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나는 도다] 05
#1. 도박장 - 밤
박규가 테이블에 앉아, 중앙에 모인 돈을 자기 쪽으로 싹 쓸어간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도박장 안.
중년의 덩치녀, 완전 열 받은 얼굴로 박규를 노려본다.
덩치녀 : 무싱거? 판돈도 똑바로 세지 못하던 얼치기가...
박규 : (능청/힘있게) 골패를 계산으로 하나? 배포로 하는 게지.
덩치녀 : (얼굴 실룩실룩) 어서 패나 다시 돌립서.
박규, 패를 돌리고 있는데, 옆에서 들리는 사내의 탄성소리.
보면 옆 골패판에서 돈을 다 잃고 흥분한 사내(이하 그놈-사미골 동굴 전치용 수하)가 자신의 보따리를 들고 벌떡 일어난다.
그놈 : 기다리슈!
사람들, 그놈이 품에 깊이 품은 보퉁이 안에 보이는 녹용을 보고 놀라는데, 그놈은 결심한 듯 녹용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박규, 골패에 집중하는 척 하며, 그쪽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덩치녀 : 뭐하우꽈?
박규 : (덩치녀 말 무시하고 일어서 나간다)
#2. 도박장 마당- 밤
업자 앞에 이런저런 물건을 들고 온 사람들이 줄을 섰다. 개중엔 닭을 안고 있는 사람도 있고, 솥단지를 들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놈의 차례다.
박규,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데... 그놈의 보따리에서 녹용이 나온다.
업자도 그 품질에 만족한 듯 미소를 띠우고. 그놈은 받아든 돈을 들고 신난 얼굴로 골패 판에 끼어든다.
박규는 슬쩍 일어나 업자에게 다가간다.
박규 : (은밀히) 그 녹용 나한테 파시오.
업자 : 아따, 눈도 밝근게. 최상품인거 벌써 알아챘수꽈?
업자, 똘마니에게 눈신호를 보내니, 똘마니가 치워둔 녹용을 꺼내준다.
박규, 녹용을 받아들려는데, 갑자기, 얼굴을 쑥 내미는 버진.
버진 : (속삭이듯) 여서 무신 거 하는 거라?
박규 : (깜짝 놀라 돌아보면)
버진 : (다른 사람들 눈치보며) 귀양다리... 벌써 인생 포기 해분거라?
박규 : (당황/나직) 어서 나가거라. 예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느냐?
버진 : 안돼메. 노름허는 놈치고 거렁뱅이 안되는놈 없다는 말도 몬드러서?
박규 : (답답하다. 낮게 한숨)
버진 : (여전히 박규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고)
그때 버진 뒤로 문이 열리며 우르르 관군들이 들어온다.
꾼들, 관군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 우왕좌왕 하는 바람에 일대 아수라장이 된다.
당황한 버진과 박규도 도박장 뒤쪽으로 몸을 피하는데.
삿갓 쓴 전치용이 나타났다. 관군들에게 붙잡혀 나오던 그놈 전치용과 눈이 딱 마주치고, “헉!”
관군에게 끌려가는 그 놈을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는 전치용.
버진 : (박규를 숨기며) 니는 귀양다리잖애. 걸리믄 곤장 백대는 더 맞을거라.
박규 : 다 연유가 있어서 이러는 것이니, 너는 가만히 있거라.
전치용, 그 놈이 판 녹용을 살펴보고 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삿갓을 쓴 전치용을 주시하는 박규.
영문 모르는 버진, 옆에서 한숨만 쉬어대는 모습에서-
#3. 박규의 방 - 밤
옆방에서 버진 가족의 코고는 소리가 돌림노래처럼 들려오는 가운데 꼿꼿이 앉아 그간 있었던 일들을 역으로 더듬어 보는 박규.
- 말편자를 주워가던 이방.
- 진상품 도적이 든 날 밤 관군들을 밀거래 현장으로 보낸 이방.
- 윌리엄이 있던 동굴을 찾아내 버진에게 누명을 씌우려던 이방.
- 가짜 감찰어사와 은밀히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방.
- 가짜 감찰어사에게 잡혀가던 그놈.
박규 : (이를 깨무는) 다 잡은 고기를 놓쳤군..
#3-1. 서린상단 - 밤
층계를 내려와 복도를 서둘러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서린. 뒤를 따를 하명.
닫혀있던 문을 양손으로 활짝 열어젖히는 서린. 바로 상단마당이 나타난다.
상단마당에 가득 풀어져있는 물건들. 쌀가마니 몇 개와 말린 홍삼과 제주 건복 및 미역등등
씩씩거리며 서있는 청나라 상인들. 그들과 대치 분위기의 서린상단 사람들.
서린 : 밤이 늦었느니라! 무슨 일이냐?!
척사 : (다가와 머리 조아리며) 저 청나라 상인들이 저희 상단에서 하자가 있는 물건을 팔았다며
반품과 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린, 매서운 눈으로 척사를 한번 보고는 마당에 풀어헤친 물건들을 다가가 살펴본다.
최상품을 맨 위에 놓고는 그 아래는 품질이 좋지 않은 것들로 채워 넣었다.
청나라 상인들은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데.
서린, 청나라 상인들을 보며 비싯 미소를 짓는다. 청상인들은 흠칫 그녀의 포스에 움찔하는데.
서린 : 이 물건들은 우리 상단의 물건들이 아니다.
청상인들 : (발끈하며 칼을 뽑아드는데) !!!
서린 : (허리춤에서 상단패를 꺼내 청상인들에게 보인다) 이것이 뭔지 아십니까? 본적이 있는지요?
청상인들 : (서로를 보며 모르겠다는 표정인데)
서린 : 바로 이곳 서린상단의 패입니다. 이것을 처음 본다면 당신들은 분명
자신들을 서린상단이라고 속인 얼치기 장사치들에게 당한 것입니다.
청상인들 : (당황하는데)
서린 : (하명에게) 이 청나라 상인들에게 저 물건들을 배상해 주고,
무상으로 저 품목들과 같은 우리 물건들을 줘서 돌려 보내거라.
하명 : 대행수님, 저것들은 저희상단의 물건들이 아닐 뿐아니라. 이들은 저희와 거래를 하는 청나라 상인들이 아닙니다.
서린 : 우리 서린상단의 물건을 한번 가져가게 되면 다른 상단과 거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장사는 얼마나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느냐로 흥망이 결정되느니라.
(청상인들에게 다가가 상단패를 보이며) 이것을 잘 기억하시오. 이 패가 바로 서린상단임을 증명하는 것이오.
돌아서 가던 서린. 한쪽에 걸려있는 등불을 물건들에 던져버린다. 물건에 순식간에 불이 붙는다.
놀라는 청상인들과 당황하는 척사와 상단사람들. 서린은 사라졌다.
#4. 관아 앞 전경 - 밤
#5. 옥사 - 밤
옥안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놈.
끼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옥사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선다. 그놈을 발로 툭툭 치는 어둠 속 누군가.
그놈, 서서히 잠에서 깨는데...누군가를 알아보곤 벌떡 일어난다.
그놈 : (바짝 엎드리며) 나으리,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고개 쳐들며) 나으리! 제가 상단을 배신할려고 한게 아니라...
그 놈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서는 검은 그림자.
그놈 : (놀라고) 어르신을 불러 주십시요! 어르신을....
그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휙 그놈의 목을 베어버리는 칼날. 그놈의 몸이 옥사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칼을 집어넣는 누군가.
#6. 사미골 동굴 - 아침
동굴 입구에 길게 들어온 아침햇살에 서있는 삿갓남 전치용과 어둠에 서있는 한 남자, (아직까지 향돌임이 밝혀지면 안됩니다)
어두운 동굴 안에는 진상품 상자들과 단지들이 가득하다.
전치용 : 이곳의 보완은 철저하게 하고 있겠지?
향돌이 : 관의 수사가 조여 오긴 하지만 이곳은 문제 없을 겁니다.
전치용 : 도마뱀이 잡히면 어찌하여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지 아느냐?
향돌이 : ......
전치용 : 꼬리를 자르는 것이 몸통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향돌 보며) 한양의 상단에서는 지금 제주의 상황을 심히 우려하고 있다. 각별히 살피거라.
향돌이 : (고개를 깊이 숙인다)
#7. 옥사 - 오전
옥사 안에서 그놈의 시체를 끌고 나가는 포졸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이방과 김포졸, 억관.
이방 :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이냐! (김포졸과 억관을 보며) 대체 어찌된 게야!!
억관 : 죽을 죄를 졌습니다, 이방 나으리. 아랫배가 살살... 그니까 통시가 급해서리...
이방 : (버럭) 이놈!!
억관/김포졸 : (움찔하고)
이방 : 입단속을 철저히 해야 할게야. 절대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선 안된다. 알겠느냐!
억관/김포졸 : 예!....
#8. 현감집무실 - 낮
현감, 잔뜩 화난 얼굴로 앉아있다.
현감 : (이방에게) 옥사에서 범자가 살해되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이방 : (목소리 낮추며) 오늘 죽은 범자는 사사로이 도박을 하다 잡혀온 잡범입니다.
대역 죄인도 아닌데 그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예까지 잠입하여 그 자의 목을 취했겠습니까?
현감 : .......
이방 : 진상품 도난과 관련이 있는 자들의 소행이 아니겠습니까? (한숨)
옥사에서 범죄가 죽게 되면 한양까지 장계가 올라간 즉, 그리되면 저는 물론 나리 또한 무사 하시겠습니까?
현감 : (당황스럽다)
이방 :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처리해 두었습니다.
#9. 관아 앞 - 낮
박규가 옥사 안을 성큼성큼 들어간다. 억관이 당황해서 박규를 막으면서.
억관 : (초조하게) 죄 지서 온 양반이 왜 이리 나댕기고 다닌다 마심~
박규, 들은 척도 않고 관아 안을 살피는데,
박규 : 진정 어제 이곳에 들어온 자가 아무도 없단 말이냐?
김포졸 : (누가 오지 않나 초조해하면서) 아무도 없었단 말이심. 빨리 돌아 갑서! 이방 나리가 나오시면...
박규, 의심스럽지만 돌아서 가려다가 다시 포졸들을 보면 포졸들, 다시 빨리 가라 재촉하고, 박규 마지못해 돌아선다.
#10. 바다 속 - 낮
잠녀들이 바다 속을 유영하며 전복을 캐고 있다.
버진, 전복을 발견하지만 이내 숨이 차 바다 위로 향하고.
#11. 바다 일각 - 낮
버진이 바다에서 쑥 올라오며, 바위에 가슴을 철썩하고 붙인다.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버진.
그때 바위 위로 나타나는 튼튼한 다리.
움찔한 버진, 비굴한 표정으로 올려보면, 최잠녀가 두둥 서있다.
끝분(E) : 아유, 무거버라.
보면, 끝분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바위 위로 쑥 올라온다.
끝분, 최잠녀를 향해 환히 웃으며,
끝분 : 물질은 멧 번이고 더 할 수 있주마는, 망사리가 너무 무거워서 잠시 올라 왔수다. 숨도 하나도 안 가쁘고.
(유연하게 심호흡 해 보이고)
고바순 : (신이 나서) 암튼 내 딸이주마는, 정말 난 년이라. 누게 딸하고는 다르제.
최잠녀 : (버진에게) 망사리 올려보라!
버진, 쫄아서 망사리를 번쩍 드는데, 아주 빈약하기 그지없다.
최잠녀 : 니는 무사 몬딱 오분잭이들 뿐이나?
버진 : .....
#12. 바닷가 불턱 - 낮
잠녀부대, 2열 횡대로 서서 마무리 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서못골 상군 잠녀 셋이 홀연히 나타난다. 그 중 중앙에 선 서못골 대상군은 최잠녀 못지않은 덩치를 자랑한다.
고바순이 대열에서 이탈하며 서못골 잠녀들 앞으로 폴짝 나선다.
고바순 : (비꼬듯) 메께라~ 서못골 여편네들이 우리 산방골꼬지 어인 행차라~
서못골 : 대상군. (고바순은 쳐다도 안 보고 최잠녀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바순 : (그래도 계속 말 거는) 오오라~ 잠녀 겨루기 땜시 염탐왔싱게덜~ 우리 끝분이 땜시 왔시냔?
고바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잘난 척 고개를 쳐드는 끝분.
그러나 서못골 대상군은 고바순은 완전 무시하고 최잠녀 앞에 가 선다.
최잠녀와 서못골 대상군, 양대 산맥이 품어내는 카리스마에 모두들 긴장하고...
대상군 : (비웃듯) 금년 푸릉 해역은 우리차지가 되버리겠구멘.
최잠녀 : 여기꼬지 온 거 보니, 우리 산방골 실력이 궁금허여 아주 미차부릴 지경이었는가보네.
대상군 : (빠직~!) ....
최잠녀 : (포스 작렬) 우리가 그렇게 두려운가덜?
대상군 : (잠깐 쫀, 그러나) 무신 게 알 주걱으로 파 먹는 소리나!
최잠녀 : (상대방 진심을 파악하듯 눈 가늘게 뜨며)
대상군 : (당당) 망신당하기 싫음 준비나 잘~합서! 금년 우리 하군 대표는 이제꼬지 본 중에 최고나네!
최잠녀 : (코웃음) 어디서 거들럭거렴서? 시방 거북이가 물개더러 어여 가라 난리치는거라?
서못골 대상군, 씩씩거리며 사라져가고. 산방골 잠녀들 히히덕거리며 좋아한다.
그러나 최잠녀의 얼굴엔 웃음끼 대신 긴박함이 흐르는데... 최잠녀,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버진을 가리킨다.
최잠녀 : 장버진!
버진 : 양!
최잠녀 : 니가 금년에 우리 산방골 하군 대표로 좀녀 겨루기 대회에 나간다.
버진 : (놀라) .....
다른 잠녀들도 무슨 말인가 싶어 놀라고...
종달모 : (놀란) 뭣이라?
고바순 : (놀란 눈으로 최잠녀 보며) 뭐시우꽈?
버진 : (말도 안된다는 얼굴로) 어멍~!
최잠녀 : (말없이 버진 보고...)
끝분, 눈물을 글썽이며 버진 째리고 망사리 고바순 곁으로 가서...
끝분 : (울먹이며) 어멍!!! (뛰쳐나간다)
고바순 : 아이구, 끝분아! (최잠녀 흘기며) 또,또 지 딸만 챙김싱게...
(사람 들 둘러보며) 지난 난바르 때도 보지 않았는가... 톨파리 하나 껴서 오죽 난장을 쳤는지...
종달모 : 거 맞수다...
고바순 : (최잠녀 째리고 끝분 따라간다)
최잠녀 : (여전히 말이 없고) ....
양순모 : 아이고게, 밤새도록 전복 한 단지 따온 거 못봐시냐? 쟈이도 맘만 머그믄 잘헐 아이라.
종달모 : 그것도 맞수다.
최잠녀, 버진을 쳐다보는데...버진, 완전 놀라서 입이 턱 벌어졌고...다른 사람들도 어리둥절해 하는데...
#13. 바다 앞 잠녀 겨루기 대회장 - 낮
향돌이가 나팔을 힘차게 불어대고 있다.
한쪽엔 서못골 잠녀들이 있고, 다른 한쪽엔 산방골 잠녀들이 있다. 다들 비장한 모습들인데...
#14. 대회장 일각 - 낮
끝분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사람들이 오나 안 오나 확인하며, 해초 음료에 저잣거리에서 산 설사약을 넣고 있다.
#15. 대회장 - 낮
열화와 같이 응원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뒤로 바위 위에 선 잠녀들이 바다로 풍덩~
바닷속에서 전복을 캐고있는 잠녀들과 밖에서 응원하는 잠녀들의 모습이 교차되고.
(시간경과)
각 선수들이 따온 전복들의 무게를 비교하는 서못골과 산방골 산방골 최잠녀네가 승리다.
좋아라하는 산방골 잠녀들과 낙심하는 서못골 잠녀들.
#16. 바다 대회장 - 낮
끝분 : 이거 받어!
버진, 끝분이가 환히 웃으며 해초 음료를 내밀자 왠지 어색하기만 한데...
종달, 종순 등 다른 아이들도 쟤 웬일이니? 하는 표정으로 끝분을 바라본다.
끝분 : 뭐 하멘? 얼른 받질 아녀고. 몸에 좋은 해초덜만 갈아서 만든거라.
버진 : 어? 어... (받아 든다)
끝분 : 확 드리키고 심 내서 꼭 이겨야 돼메~
버진 : (감동) 고마워 끝분아.
끝분 : (억지로 먹이며) 얼른 드리키라. 쭈욱~
버진, 끝분의 강요에 음료를 끝까지 다 마신다.
버진 : (활짝 웃으며) 와~ 진짜 심이 쑥쑥 나는 것 같으메!!
끝분 : 참말? (의미심장한 미소 날리고)
버진 : (대회장쪽으로 가며) 응~ 고마워. 끝분아 고마워~
#17. 바위 뒤 - 낮
버진이가 끝분에게 손 흔드는 모습이 보이면 환하게 피어나는 윌리엄의 미소.
나무 가지에 살짝 가리기는 했지만, 제법 잘 보인다.
#18. 바다 대회장 - 낮
푸욱! 전복을 손에 쥐고 올라오는 서못골잠녀. 마치 빨랫줄처럼 생긴 점수판 한쪽에 오징어가 착! 걸쳐진다.
빨랫줄 점수판엔 팽팽하게 오징어가 두 개씩 걸려있다.
향돌이 : 이로써, 산방골과 서못골이 똑같아저 부럿수다. 이제 마지막! 하군 잠녀들의 겨루기가 이스쿠다. 준비 덜 허십서!
최잠녀 앞에 버진이 서 있고...
최잠녀 : (자신의 빗창을 쥐어주며)
버진 : (놀라서 눈만 멀뚱)
최잠녀 : 나가 니헌티 줄수 있는 기회는 이자, 이거 뿐이라. 심내라!
버진 : (자신없는 얼굴이지만 애써 미소 보이는데) 어멍.
최잠녀 : (고개 끄덕) 가라.
버진, 두렵지만 최잠녀가 쥐어준 빗창을 꼭 쥐고 간다. 그런 버진을 걱정스레 보는 최잠녀.
#19. 바위 뒤 - 낮
윌리엄. 버진이 잘 보이는 곳 바위 뒤로 온다. 멀리서 지켜보는 윌리엄. 버진을 발견하고 웃는다.
#20. 바다 앞 - 낮
버진, 몸을 풀고 있는데, 왠지 기운이 없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버진.
버진 : (중얼) 배고파서 그렁가?
그때 서못골 상대가 모습을 나타낸다. 헉! 버진보다 거의 2배는 크다. 성별 구별이 불가능한 완전 여자판 효도르.
버진, 완전 쫄았는데...들려오는 응원 소리.
필립(E) : 물질을 덩치로만 허나!! 산방골 최고 잠녀! 장버진~!!
버진,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면, 미친 듯이 응원하는 필립 옆에서 마을 사람들도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다.
힘을 받는 버진. 응원하는 사람들 틈에서 박규가 버진을 보고 있다.
허둥지둥 수경을 쓰는 버진.
효도르 : (이상하게 보며) 그건 또 무싱거?
버진 : 눈 마갠디...
효도르 : (가소롭게 보고) 아이고 참~
#21. 바위 뒤 - 낮
윌리엄 시선으로 출발 바위 위에 선 버진의 모습이 보인다. 두 손 꼭 모아 버진의 승리를 기원하는 윌리엄.
#22. 바다 위- 낮
함성소리와 나팔 소리에 들리고, 바다 속으로 퐁당 뛰어드는 버진과 효도르.
#23. 바다 속 - 낮
헤엄쳐 내려가는 버진과 효도르.
버진, 이리저리 전복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이, 효도르가 먼저 큼지막한 전복 두 세개를 한꺼번에 캐서 위로 올라간다.
#24. 대회장 - 낮
종달, 종순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옆을 보고 있다.
보면, 끝분이 물질 옷을 입은 채 완전 열 받아 씩씩거리고 있다.
종달 : 끝분아! 너 지금 뭐하고 있싱거?
끝분 : (당황) 아니 그냥...몸이 찌뿌둥 해가지고...
종달 : 푸하하하!! 혹시 버진이 못 하게 되믄 대신 나가려고?
끝분 : 아니라! 나가 무슨 버진이 따위... (열 받는) 야! 전복이 조개 대신 허능거 본 적 있나?
종달/종순 : (웃으며) 에이~
끝분, 씩씩거리며 걸어가지만, 종달과 종순, 뻔하다는 표정으로 킥킥거린다.
#25. 바다 속 - 낮
버진, 전복을 발견하고 따려고 하는데, 점점 눈앞이 흐릿해진다.
#26. 바다 위 +해변 - 낮
전복을 양손에 들고 수면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효도르. 환호성을 내지르는 서못골 응원단.
완전 풀 죽은 산방골 사람들.
고바순 : 이것 보렌~ 나가 요짝 날 줄 아랐주게. 우리가 아멩 최좀녀 멤을 안다혀도, 버진이가 하군 대표라니 말이 돼메?
(서못골 환호소리가 들리고) 아따~ 저짝은 또 캐 갖고 올라와싱게.
바다 위 효도르가 전복을 손에 들고 웃고 있다.
사람들 뒤에 서있던 박규가 최잠녀 가까이로 다가온다.
박규 : (최잠녀 향해 진지) 이보게, 이리 안 나와도 정말 괜찮은 건가?
최잠녀 : (평정을 찾으려는) 걱정말라게. 우리 버진이 경 약허질 아녀나네!
박규 : (걱정스러운 듯 바다를 보고)
#27. 바다 속 - 낮
버진, 전복을 캐려하는데 다시 눈앞이 흐릿해지고..
수경 때문일거라 생각한 버진, 수경을 벗고 전복을 캐려하는 순간, 숨 쉬기 힘들어 지면서 정신을 잃는다.
버진의 손에서 떨어지는 최잠녀의 빗창. 빗창은 바다 속으로 속으로...
#28. 바위 뒤 - 낮
윌리엄, 초조하다. 바싹 말라가는 입술. 바다만 눈이 빠져라 바라보는데...
#29. 대회장 + 바다 위 - 낮
사람들, 해변에 모여 웅성거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바다에서 누가 올라온다. 기대하고 보면...또 효도르다.
뭔가 잘못됐어!!
양순모 : (불안) 참말로 이상허넨. 혹시 잘못된 거 아니라?
종달모 : (불안하지만 애써) 에이, 불길한 소리 허지 마심.
최잠녀 : (걱정스럽다)
#30. 바다 속 - 낮
윌리엄, 벌떡 일어나더니 바다로 그대로 다이빙해 들어간다.
#31. 대회장 - 낮
고바순 : 앗따, 갑자기 옛날 석구네 생각나싱게. 기억들 안나쿠라? 물질 허다 발이 바위 사이에 껴서 못 나왔자나.
일동 : (고바순 째리고) !
최잠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바다 쪽으로 뛰어간다. 뒤따르는 종달모.
#32. 바다 위 - 낮
최잠녀와 종달모,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33. 바다 속 - 낮
윌리엄, 버진을 찾아 미친 듯이 바다 속을 헤엄친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정신을 잃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버진을 발견하는 윌리엄.
윌리엄, 가라앉으려는 버진을 데리고 수면 위로 향한다.
#34. 또 다른 해변 - 낮
박규, 미친 듯이 해변을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며 바다 쪽을 살펴본다.
숨이 가빠서 헉헉거리는 박규, 간신히 힘을 내어 큰 바위 뒤를 지나 다른 해변으로 들어서는데... 바위 뒤로 금발 머리가 보인다.
그리로 허둥지둥 달려가던 박규의 발걸음이 딱 멈추고 만다. 윌리엄이 누워있는 버진에게 입을 맞추고 있다.
흡사 숨이 멎은 듯 완전 굳어버린 박규의 얼굴.
입술이 맞닿은 윌리엄과 버진.
완전 분노해 피가 거꾸로 솟는 박규의 얼굴. 윌리엄에게 다가가 얼굴을 한 대 친다.
박규 : 이게 무슨 짓이냐!
윌리엄, 쓰러진 채 박규를 째려보고는 다시 버진에게 인공호흡을 하려고 달려든다.
박규, 윌리엄을 거칠게 밀어내고 멱살을 잡고는.
박규 : 배은망덕한 놈!! 저 아이가 그리 보살펴 주었건만!!
윌리엄 : (답답한) 버진 위험해... (다시 버진에게 다가가려 하면)
박규 : (잡고는 분노에 차서) 저 아이를 다시 만날 생각 하지 말거라!!
윌리엄 : (박규를 노려 보는데) .....
이때, 멀리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버진아~' '장버진, 어딨냐~'
흠칫 놀라는 윌리엄. 어찌해야하나 주저하는데...
박규 : (차갑게) 이제 가라. 사람들에게 잡혀도 난 널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박규, 윌리엄은 내팽개치고 버진의 상태를 살핀다.
윌리엄, 그저 슬픔과 걱정이 뒤섞인 눈으로 멍하니 버진을 바라보는데,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는 버진. 가슴이 살짝 오르락내리락, 숨 쉬는 게 느껴진다.
윌리엄. 그 모습에 다소 안심이 되는데.
박규, 버진의 몸을 아무리 흔들어도 반응이 없자, 버진의 뺨을 톡톡 두들기다
안되겠다 싶어 버진을 번쩍 안아 들고 사람들이 오는 쪽으로 간다.
버진을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윌리엄, 결국 마지못해 발걸음을 돌린다.
#35. 산방골 전경 - 오후
#36. 버진 방 - 오후
버진이 서서히 눈을 뜬다. (C.U.)
흐릿하게 보이던 천정이 점점 선명해져간다. 뒤이어 들리는 물소리.
원빈의 얼굴이 쓱 나타나며, 버진의 이마 위 물수건을 갈아준다.
깨어난 버진.
원빈 : 버진아? (다시 살피곤) 이제 정신이 드나?
버설 : (걱정스럽게 버진이를 쳐다보고 있고)
버진 : ...아방.
원빈 : (따끔하게 훈계) 정 심들다 시프믄 올라와야지! 그까짓 겨루기 장이 뭐라고 니 목숨꼬지 걸고 그러난?
버진 : ......
원빈 : 니 목숨, 니 것만이 아니다. 니 그러구 가블믄, 남은 우리 세 식구 온전히 살 수 있을 것 같으나?
버진 : (뭉클) 미안허우다...
원빈 : (속상하고) .....
버진 : (원빈 옆 최잠녀 보곤) 난 아멩허도 어멍 가튼 좀녀되긴 심들거 가 타.
원빈 : (잠녀 눈치 살피곤) 허드렁한 소리 말구, 몸조리나 잘 허여. 니 선비님 아니었으믄 큰일 날 뻔 했심.
버진 : ...?
최잠녀, 물수건을 버진 이마에 올리고 버진이 손을 이불 속으로 넣어준다.
최잠녀 : (버진 물끄러미 보다) 다시는 글허지 말라.
최잠녀, 수건 간 물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최잠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버진, 먹먹한 기분으로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는데,
#37. 버진이네 마당 - 오후
최잠녀가 나오자, 방문 앞에 모여 있던 잠녀들과 필립, 한쩍벌이 최잠녀 주위로 몰려든다.
박규도 뒤에서 궁금한 지 귀를 쫑긋 세우고, 무심한 척 슬쩍 듣고 있다.
걱정스런 얼굴로 맨 앞에 서있는 끝분.
끝분 : 아즈망... 버진이 괜찮우꽈?
최잠녀 : (어깨 다독이며) 걱정들 허지 마라. 하루 이틀 푹 쉬고 나면 나슬거 나네.
끝분 : (어찌 고백해야 하나 싶은데) 저..저기... 아즈망..., 실은...
고바순 : (깐죽) 애초에 선수를 잘못 뽀븐게 문제인거라~ 버진이 대신 우리 끝분이가 나갔으믄,
고 덩치가 산만한것을 단박에 이겨쁠지 아녔어.
최잠녀 : (말없이 보고 있고) ......
고바순 : 이제 버진이 땜시 푸른 해역 빼겨부러서 올해 바다 농사 어떵 할거 우나?
끝분 : (옆구리 찌르며 나직이) 어멍... 그러지마심...
고바순 : 야가 왜 이러니? 고만 있시믄 누게가 알아 줄 커나?
끝분 : (바순의 눈치없음에 짜증) 어머엉! (휙 달려나간다)
고바순 : 끝분아! 아 야! (‘쟤가 왜 저러나?’싶어 보는데)
한쩍벌 : (끝분이를 부르며 쫓아 나간다)
양순어멍 : 경해도 버진이 안다친게 얼마나 다행이우꽈...
강진댁 : (박규 보며) 어찌 선비님이 또 버진이를 도와주셨네~
종달모 : (놀리듯 박규 향해) 이참에 아예 버진이랑 식 올리고 여기서 한 집 살림 차려봅서, 선비님!
박규 : (당황스럽고) 흠!....
종달 : 아유~ 어멍! 아멘 그래도 귀양다리도 눈이 있주~ 어디 천하 박색인 버진이를...
종달모 : (눈치없이 웃으며) 기주게~
양순모 : 에이구, 우리 복만이는 이제 어떵 할거라게. 그새 색시 뺏기뿐 나네.
필립 : (뿔난 표정으로) 필립이거든요?
제사장이 오자 사람들이 입을 닫고 좌우로 길을 터준다.
향돌을 거느리고 나타난 제사장에게 인사를 하는 마을 사람들.
제사장 : (최잠녀에게) 그래, 여식은 괜찮은가?
최잠녀 : 예에. 심려 끼쳐드려 송구스럽수다.
제사장 : 아닐세. 마을을 위해 애쓰다 그리 되서, 나 마음도 편치 않으요. (향돌이에게 눈짓을 보낸다)
향돌이 : (원빈에게 종이에 싼 것을 내민다) 이거 바듭서.
최잠녀 : 이..이게 무싱거?
제사장 : 놀라 기력이 떨어질 때 몸을 보허는 약이라. 나 한 첩 지어왔시난.
최잠녀 : (약 받아들고, 감동) 어찌 이리 귀한 약을 다 주시믄... 고맙수다. 어르신. (꾸벅 인사한다)
마을 사람들도 다 감동에 찬 시선으로 제사장에게 고개숙여 인사한다.
박규도 눈 여겨 바라보는데, 제사장과 눈이 마주친다.
제사장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건네는 박규.
#38. 필립 오두막 - 오후
박규에게 맞은 부분 벌겋게 부어있고, 입가에 피가 말라붙은 윌리엄의 얼굴.
윌리엄, 물 먹인 천으로 대충 상처를 닦아내는 중이다.
윌리엄 : 버진..., I wonder if she's alright. She must be right? 괜찮을까? 죽진 않았겠지? (걱정스런 한숨)
나... 버진 눈 뜬 것도 못 봤는데...
얀, 모닥불 앞에 앉아 있다.
얀 : (툭 뱉어내듯) 바보들은 원래 명이 긴 법이야.
윌리엄 : 박규, 날 나쁜 사람인 것처럼 쳐다봤어. 뭔가 오해하는 거 같아. 나... (걱정도 되고, 화도 나고)
I just.., 버진 살리려고 그런 건데...
얀 : (냉랭하게) 이곳 사람들이 널 이해해 주리란 생각은 버려. 넌 결국 이방인일 뿐이니까. 원래 조선은 폐쇄적인 나라야.
얼굴색만 달라도 지레 겁먹고 지들을 헤치려는 줄 알고 먼저 죽이려고 하지.
윌리엄 :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버진은 안 그런데...
얀 : 버진 걔가 이상한 애야.
윌리엄 : 아니야.
얀 : 어차피 떠날 곳인데, 쓸데없는 정 따윈 주지 않는 게 너한테도 좋아.
곧 다시 떠날 방법을 찾을테니까 이제 그 아이는 잊어버려.
윌리엄 : (상처받은 표정으로 얀을 바라보는) !
문이 벌컥 열리고 얀과 윌리엄 모두 놀라 경계를 하는데, 필립이 숨을 헐떡이며 서있다.
필립 : (얀에게) 죄송허우다 형님. 늦어서...형님, 가시죠~
얀이 윌리엄의 눈길을 무시하고 일어선다. 윌리엄, 무슨 일인가 싶고...
#39. 포구 전경 - 오후
멀리 아래로 보이는 포구에 정박한 배들이 보인다.
선주(E) : 낭가삭기?
#40. 배 안 - 오후
배 위 한쪽에는 상자들이 산적되어 있고, 거드름을 피는 선주 뒤에 필립과 얀이 서있다.
필립은 얀과 선주의 눈치를 번갈아 살피고 있다.
선주 : (얀 힐끗 보며) 뭐 두둑이 생기는 거라도 있으믄 또 모르카...
얀 : ...그럼 돈만 확실히 되면 나가사키까지 가주겠다는 말인가?
선주 : (냉큼) 물론이라! 낭가삭기 가는 게 무사게 어렵겠으까? 배 타고 나가믄 대마도나 낭가삭기나 다 거기가 거긴디.
얀, 선주의 속을 알았다는 듯 피식 웃는다.
얀 : 대마도라면, 요시키 상단과 거래하나?
선주 : 아니, 요시키상을 암수꽈?
얀 : (씨익 웃으면)
선주 : 요시키상 아주 훌륭한 왜인이우다.
얀 : (비웃는다) 요시키도 조선 상인들은 아주 좋게 평가하더군. 조선의 밀무역꾼은 모두 바보들이라 물건을 헐값에 넘긴다고.
선주 : (열받는다) 뭐라?
얀 : 대마도 최고 상단은 서양 물품만 취급하는 후지다 상단이야.
그분과 거래만 튼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두 배는 이문이 남을 것이다.
선주 : (얀을 보며) 후지다 상단도 아시우까?
얀 : 그 분이 내 삼촌뻘 되신다.
선주 : (잘 하면 좋은 줄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입맛을 다신다) 삼촌...이면 얼마나 친한 삼촌이신지...
당최 왜인들 속은 알 수가 없어서...
얀 : 나도 조선인 속은 잘 모르니... 대마도 가서 장사 자~알 하시오!
미련 없이 돌아서는 얀. 필립이 다급해 선주를 다그친다.
필립 : 뭐함수꽈. 저 분이, 그 뭐냐, 동인도회사에서 거의 대장 해먹는 분인데 후지다 정도는 개발에 피 아니우꽈.
결심한 선주, 얼른 얀을 부르며 뛰어간다.
선주 : 나으리~ 나으리~ 좀 봅서.
걸음을 멈추는 얀. 얼굴에 묘한 미소가 번진다. 돌아서면 선주기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서있다.
선주 : 저희가 지금 물견이 다 안차서... 쪼금만 지달리시믄 바로 닻 올리거 우다. 초여드렛날 새벽 물때 떠날거우다, 예.
얀 : (음...썩소..)
#41. 언덕 위 - 오후
전치용이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전치용 뒤로 다가서는 한 남자, 향돌이다.
향돌 : 오늘 밤 결행하겠수다.
전치용 : 관아의 눈을 돌릴 만큼 충분한 수량을 실어야 한다.
향돌 : 믿을만한 아이들로 준비했시난. 염려 놓읍서.
전치용 : 염려 놓으라는 말 믿고 있다가 결국 예까지 내려오게 만들지 않았나.
향돌 : (움찔) 죄송하우다 나리.
전치용은 냉정하고 향돌이는 죄스러운 얼굴이다.
전치용은 향돌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돌아선다. 전치용의 뒤를 향해 깊숙이 예를 올리는 향돌.
#42. 버진이네 마당 - 밤
상도 없이 평상 바닥에 해초와 고추장, 겡이주가 놓여있다.
술병을 드는 최잠녀, 박규가 술을 받아 들이킨다. 최잠녀가 손으로 해초를 집어 고추장에 팍 찍은 다음 박규에게 준다.
최잠녀 : (마지못해 툭 던지듯) 고맙다게.
박규 : (보면) .....
최잠녀 : (한잔 먹고) 당분간 초신 짜는 것도 잠 쉬고... 밭일도 잠 쉬고...
박규 : 싫단 애를 억지로 물에 들여보낸 것이 잘못이지.
최잠녀 : 니는 시방 좋아서 귀양다리 하나? 탐라에서 여자로 태어났으면 좀녀로 살아야지, 좋고 싫고가 어딨샤?
박규 : 고양이 산으로 보낸다고 호랑이 되는 거 아닐세.
최잠녀 : 누게가 호랑이 만든다 했심냐. 경해도 넘들 만큼은 물질을 해야 서방 건사도 하고 멕여 살릴 거 아니라.
박규 : (답답/한숨) 아낙이 서방을 먹여살린다니. 해괴하기 그지없는 언사구나. 한양에서는..
최잠녀 : (말 자르며) 여기는 탐라라.
박규 : ........
#43. 버진의 방 - 밤
잠들어 있는 버진 머리맡에 다 먹은 빈 약그릇이 놓여있다. 버설이는 버진이를 꼬옥 안고 잠들어 있고.
최잠녀(E) : 나가 평생을 해줄수만 있시믄야 버진이 저것을 바당에 내보내지도 않았을 커구만.
#44. 관아 집무실 - 밤
이방 : 초여드렛날 새벽이란 말씀이십니까?
탁자를 사이에 두고, 전치용과 이방이 진지한 얼굴로 마주 보고 앉았다.
이방 : 허면 내일 모렌데...
전치용 : 새벽 물때에 뜨는 장삿배가 하나 있을 것이다. 확실히 물건이 있을 때 잡아야 하니 출발 직전에 급습하도록.
이방 : 그 자들이 진상품 도적이 확실한 것이옵니까?
전치용 : (이방을 매섭게 노려보고)
이방 : (움찔한다) .......
#45. 배 위 - 밤
어둠에 잠긴 포구를 은밀히 움직이는 일군의 사람들. 남자들이 배에 올라 기존에 있던 짐과 바꿔치기를 한다.
#46. 배 위 - 밤
선주와 선원 몇이 코를 골며 깊이 잠들어 있다.
배 위에서 향돌 수하들이 짐 옮기는 소리가 들리자 선주는 잠깐 코골기를 그쳤다가 몸을 뒤척이며 다시 잠에 빠져든다.
#47. 산방골 아침 풍경 - 아침
물허벅을 지고 우물가로 향하는 아낙들.
#48. 버진이네 집 마당 - 아침
꿀꺽꿀꺽~ 약사발을 열심히 마시는 버진. 평상에 앉아있다. 사발을 탈탈 털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신다.
버진 옆에 앉아 그 모습을 흐뭇한 듯 바라보는 버설.
버설 : 언니, 이젠 지운이 쪼꼼 나는 거 같으멘?
버진 : (신난) 응. 태역섬꼬지 그냥 막 헤엄쳐서 갈 수 있을 것 같은거. (그러다 미안해지는) 아! 니두 쪼꼼 마시게 남길걸...
버설 : 아니라, 어르신이 언니 땜에 약 지어온거나네. 긍께 빨리 지운차려서 열심으로 물질 합서.
버진 : 응~!
버설, 버진을 향해 빙긋 미소를 짓고는, 약사발 가지고 정지로 들어간다.
버진, 미안한 마음 잠시, 평상에 팔랑 드러눕는다. 심심하다. 몸이 근질거린다.
버진 : 농땡이 칠 땐 몰랐주만은.. 놀라고 허니, 노는 것도 심든게. 물이나 뜨러가야겠심!!
버진, 벌떡 일어나는데 어느새 물허벅을 지고 나오는 버설.
버진 : (놀라) 버설아~!
버설 : 언니는 쉬어. 나가 갔다 오커라.
버진 : (도리도리) 아니라! 나가 가키여~
버설 : (단호) 안 되메! 언니는 아직 푹 쉬어야 허멘.
버진 : (버설의 포스에 대꾸도 못 하고)
버설, 커다란 물 허벅을 지고 밖으로 총총 나간다.
버진, 그런 버설이 고마워 뒷모습 바라보다가 박규의 방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자기도 모르게 살짝 부끄러운 미소를 짓는다.
원빈(E) : 선비님 아니었음 큰일날 뻔 했심.
버진, 살짝 부끄러운 미소를 짓는다.
#49. 버진이네 부엌 - 낮 (몽타주)
무를 착착 채 써는 버진의 손 / 메밀가루에 소금과 물을 넣고 반죽을 한다. /솥뚜껑에 전병을 부치고 /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메밀전병에 무채를 넣어 돌돌 말아 빙떡을 완성.
완전 만족한 버진의 표정.
#50. 버진이네 마당 - 낮
빙떡 접시를 두 손으로 들고 나오는 버진. 박규의 방 앞이다.
버진 : (부끄러워 미적거리며) 어이~ 귀양다리~ 쪼꼼 일로 나와보란~ (계속 묵묵부답) ...?
(버럭) 귀양다리. 일루 나와 보라니까~~
그러나 여전히 박규의 방문은 열리지 않고.
버진, 박규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는데, 방에 아무도 없다.
어라~ 버진이 당황해서 고개를 들이밀고 방 구석구석을 살피는데,
박규 : (뒤에서) 남의 방에서 뭐 하는 게냐?
버진 : (화들짝 놀라 뒤돌아본다. 빙떡을 뒤로 숨기며 박규 앞으로...)
박규 : 망아지! 도대체가 예의라곤 개미허리만큼도 없구나.
박규, 피식 웃곤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버진이 빙떡을 앞으로 쑥 내민다.
버진 : ..머거봐. 빙떡이라...
박규 : (빙떡과 버진을 번갈아가며 보다가) 니가 만들었느냐?
버진 : (고개 끄덕끄덕)
박규 : 먹고 탈이나 안 나면 다행이겠구나.
버진, 박규 말에 삐죽하는데 박규, 버진의 손에서 접시를 싹 빼앗아들곤 평상으로 들고 가 먹는다.
버진, 박규의 태도에 놀라면서도 슬금슬금 다가간다.
버진 : (조심스레) 어때? 맛 이시멘?
박규 : (버진을 슬쩍 보곤) 과히 나쁘지는않구나.
박규의 말에 기분 좋아진 버진, 환한 얼굴로 박규 옆에 앉는다.
버진 : (박규를 슬쩍 쳐다보곤/부끄러운 듯) 저기..., 나 무러볼 게 이신디...
박규 : (버진 보고)...?
버진 : 흠...다덜 그러든데... 귀양다리가...나 바다에서 구해준거라?
박규 : (먹던 빙떡 목에 걸리고 / 대답 못하는)... ...
버진 : (말간 얼굴로 계속 쳐다보는, 대답 요구하는 눈길) 응? 응?
버진은 박규의 침묵이 긍정의 대답으로 생각하며 다소 부끄러워한다.
그저 말없이 빙떡 접시만 박규 쪽으로 쓰윽 밀어주곤, 자기도 하나 집어 먹는다.
버진의 입 옆으로 묻는 무채 조각들을 본 박규, 쯧쯧 거리며 무의식중에 손가락으로 버진 뺨에 묻은 무채를 닦아주는데,
순간 마주치는 둘의 눈동자.
급당황한 버진과 박규, 화들짝 시선을 돌리며 미친 듯이 빙떡만 씹어댄다.
#51. 포구 앞 - 낮
패랭이도 삐뚤어지고, 옷도 엉망이고, 눈도 완전 풀린 봉삼이가
이제 막 포구에 도착한 나룻배에서 사람들을 마구 밀치며 허겁지겁 배에서 내린다.
#52. 산방골 입구 - 낮
보퉁이를 메고 오는 봉삼. 산방골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영 성에 차지 않는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쳐다보면, 까르르 웃으며 종달, 종순, 끝분 셋이 망태기를 들고 오고 있다.
셋의 잠녀복 패션을 보는 봉삼.
봉삼 : (못마땅) 음마... 가시나들... 참으로 망측스럽네. 저게 다리다냐 밭에서 자란 무 다냐.
끝분, 종달, 종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봉삼을 째려본다.
끝분 : (째려본 채 포스있게) 무싱거?
봉삼 : (무섭지만 용기내어) 야야, 박규 도련님이 머무시는 곳이 어디냐?
끝분 : (허리 손) 누게?
봉삼 : 박.규.
일동 : (??/ 동시에) 누게?
봉삼 : (답답한) 백 리 밖에서도 광채가 나시고, (박규 미소 따라하며) 이 미소 한 번에 장안의 여자들이 까르르 자지러진다는
우리 박규 도련님을 모르냐? 이 미개한 것들아~
끝분 : (코웃음/버럭) 누게가 누게보고 미개허다 그러나? 어디서 눌린 북어 대맹생이 같이 생겨 먹은 게 하나 굴러 들어와서는.
끝분이 봉삼을 확 밀어버린다.
봉삼, 예기치 않은 공격에 당황하며, 넘어지면서 끝분을 확 잡아당긴다. 넘어진 봉삼 위에 포개지는 끝분.
종달/종순 : (동시에) 어메!
끝분, 풀어진 저고리를 보곤 놀라 봉삼의 뺨을 때리고.
끝분 : 어우 야! 미쳤어~!
끝분이 재빨리 몸을 일으키면서, 손에 든 망태기를 넘어진 봉삼에게 날린다.
일어나려던 봉삼. 눈앞에 날아오는 망태기에 눈이 번쩍!!
#53. 버진이네 마당 - 낮
만신창이가 되어서 버진이네 집 앞에 서 있는 봉삼. 봉삼이의 눈에 보이는 버진이네 집 풍경.
홰를 치고 다니는 닭 / 돗통 돼지 울음소리 / 꾀죄죄하기 그지없는 세간 / 평상에 앉아 밥을 우악스럽게 입에 넣는 버진 /
버진, 봉삼을 발견한다.
버진 : (입에 가득 넣고) 어엏게....왔수과.... (어떻게 왔어요?)
봉삼 : (고개를 젓고) 하따... 꼬질꼬질... 드러워서... 여긴 아닐 것이다.
밖으로 다시 나가려는데, 박규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규(E) : 허허! 버설이 너 참 대단하구나~
익숙한 목소리에 발길을 멈추는 봉삼. 설마 싶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돌아보는데.
#54. 박규의 방 앞 툇마루 - 낮
새끼를 꼬다말고 버설의 그림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 박규.
‘최잠녀에게 혼나는 버진과 옆에서 새끼 꼬는 원빈’ 등이 그려있는 그림이다.
박규 : (감탄하며) 세필로도 표현하기 힘든 섬세한 화풍을 꿩꼬리 붓으로 표현을 하다니...
이 서민적이고 풍자적인 작풍을 질펀한 만자에 그림 화자를 써서 ‘만화’라 부르는 건 어떻겠느냐?
버설이 손을 헝겊에 쓱쓱 닦고 박규가 들고 있는 그림을 쉬크하게 뺏는다.
버설, 먹물을 놓고는 꿩꼬리 펜으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봉삼 : 되련님!
박규, 고개를 들면, 봉삼이 충격 받은 얼굴로 옆에 와 있다.
봉삼 : (울먹이며) 지요! 봉삼이어요~!
박규 : (놀라) 너? 봉삼이!?
봉삼 : (박규의 다리 쪽에 얼굴을 묻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한다)
박규 : (당황스럽고)
버설 : (박규의 놀란 얼굴과 봉삼의 놀란 얼굴 번갈아 보는데)...?
버진 : (입에 가득 음식 넣고 갸우뚱)
#55. 박규의 방 - 낮
봉삼, 박규 앞에 공손히 무릎 꿇고 앉아 있고, 박규는 근엄하게 봉삼을 바라본다.
박규 : 한양은 어떠하냐?
봉삼 : 야아. 대감마님 마님 모두 건강하시고라. 거시기, 마님은 그저 되련님 걱정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당게요.
박규 : (순간 애잔한) ...
봉삼 : (방 안을 여전히 둘러보며 화가 치미는) 이게 뭐당가요? 이게.
박규 : (킁) ...짐은 잘 챙겨 왔느냐?
봉삼 : 야. (짐보따리 내밀며) 요것은 책이고요.
봉삼, 계속 투덜거리며 작은 보따리를 박규에게 내민다.
봉삼 : 마님이 되련님 주라고 녹용에 산삼에 장뇌삼에 뱀술에 바리바리 싸 주셨는데, 대감마님마께서 다 뺏어가셨어라..
(순간 씨익) 그래도 지가 요거 하나만큼은 끝까지 지켜냈어라. (자랑스레 산삼 한 뿌리를 품에서 꺼내 보인다/뿌듯)
요것이 백년 묵은 산삼이어라.
박규 : (그러나 관심 없고) 이것 말고 다른 것 있지 않느냐?
봉삼 : 아~!
봉삼,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마구 마구 끄집어내려 한다.
봉삼 : (의기양양/헤헤헤) 다른 것도 아니라 쩐이라서리. 조심에 조심을 거듭허면서...
이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여는 최잠녀.
놀란 봉삼은 허겁지겁 전대들을 가리는데 번갈아가며 봉삼과 박규를 쳐다보는 최잠녀.
봉삼 : (당황) 어허...이 아줌씨가...어디서 함부로 우리 되련님 방을 활딱활딱 열고 그런다요?!
박규, 슬쩍 몸을 돌려 앉고, 최잠녀, 성큼성큼 박규 방으로 들어온다.
최잠녀 : (봉삼 보고) 어떵허난 못 보던 얼굴이 이서?
봉삼 : (포스에 눌려 박규를 바라보면) ...?
박규 : (움찔하며) 한양서 온.., 내 하인이요.
버진 : (뒤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기웃거리는)
최잠녀 : 그 말은 입이 하나 더 는다는 말이라?
봉삼 : (버럭) 이보슈! 어디 감히 지엄하신 우리 되련님한테 말이 반토막이오?
감히 우리 되련님이 어떤 분인 줄이나 아시고 그러시오?
최잠녀 : 자알 알주게... 부녀자 희롱...
박규 : (말을 끊으며 봉삼에게) 됐다. (다시 최잠녀에게) 이 아이는 이 집이 아니라 객주에서 머무를 것이네.
내 귀양 온 처지라 하는 수 없이 여기 머무르지만, 이 아이마저 고생을 시킬 순 없지.
최잠녀 : 잘 생각했져. 혹여 음식 퍼다 메길 생각은 꿈에도 허지 마라!
여기 왕 얼마나 쳐먹어 댔는지 만날 솔통이 텅 빈 게, 구멍 난 줄 알았주게.
봉삼 : 그게 무슨 말이라요? 우리 되련님 얼굴은 되려 반쪽이 되었구만.
최잠녀 : (버럭) 경허믄 도독 고냉이가 훔쳐 먹었단 말이라?
박규와 봉삼, 최잠녀 포스에 아무 말도 못하고 움찔한다. 나가려다 봉삼을 휙 돌아보는 최잠녀.
최잠녀 : 생긴거 허고는...
휙 문 닫고 가버리는 최잠녀. 봉삼, 어안이 벙벙한 듯 박규를 바라본다.
#56. 버진의 집 마당 - 낮
버진이 박규의 방을 살펴보려고 하는데, 방에서 나오는 박규와 봉삼.
봉삼, 박규의 신발을 정성스레 놓아준다.
박규, 버진과 눈이 마주치자 겸연쩍은 듯 시선 피한다.
버진 : (다가와) 귀양다리, 어디가나?
봉삼 : (빠직) 요, 가시나 보게, 뭐라?! 귀양다리?
박규 : (위엄있게) 어허! 봉삼아.
봉삼 : (깨갱) ...
박규 : (버진 한번 보곤 말없이 돌아서는데)
버진 : 혹... 복만네 가나?
박규 : ......?
버진 : (씨익) 잠깐만! (자신의 방에서 보따리 하나 가지고 나와 정지를 살피곤 박규에게 주며) 이기 일리암 갖다주라.
박규 : (받지 않고) 앞으로 내 앞에서 그 놈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거라. 그리고 명심하거라. 다신 그놈을 만나선 안 된다!
(가려하면)
버진 : (박규의 말에 상처받고) 귀양다리. 나 구해줘분건 고메운데. 이건 아니라마씸.
박규 : (돌아보면)
버진 : 일리암 불쌍헌 사람이라. 걱정허고 챙겨주야 동무로서 마땅헌 기다.
박규 : 동무? 허! 그 놈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아느냐?
버진 : (갸웃) 무신 소리 허멘? 일리암이 나헌티 어쨌다 고럼서?
박규 : (봉삼 의식하고 버진을 한쪽으로 데려가) ...그놈이 너를... (누르며) 됐다. 그냥 들어가기나 하거라.
버진 : (박규 붙들고) 뭔데 고람서? 말하라. 일리암이 왜?
박규 : (망설) ...
버진 : (재촉) 일리암이 나한테 왜?!
박규는 봉삼과 함께 나가고. 버진은 그 자리에 굳어 서선 고개만 절래절래 흔든다.
#57. 산방골 마을 - 낮
박규는 버진에게 한 말이 미안하다. 걸음이 무거운데.
봉삼은 박규를 힐끔거리며 따라가는데...
봉삼 : (눈치 보곤) 쪼메 이상합니다요.
박규 : 뭐가 말이냐?
봉삼 : 되련님 말입니다요.
박규 : ......?
봉삼 : 어찌 천출 계집애하고 말을 다 섞으신다요? 한양에서는 허벌나게 곱고 어여쁜 아씨들에게도 말은 고사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되련님이었는디요!
박규 : (뜨끔한데) 흠!
봉삼 : (갸웃) 되련님, 혹시? 저 물질하는 천출헌티 맘이 있어 그런건 아니지라?
박규 : (포스 작렬로 봉삼보면) ...!
봉삼 : (꼬리 바로 내려주며) 아..아니지라~ 우리 되련님이 어떤 분이신데...
박규 : 그럼 어서 가보거라.
봉삼 : 야? 어디 가시는지 모르지만, 이자 제가 되련님을 뫼시고 다녀야..
박규 : (끊으며) 어허!
봉삼 : (움찔)
박규 가고. 봉삼은 목 빼고 박규 보다가 신나게 촐랑거리며 저잣거리 쪽으로 간다.
#58. 필립 오두막 - 낮
돌하르방을 손에 쥔 채 그물침대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윌리엄. 누군가가 오는 듯 한 인기척에 보면.
할아방 : 푸른 눈 소나이. 허허허...
윌리엄 : 할아방... (돌하르방 보며) 나... 사람들한테 이렇게 무서워 보여? (쓸쓸한 미소) ...슬프다.
할아방 : 외롭구나. 누구나 고향을 떠나면 외로워지는 법이지. (아득한 시선)
윌리엄 : 하지만 여긴 버진이 있는데...My little mermaid.., 버진. (미소지었다가 다시 표정 어두워지며) ...버진 괜찮을까?
할아방, 짚새기 가방에서 기다란 엿을 꺼내, 윌리엄 입에 쑥 물려준다.
할아방 :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심하게.
할아방, 웃으며 사라진다.
윌리엄, 어두운 얼굴 그대로 엿만 쩝쩝. 고민하는 듯...
#59. 도박장 - 낮
골패를 손에 쥐고, 판에 앉은 사람들을 쓱 둘러보는 박규의 눈동자. 골패에 열이 올라있는 다양한 복장, 다양한 계층의 사내들.
박규 : (능청스럽게) 지난번에 왔을 땐 최상품 녹용이 있었는데...
꾼3 : 아! 나도 그 녹용 본 적 있신디, 잘도 실하더만.
박규 : (눈 날카로워지며) 그 녹용을 가진 자가 누군지 아는가?
꾼3 : 뭍에서 온 장사꾼이라는디~
박규 : 장사꾼이면 객주에서 묵겠군.
꾼3 : 객주가 아니라 기방이주게.
박규 : 기방...?
꾼1 : 기방하면 해월관이우다. (입맛 다시며) 아, 애향이 엉덩이 만져 본 지 언젠지 모르키여... 쩝...
박규 : (눈빛 번쩍) 해월관이 어디 있는가?
#60. 해월관 앞 - 낮
‘海月官(해월관)’이라고 쓰인 현판과 여러 색상의 동그란 등. 아직 대낮이라 드나드는 사람이 없다.
박규가 문 앞에서 크게 소리를 지른다.
박규 : 이리 오너라~
#61. 해월관 기방 - 밤
한 기생이 얌전하게 절을 올린다. 그리곤 고개를 요염하게 살포시 쳐들며,
애향 : 소녀를 찾으시었다구요 선비님. 애향이라 하옵니다.
박규 : (술잔을 비운 뒤) 자, 너도 한 잔 받거라.
애향 : 감개무량하옵니다... (눈웃음 다시 한 번 작렬...)
박규가 술을 따르다 말고 애향을 바라본다.
박규 : 가만... (냉정하게 술 치우며) 아니되겠구나.
애향 : (영문 몰라) 아니, 나으리...
박규 : (자작하며) 내 미처 기억을 하지 못했구나. 애향이 너는 이미 임자가 있다고 들었던데.
애향 : (눈초리 날카로워지는) 그놈을 보셨습니까? 보따리 두고 나가기에 곧 돌아오지 싶었는데
몇날 며칠 코빼기도 아니 보입니다.
박규 : 어허! 짐만 놔두고 야반도주를 했다는 말인가?
애향 : 방값이며 술값이며 밀린게 한두 냥이 아닌데.
박규 : (일어선다) 가자!
애향 : (따라 일어서며) 어딜 말씀이옵니까?
박규 : 가서 짐이라도 뒤지면 뭐라도 단서가 나오지 않겠느냐. 그런 놈은 반드시 잡아내 기방의 규율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박규. 애향이 나비가 날듯 살포시 리듬을 타고 박규를 따라나간다.
#62. 해월관 안 - 밤
꽃단장을 하고 손님 맞으러 나서는 기생들.
기생들이 나온 방 뒤쪽에서 스윽 나타난 전치용이 주위를 둘러보곤 황급히 다른 곳으로 몸을 숨긴다.
#63. 해월관, 매화당 끝방 안 + 밖 - 밤
방문이 열리며 전치용이 들어온다. 방을 둘러보는 전치용. 어디를 봐도 보따리는 없다.
방을 뒤지는 전치용. 부담농과 머리장 등을 뒤져 보따리를 찾아낸다.
급히 풀러보는 전치용. 보따리에서 서린 상단의 패를 꺼내 밖으로 나오는데,
그때, 방으로 들어서던 애향과 박규와 눈이 마주친다. 어깨 너머로 보던 애향이 놀라 소리를 지르며 도망간다.
애향 : 엄마!... 도, 도, 도둑이야~ (어디론가 뛰어가고)
박규는 전치용의 손에 들린 상단 패를 보고, 전치용을 막아선다.
박규 : 감찰어산줄 알았더니 좀도둑 이었구나.
박규에게 공격을 하는 전치용. 박규가 일면 막고 일면 공격을 하는데, 전치용이 넘어지며 상단패를 놓친다.
전치용이 다시 상단 패를 잡으려 하지만 박규가 발로 밀어낸다.
전치용이 계속 상단패를 잡으려 할수록 박규가 이상한 생각에 계속 막아낸다.
둘은 서로 상단 패를 잡기 위해 싸움에 열을 올리고, 그 와중에 전치용이 단검을 꺼내 휘두른다.
박규를 쓰러뜨리고 목을 향해 단검을 찔러들어오는 전치용.
박규가 간신히 전치용의 팔을 잡고 버티다가 안간힘을 다해 밀어내는데, 그 와중에 전치용이 어깨에 부상을 입는다.
밖에서 웅성거리며 사람들 다가오는 소리 들리자 전치용이 들창문으로 도망간다.
박규가 따라가려다 방바닥에 떨어진 상단패를 본다. 패를 집어드는 박규.
그 때 문이 거칠게 열리며 이방과 포졸들이 보인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 놀라는 이방과 박규.
이방이 박규를 쏘아보고, 박규는 눈치채지 못하게 상단패를 감추며, 이방 앞으로 내려온다.
박규 : 참 부지런하십니다 이방. 초저녁부터 기방엘 다 들르시고.
이방 : (박규를 뚫어져라 보고)
문 밖에 서있는 이방 옆으로 애향이가 은근슬쩍 다가온다.
애향 : 나으리, 좀전에 도둑이 들었습니다요.
이방 : (놀라며, 포졸들에게) 뒤져라!
포졸들 : 예!
포졸들 들어가 방을 험하게 수색한다. 밖에 서있는 이방 옆으로 애향이가 은근슬쩍 다가온다.
애향 : (하소연) 일전에는 뱃놈 하나가 돈을 떼어먹고 도망가 놓고서는..
아휴.. 요즘 들어 왜 자꾸 요상한 일만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요.
이방 : 공무수행중이니 비켜 서거라.
(박규에게) 귀양자면 죄인의 신분이거늘 국법에 죄인이 기생집을 드나들라는 말이 있었던가?
박규 : 기생집 가란 법은 없지만, 가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소?
이방 : (노려보고)
짐뒤짐을 하던 포졸 하나가 보고를 한다.
포졸 : 나으리, 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수쿠다.
이방 : (박규가 지나가려 하면) 멈춰 서시게. (박규 멈추면) 선비께서는 저 방에 무슨 일로 오시었소?
박규 : 기방에 방이 한 둘이 아닐진데, 어디서 마시든 무슨 상관이오.
애향 : (황당하면서도 서운하다) 어머? 도망간 뱃놈 찾아주마 약조하시곤 그냥 가면 어찌하시오~
뭔가 용의점을 찾은 듯 박규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이방.
#64. 산 속 초가 - 밤
벽에 기대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는 전치용. 담배가루가 나온다.
전치용이 상처에 담배가루를 발라 지혈을 한다. 상처를 누르고 호흡을 가다듬는 전치용. 고통을 참으려는 듯 잠시 인상을 쓴다.
#65. 저잣거리 일각 - 낮 (과거)
관군들이 몽따쥬를 들고 다니면서 어린서린을 찾아다니고 있다. 홀로 지나가는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모두 잡아세워서 확인한다.
한켠에서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어린전치용 어디론가 달려간다.
#66. 저잣거리 일각, 허름한 창고 안 - 낮 (과거)
초췌한 모습으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는 서린. 넋이 나갔다.
주변을 살피며 들어오는 어린치용. 넋이 나간 서린의 고운 얼굴과 옷을 물끄러미 보다가
흙바닥에 손을 더럽히곤 서린의 옷과 얼굴에 마구 문지른다.
어린치용 : (서린을 마구 더럽히며) 이제 아씨는 서린이 아니라 홍이입니다. 전치용의 동생, 전홍이입니다. 잊지마세요.
정신을 차린 듯 자신의 옷과 얼굴 더럽히는 치용을 밀어내는 어린서린.
어린서린 : 뭐하는 짓이냐?
어린치용 : (개의치 않고 계속 더럽히며) 밖에 관군들이 깔려있습니다.
아씨는 이제 전홍이고 저는 이제 전홍이의 오라비 전치용입니다.
어린서린 : (치용을 매섭게 노려본다) !
어린치용 : (역시 개의치 않고 옷섬에서 주먹밥을 하나 꺼낸다) 빨리 한양을 벗어나야 합니다.
어린서린 : 나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이판서대감의 딸 서린이다. (치용이 주는 주먹밥을 손으로 쳐버린다) 감히 내가 누구라고...
땅바닥에 구르는 주먹밥.
그것을 보는 어린치용. 순간, 서린의 뺨을 냅다 갈린다. 놀라는 서린.
어린치용 : 이렇게 죽으라고. 내가 목숨 걸고 너를 구한 줄 아느냐!
돌아서는 어린치용, 의지 다지듯 이를 무는데. 가슴팍에 숨겨놓았던 서찰을 꺼내 서린에게 준다.
전치용 : (쳐다보지 않고) 대감마님께서 전해주라 하였다.
받아 펼쳐보는 서린. 소리 없이 눈물 한방울 볼을 타고 흐르는데... 서찰을 접어버리는데, 굳게 굳어지는 서린의 얼굴.
#67. 서린의 집무실 - 밤 (회상)
서찰을 쓰고 있는 서린. 그녀를 물끄러미 보며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전치용.
서찰을 다 쓴 서린이 힐끗 미소를 짓고 있는 치용을 본다. 왜 웃는지 아는듯.
서린 : (서찰을 잘 접어 넣으며) 어릴 때 오라버니가 내 옆에서 먹을 갈고 저는 그것을 찍어서 글씨를 썼지요.
글씨가 모양이 안나면 오라버니가 정성없이 먹을 갈아서 그런거라며 마구 심술을 부렸었죠.
치용 : (옛추억이 민망한듯 고개를 숙여 미소를 짓는다)
서린 : (서찰을 주며) 조정에서도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생각보다 제주 일이 커진 듯 합니다. 오라버니께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치용 : (서찰을 넣으며) 잘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우리와 같은 목적을 갖은 자이니 이번 저희의 목적을 잘 알아듣겠지요.
서린 : (보며 그저 미소만) ...
치용 : (목례하고 돌아서 나가는데)
서린 : (치용 등에다대고) 그자를 믿으시면 아니됩니다, 오라버니. 그자는 결국, 스스로 제주를 취하려 들겁니다.
치용 : (다시 고개돌려 알았다는 듯 고갯짓하고 나간다)
#68. 제사장의 기지 / 밤
제사장이 벽에 건 제주지도에 표시된 그들만의 군사지역표시를 바라보고 서있다.
잠시 후 향돌이 와서 뭔가 귓속말을 하면 제사장, 올려놓은 천을 푼다. 그대로 내려와 제주지도가 가려진다.
들어오는 치용.
제사장 : 감찰어사로 위장해 내려왔다고 들었는디, 이제사 보게 됨 수다. 이제 가려나 보멘?
빼돌린 진상품 일은 잘 처리 하고 가는 거난?
전치용 : 관아의 눈을 돌려놓았으니, 앞으로는 상단에서 직접 나서지 않게 잘 부탁드립니다.
생각보다 일을 무리하게 진행하고 계시더군요.
제사장 : 허허... 탐라의 일은 나가 알아서 할 거시니 약조헌 일이나 서두르라 그 아이에게 전하라.
전치용 : (발끈) 대행수어르신입니다.
제사장 : 그건 한양에서나 불리는 이름이나네. 탐라에는 아직 서린상단이 상륙하지 않지 않았나.
전치용 : (못마땅) 저는 그만 어르신만 믿고 가겠습니다. 조용히 사라질 것인 즉, 떠날 때 따로 인사드리지는 못할 듯 싶습니다.
제사장 : 살펴가시게나.
전치용, 공손히 예를 취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향돌이 제사장에게 다가온다.
향돌이 : 어르신... 글해도 상단 말을 듣는 거시 좋지 않을런지...
제사장 : 자고로 장사치란 이익이 없시믄 부모도 버리는 자덜이라. 우리도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주게.
향돌이 허리를 숙인다.
#69. 관아 앞 - 밤 관아 전경.
#70. 현감의 방 - 밤
이방과 현감이 마주앉아 있다.
현감 : 옥사 한 자의 신원은 확인 됐나.
이방 : 행적을 쫓아 머물었다던 기방을 뒤졌으나 이미 누가 먼저 다녀간 후였습니다.
현감 : 어허! 그럼 동당이 아직 머문다는 얘기 아닌가.
이방 : 명일 새벽에 떠나는 배가 있다 합니다. 그 배가 진상품 도적들의 배라 하옵니다.
현감 : 그걸 어찌 알았나.
이방 : 감찰어사가 급습하라 하명했습니다.
현감 : 이런, 결국 공을 뺏겼구나.
이방 : 유의할 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현감 : 그게 누군가.
이방 : 귀양인 박규라는 자 올습니다.
현감 : 박규?
현감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다.
#71. 버진의 집 - 밤
버진이 최잠녀와 함께 평상에 앉아 자기 물질 도구들 손질 중이다.
박규가 방에서 나온다.
이때, 이방과 포졸들이 들어서는데.
박규 : 이게 무슨 일이오?!
이방 : 위리안치일세.
최잠녀 : 아니, 나으리. 위리안치라니, 무슨 말씀이우까?
이방 : (사람들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죄인 박규는 그간 신분을 망각한 수차례 제주의 풍기를 문란케 하며
자성의 빛을 보이지 않았고, 기방에 드나들며 난동을 피우는 등, 그 방자함이 이를데 없어 위리안치를 명하노라!
버진 : (놀란다) 기방?
최잠녀 : (황당하다) 이것이 기생집에 들락거렸단 말씀이우꽈? (박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꼬라는 새끼는 안 꼬고
무신 잡질을 하고 돌아댕긴거라. 경하믄 일도 안하고 온종일 싸돌아댕긴 것이 기생년 치맛자락만 파고 들었단 말이라?
박규, 쪽팔리고 억울하고 분하다. 버진을 바라보지만 버진은 입만 삐죽이고 돌아선다.
박규는 길게 한숨을 쉬고 최잠녀는 이방에게 하소연을 한다.
최잠녀 : 나으리. 안그래도 넉넉지 않은 살림에 군입하나 늘려놓고, 일도 못 하게 허믄 어떵하란 말이우까.
이방 : (다시 큰 소리로) 죄인은 지금부터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설 수 없다. 만약 관아의 허가 없이 집을 나설시에는
자네들도 모두 동률로 엮어 엄벌에 처할 것이다. 알겠느냐?
이방, 포졸들에게 눈짓하자 억관과 김포졸이 대문 앞에 서서 삼지창을 빗겨들어 대문을 막는다.
이방 : 죄인을 단단히 지키거라.
억관/김포졸 : 예!
밖으로 나가는 이방을 노려보는 박규. 버진은 박규가 한심하고...
최잠녀가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박규를 노려본다.
#72. 버진의 집 - 밤
문 앞에 포졸들이 지키고 서있고, 버진 까치발로 밖을 살핀다.
박규가 분을 삭이려는 듯 의관정제를 한 채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버진, 밖을 살피는 걸 포기한채 마당 안쪽으로 들어오다가 박규를 보며
버진 : 귀양다리 니 때문에 (말하려다가) 됐어...
버진을 바라보는 박규. 하지만 버진은 박규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박규, 못내 서운하다. 그리고 화도 난다.
버진, 평상에 앉아 자꾸 밖을 쳐다보는데...
#73. 필립의 오두막 - 밤
필립이 짐을 챙기고는 얀에게 밝게 말한다.
필립 : 형님, 이따 새벽 물때에 늦지 않게 포구로 오시오~ (나간다)
윌리엄 : 이따 새벽? 포구는 왜?
얀 : 우리 내일 떠나.
윌리엄 : 내일? 내일 떠나?
얀 : 새벽에 움직여야 되니까 짐 챙기고 일찍 눈 붙여.
윌리엄, 급하게 탈을 챙기려 하면
얀 : 뭐하는 거야 윌리엄?
윌리엄 : 버진도 같이 가야 돼.
얀 : (단호하게) 그 아이는 안돼!
윌리엄 : Why?
얀 : 우리에게 짐만 될뿐이라구.
윌리엄 : No problem! 내가 책임질게. 버진도 간다고 했어.
얀 : (윌리엄 멱살을 잡으며) 잘 들어, 윌리엄. 난 모든 것을 잃었어.
(노려보며) 난 어서 동인도회사에 복귀해야하고 널 제자리에 데려다 놔야할 책임이 있어. 일을 망치려 들지마.
윌리엄 : (보며) ...얀.
얀 : (보면)
윌리엄 : (가슴에 손을 얹으며) 가슴이 막 뛰어. 버진 생각만 하면 막... I'm not leaving without her!
얀 : 정신차려. 니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를 생각해 봐. 보물이야. 바로 눈 앞에 있는 나가사키에 니가 원하는 보물이 있다고.
윌리암이 갑자기 돌아서 요강을 집더니 얀 앞으로 가져온다. 윌리엄이 요강을 떨어뜨린다.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는 요강.
윌리엄 : 그 때 말했지. That means nothing to me.
얀을 두고 나가버리는 윌리엄.
#74. 산길 - 밤
거침없이 산길을 질주하는 윌리엄. 뭔가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달린다.
마을이 가까워오자 가면을 쓰고 달리기 시작한다.
#75. 박규의 방 - 밤
박규, 방문을 열면 여전히 평상에 앉아있는 버진 모습 보인다.
버진, 일어나서 밖을 보며 서성이고...그런 버진을 보는 박규.
#76. 버진네 마당 앞 - 밤
포졸들이 집 앞을 지키고 있다. 마당을 계속 서성거리는 버진.
억관 : 버진이 니 뭐하난?
김포졸 : 너 누구 기다리나?
버진 : (당황하며) 아니여..아니여...
#77. 버진의 집 앞 돌담 - 밤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돌담 아래서 버진의 집을 보는 윌리엄. 포졸 둘이 문 앞을 지키고 있으니 가까이 가기가 어렵다.
어쩌질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윌리엄, 앉았다 일어섰다 일 갔다 저리 갔다 우왕좌왕 하다가 뭔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긴다.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는 윌리엄.
#78. 버진의 집 마당 - 밤
평상 앞에 서있는 버진. 그 때 밖에서 끊어질 듯 말 듯 낮게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귀가 쫑긋하는 버진. 예전에 윌리엄이 불러줬던 휘파람 소리다.
버진 : 일리암?
버진이 얼른 평상에서 나와 집 밖으로 간다.
잠시 후 박규 방 문이 열리고 박규가 방을 나온다. 버진이 혹 오두막에 갔는지 궁금하고 걱정스럽고 심난하다.
포졸들 때문에 대문 밖을 나서지 못하는 박규.
#79. 버진의 집 앞 돌담 아래 - 밤
버진이 휘파람 소리를 따라 두리번거리며 뛰어온다. 이때, 버진을 부르는 윌리엄.
윌리엄 : 버진!
윌리엄을 발견한 버진, 황급히 다른 돌담 밑으로 데리고 간다. 버진과 윌리엄 몸을 낮춰 앉으며.
버진 : 일리암, 지금 여기 오면 클나.
일리암은 촉촉이 젖은 눈으로 버진을 바라본다. 버진이 이상한듯 얼굴을 손으로 문지른다.
버진 : 왜 일리암, 얼굴에 뭐 묻었나?
윌리엄 : (버진 손 잡고) Thanks, Lord. 버진 갠찬지?...
버진 : 일리암도 아람서? 좀녀가 그런 실수나 하고... 나 창피해서 혼났다.
버진, 반가우면서도, 혹시 누가 볼까 싶어 주변을 살피는데 여념 없다.
윌리엄 : (심장에 손을 얹으며 기쁨의 미소) 다행이야. 나 버진 걱정 돼서 잠도 잘 수 없었어.
버진 : (씨익 미소/가슴에 손을 얹으며) 나도 일리암 다시 봐서 행복해.
윌리암 : 나.... 내일 해뜨기 전에 떠나.
버진 : (놀라고) 내일? 떠나?
버진의 목소리가 턱없이 커진다.
버진 : 진짜 떠나는 거메?
윌리엄 : (끄덕) 버진... 같이.... 갈 수 있겠어?
버진 : (망설이고) .....
윌리엄 : 버진. 내일 떠나면, 평생 여기에 못 올지도 몰라.
멈칫 하는 버진.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막상 떠나야 하니 고민 되는 모양이다.
버진 : (울먹이며) 식구들 생각허믄 멤이 너무 아프고 미안하지만... 나 정말 탐라에서 아무 쓸모없는 여자라...
윌리엄 : ......
버진 : (결심한듯) 나두....윌리엄 따라 갈거라.
윌리엄이 자기 목걸이를 풀어 버진에게 걸어준다.
버진 : (윌리엄의 목걸이를 만지면)
윌리엄 : (자기 가슴 가리키며) 이건 맨날 윌리엄이랑 함께 있던 거야. 밥 먹을 때도 잠 잘 때도 항상...
버진 : .......
윌리엄 : 내일 포구에서 만나. 꼭 와야 돼.
버진, 윌리엄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며.
버진 : 약속할게...
윌리엄, 미소지으며 버진의 손을 감싼다...그런 윌리엄을 보는 버진, 마음이 무겁다.
#80. 몽타주 - 밤
-포구 : 필립의 배는 짐을 다 싣고 밧줄로 짐들을 묶고 있다.
-필립의 오두막 : 윌리엄은 짐을 싸고, 얀은 그런 윌리엄을 바라본다.
-박규의 방 : 박규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버진의 방 : 잠든 버설의 얼굴을 어루만지고는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는 버진.
#81. 버진의 집 마당 - 밤
버진이 조그만 보따리를 들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다. 그냥 밖으로 나가려다가 집을 한 번 둘러보는 버진.
나가려다 한 번 더 보고... 갈등하는 모습이다.
버진 : 꼭 가야하메... 어차피 난 여기서 쓸모도 없구...
과감히 밖으로 나가려는 버진. 하지만 멈춰선다. 다시 집을 돌아보면
비질을 하고, 새끼를 꼬고, 밥을 짓는 가족들 모습이 떠오른다.
- 버설이 마당을 쓰는 모습...
봇짐을 평상에 내려놓고 조용히 마당을 쓸어놓는 버진.
- 마당 한 구석에서 원빈이 새끼를 꼬는 모습...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새끼줄을 정리하는 버진.
- 부엌쪽으로는 바가지에 쌀을 담아가는 최잠녀 모습...
버진이 쌀을 씻어 밥물을 맞춰놓는다.
버진이 한숨을 쉬고 평상에 올려놓은 봇짐을 들고 나가려는데 누군가 버진의 어깨를 잡는다. 박규다.
버진 : 귀양다리...
박규 : 이양인에게 가는 것이냐?
버진 : (당황해서 고개 저으며) 아니...아니...
박규, 방에서 나와 버진 앞에서 선다.
버진 : 아냐... 나 아무데도 안가... 잠깐 일이 있어서...
박규 : ........
버진, 박규의 시선을 피해 나가려는데 박규가 팔을 꼭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버진 : (뿌리치며) 이거 놓으라. 나 빨리 가야하메.
박규 : (놓지 않는다) .....
버진 : 놓으라 안허난.
박규 : 가지 마라.
버진 : (놀라 보면)
박규 : 내가 싫다.
버진 : 귀양다리. 너 참말로 왜이러난..
박규 : 니가 그놈한테 가는 거, 내가 싫단 말이다.
얼결에 고백 비슷하게 된 상황에 둘 다 약간 놀란 얼굴이다.
버진이 박규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한다.
버진, 결국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박규에게
버진 : 놓으라... 제발...
박규, 울고 있는 버진을 보고 있다가 버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뺀다.
버진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내 돌아서 뛰어나간다.
문 앞에서 잠들어 있던 억관과 김포졸, 뛰어 나가는 버진의 발자국 소리에 깨고...
#82. 산방골 마을길 - 새벽
마을 길을 달리는 버진. 그러다 우뚝 멈춰서고... 떠나야 할 길과 떠나온 길을 번갈아 바라보는 버진.
<인서트> 원빈의 해맑은 웃음, 버설의 또릿한 얼굴, 최잠녀의 무서운 표정 등이 떠오르고
원빈(E) : 니 목숨, 니 것만이 아니다. 니 그러구 가블믄, 남은 우리 세 식구 온전히 살 수 있을 것 같으나?
어느 쪽으로도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버진.
시간은 얼마 없고, 스스로도 결단을 못내리는 자신이 싫어 버진은 발도 동동 구르고 손톱도 깨물고 어쩌질 못해 한다.
<인서트> 윌리엄 손가락에 버진 자신의 손가락을 거는 모습.
윌리엄 : 내일 새벽에 포구에서 만나. 꼭 와야 해.
버진, 결심한 듯 가려하면.
<인서트>
박규 : 내가 싫다. 니가 그놈에게 가는거 내가 싫단 말이다.
버진, 울먹이며 뛰어온 길을 돌아보는데..
#83. 버진의 집 - 마당
초조하게 마당을 서성이는 박규. 이내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집 밖으로 나간다. 버진이 사라진 쪽을 향해 뛰는데,
뒤늦게서야 상황파악이 된 듯 놀라 박규의 뒤를 쫓는 억관과 김포졸.
#84. 산 길 - 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버진. 결심을 하고 포구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버진의 모습이 사라지면, 저 멀리서 뛰어오는 박규의 모습이 나타나고 뒤이어 쫓아오는 억관과 김포졸의 모습이 보인다.
박규, 미친듯이 뛰어오며 버진의 모습을 찾지만 보이지 않자 이내 걸음을 멈추고 포졸들이 와서 박규를 붙잡는다.
억관 : 아 도대체 왜이러는 거우꽈 정말! 돌아갑서!
박규, 가슴도 아프고 화도 나고...포졸들의 손을 뿌리치지만,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는데서.
- 5부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