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명에 못을 박다 (시2-124)
2026년 5월 22일 (금요일)
찬양 : 오 우리 영혼이 벗어났도다
본문 : 시 124:1-8절
☞ https://youtu.be/TwDmOwWAfJ0?si=CxWAg0xcW2x_BsSk
어제 목회사관학교 한 학기의 강의 마지막 날이었다. 소중한 강사님들의 헌신적 열강과 사관생도들의 충성된 열정이 조화를 이룬 참 멋진 한 학기였다. 모두에게 뜨겁게 박수쳐 드리고 싶다. 아울러 이 모든 일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뒤에서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하신 후원자와 이사님들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 모두를 계획하시고 완전하게 이끄신 우리의 주권자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오늘은 금요 세미나로 김용걸 목사님을 모시고 전도세미나가 진행된다. 다음주 부터는 김성일 목사님을 모시고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며 금번 상반기 사역의 마무리를 한다. 이 모든 일정을 준비하고 이끄시는 박종오 목사님께 성령의 기름부어주심과 리더십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복한다.
나는 오늘 작은교회를 위한 교재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다.
은퇴를 하면서 내가 작은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40년간 달려온 나의 작은 경험과 지식들을 모아서 작은교회에 꼭 필요한 교재들을 만들어 보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시편 124편의 표제어는 ‘다윗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다.
다윗의 인생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그는 수시로 빠져나올 수 없는 '사면초가'에 빠지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개입을 통해 다시 일어남의 연속이었다.
그런 다윗이 오늘 본문에서 그 상황을 이렇게 고백한다. 1-2절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다윗은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이라는 가정을 두 번이나 하면서 자신의 삶은 그야말로 존재할 수 없었던 인생이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 되셔서 그 은혜로 인도했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다.
성전에 올라가는 자의 매우 중요한 인식은 바로 내 존재의 실존을 정확히 인식하며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찬양을 올려드리는 마음임을 본다.
그렇다면 다윗은 본문에서 자신이 겪은 사면초가의 위기를 <그때에>라는 표현을 통해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먼저 다윗은 사람들의 노여움을 말한다. 3절
‘그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
다윗의 경건한 삶은 사람들에 의해 부정되고 더 나아가 맹렬한 저항을 만났다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맹렬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로트(חֲרוֹת)’이며, 그 원형은 ‘하라(חָרָה)’다. 이것은 <불이 붙다, 타오르다, 연기가 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대적들의 분노가 거대한 산불이 맹렬하게 타올라 순식간에 재로 만드는 것 같은 강력하고 잔인한 것임을 보여준다.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다윗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잔인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홍수에 쓸려갈 위기를 말한다. 4-5절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그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여기 '휩쓸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형은 ‘샤타프(שָׁטַף)’다. 이 단어는 <홍수가 나다, 세차게 밀어붙이다, 가차 없이 씻어내 버리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다윗의 삶은 갑작스럽게 홍수처럼 내려오는 위협으로 아무리 버티려 해도 버틸 수 없이 순식간에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삼키다>의 핵심 동사는 ‘아바르(עָבַר)’인데 이 단어는 본래 <건너다, 지나가다>라는 뜻이지만, 홍수 문맥에서는 "물이 사람의 머리 끝까지 완전히 넘쳐흘러 호흡을 막아버리다"라는 뜻을 지닌다. 한 마디로 이 홍수로 영혼의 호흡까지 완전히 차단하여 영적으로 익사하게 하는 홍수였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이것을 다윗은 사냥꾼의 올무였다고 표현한다. 7절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다윗은 수시로 그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 묶여 휩싸이고, 삼켜질 위험을 겪었고, 사람들의 노여움에 삼켜질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린 인생이었다는 말이다.
이런 다윗이 오늘 이렇게 고백한다. 6절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기 나오는 <씹히다>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테레프(טֶרֶף)'로 <물어뜯긴 먹잇감, 찢겨진 고기(Prey)>를 뜻하는 명사다. 맹수가 사냥감을 날카로운 송곳니로 물어뜯어 그 뼈와 살을 으스러뜨리고, 입안에서 가차 없이 사정없이 씹고 있는 핏빛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다.
다윗이 이것을 고백할 때 그 심정이 느껴진다.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감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런 순간마다 다윗의 편이 되셔서 그런 자리에 내어주지 않으셨다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마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자신을 이끄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라고 선포한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사43: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아멘. 나는 이 약속을 믿는다.
다음 주 사단법인 이사회를 통해 나의 사퇴의견을 올리고 회의를 통해 결정한 후 10월달 감사예배 겸 총회를 통해 대표직은 사임을 인준받으면 나의 라마나욧선교회 사역은 이제 끝이 난다. 라마나욧선교회를 떠난 나의 삶에 대해 한 번도 계획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계획을 짜지 않는다. 이유는 나의 계획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오직 주님이 내 편이 되시면 나의 삶이 어떤 길을 걸어도 어떤 상황이어도 주께서 나를 지키심을 믿기에 당당히 흔들리는 내 마음을 추스르고 불안한 내 삶을 고정하며 내가 걸어가야 할 사명에 못을 박는다.
오늘도 나는 작은교회와 사역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 갈 것이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어 주실 것을 믿기에
나는 대표라는 직함이 아니라 주님의 부름받은 종으로서 내게 주어진 자리를 감당할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없이 100세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다.
그 질문 하나에 나의 마음은 맹렬한 홍수처럼 소용돌이치며 불안과 두려움이 훅하고 솟아난다.
그러나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가야 할 길이 바로 이 길이기에 나는 그곳으로 갈 것이다. 오직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저의 주인이시기에 이 종은 오직 주님의 뜻에만 굴복하여 나아갑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만 높임을 받으소서.
한줄 묵상 :
<맹렬한 불과 홍수 같은 노후의 불안 속에서도, 사냥꾼의 올무를 박살 내신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믿기에 대표의 직함이 아닌 '주님의 종'으로 사명의 자리에 내 인생을 단단히 못 박는다.>
적용 질문 :
1. ‘만약 그때 여호와께서 내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루레이 아도나이)’ 이미 흔적도 없이 씹히고 휩쓸려 사라졌을 존재임을 고백합니까?
2. 은퇴 이후의 삶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움과 무력감의 소용돌이가 훅하고 솟아오를 때, 내가 도피하려는 자리는 어디이며 바라보아야 할 '하늘 보좌'는 어디입니까?
3. 세상이 주는 대표나 리더라는 화려한 직함의 올무를 벗어던지고 오직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만 의지하는 '주님의 종'으로서 내게 주어진 자리에 당당히 사명의 못을 박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