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막15:16-32절, 135.144.256장. 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발견코자 합니다.
그러면 먼저 이 본문의 전후, 좌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빌라도의 재판은 부당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었지만 유대인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이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장로들의 불의한 탄원과 모함으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불법재판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정치인들도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정의나 불의를 따지지 않고 민중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인기를 얻으려는 행동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빌라도의 재판이 끝나자 무자비한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 곧 판정으로 왔습니다. 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식 표현을 하자면 서울 시청 앞 광장 같은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군병들이 예수를 다루는 태도는 가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일 뿐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란 사실을 철저히 비웃고 회화화 하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었습니다.
말하자면 임금이 입던 붉은 옷과 면류관을 빗대어서 육체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인격적인 모독을 주어서 철저히 짓밟으려는 의도였습니다. 사실 예수를 박해한 이 군병들은 빌라도의 호위병으로서 대대 급 병력인 600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아주 잘 훈련(訓練)된 정예군인(軍人)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빌라도가 정죄(定罪)한 죄인이기에 더욱 철저하고 가혹하게 다루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대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 할찌어다. 라고 하면서 비웃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때리면서 침을 뱉으면서 임금에게 절한다는 시늉으로 꿇어 절을 했습니다. 군병들은 철저히 예수를 희롱한 후에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예수에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하고 골고다를 향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주간에 피로가 쌓이고 철야심문(審問)과 고문(拷問)으로 탈진(脫盡) 상태(狀態)였습니다. 예수님은 무거운 십자가(十字架)를 메고 형극의 길을 가는 도중에 몇 번이고 쓰러졌습니다. 그때 이었습니다.
마침 시골사람 구레네 시몬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하여 골고다까지 가게 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를 신속하게 처형하기 위한 방편으로 구레네 시몬을 강제적으로 십자가를 지도록 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군병들은 예수님이 입었던 옷을 나누어 가지고 속옷은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엄숙한 순간에도 예수와는 아무상관 없이 헌옷을 누가 가질 것인가를 제비뽑는 저들의 모습 속에 인간의 죄악을 깊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강도 둘이 십자가 사형을 당하는데 그 가운데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두 강도는 예수를 모독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강도(强盜)는 자기(自己)의 죄(罪)를 깨닫고 예수님이 구주인 것을 고백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오늘 내가 너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구원과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까지도 우리의 구주로써 사명을 잘 감당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지나가던 행인들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예수를 모욕하기를 "아하, 성전(聖殿)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救援)하여 십자가(十字架)에서 내려오라"(막 15:29-30)고 비아냥 거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예수의 십자가 밑에서 온갖 욕설을 다 퍼부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예수를 증오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막15:31-32)라고 했습니다. 어느 신학자는 말하기를 이 구절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욕설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위에서 이 본문의 흐름을 대강 살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도 모두가 구약 성경이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다는데 주목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은 하나님의 구속 운동에서 이미 계획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 바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 하기위한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이란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놀랍고 참으로 예수님의 은혜는 말로다 형용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참되며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너무도 정확하다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내용 가운데서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십자가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가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구원에 이르고 어떤 사람은 저주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도 동네마다 교회가 있고 골목마다 교회가 있지만 그 십자가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는, 예수에게 희롱하며 모독하는 저 무심한 군병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 군병들은 빌라도의 호위병으로서 사형수를 철저히 그리고 되도록 심하게 다룰수록 인기를 얻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심심하던 차에 일거리와 볼거리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인 줄도 모르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도 모르고, 채찍질하고 침 뱉고 욕하고 비웃었습니다. 그것은 저들의 무지였습니다. 사실 그들의 죄는 예수를 핍박했기 때문이기 보다 예수께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지와 무관심이 죄인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주의 종들이 말씀을 외치고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지만 무관심과 무지로 나는 나대로 주님은 주님대로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에 대해서도 무관심할 뿐 아니라 주님의 교회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고 있습니다. 무지와 무관심에서는 사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이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이며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군병들은 무심하게 예수를 채찍질하고 욕하는 것으로 도리어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이미 인간의 본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동물 화되고 인간이 천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버렸을 때입니다. 더욱 비참한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누가 가질 것인가를 위해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물론 옷이 귀하던 시대인지라 십자가에서 사형(死刑)을 집행한 형리들의 몫으로 옷을 나누던 풍속은 이해할 수 있다 해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위해서 서서히 죽어가는 그 순간에 그들은 몇 푼 안되는 옷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질에 눈이 어두우면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세계 앞에 완전히 치부가 드러났습니다. 그토록 한국 사회 전부가 유물주의로 나가더니만, 세계 앞에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사회전체가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사라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질만 획득하면 된다는 사상이 팽배했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서슴 치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죄짓는데 철저히 사용했던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징계는 마땅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몰골이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속옷을 제비뽑아 나누어 가지려는 군병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둘째는 억지로 십자가를 진 시몬의 경우입니다. 어찌 보면 구레네 시몬은 억울합니다. 시골서 처음 올라온 김에 구경거리가 있어서 구경하다가 난데없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가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물론 구레네 시몬은 본인이 원했던 것도, 아닐 뿐더러 마음에 내키지도 않은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 기록을 보면"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밝혔습니다.(막15:21).
말하자면 주소(住所)와 가정(家庭) 신상명세서(身上明細書)를 확실히 기록했습니다. 마가의 기록정신은 비록 시몬이 뜻하지 않게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손만대로 복 받을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몬은 엉겁결에 된 일이지만 마음만 먹었다면 도망 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설령 도망친다고 해도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억지의 십자가이지만 묵묵히 예수님과 더불어 골고다 언덕까지 함께 갔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우리는 구레네 시몬처럼 어쩌다가 줄지어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주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는 준비(準備)가 안 되었다느니 자격이 없다느니, 부족하다느니 하면서 스스로 이 십자가의 짐을 벗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십자가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 주변에는 수많은 행인도 지나가고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저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비웃고 욕 했습니다. 십자가 곁에 있던 두 강도들도 예수를 비난 하다가 한 편 강도는 회개하는 영광을 안 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억지의 십자가도 은혜(恩惠)와 축복(祝福)인 줄 믿습니다. 억지의 십자가도 지고 가면 주께서는 은혜와 위로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해마다 년 초(年初)가 되면 어떤 이에게는 제직으로, 어떤 이는 각(各) 선교회(宣敎會)의 임원(任員)으로, 각 위원회의 책임자(責任者)로서 또는 성가대(聖歌隊) 대원으로서 임명할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할 것입니다. 억지의 십자가라도 우리가 지고 따를 때에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능력도 주실 줄 믿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 잘 김당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박봉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