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 동동 띄운 육수에 쫄깃한 면발, 밀면 한 그릇 하실래예?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운 날이 계속되면 하던 일도 귀찮아지고 끼니를 챙겨 먹는 것조차 성가신 일상이 된다. 늘 고마웠던 밥과 국이 시큰둥해지는 날에는 시원하고 칼칼한 밀면 생각이 절로 난다. 지금도 부산 곳곳에 제법 맛이 좋다는 밀면 집에서는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부산 사람들에게 밀면은 아주 친근한 음식이지만 부산을 제외한 다른 고장에서 밀면이라고 말하면 뭘 밀어?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부산식 냉면이라고 할 수 있는 밀면은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전국적인 음식은 아니다.
물밀면 곱빼기
전쟁의 서글픈 애환이 담겨있는 향토 음식
밀면은 나름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음식이다. 6·25 전쟁 때 이북출신의 피난민들이 북한에서 먹던 냉면을 만들고 싶었는데, 주재료인 메밀을 구하기가 힘들어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봤다고 한다. 당시 밀가루는 미군부대에서 나눠주었기 때문에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고. 먹고 살기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 밀면은 냉면을 떠올리며 서글픈 기억으로 탄생된 음식인 것이다.
이렇듯 밀면은 민족의 애환이 담겨있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데 웬일인지 서울이나 이북 사람들은 밀면을 잘 먹지 않는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기 싫기 때문인지 단지 입맛에 안 맞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때 부산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야심차게 서울로 진출했던 ‘ㄱ’ 밀면 집조차 백기투항을 했다며 냉면의 아성을 넘기는커녕 입맛을 사로잡지 못해 고전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지금은 서울에도 하나 둘 밀면을 파는 집이 생겨나고 있다하니 기쁜 소식이지만 아직까지도 왜 밀면이 환영받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은 부산을 찾는 타지 사람들이 부산의 명물 음식으로 밀면을 꼽으며 밀면 시식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 이제껏 잘 몰랐던 밀면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하니 머지않아 밀면의 인기가 높아지는 날이 올 듯하다.
비빔밀면 보통
밀면과 냉면의 차이는 재료의 차이
밀면과 냉면의 가장 큰 차이는 기본 재료에 있다. 밀면은 밀가루가 주재료고 냉면은 메밀(평양식 냉면인 물냉면)과 감자 전분(함흥식 냉면인 비빔냉면)이 주재료다. 밀가루가 메밀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냉면보다는 밀면을 더 편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양념도 조금 다르다. 특히 물냉면에는 고춧가루 양념이 없어 담백한 맛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고춧가루를 이용한 양념이 들어간 밀면이 부담스럽다는 말도 들린다. 냉면 육수는 소뼈가 주재료인데 반해 밀면 육수는 대부분 돼지뼈를 이용하는 것도 차이점.
수영구 남천동에서 14년 넘게 밀면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인숙 사장은 “친정 어머니가 냉면집을 하셔서인지 우리 가게 밀면 육수는 소뼈를 주재료로 하고 있어요. 소사골은 시원한 맛을 내고 돼지뼈는 진한 맛을 내지요. 원가는 더 들지만 손님들이 즐겨 찾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라며 좋은 재료가 좋은 맛을 낸다고 귀띔했다.
달콤새콤 시원한 밀면을 한 입 가득 넣어 먹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가 있다. 요즘은 재료값도 많이 올라 예전만큼 착한 가격으로 밀면을 즐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름이면 단돈 4천 원 정도에 열기를 식혀주는 고마운 음식이다. 가만히 있어도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 한여름 대낮, 시원하고 칼칼한 밀면 한 그릇 하실래예?
부산에서 알아주는 밀면 전문점
가야밀면 : 동의대 3번 출구 나와서 오른쪽 골목 20m , 해운대 분점은 051)752-3105
개금밀면(해육식당) : 지하철 개금역 1번 출구 개금골목시장 15m쯤 들어서 왼쪽 첫 골목, 전화 없음
남천동 가야밀면 : 수영구청 아래로 30m 지나 바로 오른쪽, 051)621-7317
춘하추동 : 서면역 9번 출구 영광도서 지나 복개로 따라 150m 직진 오른쪽, 051)809-8659
내호냉면 : 우암동 부산은행 옆길로 들어가서 50m 지점 왼편, 051)646-6195
국제밀면 : 국제신문사에서 동래역 방향 왼쪽 첫 골목 50m 안, 051)501-5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