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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2-123)
2026년 5월 21일 (목요일)
찬양 :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본문 : 시 123:1-4절
☞ https://youtu.be/WqyRZPJh9Og?si=B1BEOinOzjfmWB4U
어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나누기로 은혜를 나누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주제로 깊은 나눔을 가지며 <동행>의 신앙을 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목회사관학교 12주차 수업이 있는 날이다. 이제 3개월의 여정을 끝으로 한 학기의 수업을 마치게 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 시편 123편은 4절의 아주 짧은 시이지만,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 시의 역사적 배경을 바벨론 포로기 이후, 혹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이방 세력들에게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그들이 쌓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라며 조롱당하던 시기로 추정한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주류 권력자들로부터 극심한 조롱과 무시를 당하고 있는 고립무원의 상태다. 성전 안은 완벽했지만, 성전 문을 열고 마주한 세상은 여전히 성도를 향해 눈을 흘기며 조소(3-4절)를 퍼붓고 있었다. 바로 그 비참한 현실 한복판에서 시인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1절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여기서 눈을 들어 주께 향한다는 것 즉 성전에 올라간다는 것은, 시간과 환경이 여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의 무시와 조롱의 소리가 거세고, 우리의 할 일은 무겁고 진척이 없는 그때 이들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지은 것이다. 그 이유는 온 우주의 통치자가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늘에 계신 여호와임을 믿기에 나오는 고백이다. 그 심정을 시인은 이렇게 전한다. 2절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이 고백에는 왕이신 하나님을 향한 완벽한 의탁과 집중이 담겨있다. 이 고백은 아마도 이런 느낌일 것이다. <주님, 나는 이 현실에서 나를 스스로 지킬 힘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희망이 없어 주의 은혜만을 바랍니다>라는 간절한 고백이다.
3절에서 시인은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그 간절함을 고백하며 그 이유로 심한 멸시가 넘친다고 하고 4절에도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친다고 고백한다.
원어는 '라바트(רַבַּת)'와 '사베아(שָׂבְעָה)'라는 두 개의 단어가 조합되어 "넘치나이다"로 번역되었다. 먼저 라바트 (רַבַּת)란 단어는 '많다, 위대하다'라는 뜻의 '라바브(רָבַב)'에서 유래한 단어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거대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베아 (שָׂבְעָה)란 단어가 매우 중요한데 본래 이 단어는 음식을 배불리 먹어 "포만감을 느끼다, 물리도록 먹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멸시가 넘치나이다>란 세상이 퍼붓는 멸시를 너무 많이 받아먹어서, 마치 음식을 꾸역꾸역 과식한 사람처럼 영혼이 꽉 막혀 체해버린 상태, 질식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세상의 조롱이 영혼의 목구멍까지 차올라 이젠 단 한 마디만 더하면 쓰러질 절박한 포화 상태를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짓고 성벽을 짓기 위해 사명의 자리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지만, 세상의 그 차가운 눈초리와 은근한 무시가 내 영혼의 밑바닥까지 가득 차올라 이제는 영적인 면역력이 완전히 바닥나 버린 상태를 뜻한다.
이런 상황에 시인은 하늘의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분으로부터의 은혜를 갈망하며 드리는 것이다.
세상의 멸시와 냉소를 물리도록 먹어 영혼이 체해버렸기 때문에, 이 영적 급체 상태를 뚫어낼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위로부터 쏟아부어 주시는 '소화제 같은 겹층의 은혜'밖에 없어 눈을 들어 하늘의 하나님을 향하여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예배자가 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는 은혜를 갈망하는 예배자.
문득 시편 23편 5절에 나오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란 다윗의 고백이 생각난다. 같은 어원에서 출발한 단어이지만 전혀 다름을 표현한 자리다. 세상이 내게 퍼부은 멸시의 넘침을 가지고 주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 주님은 그것을 하늘의 은혜와 인자하심의 넘침으로 역전시켜 주심을 찬양한 다윗의 믿음이다.
아마 이 시인도 그 믿음을 가지고 이런 고백을 하였으리라.
이 아침 목회사관학교 12주차를 마치는 시간 이 갈망의 은혜를 가지고 눈을 들어 주께 향하는 시인의 심정을 배운다.
사명의 진척은 보이지 않고, 세상의 무시와 조롱의 칼날은 내 영혼을 사정없이 찢어버려 내가 누군지도 알 수 없게 만든다. 이제 내려가야 하는데 세워짐은 보이지 않고 무력함만 보여지는 현실에 이젠 정말 멸시에 배불러 체한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다.
그럼에도 눈을 들어 주께 시선을 고정하는 믿음과 그 믿음으로 사명의 자리를 붙들고 일어나는 그 시대의 영혼들처럼 사관생도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사모한다.
아니 눈을 들지 못하고 자책하며 도피하려던 나의 무력함을 회개하며, 오늘 나부터 눈을 들어 주께 향하는 시선으로 일어나 오직 주의 은혜를 갈망하며 나아가련다. 주님, 그 어디에도 희망 섞인 소리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오직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또 구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예배자를 기뻐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주께 나아갑니다. 주여 받아주소서.
한줄 묵상 :
<조롱과 멸시에 배불러 버틸 수 없는 그때가 눈을 들어 하늘 보좌의 주님을 바라보며 겹층의 은혜를 구해야 할 예배의 타이밍이다.>
적용 질문 :
1. 나를 위축시키는 세상 안일한 자들의 냉소에 시선을 빼앗겨 있습니까, 아니면 상전의 손끝만 바라보는 종처럼 하늘의 주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있습니까?
2. 사명의 자리에서 감당할 수 없는 무시와 무거운 짐 때문에, 내 영혼의 목구멍까지 멸시가 넘쳐 영적 면역력이 바닥나 있지는 않습니까?
3. 내 힘으로는 이 막힌 영혼을 뚫어낼 수 없을 때 상한 심령이 되어 위로 쏟아부어 주실 하나님의 겹층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