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역사속의 인물탐방] 壯節公 申崇謙墓域
[2011.5.25/죽암 장석대]
※ 주소: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
옛부터 "영구예미(靈龜曳尾=거북이가 진흙에서 꼬리를 끄는 형상) 山모양의 자리가 명당자리" 라 했는데, 화학산 산맥이 뻗어내린 가덕산 중턱 명당자리에 모셔진 壯節公 申崇謙墓域을 춘농고 동기이면서 춘천시 문화원장으로 있는 李大根원장과 함께 탐방하였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 내외 등 박사 119명을 배출한 춘천시 서면을「장절공 박사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
신숭겸장군은 태조 왕건을 고려 건국에 공을 시웠던 인물, 고려태사 장절공으로 불린다. 장절(壯節)은 왕건을 대신해 장렬히 전사했다고 해서 왕건이 내린 시호(諡號)이다. 신숭겸장군의 출생지는 곡성 목사동면이다. 거기에 "용산재:라는 서원이 있는데, 여기에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號
사안도(射雁圖) 고려 태조가 평주 삼탄으로 사냥을 나갔을 때 납잠에 기러기 세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태조가「누가 저기러기를 쏘겠는가」라고 하자 장절공(壯節公)이 선듯 나서 태조가 명한대로 셋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혀 떨어뜨리는 장면, 이리하여 장절공은 평산 신씨(平山申氏) 로 사적(賜籍)되었다. |
충렬도(忠烈圖 서기 927년 9월 신라를 침략하고 돌아가는 후백제 왕 견휀을 대구 동수에서 맞아 싸울 때 고려군이 전세가 불리하매 장절공(壯節公)이 고려 태조를 피신케한 뒤 어가(御駕)에 올라 적진에 나아가 분전 하는 장면, 장절공은 마침내 이싸움에서 태조를 대신하여 장렬하게 순절(殉節)하셨다. |
붕분 셋을 조성한 사연. 서기 927년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과 싸우다 태조 왕건을 대신하여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왕건과 함께 팔공산 전투에 참여한 신숭겸장군은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병조들과 함께 몰살당할 건곤
일척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때 장군은 왕건을 피신시키고 왕건의 갑옷을 바꿔입고 왕건으로 변장하여
싸웠으나, 왕건으로 오인한 견훤군의 집중된 공격으로 전사하였고, 견훤은 신숭겸장군의 목을 자르고
몸만 고려로 보냈다. 왕건이 며칠을 두고 통곡하였으며 황금으로 신장군의 머리를 만들어 왕건이 죽으
면 묻힐 자신의 묘자리에 장사를 지내게 했다. 또한 신숭겸장군의 황금두상이 도굴당할까봐 봉분 셋을
조성하도록 명하였다. 태조 왕건은 신숭겸장군에게 장절공이란 시호를 내린 후 팔관회 등의 연회때마다
그의 허상을 만들어 놓고 술잔을 권하기도 했다니, 신숭겸장군을 죽도록 잊지 못하는 태조의 슬프고 한
스러운 마음을 짐작케 한다. |
▲ 申崇謙 神道碑(시도유형문화제 제155호)
▲ 壯節祠
壯節公 紀念館
▲ 壯節公申崇謙墓域管理事務所 및 社團法人 高麗開發國功臣太師 壯節公申崇謙將軍紀念事業會
▲ 春川市文化院 李大根院長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