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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롱이 저쪽 도포자락
석야 신웅순
아득한 산모롱이 너머
우리들은 단 한 번도 그 할아버지를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다. 어두운 움집에 사는지, 건너 마을 기와집에 사는지 도무지 누구의 할아버지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깡마른 뺨 위로 광대뼈가 얼마나 솟았는지, 눈매가 매서운지 순한지 멀리서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마을 어른들에게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는 산모롱이에서 나타났다가 산모롱이 너머로 사라지는, 풍경의 일부이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미스터리였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하얀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나타났다. 구부정한 허리로 흰 날개를 펄럭이며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학춤을 추는 듯했다. 눈처럼 하얀 백발과 길게 늘어진 수염, 기다랗게 구부러진 지팡이, 그리고 잔뜩 굽은 허리. 할아버지는 늘 그런 모습으로 먼 길 위를 홀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걸음은 의외로 빨랐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지팡이에 의지해 걸었지만, 걸음은 느리지 않았다. 뼛속 깊이 밴 오랜 습관처럼 더듬더듬 지팡이로 땅을 짚으면서도 좀처럼 멈추지 않고 바삐 앞을 향해 걸었다. 어떤 때는 심청이 아버지 같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노승 같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어디에서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다. 산 너머 골짜기 마을 농로에서 보이는가 하면 개천 너머 먼 둑방길에서도 목격되었다. 언제나 할아버지는 우리들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진 채, 절뚝절뚝 지팡이와 하나, 둘, 셋, 넷 박자를 맞추며 묵묵히 걸었다. 그러다가 모퉁이를 돌아설 때면,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어느 순간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철없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설명되지 않는 낯섦은 이상함이었고, 이상함은 두려움이자 놀림거리였다. 우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미친 할아버지다! 미친 할아버지다! 미친 할아버지가 또 나타났다.!”
돌팔매와 호통 소리
짓궂은 동네 아이 몇몇은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며 흙덩이나 작은 돌멩이를 던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날아오는 돌을 피하느라 껑충껑충 거렸다. 아이들은 균형을 잃어 허깨비 같은 이상한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다 못해 자지러지게 웃었다. 겁이 많았던 나와 몇몇 아이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돌팔매질이 계속되면 바닥만 바라보며 걷던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가느다란 긴 지팡이를 공중으로 높이 치켜들며 새 쫓듯 휘이휘이 저었다.
“이놈들아! 날 건드리지 마!”
바람을 찢는 듯한 호통 소리가 층을 지며 들려왔다. 멀리 떨어져 있어 목소리는 늦가을 들꽃처럼 적막하게 들리기도 했고, 우르르 쾅 번개 치듯 쭈뼛 쭈뼛 놀라기도 했다. 마른 팔로 치켜든 지팡이는 먼 하늘을 배경으로 커다란 원을 그렸고, 그 동작에는 깊은 신경질과 아이들을 겁주려는 안간힘이 배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멀리서 맥없이 허공을 가르던 그 지팡이를 바라보며 우리들은 더욱 확신했다. 정처 없이 길을 떠돌고, 아이들의 놀림에 지팡이나 휘두르는 노인. 그는 틀림없이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어린 날의 기억 속에서 하얀 도포자락의 할아버지는 어느새 ‘산모롱이의 미치광이’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도망치고 나면 할아버지는 다시 매무새를 고쳤다. 그리고 넘어질까 바닥을 유심히 살피며 다시 걷고 또 걸었다. 어디선가 자신을 기다리는 미완의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걸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발로 으깨며 한 발 두 발 걷고 또 걸었다.
수문 아래, 웅덩이의 비밀
우리 동네 개천의 지류 물목에는 작은 수문 하나가 있었다. 오래된 콘크리트 수문 아래에는 여름이면 서늘한 그늘이 내려앉고, 주변에는 무성한 버드나무와 억새풀이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마을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물놀이터이면서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 아지트였다.
한여름이면 우리는 발가벗은 채 수문 아래 웅덩이로 툼벙툼벙 물장구치며 뛰어들었다. 흙탕물을 일으키며 미역을 감고, 자맥질을 하며 붕어와 민물새우를 잡았다. 서로의 고추를 놀리며 물장구를 치다 보면 더위는 씻은 듯 달아났고 어느덧 산골마을은 해가 저물었다.
어느 푹푹 찌는, 매미 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여름 오후, 우리들은 늘 그랬듯 수문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수문 아래 그곳에 누군가가 발가벗은 채 먼저 와 있었다.
둔덕 위에 하얀 도포를 벗어놓고 물속에 쪼그려 앉아 몸을 씻고 있는 노인은 바로 그‘미친 할아버지’였다.
“야, 저기 봐! 미친 할아버지다!”
우리들은 숨을 죽인 채 수문 위 콘크리트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 미역 감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먼발치에서만 바라보았던 전설 속의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린 우리들에게 참으로 커다란 사건이었다. 우리는 눈만 끔벅거리며 할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할아버지는 깡마른 체구였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길게 늘어진 수염, 햇볕에 그을린 불그스름한 얼굴, 앙상한 피부 아래로 도드라진 광대뼈, 내가 가까이서 본 할아버지의 첫인상이었다. 그런데 물속에 잠긴 몸은 이슬처럼 희고 달빛처럼 수척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손에 물을 묻혀 몸을 닦았다. 그리고는 물속에서 조심스럽게 아랫도리까지 정성스레 닦기 시작했다. 수문 위에 엎드려 있던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야! 저것 좀 봐라!”
“킥킥킥…… 할아버지 거시기에도 수염이 달렸어!”
할아버지의 아랫도리에도 턱수염처럼 수북한 털이 나 있었다. 어린 우리들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하고도 이상한 광경이었다. 우리는 입을 틀어막은 채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위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무례한 말들은 아래쪽 할아버지에게는 물소리와 매미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거시기에도 수염이 나다니. 역시 참 이상한 사람이야. 틀림없이 미 친 사람이 맞아.’
우리들은 그것을 할아버지가 미쳤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굳게 믿어버렸다.
세월에 허물어진 몸을 씻어내리던 노인의 손길, 그 늙고 쓸쓸한 적막을 그때의 어리고 순진한 우리가 어찌 짐작이나 했으랴.
몸을 다 씻은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주섬주섬 삼베 속옷을 입고 하얀 도포를 찾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는 무언가 느꼈는지 수문 위쪽으로 힐끗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과 마주친 순간, 우리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노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지도, 광기로 번뜩이지도 않았다. 그저 깊은 우물처럼 조용했고, 그 안쪽 어딘가엔 슬픔이 맑게 고여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지팡이를 짚었다. 그리고 다시 도포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절뚝절뚝 산모롱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것이 우리가 본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육십갑자를 지나온 눈물
할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산모롱이 길에서도, 개천 둑길에서도 하얀 도포자락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언제 죽었는지, 어디 먼 곳으로 떠났는지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또한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저 그 어린 시절을 잠시 스쳐 지나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전설 같은 추억의 할아버지였을 뿐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서산의 해가 수없이 바뀌고 강물이 하염없이 바다로 흘러가는 동안, 어느덧 육십갑자 인생 한 바퀴가 돌아왔다.
머리에는 서리가 허옇게 내리고, 유년의 흙길 신작로는 어느새 아스팔트 도로로 바뀌었다. 세상을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문득문득 가슴 한구석에서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되살아나곤 했다.
나이가 들고 삶의 굽이를 돌고 또 돌아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어린 날‘미치광이’라 부르며 돌을 던졌던 그 노인은 결코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도포자락 여며 입고 신작로 걸어갈 때
세상의 어떤 상처가 가슴에 박혔길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득한 세월을
홀로 절뚝이며 발걸음을 재촉하는가
우리가 목격한 것은 고작 세 가지뿐이었다. 하얀 도포를 입고 늘 혼자 먼 길을 걸어 다녔다는 것, 아이들이 돌을 던지면 지팡이를 들어 올려 위협하는 시늉을 했다는 것, 그리고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수문 아래에서 홀로 몸을 씻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 몇 가지 모습만으로, 우리는 어린아이의 철없는 무지함 속에서 한 인간의 고독과 슬픔을 ‘미친 사람’이라고 단정해버렸다.
아마도 그는 일제의 억압과 전쟁의 광풍 속에서 가문과 가족을 잃은 선비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세상이 저버린 가치와 절개를 홀로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세상의 바깥으로 걸어 나간, 도포자락 하나에 몸을 맡긴 채 방랑하던 한 시대의 마지막 선비였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돌팔매질에 맞서 들어 올렸던 지팡이는 화가 나서 휘두른 것이 아니라, 세상이 던지는 몰이해와 무례함으로부터 자신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그날 수문 아래에서 맑은 물로 자신의 하얀 몸과 아랫도리를 씻어내던 노인의 손길은 또 어떠했을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 묻은 번뇌와 때를 씻어내고, 남은 생을 깨끗이 마무리하려 했던 서글프도록 거룩한 정화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호랑이 담배 먹던, 서럽도록 순진무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잔인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
오늘도 눈을 감으면 그날 노을이 붉게 물들던 산모롱이 길 위로 하얀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걸어가던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흰구름 되어 허공 속으로 아득히 사라져갔던 그 외로운 등덜미. 그 눈물겨운 잔영은 육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가슴 깊은 곳에 젖은 채로 남아 있다.
지금도 할아버지는 멈추지 않고 이승 어디에선가 먼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 세상의 끝,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아득한 곳을 향해 지팡이를 짚고, 도포자락을 사그락사그락 날리며 아득히, 아득히 걸어가고 있을 것만 같다.
추억 속의 눈물겨운 것들이 어디 이뿐만이랴.
저물어가는 가슴속에는 하얀 도포자락 하나가 오늘 밤도 서글프게 하늘거리며 외로운 학춤을 추고 있다.
— 2021.12.7. 석야 신웅순의 에세이 『추억 속의 할아버지』를 단편소설로 개작, 2026.9.17. 여여재에서

첫댓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면 참으로 웃지 못할 일들이 많더군요. 괜히 텃세를 부리며 이웃과 단절하려던 모습. 그래서 옆동네 방문조차 꺼려하곤 했지요.
도포자락 휘젓고 다니던 할아버지가 어린 동료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그랬었어요
.참으,로 순진하고 깡촌 시골아이들이었으니 어찌 거시기에 그것을 모를 정도였으니까요.
참 웃음이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