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gendercrossroads.org/p/a-please-to-my-fellow-trans-people
우리에게는 더 나은 길이 필요하다
Gender Crossroads
2025년 10월 7일
2025년의 트랜스젠더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2000년대 초반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그땐 우리가 얼마나 좋은 시기를 살았는지 미처 몰랐다.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지만, 대부분의 공동체에는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사람이 한두 명쯤 있었다. 적당히 낯설면서도, 적당히 익숙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아마도 알고리즘 탓이겠지만, 나는 온라인에 접속할 때마다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콘텐츠를 마주친다. 예컨대 일론 머스크가 “트랜스 선전을 내세운 넷플릭스를 구독 취소하자”고 트윗한다든가,
혹은 J.K. 롤링의 트랜스포비아 논란이 또다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든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묵묵히 살려고 한다. 좋은 직장인, 가족,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전환(transition)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 냉소적 트랜스젠더로서, “이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가장 덜 해로운 길”이라 해도, 그 무게가 나를 지치게 만드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온라인 트랜스 커뮤니티의 공기는 무겁다. 미국의 트랜스젠더들은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떠날 수 있느냐” 묻고, 여권 갱신 시 출생 시 성별이 다시 표기될까 두려워하는 글, 애매한 이유로 해고당했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트랜스젠더 수용의 ‘허니문’ 시기는 분명 끝났다 —특히 미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사태의 일부는 우리 스스로 초래한 측면도 있다고 느낀다. 우리 커뮤니티는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거부했고 (트랜스 활동가 집단에서 흔한 ‘논쟁 금지(no debate)’ 정책을 떠올려보라), 트랜스젠더 개념의 확산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조차 ‘트랜스포브(transphobe)’라 낙인찍었다.
우리는 주변 사회에 공감과 이해를 요구하면서, 정작 그만큼의 공감과 이해를 되돌려주지 않았다. 설득보다는 시위를 선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트랜스 커뮤니티는 그리 단일한 공동체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여러 집단의 뒤섞임이다. 공통점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자녀를 둔 중년 남성이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뒤 뒤늦게 전환을 결심하는 경우와, 사춘기를 앞둔 어린 소녀가 또래 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며 정체성을 탐색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이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경험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그럼에도 둘 다 ‘트랜스’라는 하나의 범주에 묶인다.
현재의 논쟁 대부분은 언어, 정의, 범주의 문제다. 과거 ‘트랜스젠더’는 다른 성별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그 범위에는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무성(agender), 양성(bigender), 논바이너리(nonbinary), 젠더 비순응(gender nonconforming) 등 다양한 정체성이 포함된다.
이렇게 트랜스 개념이 확장되면서, 의료 현장에서는 혼란이 커졌다. 의료진은 젠더 세계의 복잡한 뉘앙스에 익숙하지 않다. 그들은 “누가 되돌릴 수 없는 신체 변화를 수반하는 의료적 개입을 통해 진짜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를 가려내려 애쓰지만, 그 사이에도 치료를 원하는 청소년들의 숫자는 급증한다.
그야말로 혼돈의 조합이다.
물론, 이런 불신에는 이유가 있다. 의료 시스템은 오랫동안 젠더 비순응을 병리화해왔다. 예컨대 1970년대까지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한 DSM, 혹은 1980년대 에이즈 환자들을 수치심과 비밀 속에 방치한 역사가 그렇다. 이런 경험을 겪은 우리가 편집증적 경향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에이즈가 결국 사회적 관심과 연구 자금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커뮤니티 활동가들이 거리로 나와 크게 외쳤기 때문이었다. 조용한 사람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충분히 크게 외치면, 결국 세상은 듣는다.
이런 반권위적 기질(anti-authority streak)은 레즈비언·게이 운동에서 트랜스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건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만큼 중요한 사람들을 짓밟았다. 우리가 내세우는 요구가 그들에게는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은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떠올린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직 모르는 성별 불안에 시달리는 청소년들, 성폭행을 당하고 치유를 시도하는 젊은이들, 자폐 성향과 외로움 속에서 소속감을 갈망하는 10대, 평생 “못생겼다, 쓸모없다, 멍청하다”고 들어온 불안하고 우울한 청년, 유독성 관계 속에서 “넌 남자가 아니야”라는 말을 듣다 결국 자신이 여자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믿게 된 젊은 남성.
우리가 “호르몬과 수술을 원하는 누구에게나 제공하라”고 요구함으로써, 극단적인 활동가들의 목소리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고통을 안기고 있다. 또, 그런 결정으로 해를 입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우리가 남에게 요구했던 공감과 이해를 스스로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건 패배의 전략이다.
내가 어떤 의료적 치료를 받아 도움이 되었더라도, 그와 같은 치료를 받은 다른 사람들이 끔찍한 결과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미래의 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guardrails) 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나처럼 그 치료로 혜택을 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나 말고도 중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성별 확정 의료(gender-affirming care)’의 정보 동의 모델을 옹호하는 의학 단체들이 “아마도 더 강력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을 본 적이 없다. 잘못된 이유로 트랜스젠더 정체성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말이다.
그때까지는, 나처럼 트랜스젠더이지만 모든 사람을 아끼는 이들, 즉 ‘트랜스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모두의 필요를 함께 고려하는 더 나은 길이 필요하다.
첫댓글 그 와중에 여성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문장도 없네? 젠더라는 개념이 호모포빅 한 것과 아동청소년 학대임은 언급하면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여성, 소녀 보호를 무력화하고 그들을 예상가능한 폭력과 위험에 방치한 전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단 한문장도 없네
원문 댓글에 자기는 터프라고 밝힌 사람이 그 부분 말했는데 뚱댓 많이 달림ㅋㅋ
@CrystalMatrix ㅋㅋㅋㅋㅋㅋ 개웃기네 구경가야지
모두의 필요를 함께 고려한다면서 모두에 또 여성은 없어
치마를 좋아하고 화장을 좋아하는 남자로 살라고. 치마입고 화장하는 긴머리 남성으로는 도자히 살수 없는건가
여자는 쏙 빼고 말하는거 봐 ㅋㅋㅋ 여자탈의실에 들어오는 남자가 무섭다는 말에는 딱히 반박 못하겠으니까 입다물고 지나가니? 아니면 여자들따위가 무서워하든말든 ㅈㄴ 알바 아니니까?
마음은 이해가지만.. 성기를자르고 붙이고 억지로 호르몬제맞는게 진짜 정상적인건가 싶음
저 글에서도 트랜스 한 명이 전방위로 징징대는 게 웃기네 혼자 급발진 하면서 댓글달고 다니고 니말대로 성별이 바뀔 수 없는 거면 자기는 ㅈㅅ했을 거라느니(전형적 협박), 사춘기 오기 전에 애들 트랜스 시켜야 한다느니.. 생물학적 성별은 바꿀 수 없다(XY가 XX로 변할 수 없다)는 말에 걍 눈막귀막하고 NO 이러네.....ㅋㅋ
병리학적 현상에 대해 당사자 외의 발언은 걸러듣는 쪽이긴한데 트랜스는 당사자들이 이걸 병이라고 인정 안하는데서 문제가 출발한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