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집으로, 귀향(歸鄕)의 여정 “위로와 치유의 구원”
2026.2.9.연중 제5주가 월요일 1열왕8,1-7.9-13 마르6,53-56
"주님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시편107,9)
누구나 고향을 찾는 원초적 본능이 있습니다. 고향집을, 본향집을 찾듯이 주님의 평화를 찾아 끊임없이 주님의 집, 수도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정주의 베네딕도 수도원은 환대의 영성이 소중한 자산입니다. 정주의 수도원은 동시에 환대의 집이 됩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장차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성규53,1)
이렇게 규칙서에서 아름답게 명문화되어 있는 환대의 사랑, 환대의 영성입니다. 이어지는 수도원 정문과 십자로 중앙 예수님 부활상 아래 새겨진 말마디도 방문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성규57,9)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4,27)
‘집에서 집을 그리워하는’(homesick at home) 역설적 사람들이요, 결국은 주님이 계신 본향집을 향한 그리움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귀향의 여정>이 됩니다. 귀향의 여정중 지상의 가시적 주님의 집에 머물면서 위로와 치유의 구원을 체험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전 2014년 안식년중 800km 2000리 산티아고 도보 순례 여정중, 날마다 잠시 그곳 주님의 집 성전에 머물렀을 때, 고향집에 온듯 편안했든 느낌과 더불어, 매일미사를 드리면서 머물던 그집이 마치 고향집같이 편안했다는 느낌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언제 어디나 주님이 계신 곳, <주님의 집> 성전은 영원한 본향집을 상징합니다. 시편 아름다운 두 구절의 고백도, 이런 주님의 집에 살고 싶은 소망을 그대로 대변합니다.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시편23,6)
“주님께 청하는 것이 하나 있어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러보고
그분 성전을 눈여겨보는 것이라네.”(시편27,4)
영원한 본향집을 오늘 지금 여기 주님의 집에서 앞당겨 살 때 위로와 치유의 구원입니다. 바로 주님의 집 수도원 제 집무실에서의 체험도 이를 반영합니다. 영적 친구 화가로부터 선물 받은 집무실벽에 걸어 놓은 불암산 배경의 배꽃 만발한 아름다운 그림이 고향집에 온 듯, 언제나 마음을 환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에 <이 행복에 삽니다>란 시가 있는 시화를 참 많이 나눴고 오늘도 다시 나눌 생각입니다.
“평생
꽃같은 아내 없어도
언제나 나를 반가이 맞이하는
집무실안
불암산 배경의 만발한 그림에
꽃같은 주님
늘 함께 계시니
이 행복에 삽니다”<2026.2.6.>
꽃같은 주님이 계신곳, 그 어디나 주님을 만남으로 위로와 치유의 구원의 기적이 일어나는 <주님의 집>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활약상을 요약합니다. 겐네사렛 땅에 이르자 온갖 모든 병든 사람들이 주님을 찾았고,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 병자들의 믿음이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듯 그런 간절한 믿음으로 사제의 옷에, 성물에, 성서에.... 손을 대면 우리 역시 치유의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대로 주님이 계신곳, 그 어디나 간절한 믿음이 있을 때 치유의 구원이 일어나는 주님의 집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에 대한 다음 주석이 참 깊고 아름답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치유되었다’ 라로 번역된 희랍어, ‘에소존토(esozonto)’란 말마디는 단지 육체적 치유 그 이상을 함축한다. 초기교회내에서 이 어휘는 전적 구원의 체험을 묘사한다: 단지 건강이 아니라 온전함이요, 다른 말로 귀가이다(not just wellness, but wholeness-in other words, coming home)”
참 반가운 말마디가 “컴잉홈(coming home; 귀가歸家)”입니다. 주님 계신 곳은 어디나 주님의 집이요,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컴잉홈’하여 이런 주님을 만날 때 위로와 치유의 구원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에서 솔로몬은 주님의 집에다 주님의 계약궤와 더불어 주님을 모시는 성대한 축제를 벌인후 극히 만족하여 주님께 아룁니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그런데 이 주님의 성전은 어떻게 됐습니까? 세월이 지나 솔로몬 성전은 헤로데 대왕이 세운 거대한 건축물로 대체되었고, 오늘날에는 통곡의 벽 조각만 남아있고, 그 자리에는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제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제자들의 공동체가 되었고,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내 몸담고 있는 교회 공동체안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치유의 구원을 받게 됩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주님의 집, 성전에서 거행되는 미사전례를 통해 주님을 모심으로 주님과 하나되어 위로와 치유의 구원을 받는 우리들입니다. 제 행복기도 한 대목으로 강론을 끝맺습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복음선포의 꽃자리
주님의 집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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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시편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