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쪽은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빗방울이 날리는 날이다. 우천불구 원칙에 따라 우리는 아무 고민없이 산행에 나선다. 이런 날씨지만 전화문의 한 통 없다.
이시돌 젊음의 집 후문 앞에 차를 세운 우리는 오솔길을 따라 정물오름으로 향했다. 차는 한대 만 빼고 모두 당오름 앞에 세워 둔 후다. 비오는 날씨인데도 12명이 모였다. 우리의 열정에 풀이 죽은듯 비도 그치고 빗방울도 뜸해졌다. 발걸음도 가볍게 출발이다. 오늘 남산은 아픈 어깨를 애써 감추며 레인코트를 걸친다. 밴프리트에 이어 맥아더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수련활동으로 훤하게 길이 뚫린, 억새가 지천으로 깔린 정물오름을 오른다. 새가 적갈색으로 단풍이 들어 곱다. 가지각색 원색의 비옷을 입고 한 줄로 서서 다정하게 산을 오르는 모습이 아름답다.
정물오름 정상에 오르니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시야가 깨끗하다. 바로 앞에 보이는 도너리오름이 이발을 한 산뜻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저 멀리 산방산과 남해바다가 곱다. 떠날 때와는 판이하게 좋은 날씨다. 남쪽으로 돌아 앉으니 바람도 피할 수 있어 아늑하다.
오름 위에서 나누는 술 한잔, 커피 한 잔의 맛은 오름에 오른 자 만의 보상이다. 이렇게 날씨가 싸늘한 날에는 그 맛이 배가 된다. 오늘은 진식이네가 빠져서 독새기가 없지만 대신 독애미(닭튀김)가 인기를 끌었다. 복분자 서너병이 순식간에 동났다.
동쪽 비탈을 따라 바로 이웃해 있는 당오름으로 향했다. 이 쪽으로는 질 좋은 새가 좍 깔려 있다. 발목을 휘감는 부드러운 새의 감촉을 즐기며 우리는 구르듯 오름을 내려간다. 정말 굴러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아무리 굴러도 거칠 것 없고 다치지 않을 것 같다.
당오름을 오른다. 금방 오른 정물오름과 비슷한 높이인데 훨씬 힘이든다. 경사가 급하다. 숨이 턱에 차다. 그래도 허위허위 잘도 오른다.
절반 쯤 올라 뒤를 보니 우리가 금방 올랐던 정물오름이 저기 있다. 이건 필경 성숙한 여인의 젖가슴이다. 그것도 특대인 C컵. 어느 여인네가 이 추운 날 가슴을 내놓고 누워있나. 이런 데 정신을 팔다보니 햇살은 장갑을 떨어뜨려 100여 미터나 내려가 찾았고, wansan은 배낭까지 쉬던 장소에 두고 빈 몸으로 정상까지 갔단다. 오늘 왜 이러니?
힘든 만큼 정상에서의 휴식은 달콤하다. 바람이 너무 심해서 굼부리를 한바퀴 도는 일은 그만 두었지만 정상에서 보는 광활한 곶자왈과 주변 오름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앉아 있는 오름나그네들의 뒷모습도 아름답다.
오름을 내려오다 바람막이 잔솔밭에 자리를 잡은 일행은 오늘 신이났다. 홀로아리랑 노래를 신나게 부르다가 서로 손에 손을 잡고 흥겨운 원무가 시작되고. 다들 목청껏 노래를 부르니 그 동안의 스트레스는 간 곳 없고 참 살만한 세상이 된다. ~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산행을 마치고 우리는 모슬포로 향했다. 내일부터 방어축제라는데 오늘 전야제로 방어맛을 안 보면 섭하지. 단골인 항구식당에 가서 방어보다 더 맛있는 히라시회를 양껏 먹으니 이제 더 부러울 것이 없다. 벌써 작별의 시간. 아쉽지만 다음 목요일을 기약할 수 밖에.
오늘은 비 맞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왔었는데 예상 외로 좋은 날씨에(서쪽 지방만 그랬었던 것 같다) 전망도 좋았고, 적당히 피곤하고, 맛있는 회도 먹고 참 좋았다.
첫댓글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 했다. 근데 C오동엔 어울리지 않은 말이 된지 오래다. 비가 오나 바람이부나 공치는 날엔 허리와 어깨가 더 쑤셔온다. 부딪혀 보라. 등정의 쾌감은 정상을 밟아 본 후에 느낀다.
히라스=부시리, 맞나? 방어축제를 소개하는 신문에, 방어는 남방계 어족이라 살이 붉고 물르며 부시리는 조금 북방계로 날씬하여 살이 희고 쫄깃하다고. 가쓰오 히라스 부시리 방어 다랑어... 광어 넙치 도다리 가자미... 또 뭐가 있더라? 잊어 먹었네. 헷갈려~!
참, 등산화 실종 1주년 이야기(탁탁 털멍 신엉 가분 사름~ㅋㅋㅋ)를 잊었다. 도치돌이나 당오름에 비석이라도 새겨 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