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제목, 어떻게 달아야 할까?
이기호 시인
시의 題目은 看板 혹은 門牌라고 해도 좋다. 간판의 看은 눈 목(目)이 들어있다. 제목과 간판에 둘 다 눈 목이 있다는 점이다. 남에게 보인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 같다. 시를 대변하는 이름이다. 그것이 제목이다. 전통적 방법으로는 명사를 제목으로 삼는다.
‘시는 명사 하나와 동사 네 개.’라고 블로그에 소개한 것처럼, 명사는 제목이고 동사는 ‘起承轉結’ (기승전결)의 각 문장의 종결어미를 말한다. ‘상, 중, 하’로 구성하기도 하지만, 동사 네 개 내외로 시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생각이다. 간판을 달면 영업이 시작되고 이름을 팔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제목을 달면 시가 짓기(寺) 시작한다. 시의 이름을 선포하는 격이다. 詩는 말(言)로 집(寺)을 짓는 것. 제목은 아무개의 집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제목을 보고 생각하면 시의 밑그림이 그려진다. 이제 제목의 종류를 살펴보자. ①한 문장으로 한다 ②명사형 중심으로 한다 ③미완결형으로 한다 ④시의 첫 구절로 한다. 어느 것이나 좋다. 다만 시인의 취향인 것 같다. 제목은 그 시에 적당한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시의 제목이 곧 시의 주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대상이 단순한 명사가 아니라면, 순간 떠오르거나 문득 찾아온 말로 시를 쓰면 되리라는 생각이다. 그것이 주제고 제목이 될 수 있다. 다만 완성해 놓고 제목을 바꿀 수도 있다. 이성복 시인은 시의 첫 구절을 제목으로 하는 것을 잘하는 것 같다.
제목은 그 시의 包括的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독자가 쉽게 알아보면 싱거운 면이 있다. 전체를 아우르지만 무슨 이야기를 보여줄 것이라는 상징적 은유적 제목이면 좋다. 제목과 시의 내용은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목을 보면 시를 읽고 싶은 魅力을 가지도록 作名해야 한다. 내용도 좋아야 하지만, 독자는 시의 제목을 보고 우선 선택하여 읽는 경우가 많다.
책을 고를 때도 책 이름을 보거나 저자 이름을 보고 고른다. 브랜드 가치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우리가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책 이름을 보고 난 뒤 저자를 보거나, 저자를 보고 난 뒤 책 이름을 본다. 그리고 어떤 시집의 처음 시와 마지막 시를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혹자는 시집의 첫 시와 마지막 시를 보면 다 읽은 거라고 하는 이도 있다. 제목만 믿고 구입하고 난 뒤 맞지 않아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제목과 시의 내용이 둘 다 중요하다.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은 시선을 끄는 것이면 좋다.
1. 한 문장으로 시의 제목을 삼다
요즈음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 경향을 가지는 것 같다. 이것은 매혹하는 면과 시선을 끄는 면이 있다. 명사 중심형의 제목보다는 독자에게 자세한 설명을 보여주는 면이 있어 장점이 많다고 본다. 문장은 단정적인 의미를 던진다. 서술어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나희덕 시인의 『시와 반시』(2020, 가을호)에 실린 ‘입술들은 말한다’를 읽어본다.
[詩作]
시인은 어느 순간 사람의 입술에 대해 궁금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 중에서 그것도 ‘입술’은 중요한 부위다. 그리고 입술을 집중해서 탐구하고 생각했을 것으로 본다. 아마 자세히 보았을 것이고 곰곰이 생각했을 것이다. ‘입술’보다는 ‘입술들’로, ‘입술들’보다는 ‘입술들은 말한다’로 생각을 정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말한다’에 대해 집중했으리라. 만나는 사람들에 대하여, 만난 사람들에 대하여... 대상이 넓어진다. 마지막에 가서 그 입술이 하는 중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가? 이 질문을 던진다. “오늘도 잠 못 드는 이유에 대해”, “또는 피 흘리는 말, 다른 입술들에 대해” 생각이 많다. 바른말은 무엇인가? 나희덕 시인의 시에서 助詞를 버릴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입술들은 말한다
― 나희덕
입술들은 말한다
자신의 이름과 고향과 사랑하는 이에 대해
절망과 분노와 슬픔과 죽음에 대해
오늘 저녁 먹은 음식과
산책길에 만난 노을빛에 대해
기후위기와 정부의 부동산대책에 대해
마을을 휩쓸고 간 장마비에 대해 파도소리에 대해
얼굴도 없이 몸뚱이도 없이
격자무늬 벽에 처박힌 채 입술들은 말한다
거미처럼 분비액을 뽑아내는
저 입술들은 대체 어디서 모여든 것일까
각기 다른 언어로
각기 다른 목소리로
각기 다른 리듬으로
목소리들은 서로 삼키고 뱉고 다시 삼키고 뱉고 삼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소음의 벽을 향해
중얼거린다
들리지 않는 노래를 너무 많이 들었나봐
귀가 먹먹해먼 들판에 풀벌레소리 자욱해
못이 박힌 노래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나봐
귀는 매일 투명한 피를 흘리고 닦아내고 다시 흘리고
격자무늬 벽 속에서 입술들은 말한다
오늘도 잠 못 드는 이유에 대해
왜 자신이 이야기를 멈출 수 없는지에 대해
복용해온 약에 대해
또는 피 흘리는 말, 다른 입술들에 대해
[斷想]
제목이 내포한 것처럼 입술들이 여러 가지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 ‘대상’들에 대해 포괄적으로 말한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입술을 통해 말을 한다. 그것을 시로 집을 지은 것이다. “얼굴도 없이 몸뚱이도 없이/ 격자무늬 벽에 처박힌 채 입술들은 말한다// 거미처럼 분비액을 뽑아내는/ 저 입술들은 대체 어디서 모여든 것일까// 각기 다른 언어로/ 각기 다른 목소리로/ 각기 다른 리듬으로”라고 말한다. 한없는 말을 말한다. 恨이 있는 말을 한다. 오늘도 고단했다고 말한다. 사랑이 떠나갔다고 아니 생이 만만하지 않다고. 잊어버린 복용할 약을 찾는 말을 하고 잠을 청하는지 모른다. 사람의 입술은 대단한 무기이기도 하다.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그 입술에 대하여. 제목을 ‘입술들이 말한다’ 대신 ‘입술들’로 하면 다른 뉘앙스가 생긴다.
2. 명사형 중심으로 시의 제목을 삼다
전통적인 방법이라고 보고 싶다. 예를 들면, ‘가을’이라고 제목을 달면, 가을에 대한 한 대상을 그려내면 된다. ‘가을’ 이것으로 되지만, ‘가을 강에서’, ‘가을 들녘’, '늦가을 저녁 비', '이 가을의 무늬', '가을, 그리고 겨울', '울음이 타는 가을강' ... 이렇게 제목을 정하고 시를 써도 된다. 이대흠 시에서 「천관(天冠)」의 시를 읽어본다.
[詩作]
시인은 새들이 강에서 제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이다. 나는 차를 마시면서 그것을 본다. 어두워질 무렵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밝은 면과 그늘을 생각한다. 노을이 지는 때이다. 차를 마시는 그대와 나는 말이 없다. 새들이, 그대와 나 참 멀리 갔다 싶어도 여기 앉아 차를 마시는 정황을 그린 것이 아닐까.
천관(天冠)
― 이대흠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신다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된다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斷想]
요즈음 읽고 있는 시집이다. 천관은 시인의 고향 지명이다. 참 살기 좋고 공기 맑은 곳으로 보인다. 별이 밝게 보이는 곳이니 얼마나 좋을까. 멀리 오고 갔지만 여전히 그곳에 있는 시간을 생각하면서 천관을 바라보았을 것 같다. 천관이라는 산에 가보고 싶다. 시에 나오는 때는 저물녘이고 여기에 보이는 것들을 덧칠하고 있다. 강, 새, 그대와 나, 시간의 흐름, 천관산을 저물녘 배경에 그려 넣었다. 천관은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를 시인은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天冠이란 큰 산에 대해.
3. 미완결형으로 시의 제목을 삼다
시의 어느 한 구절을 가져와 시의 제목으로 간판을 거는 것이다. 완전한 것이 아닌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독자에게 의문을 던진다. 어, 이거 뭐지? 뒷 말이 궁금하게 만든다. 의미를 던지는 시에서 사용하면 좋다. 이성복 시인의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를 읽어본다.
[詩作]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서 가까운 바다, 먼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끊임없이 파도가 와서 모래를 뒤집는다. 그리고 물새를 바라보고, 그 물새에 대해 궁금해 한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래도 모두 한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
― 이성복
물이 밀려온다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 뒤집어놓는다
물새들은 어째서
같은 방향만 바라볼까
죽은 물새들을 추억하는
자세가 저런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서럽지도 않은 것들이
일제히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斷想]
모래사장에 앉아 있곤 한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답게 시로 완성하기도 쉽지가 않다. 파도가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 뒤집는데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왜 새들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 죽은 물새들 때문인가? 즐겁지 않은 바람이 부는데도 서럽지 않은 것들이 한 곳을 보고 있다. 시인은 궁금했던가 보다. 파도치고 바람 불고 그 와중에 새들이 중심축이 되어 시를 만들고 있다. 시인이 순간적으로 포착한 것은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 이었으리라.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에
― 문태준
고사(古寺)와
흰 마당
낙엽을 비질하는 소리와
마른 나무
빈 가지
이제 우리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리
제 거울 속으로 계속 들어가리
탄부(炭夫)가 갱도 속으로 깊게 내려가듯이
석양이 검은 밤에게 가라앉듯이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에 이 세계는 남으리
밤 바닷가 모래 위로 떠밀려 올라온 하얀 조개껍데기와도 같이
[詩作]
배경은 천년 고찰이다. 마른 빈 가지를 보고 한 생각이 떠오른다. 시가 찾아온 것이다. 시야에 거울이 있는 것 같다. 그 거울을 보고 갱도를 생각한다. 때는 석양이 보이는 저물녘인 것 같다. 곧 밤이 되리라.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있으리라. 자연이란 세계는 남아 있다. 그러나 밤 바닷가 조개껍데기와도 같이. 시간에 떠밀려 올라온 하얀 조개껍데기처럼. 그리고 차례로 생각을 구성해 보았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주는 사유는 깊다. 제목이 주제로 연결된다.
[斷想]
시의 제목도 시의 후반부에 나오는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에 이 세계는 남으리’에서 따와 간판을 달았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에'라고 제목이 되었다. 제목을 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낡고 빈 가지처럼 되면 나의 실체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에 이 세계는 남으리’라고 말한다. 남는 세계는 ‘밤 바닷가 모래 위로 떠올려 올라온 하얀 조개껍데기’에 비유함으로써 그것 또한 실체가 없다는 사유를 드러낸다. 실체가 없는 것이 실체라고. 시인은 불교의 空 사상을 말하는 듯하다.
4. 시의 첫 구절로 시의 제목을 삼다
문득 찾아온 것, 순간 떠오른 말, 방금 본 것에서 돋아난 구절이 시의 첫 구절이 되어 한 시로 탄생하는 경우다. 이성복의 시 「바다가 우는데 우리는」를 읽어본다
[詩作]
한 장소에 앉아 보이는 것을 고개를 돌려가면서 시의 구절들을 얻는다. 모두가 내가 순간 보고 감각하고 생각(思)하고 비틀어 쓴다. 장소는 바닷가이다. 파도를 바라본다. 마음 쓸쓸하다. 왜 바다가 우는지 알 듯 알 수 없다. 헐어빠진 바다. 물결을 자세히 본다. 바닷물은 차갑다. 밤이다. 물결은 안동포 壽衣를 입히는 것 같다. 시인의 순간 포착은 ‘바다가 우는데 우리는’라고 느끼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시로 창작한 것이라 여겨진다. 시인이 살짝 비틀어 낸 시어는 ‘헐어빠진 바다’, 그리고 밤바다 물결을 ‘결 고운 안동포 수의’라고 한 것. ‘해가 도장 찍는’ 이런 표현들이 재미있다.
바다가 우는데 우리는
― 이성복
바다가 우는데 우리는 바다의 목구멍을
볼 수가 없구나 薄明의 해가 도장 찍는
헐어빠진 바다의 몸에 흰 고름 같은 물결,
차갑게 식는 바다의 몸에 고이 다가오는
밤은 결 고운 안동포 壽衣를 입히는구나
[斷想]
시인은 바닷가에 있다. 파도 소리를 ‘바다가 우는데 우리는’라고 오감으로 감각하였다. 그리고 시를 일필휘지로 쓰고 퇴고하였으리라 본다. 이 시기가 시인의 어머니가 아플 때인 것 같은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머니에 대해 시를 쓰는 시기와 비슷한 것 같다. 물결이 마치 안동포 수의를 입히는 것. 우리는 마지막 날 강을 건너고 바다에 이른다.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듯이 그리고 물은 또 하늘로 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