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릉 아이스아레나 체육관은 빙판 속 한여름 열기나 다름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체육관 경기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꽉 들어찬 경기장 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응원의 함성은 경기장과 응원석을 압도하며 상대 선수들에게는 압박감을, 반대로 우리 선수들에게는 스케이트 날이 저절로 뻗어나가게 할 정도의 응원가 이상의 든든한 뒷 배경으로 작용케 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서 엄마 ‧ 아빠, 할아버지 ‧ 할머니 등 관중석을 꽉 매운 국내외 응원단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 목이 쉬도록 손에 든 태극기와 선수 이름이 새겨진 피켓, 휴대전화기를 흔들며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는 관중은 말할나위 없고, TV 앞에서 선수와 덩달아 몸을 움직이며 응원하는 시청자들의 하나된 결과는 우승으로 결실을 맺기도 한다. 어제(2.20) 5명이 한 조가 된 선수들은 한데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바람을 쏟았다. 그리고 당연히(?)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손을 들어 천천히 링크를 돌며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 순간에도 선수들의 눈가는 흘러내리는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우리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또 일을 냈다. 세계 최강임을 다시한번 만천하에 알렸다. 3000m 계주에서 4분7초36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이 정식 종목으로 도입된 이후 총 8차례의 계주에서 6번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 이어 2연패, 쇼트트랙 최강국의 명성과 함께 세계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크게 떨치는데 그 역할을 다했다.
지금 제23회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젊은 선수들이 뿜어내는 기세가 그 어느 겨울보다도 혹독한 한파로 움츠러들게 하는 이 겨울을 녹이며, 미래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동량지재(棟梁之材)로서의 기운과 저력을 유감없이 펼쳐 보이고 있다.
메달을 목에 건 선수건 아쉬움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만 한 선수건 모두가 자신의 실력과 기량을 다 발휘하고자 지난 4년간 쏟아온 땀과 눈물을 경기장에 다 퍼 붓고자 최선을 다했다. 경기가 진행 중인 오늘현재(2.21)까지 우리 선수들은 국민 누구나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긴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를 비롯해 남자 임효준 선수가 쇼트트랙 1,500m에서, 그리고 불모지에서 노다지를 캐낸 것으로 평가받는 아시아 최초 윤성빈 선수의 스켈레톤의 금맥까지 개인종목은 개인 종목대로, 단체전은 단체전대로 지도자와 선수가 하나 되었다.
국민의 ‘따 놓은 당상’이라는 기대감으로 여자 3000m 계주의 경우 얼마나 부담이 컸을 것인가? 그럼에도 선수들은 혼연일체였다. 혼자서 한 바퀴 반을 더 도는 상황에서도, 터치하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후배 선수를 뒤에서 있는 힘을 다해 밀어주는 팀플레이를 다했다. “저 말고도 다들 마음고생 많이 했다. 다 같이 고생하고 노력한 게 좋은 결과로 나와서 좋다”(여자 3000m계주 심석희)는 말처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엎어지고 넘어지는 과정에서도 금빛 메달을 장식케 한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아리랑~아리랑~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다 함께 가보자.’ 빙판 어디에서도 들어 볼 수 없었던 ‘아리랑’ 선율이 울려 퍼졌다. 그 음악에 맞춰 우리만의 고운 맵시 개량한복을 입은 남녀가 얼음판을 미끄러져 돌며 한민족 정서를 수놓은 ‘아리랑 댄스’의 피겨 아이스댄스는 4000여 명 관중의 기립박수가 떠나지 않게 했다.
올림픽에서 아리랑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였다는 재미교포 민유라 선수의 “우리가 고집한 아리랑을 연기했다는 것이 만족스럽다. 팬들의 응원이 너무 좋아 정말 쉽고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다”는 말이나 “한국으로 귀화한 귀화 선수로 민 선수와 짝을 이룬 겜린 알렉산더의 “한국적인 뿌리를 알리고 싶어 ‘아리랑’을 배경음악으로 최종 선택했다. 한국 문화와 역사를 관객과 공유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인다운(?) 그의 소감에서 우리 스스로가 더 열광하고 뿌듯해짐은 이들 젊은이들의 나라를 생각하는 의젓한 언행을 통해 감동이 더 배가되는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평창 올림픽은 정치적 측면에서 북한 김정은이 북한 선수단을 포함한 대표단과 예술단, 응원단 등 500여 명의 매머드 급 진용을 전격적으로 보내면서 4.25건군절 행사를 40년 만에 2.8건군절로 변경해 치르는 등 유엔의 대북제재조치로 막다른 골목에 처한 상황을 긴급 처방키 위한 철저히 계산되고 의도된 체제 선전의 장으로 활용코자 하는 대회참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려 속에 출범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별개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또 우리 젊은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스포츠를 통한 국위 선양은 자신이 거둔 성과나 열정 그 이상으로 ‘조국’이라는 위업으로 승화시켜 주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속에서도 설움과 안타까움으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박수가 필요하다. 내일을 위한 또 하나의 기회와 발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래야 모두가 하나되는 올림픽, 더 큰 발전을 위한 거보(巨步)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덧붙여서 오늘 평창에서 흘린 안타까움과 눈물이, 웃음과 기쁨이 한 개인만의 것도 아니요, 우리 모두의 것이자 조국 대한민국 것이기도 함에서다. 선수와 관중이 하나된 뜨거운 젊음의 열기가 평창의 하늘을 타고 널리 퍼져 확산될 때 대한민국이 직면한 그 어떤 난관도 위협도 능히 극복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평창의 젊음이 오늘 그 시발점이 되고 있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