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7.31. 여행 22일차, 뭉크뮤지엄. 입장료 9.5유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
뭉크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1963년에 개관한 뭉크미술관은 단층구조로 심플하게 지어졌다.
노르웨이가 배출한 세계적인 표현주의 화가 뭉크는 불우한 화가였다.
신경질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일찍이 어머니와 누이를 결핵으로 여의고, 그 자신도 병약했다.
그런 환경이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겠지. 뭉크는 스스로 정신분열증을 인정했다.
생과 사, 사랑과 관능, 공포와 우수를 강렬한 색채로 표현해 화단에 물의를 일으킨
그의 작품 세계를 나치는 퇴폐예술이라 하여 독일에 있는 작품들을 몰수해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뭉크는 화가로서 드물게 많은 글을 남겨 그의 그림을 문학적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키에르케고르의 메시지가 뭉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그의 사후 유품에서 키에르케고르의 저서가 나왔다고 한다.
절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오슬로, 그곳의 날씨.
밤 12시 까지 산책해도 가능할 만큼 백야 속에서 느끼는 기운, 환상, 공포 등의 감정.
그 사이에 환희의 감정도 언뜻 느끼면서 불안이 내 주변을 휘감도는 것을 느꼈다.
오슬로 뭉크 미술관을 찾아 그 유명한 '절규' 앞에 섰을 때 마음에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이 함께 엄습했다.
미술관 내에서 너무나 강렬한 뭉크의 작품 속 색채와 웨이브를 만나는 순간 감당하기 어려웠던.
뚜렷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했다. 몇 번을 '절규' 앞으로 되돌아와 서서 그의 작품 속에 침잠해 보기도 했다.
내 안에 분명한 불안이 감지는 됐으나, 그 정체가 뭔지 알 수 없었던...
내 삶에서 순간순간 다가오는 불안의 감정 모두를 그 작품 앞에서 다시 체험했다고 할까?
아니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때 느꼈던 내 감정들이 무엇이었는지...
불안이었는지, 공포였는지, 환상였는지, 환희였는지... 말로 설명하는 순간, 모든 느낌들이 와해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뭉크 미술관의 공기를 그저 느꼈을 뿐이다.
사진촬영이 허용되는 미술관이라 정신을 차리고나서는
절규, 마돈나를 비롯 색감이 너무나 가슴을 사로잡았던 풍경화 몇 점 찍고 나왔던 기억.
에드바르드 뭉크(1863~1944)
노르웨이 거장 뭉크는 현대인의 내면적인 갈등과 불안, 공포, 애정 등의 감정을
격렬한 색과 왜곡된 선으로 표현한 새로운 미술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 초에 주로 활동하던 독일의 표현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81세라는 짧지 않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생의 과업이던 '생의 프리즈' 연작 속에 불안, 고통, 사랑 그리고 죽음을 주제로 하여
마치 변주곡을 써나가듯이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수많은 작품을 완성해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고독과 불안 그리고 몇 번이나 재발된
정신분열증으로 고통받던 뭉크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연작 '프리즈'이다.
뭉크가 남긴 여러 형태의 글-일기, 편지, 우화집 등-과 그의 긴 여정이 담긴
유화, 목판화, 석판화, 동판화 등의 작품들을 통해 뭉크의 예술 세계와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책 '뭉크뭉크' 속 글을 옮기다.
미술관을 얼마나 돌았을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비싸지만 맛은 별로였던
샌드위치에 진한 커피 한 잔을 카페테리아에서 마시고 나서니 미술관 밖에는 추질추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 남성의 옆 모습과 뒷 모습,
그리고 뭉크의 이 작품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느낌으로 나는 이 관람객의 실루엣과 함께 뭉크의 작품을 감상했다.
동화같은, 평화롭고 사랑스런 풍경화 몇 점! 그의 우울하고 몽환적인 작품과는 사뭇 비교되는 작품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작품과 대조하며 뭉크의 이 작품앞에서 역시 오래도록 머물렀다.
뭉크, 고흐, 키에르케코르, 니체 그리고 로댕까지
그들은 요즈음 내 머릿속에 웨이브로 출렁거리고 있다. 현기증을 동반한 두통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