“재용아. 재용아”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령관이 애타게 불렀지만 6708함에서는 더 이상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2418함 함교는 모두들 말이 없었다.
“정신차려. 포술장. 나 함장이다 당장 공성탄으로 교체하라. 함 미속 후진”
정운재 중령이 버럭 소리를 치며 함을 제어해 나갔다. 잠깐 동안이지만 넋을 놓았던 요원들이
다시금 전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때 유럽 함대 후미에서 수십 개의 불기둥이 오르며,
요란한 폭음이 들려왔다. 함대 후미로 빠져나간 잠수함 전대가 전방 전투에 신경이 쏠린 유럽함대를
어뢰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적의 기동을 최대한 저지한다. 한방에 한 놈씩. 무장관은 조준 잘 하도록”
잠수함 387함 함장은 보유하고 있는 15기의 피라미 전부를 쏟아 부었다. 피라미 한기로는 1500톤급
범선을 침몰 시키기 어려울지 몰랐지만, 최소한 속도를 현저히 줄일 수 있었다.
동료함들도 대구어뢰와 피라미를 연속 발사하며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함장님. 잠수해야 합니다.”
“대기. 아직 5기가 남았다.”
387함 부장은 위치가 노출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앞서가던 전열함 5척이 급히 방향을 바꾸며
포구를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함장님 ?”
“어뢰 장전 완료”
“발사”
‘핑 핑 핑’
800미터 이격거리에 있던 오색찬란한 전열함을 향해 피라미들이 함을 빠져나갔다.
“잠수. 잠수각 최대. 최대 심도로”
‘펑펑펑’
387함이 잠수를 시작함과 동시에 주변에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폭음에 잠수함 선체가 심하게
흔들리며 파편들이 선체를 두들겼다. 연속해서 떨어진 포탄 하나가 387함 갑판을 때리며 폭발했다.
언제 유럽이 작렬포탄을 개발했는지 몰랐지만, 387함 갑판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심하게 일그러졌다.
뒤틀려진 강판사이로 해수가 무서운 속도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11시 방향. 사선으로 적함을 겨냥해라”
6503함 포술장은 고폭탄에서 공성탄으로 탄종을 바꾸고 나서 첫 제물을 찾았다.
공성탄의 위력을 알고 있는 포술장은 측면을 공격하는 것 보다 선수나 선미를 공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측면 공격은 자칫 포탄이 목표를 뚫고 지나가버릴 수도 있었다.
“발포”
직접 3문의 75미리 함포를 제어하고 있는 포술장의 목에서는 점점 쉰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3발의 공성탄을 맞은 목표가 폭발과 함께 그대로 가라앉았다.
함을 뚫고 지나가던 포탄이 중앙에서 연속으로 터지면 위아래로 압력을 가했고,
연속압력을 견디지 못한 함 용골이 부러지며 함이 침몰하고 있었다.
“1130 거리 1500 발포”
‘꽈광’
포술장은 이질적인 폭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덮쳐오자 본능적으로 허리를 굽혔다.
바람에 생전 처음 맡아보는 화약냄새와 피비린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포술장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3번 주포가 산산조각나고 3번과 2번 주포를 운용하던 요원들이 피투성이로 나뒹굴었다.
달려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포술장은 함교로 연결된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함교 나와라. 갑판 피탄, 응급조치반과 의료반 지원, 예비 주포 운용요원 갑판으로”
“1008 거리 1400 발포”
목으로 넘어오는 피멍울을 꿀꺽 삼킨 포술장이 악 받친 소리를 질러댔다.
단기3960년 늦겨울 우크라이나 리보프
우크라이나 전역에 흩어져 있던 4군단 전 병력 4만 명이 4군 사령관의 이동 명령에 따라 주둔지를
벗어나 크라코프로 이동을 시작했다. 관할 구역을 3군단에게 넘겨준 4군단 사령관 황보민 중장은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휘차량에 올라 탔다. 카르파티아 대간 처마자락에서 겨울을 보낸 4군단은
크게 날개 짓을 하며 하늘 높이 날아 오를 준비를 했다.
“유럽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전 전선에 걸쳐 시작되었다. 40만 유럽 연합군 공격에 맞서
대한제국군 4군 휘하 장병들은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지금 이시 간에도 혈투를 벌이고 있다. 수많은 우리의 형제들이 피를 흘리며 적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막강 4군단에 임무가 주어졌다. 우리는 크라코프를 탈환하고 지중해 아드리아 까지
앞만 보고 진격 또 진격해 나간다. 우리를 막는 적은 오로지 죽음 뿐이다. 가자. 4군단은 진격하라.”
군단장의 진격 명령에 4군단이 환호성을 지르며 장장 1200킬로미터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기병사단을 선두로 4411 기계화 사단과 포병여단이 그 뒤를 따라갔다. 4군단 특수 여단의 호위를
받으며 보급품을 실은 수송부대가 출발하자, 보병사단이 최후미에 크라코프로 행군을 시작했다.
4군단의 진격로에는 유럽군 최대 3개 군단 12만 명의 진격로와 보급로가 놓여져 있어서 반격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막강 4군단의 행군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경계선을 넘어갑니다.”
천마로 무장한 장갑 정찰 중대와 기병대대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경계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실질적인 교전 지역에 들어선 장갑 중대장은 상체를 밖으로 내밀고 주변을 두리 번 거렸다.
사방에는 잔설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고, 어디에도 적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광범위한 정찰을 실시한다. 차간 간격을 더욱 넓혀라, 좌우 500미터 앞차와의 간격 100미터.
진격속도 10”
대대장의 말에 천마-4 16여대가 넓게 산개하며 평원을 느릿하게 훑고 지나갔다.
차장들은 기관총을 붙잡고 사방을 경계했고, 승무원들은 자체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개인화기를 손질했다. 16여대의 천마가 내뿜는 굉음소리가 평원 가득 울려 퍼졌다.
“110 지점. 일단의 행렬 발견, 비무장으로 보이지만 숫자가 수백 명에 달한다”
“1소대는 즉각 110 지점을 확보하고 보고하라.”
경계선을 넘어 대략 30킬로미터를 들어왔을 무렵, 카르파티아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기대했던 적이 아니란 보고에 중대장은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기병대대장은 그들이 크라코프를
탈출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1 소대보다 먼저 민간인 행렬에 다가갔다.
조봉민 대령의 특별 지시를 받은 바 있는 대대장은 민간인들을 찬찬히 뜯어 보았다.
애석하게도 그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린 대한제국 군대다. 너희들은 누구냐 ?”
“저희들은 크라코프에서 탈출한 소치니 교도들입니다.”
“그래 ? 그럼 시장님은 어디 계시는지 아느냐 ?”
대대장은 짐작대로 크라코프 시민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엘브롱그의 소식을 먼저 물었다.
무리를 인솔하고 있는 듯한 자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구교도 놈들이 들어오고, 제일 먼저 한 것이 소치니 신부님과 시장님을 화형시킨 일입니다.
교회는 완전히 불타버렸고, 시내 곳곳에서 방화가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죠.
크라코프는 완전 폐허나 다름없습니다. 대한제국 기병연대가 떠날 때 떠났어야 했는데. 흑흑흑”
대대장은 크라코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카르파티아 산자락으로 숨어들거라는 피난민들은 대대원들이 나눠주는 모포와 먹을 것을
가슴에 앉고 멈췄던 발 걸음을 다시 떼었다.
단치히 상공
밝게 빛나던 동그란 해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쪽 하늘을 발갛게 색칠하며 어그적 어그적 넘어갔다.
만 오천미터 상공을 날고 있는 전투비행사단 2개 연대가 도망가는 태양을 쫓아가며 빠르게
서쪽으로 날아갔다.
“적이 해안가로 가는 것을 막아라. 절대 상륙을 허용하지 마라”
“6503함 피탄 주포 상실. 부포로 계속 공격합니다.”
“6711함 침몰”
“천붕이 도착했다. 전 함정은 해역을 최대속도로 이탈하라.”
“지지직, 3대대 상황 보고하라”
이병훈 준장이 타고 있는 천붕은 향후 봉황을 대체할 기체로 개발된 광역 전선 통제기로 불사조로
불렸다. 봉황보다 한단계 발전된 장비를 장착한 불사조는 천붕 기체에 각종 통신 장비와 관측 장비
그리고 레이더를 장착했다. 80개의 주파수를 한꺼번에 통제할 수 있는 통신기기에서는 발틱함대의
처절한 몸부림과 단치히를 방어하는 4121사단 예하 부대간의 통신이 쉴새 없이 들어 왔다.
“장군님. 30초 후 목표상공에 도착합니다.”
바다 위를 탐색하고 있는 레이더에 잡힌 발틱함대는 겨우 10척이 되지 않았다.
단지 바다에 떠 있는 것이 그랬다. 그 중 몇 척이 기동성을 보유했는지 알 수 없었다. 불사조가
해전이 한창인 상공을 지나치고 그 뒤를 따라온 50대의 천붕이 속도를 줄이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1연대부터 폭격에 들어간다. 아군 함정이 근접거리에 있다. 먼저 정밀 폭격에 들어간다.
발틱함대와 적을 분리시키고 무차별 폭격에 들어간다.”
500킬로그램 고폭탄 50개 와 대형 모자탄 두개를 실은 신형 천붕이 구름을 뚫고 그 모습을 나타냈다.
길이만 54미터가 넘는 천붕은 항속거리 12,000킬로미터를 자랑하는 대한제국이 보유한 최신형
폭격기다. 제비호처럼 고기동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설계자들은 천붕이 격추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투하”
이무민 소령은 천붕을 완만하게 하강 시키며 거의 수평 비행에 들어갔다. 해수면과 가까워질수록
이무민은 조종간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후방 좌석에서 폭탄 투하 임무를 맡고 있는
윤형식 중위가 폭탄창을 열고 고폭탄 하나를 떨어뜨렸다.
“잘한다. 아주 농약 뿌리듯 골고루 잘 뿌린다. 최소한 반타작은 해야지.”
윤중위는 유럽 함대 머리 위를 지나면서 총 8개의 폭탄을 떨어뜨려 3개가 정확히 명중했다.
그렇게 연습을 했음에도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이무민 소령의 핀잔을 들으며 윤중위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쳤다. 기체가 상승하며 왼쪽으로 크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플라잉 애로우 발사”
“갑판 총병은 대공 사격하라”
넬슨은 윤중위가 소속된 비행 대대가 다 지나고 나서야, 대공사격을 명령했다. 해전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던 연합 함대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공격에 수십 척의 배가 반파되거나 완파 되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던 대공포 담당 수병들이 영국군 비장의 무기를 하늘 높이 날려보냈다.
각 전열함 앞뒤 양 옆에 고각으로 고정된 포대에서 쏘아 올려진 포탄이 길게 꼬리를 달고 하늘높이
올라가 폭발했다. 거의 저고도 수평비행을 하고 있던 천붕 사이사이로 수십 발의 포탄이 올라왔다.
파편들이 1연대 후속으로 폭격 코스에 진입했던 2연대 3대대를 스치듯 지나갔다.
‘투다닥 타타타타탁’
“뭐야 ?”
도리깨에 터져나가는 콩깍지 소리가 기체 안으로 전달되었다. 5908이란 숫자가 선명한 천붕 한기가
왼쪽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날아갔다. 양익에 두개씩 장착된 4기의 엔진 중 하나에서 연기가
나며 힘차게 돌아가던 프로펠러가 멈춰 섰다. 5908기가 급격히 추력을 상실하며 추락하고 있었다.
“출력 최대로, 상승, 상승”
이병훈 준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적잖이 놀랐다.
5908이 가까스로 수평을 유지하려 몸부림쳤다.
“5908. 모든 폭탄을 버려라. 무게를 줄이란 말야. 5908 들리나 ? 5908 ?”
기체 안정에만 신경을 쓰던 5908 조종사가 이병훈 준장의 말대로 폭탄창을 열고 모든 폭탄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일시에 30톤의 폭탄이 바다위로 떨어져 내렸다.
한결 기체가 가벼워지자, 5908이 점점 상승하기 시작했다.
‘꽈과광’
동시 다발적인 폭발음이 또다시 들리고 폭풍이 상승하는 기체 꼬리를 뒤흔들었다.
가까스로 상승하려던 5908함이 폭발에 휘말려 양력을 상실하고 그대로 곤두박질치며 추락했다.
“모든 편대는 폭격을 중지하고 안전고도 일만 미터까지 상승한다.
정밀 폭격을 포기하고 무차별 폭격에 들어갔다.”
그 사이 또 다른 천붕 하나가 추락하고 있었다. 좌익을 관통한 포탄에 좌익이 너덜너덜해졌다.
좌익이 동체에서 떨어져나가면서 날개 꺾인 천붕 한기가 그대로 바다를 들이받았다.
2연대 2대대 후미를 따르던 천붕이 머리를 하늘로 향하며 급격히 고도를 높였고,
저고도로 선회하던 1연대도 상승을 시도했다. 대열이 흐트러져 천붕들이 하늘을 난잡하게 날아다녔다.
“모든 천붕은 신속히 4각 편대를 구성하고 정지 비행을 준비한다.
피해를 입은 기체는 공역을 이탈해 030 지점에서 대기하라.”
불사조 승무원들은 난잡한 하늘을 정리해 나갔다. 동체와 날개부분에 피해를 본 7기의 천붕이
고도를 더 이상 올리지 못하고 공역을 이탈하고 있었다. 10여분 동안 선회와 자리바꿈을 계속하던
천붕들이 고고도에서 대형 4각 편대를 구성하며 다시금 해역에 나타났다. 고고도에서 활강하듯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은 밑에서 보면 마치 하늘에 정지해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준비된 편대부터 진입한다. 모자탄를 먼저 보낸다. 모두 쏟아 부어라.”
가로세로 3대씩, 총 9대로 구성된 4각 폭격 편대가 폭탄창을 열고 5톤짜리 대형 폭탄 2개를
떨어뜨렸다. 총 18개의 모자탄이 해상 500미터에서 외피를 깨고 수천개의 아이 머리통 만한
자폭탄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가로세로 3킬로미터 지역으로 골고루 뿌려진 자탄이 충격 신괸이
작동하며 터져나갔다. 이어 500킬로그램 폭탄이 줄줄이 떨어졌다.
눈먼 폭탄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유럽 함대를 무차별 유린했다. 발틱함대를 포위하기위해 넓게 산개
되어 있었음에도 총 3번에 걸쳐 시행된 폭격에 대부분의 함이 불타 올랐다. 모자탄은 배에 불을
지르고 갑판에 있는 수병들을 살상했지만, 고폭탄은 낙하하는 무게만으로도 배 밑바닥까지 뚫고
지나갈 만한 위력을 발휘했다. 어떤 폭탄은 장갑에 튕겨져 올라와 공중에서 폭발하기도 했지만,
일단 맞은 배는 침몰을 면하지 못했다.
“3연대가 10분에 공역에 들어옵니다. 1,2연대 폭격을 마치고 대기중입니다.”
구형 천붕을 보유한 3연대는 늦게 출격한데다 속도도 느려서 이제 도착하고 있었다.
항속거리도 짧은 구형 천붕은 공역에 오래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3연대는 해안가로 이동하고 있는 적함을 공격하도록. 그리고 030에 대기하고 있는 기체를
단치히 외곽으로 이동시켜 4121사단을 지원하도록. 1,2 연대는 고고도에서 대기 후 3연대가 폭격을
마치면 기총 훈련을 실시한다.”
이병훈은 3연대가 도착하면 유럽함대는 궤멸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던 이병훈은 물을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수를 마시려다, 녹차로 생각을 바꾼 이병훈이 뜨거운 물을 잔에 따르고 잠시 기다리며,
레이더 상황판을 둘러보았다.
“이건 뭔가 ?”
이병훈은 남쪽에서 반짝이고 있는 점을 가리켰다.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슈체친 상공에 뭔가 떠 있는 것 같았다.
“봉황인가 ?”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봉황을 투입한다는 전문을 받지 못 했습니다.”
“그래도 모르니, 4군 사령부에 문의해 보고, 만일을 대비해서 1연대를 슈체친으로 이동시켜”
이병훈은 바르샤바 보급창을 공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것이 진짜 그놈들이라면, 하늘이 누구 것인가를 확실히 보여줘야지.”
슈체첸 남쪽 10킬로미터 600미터 상공
베를린 외곽에서 떠 오른 기구에는 유럽 연합군 공군 소속 병력이 한 사람씩 타고 있었다.
지름 10미터 기낭에 가스와 뜨거운 공기를 가득 채운 기구는 비록 일회성이었지만,
최초 출격에서 상상외의 전과를 올렸다. 이번이 두번째 출격인 기구 부대는 슈체친을 폭격하기위해
이동 중 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갈릴레이가 만든 대형 비행선이 한 척 떠 있었는데,
운 없게도 이 비행선이 불사조의 감시망에 걸려든 것이다. 대형 비행선 아래에 매달려 있는 바구니에는
윈스턴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 십여명이 타고 주위의 기구들을 감시했다.
“바람이 아주 좋군. 하나님에게 영광을. 이대로 조금만 가면 슈체친 상공이다.”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땅거미가 내려왔다. 지나간 하루가 아쉬운 듯 동쪽하늘에 여운이 남아 있었다.
단안경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던 이그나시오 가리도는 어둠 속에 가려지는 오드리 강 줄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처음에 바구니가 땅에서 멀어지자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지금은 하늘을 날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하늘 나는 것도 별거 아니군. 난 이제 어디든 갈 수 있다.”
유럽 연합측에서는 목숨을 걸고 기구에 탈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고, 밀라노 교회 종교 감옥에서
사형 날짜만을 기다리던 그는 흔쾌히 기구에 타겠다고 자원을 했다.
잘 하면 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성스러운 역사에 참여했던가 ?
게다가 난 교황 성황의 축복까지 받은 몸이다.”
중얼거리던 가리도가 무릎을 끓고 하늘에서 이 거룩한 역사를 지켜보고 계실 그 분을 위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기구는 자신이 가만 있어도 알아서 움직였고, 자신은 부대장이 나눠 준
양초 같은 것에 불을 붙여 떨어뜨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고 나서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이번 임무를 이행하지 않고 도망치면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을 거라는 협박을 받긴 했지만,
이번 일만 끝나면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신부님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웅으로 칭송 받으며 성하를 뵈옵는 영광을 가질 수 도 있었다.
“성령을 믿사옵니다. 저를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드드드드드드드’
“헉”
기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기구에 바람이 빠지며 급격히 아래로 추락했다.
기구 상층부에 몰려있는 수소가스에 불이 붙었다.
“으악. 살려줘. 살려줘”
바닥에 엎드린 가리도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 가늠할 수 조차 없었다.
가속도가 붙어 추락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안돼. 난 죽기 싫어. 안돼. 그래. 무게를 줄어야 돼”
정신을 수습한 가리도는 자기 눈에 보이는, 손을 뻗어 닿는 것을 밖으로 내 던지려 했다.
의지와 몸이 따로 놀고 있는 동안 기구는 급격히 땅과 가까워졌다.
“모조리 추락시켜”
1연대장은 선도기의 보고를 받고는 기도 안찼다. 셀 수 없을 만큼의 기구와 비행선이 발견되었다는
선도기의 보고를 받고 급히 달려온 25기의 천붕이 병아리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달려들었다.
피스톨 몇 자루가 방어력의 전부인 기구들은 가을비에 젓은 낙엽이 떨어지듯 우수수 곤두박질 쳤다.
20미리 총탄이 기구 상층부를 뚫고 지나가면 어김없이 불길이 솟았다. 그리곤 추락이었다.
기구 상층부를 채우고 있는 수소가스가 총탄이 지나가는 열에 불이 붙으면서 기낭으로 사용된
가죽과 종이를 불태웠다. 불길을 매달고 땅으로 추락한 기구들은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도망 가야 한다. 아니 착륙시켜. 아니 도망가야지. 아아악”
기구 부대를 이끌고 있는 조셉 미셀은 갑자기 나타난 천붕으로 인해 정신적 공황에 빠져들었다.
속수무책.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함치는 것 밖에 없었다.
바르샤바 남쪽 80킬로미터 지점.
5군단 후미에서 화력 지원을 해주던 5군단 예하 포병여단이 전 포문을 열고 전선으로 포격을 시작했다.
과거의 전철을 거울삼아 고중장은 포병을 한곳으로 모아 대기시켰다. 5군단이 맡고 있는 방어선으로
유럽 연합군 4군단과 5군단 병력 8만 명이 몰려들자, 곧바로 화력 지원이 이어졌다.
“보이기 전에 격멸 한다.”
고수석 중장은 적의 이동이 탐지되자 곧바로 기계화 사단을 보병 참호선 보다 앞으로 전진시켰다.
그리고 천포가 가지는 최대 유효 사거리인 5킬로미터 안에 적이 들어오자 지체 없이 포격을 명령했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접근하던 유럽군 선두 그룹 위로 모자탄이 쏟아져 내렸다.
유럽군 4,5,6군단을 지휘하는 중군 사령부는 즉각적인 돌격 명령을 내렸고, 기보병 혼성 부대가
속보 돌격에 들어갔다. 그에 맞추어 유럽 연합군 포병에서도 포격을 시작했다.
5군단예하 2개 보병사단 전체가 투입된 참호선에 포도탄이 떨어져 내렸다.
유개호를 만들지 못한 보병들이 참호에 웅크리고 적이 소총 사거리에 들어오길 기다렸다.
“우리 포병은 뭐하는 거야 ? 포병은 포병이 잡아야 할 것 아냐 ? 그 새끼들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대대 참호에 몸을 숨긴 무병술 중령은 참호 주위로 떨어지는 포탄소리를 들으며 포병여단을 싸잡아
욕했다. 하지만 무병술 대대를 지원하는 포병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유럽연합군은 각 연대별로
포병대를 대동하고 공격에 나섰지만, 5군단은 포병세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놓았기에 20킬로미터의
방어선에서 포병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반절이 체 되지 않았다.
대신 포병지원을 받지 못하는 곳에는 천마 2개 대대가 부족한 화력 지원을 담당했다.
‘드드드드드’
“거리 2000미터”
대대 전방에 덩그란이 멈춰 있던 천마 4대에서 기관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떼거지로 몰려드는
연합군을 향해 총신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사격이 계속되었다.
천마에서 하차한 보병들이 천마 주위에 포진하고 사격자세에 들어갔다.
‘펑펑펑’
유럽군 포병대가 먼저 천마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는지, 포탄이 천마 주위로 쏟아져 내렸다.
“전원 승차. 고속 기동전에 돌입한다.”
전차장은 보병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즉시 자리를 이탈해 앞으로 100미터를 전진하더니
이내 방향을 구십도 바꿔 좌우로 움직였다.
“적 기병대 출현. 천마는 참호선까지 후퇴하고 화기소대는 지원사격 준비하라”
봉황에게서 전달 받은 정보가 대대 본부를 통해 예하 부대로 신속히 전달되었다. 나타나기가 무섭게
천기의 기병대가 천마를 뒤쫓아 왔다. 기병대는 유럽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소총을 들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천마 전차장을 겨냥했다. 천마 전차장 심상돈 하사는 기병대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기관총
사격을 포기하고 차내로 들어와 자신의 소총을 잡았다. 가로세로 5센티미터 총안구에 소총을 집어넣고
시야에 기병대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탕’
천마와 나란히 달리던 기병 하나가 총안구를 향해 총을 쏘았다.
깜짝 놀란 심하사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다른 승차원들도 사격을 시작하고. 천마안에 화약연기로 가득 찼다.
“박상병 최고 속도로, 대대 참호쪽으로 후퇴. 차내 환기”
‘틱틱틱’
“으악, 나 맞았다. 으악. 사람 살려”
총알이 차체에 튕기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작은 총안구로 들어온 총알에 맞은 모양이었다.
비명소리는 이제 막 막내 티를 벗어난 이 일병에게서 터져 나왔다.
“저 새끼 조용히 시켜. 어디야 ?”
“어깨에 총알이 박혔습니다.”
“그 걸로 안 죽는다. 조용히 해.”
계속 소리치는 이일병이 전 승차원들의 혼을 빼앗아 갔다.
앉은 걸음으로 이 일병에게 다가간 심하사가 소총 개머리판으로 철모를 세게 내리쳤다.
어깨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보다 더 심한 뇌를 울리는 소리에 이 일병의 비명소리가 뚝 그쳤다.
“거리 1500.”
관측병이 적 기병대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외쳤다.
화기 소대장은 대대 참호 주변에 배치되어 본부 중대장의 사격 명령을 기다렸다.
적 기병대는 운이 없게도 대대 참호 정면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대기”
“거리 1000”
“사격”
최대 유효사거리 2000미터를 자랑하는 12.5미리 기관총 12정이 일시에 불을 뿜었다.
참호선으로 후퇴하는 천마를 포위할 기세로 달려 나오던 기병대가 기관총 사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드드드드’
몇 십초 안에 200발을 쏟아내고 다시 연결된 탄창이 비어갔다.
“총열 교환, 기병대가 흩어진다. 대대 사격”
기다리던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참호에 웅크리고 있던 대대원들이 일제히 소총을 참호 밖으로
내밀고 사격을 시작했다. 밀집대형으로 돌격하던 기병대는 기관총의 집중포화에 걸려 반수이상을
잃어 버리고 넓게 흩어졌다.
‘탕탕탕’
‘꽝’
4대의 천마가 속도를 줄이며 작은 원을 그리며 회전할 무렵, 총안구 사각을 따라온 기병 서너 기가
들고 있는 보따리에 불을 붙이고 천마를 향해 던졌다. 심지가 타 들어가며 천마 바닥에서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회전력에 폭발력이 더해지며 천마가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려지더니
궤도가 벗겨지며 그대로 멈춰 섰다.
“적 보병이 접근합니다.”
천마 4대가 동시에 파괴되는 장면에 넋을 잃고 바라보던 대대장은 보병들이 접근한다는 소리에
쌍안경을 집어 들었다.
“저건 또 뭐야 ?”
이미 천미터 이내로 접근한 보병들 사이 사이에 거대한 검은 상자들이 나타났다.
나무 바퀴가 달려 있는 검은 상자는 느리지만 꾸준히 앞으로 다가왔다.
그 뒤에는 수천여명의 보병들이 몸을 숨기고 뒤따라왔다.
“연대 본부 호출해서 지원 요청해. 아무래도 이쪽이 적 주공인 것 같아”
바르샤바 원정군 사령부
해질녘에 시작된 유럽 연합군의 공격은 자정이 될 무렵 자자 들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에 간혹 온기가 느껴졌지만 점점 칼 바람으로 바뀌어 갔다.
“지독한 놈들. 끝도 없이 밀려오더니.”
김상태 대장은 참모 작전 회의실에 들어오며 치를 떨었다.
중기관총 앞으로 무작정 달려드는 연합군은 끝이 없었다.
광범위한 전선에서 수만 명이 벌판에 쓰러져 있었다.
총알받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들을 앞세운 연합군은 5군단이 형성한 참호선 전방 50미터까지
진출하기까지 했다.
“그땐 아찔했지 ? 그 무식하게 생긴 놈들을 밀고 왔을 땐 말야 ?
내일은 또 뭐가 나올지 궁금하단 말야. 유럽 놈들은 아주 재미있어.
신기하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만들어내는데 재주가 탁월해.”
김상태는 유럽군이 앞세운 철판을 두른 마차를 떠올렸다.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재차 시도된 유럽 연합군은 생소한 물체를 끌고 나타났다.
소총탄으로 뚫을 수 없는 두꺼운 철판을 댄 수레를 끌고 진격해온 유럽군은
거의 참호선을 넘을 뻔 했다. 수레는 아무리 쏘아대도 끄덕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류탄이 터지면서 나무로 된 바퀴가 깨졌고,
멈춰선 수레는 급히 이동된 중기관총의 사격을 받고 구멍이 숭숭 뚫렸다.
“2138사단이 스몰렌스크에 도착했다는 소식이다. 3군에서 지원병력을 보낸다는 소식도 있다.
더 이상 기다리다가는 곰은 재주가 부리고 박수는 3군이 차지하겠다. 그래서 이번 천붕 폭격이 끝나면
방어전에서 공격전으로 나서기로 했다. 최단시간 안에 노출된 적 진지를 점령한다.
천마여단을 전면에 배치시켜 적 사령부로 진격해간다. 5군단을 먼저 움직여 프라하로 보내고,
6군단은 뤼베크를 거쳐 베를린으로 진격한다. 그리고 슈체친에 있는 4111사단에게 공격명령을
하달하도록. 이곳 공격에 맞춰 적 포위망을 궤멸시키고, 유럽연합군의 후퇴로를 장악하도록.
올해 안에 원정군 선두가 지중해에 도달한다는 목표로 움직이도록. 천붕의 예상 도착 시간은 ?”
“네. 현재 민스크 상공을 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30분 이내에 바르샤바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 예하 부대 상황을 다시 한번 점검하도록”
“네 사령관님”
우치 남쪽 20킬로미터지점 유럽 연합군 중군 사령부
그날 밤 하늘은 유난히 밝았다. 수만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유럽 연합군은 대한제국군의 방어선을
넘지 못하고 진지로 후퇴했다. 부상병들의 신음소리가 차가운 서리에 엉겨 붙었다.
참패를 당한 유럽 연합군 중군 사령부는 침통하기 그지 없었다.
“다시 한번 공격해야 합니다. 지금쯤 연합함대가 단치히를 함락했을 것 입니다.”
유럽 연합 함대의 궤멸을 알리 없는 중군 사령부 참모들은 사령관에게 재차 공격을 종용했다.
한번 빼어 든 칼이었다. 지든 이기든 끝장을 봐야 한다는 것이 참모들의 중론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밀리면 어떻게 될 지 생각해 봤나 ? 이번 전투에서 사상자만 3만이야.
좌군과 우군이 전선 돌파에 성공했다고 해도 포위 당할 수 있어 ?
내일 아침이면 각군에서 보낸 전령이 도착할 거네. 좌우군의 상황을 먼저 파악해야 돼.
좌우군이 전선 돌파에 성공했다면 우리도 다시 한번 공격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기서 지원군을 기다려야 할 거야 ?”
“오히려 대한제국군이 좌군과 우군에 포위당할 수도 있습니다.
행여 우리만 뒤쳐지지 않을 까 염려됩니다. 총사령부에서 마지 장군을 해임시킨 것은
무조건 공격하라는 압력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중에 이번 일로 우리의 입장이 난처해 질 수 있습니다.”
중군 사령관 부관인 카보트는 다음 공격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다만 전쟁에서 승리했을 경우 자신들이 차지할 것이 적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카보트 부관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 ?”
중군 사령부가 재공격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있지 못 하고 있을 무렵, 유럽 연합 함대를 괴멸 시키고
재무장한 스몰렌스크 전투 비행 사단이 바르샤바를 넘어 연합군 진영에 폭탄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전 전선에 걸친 공습이 끝나고, 원정군이 보유한 모든 포병 세력의 포격을 시작으로 15만여명의 병력이
일제히 방어선을 넘어 야간 공격에 들어갔다. 대한제국군 공격의 선봉에 선 천마부대는 적 보병이나
기병부대를 상대하지 않고 곧바로 군단 사령부로 몰려갔다.
“사령관님. 적의 대대적인 공격입니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옵니다.
우치에 있는 5군단 사령부가 괴멸되었습니다. 이쪽으로 철마들이 몰려옵니다.”
‘둥 둥 둥’
피투성이 전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서 포성이 은은히 들려왔다.
“무슨 소리야 ? 다시 한번 말해봐. 언제 공격을 당했다는 거야 ?
우치에 자그마치 3만 명이 있었다. 그들이 전멸했다는 거야 ?”
전령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사령관은 전령에게 바짝 다가갔다.
전령의 제복은 너덜너덜 헤어졌고, 얼굴과 팔다리에서 검붉은 핏자국에 까만 딱지가 내려 앉았다.
성한 곳이 없는 듯 했다.
“모두들 잠들어 있었사온데 갑자기 하늘에서 불벼락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하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악마의 불기둥이 땅속에서 올라와 군단장님과 병사들을 집어 삼키고
모든 것을 불태웠습니다. 하늘에서 지옥불이 떨어져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마가 들이닥쳤습니다.
저는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일념 하나에 의지하며 말을 달려 이곳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저는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포대는 뭐하고, 플라잉 애로우들은 ?”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당했습니다.”
5군단이 당했다면 4군단이나 6군단도 공격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많았다.
하지만 그 쪽에서는 전령이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미처 전령을 보내기도 전에 당했거나,
공격을 막아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중군 지휘 막사를 나온 사령관은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은은한 포성과 함께 북쪽하늘이 저녁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군에 지원요청하고, 전 군단에 비상을 걸어. 플라잉 애로우 부대를 최전방으로 이동시키고.”
“플라잉 애로우 부대는 대공 부대입니다.”
“알고 있어. 지금 드레곤이 문제가 아니라 철마가 문제야. 여기서 우치까지 겨우 10 마일이야.
시간이 없어”
전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쯤 대한제국군이 근처까지 들어왔을 가능성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중군 사령부 외곽 경비를 담당하던 기병대에서 보낸 전령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 왔다. 적은 사령부가 어디에 있는 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했다.
“사령관님. 일단 피하셔야 합니다. 플라잉 에로우 부대와 기병대가 막고 있는 사이
브로츠와프에 도착한 지원병을 이끌고 다음을 노려야 합니다.”
카보트를 빤히 쳐다보던 사령관은 어이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공격해야 된다고 주장하던 사
람이 이제는 도망쳐야 한다고 나서고 있었다.
“그 어중이 떠중이들로 ? 낫 하나 달랑 들고 식량만 축 내는 놈들을 가지고 ?”
‘꽈광 꽝’
플라잉 에로우 부대가 철마를 공격하고 있는 지, 가까운 곳에서 폭발음이 연속으로 들려왔다.
그와 함께 이제는 익숙한 기관총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점점 소리가 가까워졌다.
카보트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불사조에서 떨어지는 조명탄이 중군 사령부 지휘막사 주변을
훤히 비추자, 참모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벌판에 혼자 남은 사령관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단기 3960 여름 파리 상공
강렬한 태양빛이 센 강물에 보석을 갈아 뿌렸다. 반짝이는 강물 사이로 물고기들이 튀어 올랐고,
파리 시내 곳곳에서는 오물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수백년 동안 프랑스의 정치.상업도시로 부침을
반복하던 파리 상공 일만 오천미터에 천붕 한기가 소리없이 지나갔다.
“이게 전쟁이야 ? 전쟁이면 폭격 임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찰임무라도 맡아야 하잖아 ?
신형 천붕을 탄다고 좋아했더니, 딱 두 번 폭격임무에 투입되고는 허구 헛날 이런 종잇장이나
뿌리고 다니다니 !”
중위에서 대위로 승진한 윤형식 대위는 또다시 농약 뿌리는 거나 다름없는 전단지 뿌리는 임무를
맡게 되자 투덜거렸다.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
“이봐 박중위 보면 뭐 아나 ? 뭐라고 쓰여있어 ?”
후방 좌석에 앉아있는 박중위가 프랑스어로 쓰여진 전단지를 읽고 있자 핀잔을 주었다.
자신은 프랑스어를 모르고 있었다 물론 알 필요도 못 느꼈다.
당연히 박중위도 그럴거라 생각했지만 박중위의 대답은 뜻 밖이었다.
“제가 프랑스어를 조금 알고 있죠. 로마 교황이 우리를 천군으로 인정했다는 군요.
천군에 적대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불경죄에 해당하니 천군을 천사처럼 경외하랍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 온다네요. 완전히 웃기는 이야긴데.
이게 먹혀 들 거라고 생각하는 정보부 애들이 불쌍합니다.
그리고 이거 집어 든 사람 중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 ”
“맞는 말이야. 그럼 다음 번에는 천사 수백 명 태우고 와야 하는데 웃기지도 않는다.
나도 낙하산 타고 떨어지면 졸지에 천사 되는 건가 ? 근데 이거 진짜야 ?”
“여기 교황의 직인이 찍혀 있지 않습니까 ? 그런데 어떻게 교황을 설득했는지 이럴 땐 정보부 애들도
일을 하긴 하는데. 이번에 있지도 않은 비선 조직이 있다고 설쳤던 걸 보면 영 못 미덥고.”
“비선 조직 !. 그거 있었지. 그냥 조용히 처리한 것 뿐이야. 유럽 연합쪽과 선이 닿은 사람들은
모조리 조사를 받았어. 협의가 인정된 사람만 천 여명에 달한다는 풍문이야. 그런데 조용히 처리했어.
의외로 쉽게 전투가 진행되다보니까 천군부에서도 아량을 베푼 거지. 아님 이중 첩자라도 있었던가 ?”
대대적인 공격이 개시되고 유럽 연합군 정규군 40만이 와해되자, 유럽은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다.
오드리 강에서 잠시 전열을 가다듬은 대한제국 4군 원정군은 하루 50킬로미터씩 쾌속 남진하여 4군단은
이미 이태리 반도 북부까지 진격해 있었다. 수에즈 운하가 재개통 되고 지중해 함대가 보급에
숨통이 트이면서, 크레타 기지에 주둔중인 전략 기동 군이 로리앙을 다시 탈환하고 프랑스를 압박했다.
“파리 상공입니다.”
“좋아. 오십만장만 뿌리고 다음 도시로 이동 하자구”
평소에는 40톤의 온갖 폭탄을 싣고 있어야 될 폭탄 창에 전단지가 가득 있었다.
폭탄 창이 열리자 백오십만장의 전단지가 눈송이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이제 지구상에서 전쟁이 사라지는 것 입니까 ?”
유럽전은 대한제국의 승리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특수 부대가 유럽 연합군 총지휘부를 사로잡았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어차피 유럽 군대는 해산될 거고, 대한제국에 맞설 힘이 있는 나라는 없으니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이놈의 인간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쟁을 즐기는 듯 하단 말야. 나도 그렇고. 박중위는
안 그러나 ? 유럽 함대에 폭탄을 쏟아 부을 때는 부풀어 오른 희열에 머리가 하얗게 되는 줄
알았다니까 ? 아무래도 난 미쳤나 봐.”
“맞아요. 기장님은 전쟁에 중독되셨어요.”
“뭐 ? 중독 ?”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이번 임무 마치면 공수 작전에 투입된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
박 중위는 윤대위가 과잉반응을 보이자 화제를 바꾸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수 작전 좋아하시네. 완전 사기 작전이지. 공수여단 애들에게 천사복 입혀서 떨어뜨린단다.
총 든 천사 봤냐 ? 갈수록 가관이야. 그냥 밀로 가면 얼마나 화끈하고 좋아.
다 때려부수고 새로 만들면 되잖아 ? 건설회사 육성차원에서 그리고 포로들 공짜 밥 주느니
일이라도 시켜야지. 그래도 유럽 놈들 단순하니까 진짜로 믿을지도 모르지.”
박중위와 윤대위의 잡담은 끝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들은 유럽 곳곳에 전단지를 뿌리며 다녔다.
고공에서 뿌려진 전단지는 바람에 날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단기 3960년 가을 북해 심해 대한제국 잠수함 단군호
브뤼셀을 떠난 작은 배를 조용히 뒤따르던 단군호 함장은 잠망경을 내려놓고 정화 사령부에서
파견 나온 장교를 바라보았다. 잠망경에 잡힌 배는 너무 작아서 파도를 위태위태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저 배가 우리가 기다리던 배인가 ?”
“맞습니다. 조금 있으면 신호가 올 겁니다.”
시계를 바라보던 장교가 다시 잠망경에 눈을 갖다 댔다. 영국으로 직선으로 움직이는 배에는
서너 명의 사람이 서성댔다. 갈새 코트를 입고 있는 사람이 유독 눈에 띄었다.
‘저 사람인가 ?’
신호를 기다리던 장교는 그를 계속 주시했다. 아직 해가 지려면 두어 시간이 필요했다.
북해에서 누군가를 대려오라는 단군 명령을 받은 단군 호는 무작정 기다린 지 3일만에
작은 배 하나가 포착되었다. 돛 하나를 달랑 달고, 노를 저어가는 돛단배는 너무 작아서
처음 발견했을 때는 그 배가 자신이 기다리던 배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반짝 반짝 반짝’
“신호가 왔습니다. 이쪽에서 신호를 보낼까요 ?”
“아니. 잠시 대기. 다시 한번 확인한다. 주변에 다른 배는 없나 ?”
“모두 조용합니다.”
갑판에 있던 사람은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다 다시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이쪽에서 대답이 없자 그는 방향을 180도 바꿔 아무도 없는 바다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맞습니다.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약속된 신호가 분명합니다.”
“우린 한명만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갑판에는 최소 4명이 있습니다.”
함장이 정화 사령부 장교를 바라보았지만 그도 결정을 내리지 못 하고 있었다.
“일단 확인을 해 보죠. 그때 가서 아니다 싶으면 어쩔 수 없이 제거해야겠습니다.”
단군호에서 응답이 가자, 돛이 내려지고 범선이 멈춰 섰다.
해류와 파도에 몸을 맞긴 범선이 조용히 출렁거렸다.
‘탕탕탕탕탕탕’
단군호가 바다위로 떠오르기 직전 범선에서 세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단군호에서 범선을 향해 불빛을 비췄다. 갑판에는 세 명의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고,
단 한 사람 만이 단군호의 불빛을 온몸으로 받았다. 단군호가 천천히 범선에 다가갔다.
갑판에 설치된 기관포가 언제라도 범선을 침몰 시킬 준비를 마치고 명령을 기다렸고,
수병들이 소총을 들고 사격자세를 잡았다.
“토르의 망치”
“트로이 목마”
다시 한번 암구어를 확인한 장교가 손짓을 하자, 무기를 쥐고 있는 갑판 요원들이 손에서 힘을 뺐다.
“당신이 목마입니까 ?”
“그렇습니다.”
“범선에 폭약을 설치하도록”
자신을 목마라고 밝힌 사람이 단군호로 넘어오자, 대기중이던 병사들이 가방을 열고 시계를 조절해
범선 갑판에 집어 던졌다. 범선이 점점 단군호에서 멀어졌다.
‘펑 펑’
작은 폭음이 들리더니 이내 바다 위에는 작은 나무 조각들만이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렸다.
사방을 한번 둘러보던 함장이 갑판을 내려가자, 기관포가 제거되고 수병들이 사라졌다.
텅 빈 갑판위로 바닷물이 넘실대더니 이내 바다 밑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단기 3960 겨울 르 아브르항 항공모함 2102함 갑판
대한 제국 항공모함 2102함이 수십 척의 호위함, 지원함을 대동하고 센 강 하구에 도무도 당당히
태극기를 휘날리며 그 위용을 내보였다. 서너 대의 잠자리들이 연이어 해안가와 항공모함을 오갔고,
주변 상공을 제비호가 초계비행에 들어갔다.
“4군 사령관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김상태 대장을 태운 잠자리가 갑판에 사뿐이 내려앉았다. 갑판에 도열해 있는 항모 전단장과 함장
그리고 많은 장병들이 부동 자세를 취했다. 잠자리 문이 열리고 참모진들이 빠져 나오고
김상태 사령관이 잠자리 날개를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별 4개가 선명한 모자가 잠자리 밖으로 나오자, 군악대의 환영 연주가 시작되었다.
“차렷. 경례”
“승선을 환영합니다. 사령관님”
“고맙소 제독. 고생이 많았습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전단장의 안내를 받으며 김상태 사령관이 선실로 들어갔다.
“다 모였습니까 ?”
“영국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이번 유럽 연합 사령부의 항복에 불복한 많은 사람들이
도버 해협을 넘어 영국으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그 밖에는 ?”
“영국 빼고는 모두 모였습니다.”
김상태 사령관이 선실 4층에 있는 회의실 문 앞에서 잠시 섰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유럽 연합국 황제나 왕이라 칭했던 자들, 또는 그 자식들이나 전권을 위임한 대리인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대한제국이 내세운 꼭두각시도 반수 이상이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김상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병이 문을 열었다.
“이미 통보해 드린 바와 같이 우리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각국의 군대는 해산한다.
둘째 모든 국가는 대한제국에게 전쟁배상금을 앞으로 한달 이내에 지불한다.
스페인 황금 천만 파운드, 프랑스 이천만 파운드, 신성로마제국 천오백만 파운드, 영국 이천만 파운드,
네덜란드 오백만 파운드, 덴마크 오백만 파운드 그 외 공히 백만 파운드.
셋째 각국은 지구 연합에 가입하며, 지구 연합에서 제정하는 연합법에 따른다.
넷째 각국이 쥬신 대륙에 건설한 식민지는 원래 대한제국 영토이기에 대한제국에 이양한다.
이상입니다. 모두들 다 읽어보셨으리라 믿고 서명하시기 바랍니다.”
항복문서가 참석자들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프랑스 왕 루이 13세는 자신 앞에 놓여진 항복 문서를
들쳐보다가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프랑스가 지불해야 될 전쟁 배상금 황금 이천만 파운드는
프랑스 국토를 다 주어도 모자를 판이었다. 전쟁 배상금을 빙자한 영토 지배권을 이양 받겠다는
속셈이 뻔했지만, 그나마 왕권과 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도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 중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루이 13세가 울음을 그치고 펜을 들어 서명을 마치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회의실을 나갔다.
경비병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갑판으로 이동시켰다.
“불쌍한 놈들.”
단기 3961년 초 영국 런던
대한제국에 쫓겨 도버 해협을 넘은 유럽 연합군 잔존 세력들이 속속 영국으로 넘어왔다.
패잔병들은 찰스 1세의 지휘아래 대한제국를 유럽에서 몰아내겠다고 설치고 다녔고,
일부는 신대륙으로 새 삶을 찾아 떠났다.
“리즈 백작은 아직도 소식이 없나 ?”
총사령부가 대한제국 특수부대에 의해 와해되고 지휘부가 뿔뿔이 흩어졌다. 일부는 붙잡히고 일부는
사살되었지만, 일부는 탈출에 성공해 런던에 와 있었다. 유럽 연합군을 재건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 리즈 백작이었기에, 찰스 1세는 그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 하고 있었다.
“브뤼셀에서 배를 타고 떠난 것까지 확인 되었습니다만, 그 이후로 행방이 묘연합니다.”
“영지에 보낸 전령은 도착했겠지 ?”
“네. 그곳에도 리즈 백작은 없었습니다. 그랜드 성은 집사와 하인들이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영국에 왔다면 내게 제일 먼저 소식을 전했을 사람이야.
무슨 일을 당한 것은 아닌지 그게 걱정이군.”
유럽에서 건너온 기술자들과 영국 기술자들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리즈 백작이 없어서 인지 신통치가 않았다. 유럽 제국이 대한제국에게 무릎을 꿇고 치욕적인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조만간 영국을 공격할 거라는 이야기는 영국 전역에
퍼진지 오래었다.
“리즈 백작 ? 그대는 어디 있나 ?”
단기 3961 봄 스몰렌스크 공군기지 아침
“관제탑. 5918번 모든 계기 점검이 끝났다.”
“알았다. 9번 활주로에서 대기하라”
오십만평의 대지에 건설된 스몰렌스크 공군기지는 활주로 10개와 비상활주로 5개를 가지고 있었고,
150기의 각종 비행기가 주둔하는 4군 최대의 공군기지로 알려져 있다. 이륙허가를 받은 5918기가
천천히 9번 활주로에 들어섰다. 좌우를 둘러본 이무민 중령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8번 활주로로 진입하는 6001호에 탄 윤형식 대위가 손을 흔들었다.
“5918호 이륙”
“5918호 이륙”
곧게 뻗은 은빛 날개를 활짝 펴고 천붕 5918호가 활주로를 질주했다. 굉음을 울리며 활주로를
이탈한 5918호가 사뿐이 날아올라 고도 일만 미터까지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9대의 천붕이 날아 올랐다.
“이번 작전은 토르의 망치로 명명되었다. 옛 신화에 보면 토르가 가진 망치로 두드리면 부셔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우린 서쪽에 떠 있는 작은 섬 하나를 침몰 시킬 생각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확한 목표지점에 떨어뜨려야 한다. 그리고 일단 폭탄이 투하되면 공역을
이탈해 전속력으로 집결 좌표에 모이기 바란다. 알겠나 ?”
“네. 편대장님. 그런데 안경은 꼭 써야 합니까 ?”
“아참. 안경은 꼭 써야 한다. 밖을 내다보지 않으면 아무 문제 없다. 이번에 적재된 폭탄은
강력한 빛을 수반한다. 그 빛에 노출되면 잠시 시력을 잃을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
“네. 편대장님. 그런데”
“또 뭔가 윤대위 ?”
“이 폭탄 이름이 뭡니까 ?”
“몰라도 된다. 실은 나도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마라. 이번 작전은 극비 중에 극비이며,
향후 이 작전에 대해서는 모두 입도 뻥끗해서는 안 된다. ”
편대장도 모르는 폭탄이 실려있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편대장의 엄포에 윤대위의
입이 실룩거렸다. 10기의 천붕이 모스크바를 지나 북극해로 이동하더니 항로를 서쪽으로 바꿨다가
대서양 상공에서 다시 남쪽으로 바꿔 내려왔다. 아침에 기지를 출격한 10기의 천붕은 그날 오후
늦게 기지로 돌아왔다. 천붕에서 내린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있었고, 아무도 말문을 열지
않았다. 말 많기로 소문난 윤대위 조차 그 일이 있은 후 며칠동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첫댓글 감사해요~~~^~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