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개성個性(2020/1/1/)
“아빠! 아빠도 옷 하나 사세요. 지금 입는 아빠 옷들은 너무 오래되었잖아요.” 시장에서 옷을 고르던 중학생인 딸아이가 매번 자기 옷만 사기가 미안스러웠던가보다. IMF 사태로 공장 하나는 날아가고 이제 남은 하나도 언제 폐업 신고를 해야 할지 몰라 박쥐가 유영하는 망고나무 아래서 그믐달을 찾던 아빠가 혹여 가족들과 함께라면 막힌 숨통이 트일까 하고 일시 귀국한 것이다.
나는 얼른 주먹으로 가슴을 탁탁 치며 말했다. “애야, 아빠는 옷걸이가 좋아서 괜찮다. 그리고 내가 새 옷을 입건, 낡은 옷을 입건, 우리 공주를 하늘만큼 사랑하는 아빠라는 것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옷을 고르던 딸아이의 한마디에 아빠는 불현듯 큰 진리라도 깨달은 듯이 당연한 소리를 가슴까지 치면서 한 것이다. 그리고 옷들 너머로 딸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가 벌써 자기 엄마하고 키 재기를 한다. 아기가 기어 다니다가 일어서고 싶으면 나의 목이 필요했을 때 나는 베트남으로 떠났다. 그때 살던 집은 행인의 다리가 아이의 머리 위에서 무형 극을 연출하는 반 지하 이였기에 아이는 목을 꺾고 몸체 없는 다리들을 힘겹게 올려다보았다.
반 지하는 장마철이면 하수도 물이 역류할까 봐 조바심에 잠 못 이루었고. 거기에 고작 하루밖에 못산다는 미련 때문인지 사방으로 설치는 하루살이들과 그것들을 불러들이는 시큼한 냄새가 밴 지층에서, 햇볕이 쨍하고 들어오는 방을 아이에게 주려고 나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휘파람으로 불면서 사이공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딸아이는 한 번도 내 팔을 붙들고 뭘 사달라고 떼를 쓸지를 않았다. 마누라는 녀석이 슬겁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일 년 삼백일 이상을 외국에 머물다 보니 가끔 집을 찾은 아빠가 어려운 것은 아닐까. 결혼 10년 만에 하늘이 점지해주신 하나뿐인 딸인데 내가 어쩌다 우리 아이에게 어려운 아빠가 되었단 말인가? 아빠가 보고 싶다고 보챌 때 달려오지 못했고. 아이가 아플 때 안아주지 못한 대가는 나의 가슴에 점차 주홍글씨가 되어갔다.
내 처지를 알지 못하는 마누라까지 “이번에 양복 한 벌 준비하세요.” 하고 딸을 거든다. 이렇게 되면 2:1이다. 거기다 모처럼 딸아이의 부탁이다. 밀린 월급으로 눈앞에 어른거리는 베트남 직원들은 담배 연기 속으로 몰아넣고 딸아이 친구 아빠가 운영한다는 신사복 매장으로 향했다.
신사복 매장은 백화점 5층에 있었다. 딸 소개로 인사를 나눈 친구 아빠는 '꺾쇠'라는 별명을 가진 내가 다 쳐다 볼 정도였다. 그는 기린처럼 긴 다리와 거기에 어울리는 순박한 눈을 껌벅이며 매장으로 우리를 안내하면서 나에게 옷 치수를 물었다. 나는 ‘색상부터 고르는 것이 순서일 텐데 질문이 바뀐 것 아니 가?’ 이런 생각을 하며 매장을 돌아보다가 주인이 왜 치수부터 묻는 이유를 안 순간 그만 아득해지고 말았다. 넓은 매장에 걸린 신사복 색상이 모조리 똑같았기 때문이다.
“오! 마이갓!”
검정색상에 세로줄 무늬.
설마 하는 마음으로 주인에게 단순한 검정 색상만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섬유 관련업 23년 차인 내 앞에서 한 가지 색상의 옷을 팔면서도 양손으로는 쌍무지개를 펼치시던 주인이 갑자기 나를 무슨 외계인 보듯 내려다보며 잘라 말했다.
“없습니다.”
“예? 검정 옷이 없다고요? 지구 위에 바퀴벌레가 사라졌으면 사라졌지, 어떻게 하루 중 절반을 차지하는 검은 색상이 없을 수가 있나요? 저 태양의 마지막 에너지가 고갈되면 암흑은 24시간을 지배할 텐데….” 나름 조리 있게 설명하며 주인의 쳐다보는데 거기엔 벌름거리는 주인장 콧구멍뿐이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3가지 필요한 기본요소가 의식주(衣食住)다. 그중에서 안 입고는 살아도, 안 먹고는 못 산다. 그런데 입는 것을 우선시하는 언어 습관은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에서 비롯되었고. 옷이 삶의 기본 요소인 동시에 신분 계급 등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급급한 북한은 식의주)
우리말에도 ‘입은 거지는 빌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굶는다.’ 했다. 의복이란 어떤 식으로든 입는 사람과 그 주위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 그래서 하나처럼 단결해야 하는 군인들과 공장 직원 복장은 일률적으로 같은 것이고. 한잔 술로 전철 바닥에 퍼지려 앉은 사람도 예비군복만 걸쳤으면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나는 군인도 아니고, 한 공장에 다니는 사람은 더욱 아니며, 극지방 펭귄도 아닌데 이게 뭐람.
주인 앞에서 내색은 할 수 없지만, 양복 두 벌(겨울/여름) 사는 나로서는 단순한 색상 즉 검정이나 진남색이라야 한다. 그래야 결혼식장이건, 상갓집이건, 관공서 건 전천후로 입고 나설 수가 있다. 이런 옷을 베트남에서는 관복官服이라 했다. 날씨가 더워서 관공서 갈 때 아니면 입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맘에 든 색상의 옷이 없자 넓은 매장이 금세 초라해 보이며 궁금증이 스멀스멀 비 맞은 두엄자리 수증기처럼 일기 시작했다. 저 옷을 만든 사람들 옷장에는 저것들과 똑같은 한 가지 색상의 양복들만 있을까? 절대로 아닐 것이다. 그럼 누구에게 (생산자/소비자) 물어야 하나? 굴러가는데 아무 지장 없는 자동차에다가 왜 무지개보다 더 고운 색상을 찾아 칠하며. 또 감 물 이라던가 쪽물은 뭐 하러 애써 우려내 염색을 할까.
한 가지 색상만 팔 바에야 집에서 전화로 치수만 불러주고 배달받으면 될 걸. 손님들에게 왜 매장까지 나오게 하나? 더구나 비싼 백화점 매장은 왜 빌린다지? 변두리 창고 하나 얻으면 경비 절약되고 또 소중한 시간까지 아낄 수 있을 터인데, 이거야 봉이 따로 없군. 비싼 돈 내고 옷 사고, 거기에 덤으로 붕어빵 되어 소중한 개성個性까지 빼앗겨? 이거야 원 내가 변방에 나가 있는 사이에 모두가 개성을 도둑맞아 버렸구나.
똑같은 옷을 입고 사열한 군인들 앞에 심사가 뒤틀린 지휘관처럼 구시렁거리는 나를 보고 마누라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이렇게 속삭였다. “여보, 요즘 이것이 요즘 유행 이예요. 그러니 아무 소리 말고 딸 얼굴 봐서 어서 사갑시다.” TV뉴스 진행자들도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나온다며 그러니 다른 집 가 봐도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허허, 졸지에 세상 물정 모르는 ‘요동 땅에 돼지 기르는 농부’ 꼴을 하고서 나도 한 마리 펭귄이 되어서 양복을 들고 나왔다. 나의 개성을 팔아버린 대가로 담배 연기 속에 감춰둔 베트남 직원 열 명 한 달 월급을 지급했다.
-공항-
주머니는 가볍고 새 양복은 무겁다. 한양이 무섭다고 과천서부터 긴다더니 베트남 가는 것이 두려워 새 양복을 입던 순간부터 떨던 펭귄이 30.000피트 상공에서 공짜 술에 취해 잠이 든다. 잃어버린 개성이 흰 구름 위를 훨훨 날아간다. 그곳은 감나무와 망고나무의 중간지대다. 펭귄이 서서히 관복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