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지사가 12일 출간된 저서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1963년과 69년 두 차례의 선거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과정은 헌법적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한마디로 선거에서 승리할 만한 토양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좌희정 우광재’(좌 안희정, 우 이광재)라고 불렸을 정도로 친노(親盧) 핵심 인사다.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사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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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 충남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역사와 시련이 어우러진 토양이 박근혜 대통령 만들어”안 지사는 책에서 “우리 정치는 대한민국이라는 토양에서 자라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이 토양에 관한 한 적지 않은 자산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각 진영의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부모가 총에 맞아 사망한 비극의 가정사, 본인이 뺨에 칼을 맞은 고난의 기억 등 그런 역사와 시련이 어우러진 토양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밑바탕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박정희, 중공업 투자 10년 이상 미래 내다본 것”안 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過)’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공(功)’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박정희·이병철·김대중의 혜안’이란 제목의 장(章)에서 이렇게 적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 비전을 고심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곧바로 중공업으로 뛰어들었다. 한국이 중공업에 투자해 성공할 것으로 전망한 나라는 세계에 없었다. 불가능한 계획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그리고 포항제철에서 생산된 철강을 기반으로 중공업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계획이 1,2년이 아니라 1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고 추진되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63·67년 대선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사실 인정해야”안 지사는 또 ‘역사 논쟁의 딜레마’라는 장에서 “5·16은 헌법적 정당성이 없는 쿠데타였지만 진보진영도 1963년과 67년 대선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의 역사로 인정해야 한다”며 “민족주의와 서민주의를 내세우며 근대화를 이루겠다고 한 박 대통령의 비전과 약속을 국민들이 동의하고 받아들인 결과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는 다만 “보수진영도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만들어 장기집권을 도모했던 사실을 미화해서는 안된다”며 “박 대통령은 ‘10월 유신’으로 헌법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이어 “박 대통령의 공적을 아무리 찬양해도 ‘공칠과삼(功七過三)’을 넘지 않는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며 “산업화의 공이 크기 때문에 과를 덮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진보와 보수가 역사 인식의 딜레마가 있는 지점에서 매듭을 지으면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정리할 수 있다”며 “더 이상 과거를 놓고 싸우지 말자고 우리 모두에게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섬마을 총각 선생님 되지 말아야”안 지사는 책에서 안철수 무소속 의원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안철수 의원의 입장을 환영하는 조건’이라는 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 의원이 지난해 대선 후보로 나섰을 당시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섬마을 총각 선생님만 되지 마세요. 그렇게만 한다면 안철수를 지지합니다’라고 말했다. 생뚱맞은 표현에 어리둥절한 사람들도 내가 의미를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였다. 섬마을에 부임한 총각 선생님은 마을 아가씨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얼마후 다시 육지로 떠나가면 섬 처녀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가 남는다.”
안 지사는 이 일화를 소개하며 “이제까지 정치에 새롭게 뛰어든 사람들은 국민들의 마음에 잠깐의 설렘을 주고는 상처를 남기고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정치라는 섬마을의 주민으로 살았다”며 “그동안 사회적 명성이 높거나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라는 섬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화려하게 상륙했다가 소리 없이 떠나가는 그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는 안 지사가 잠재적 경쟁자인 안 의원과 자신의 차별성을 부각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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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 저서
“진흙탕 속에서 꽃을 피워낼 용기 없다면 정치 해선 안돼”안 지사는 또 “새로운 선수의 입장은 무조건 환영”이라면서도 “마음만 설레게 만든 뒤 떠나버리면 안 된다. ‘새 정치’라는 이름으로 한철 장사를 하고 나서 홀연히 사라지면 남는 것은 정치적 혐오와 패배주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새 정치’를 앞세우고 정치권에 들어왔다가는 자칫 그 자체가 무덤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누구든 타협은 불가피하다. 또 정치권에 몸을 담는 순간 크든 작든 누구나 권력을 갖게 된다. 더럽지만 진흙탕에서 꽃을 피워낼 용기가 없다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선거에서 졌다면 변명 필요 없어”안 지사는 ‘패자의 자세’라는 장에서 “패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기반성”이라며 “민주적 절차에 따라 치러진 선거에서 졌다면 더 이상의 변명은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승자 또한 이긴 자의 오만함을 버리고 관용과 겸손의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안 지사 측근은 “안 지사가 도지사를 하면서 느끼고 고민했던 것을 에세이처럼 써 책으로 엮었다”며 “안 지사가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에서 통합과 타협을 강조하면서 쓰려고 노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