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의 다리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주변에 ‘탄식의 다리’가있다
운하를 사이에 두고 두칼레 궁전과 건너편 감옥을 이어주던 다리이다. 그 옛날 팔라초 두칼레의 재판소에서 형을 받은 죄수들은 이 다리를 건너 감옥에 들어갔는데 감옥으로 넘어갈 때 다리를 건너며 다시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탄식을 했다고 해서 탄식의 다리로 불리어졌다 한다.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도 이 다리를 건너 투옥이 된다.
비밀 외교관, 철학자, 바이올리니스트 등 많은 분야에 걸쳐 다재다능했지만 카사노바는 사기꾼, 도박가, 호색가 등 별난 이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귀부인으로부터 문인 화가 등 여러 계층의 여성들을 두루 사귀며 여성편력을 일삼았다. 그러던 중 베네치아에서 난교 파티를 열어 수녀까지 끌어 들인 것이 귀족층을 자극하게 되어 1756년 간통죄와 신성모독죄로 두칼레 궁전에 있는 피옴비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철옹성 같은 이 감옥에서도 탈옥에 성공한다. 카사노바는 후일 그의 자서전에서 220명의 여자들을 품었지만 자신은 여자들에게 아무 잘못이 없었음을 강변한다. 심지어 그는 탈옥에 대해서까지 ‘법관이 나의 의견에 반해 판결했기 때문에 나도 법관의 의사에 반해 탈옥했다’며 궤변을 늘어놓을 정도였다.
우리나라에도 한국판 카사노바로 사회에 큰 파문을 던진 ‘박인수 사건’이 있었다.
1950년대 중반에 박인수라는 자가 1년 사이에 여대생을 비롯해 70여명의 여인과 놀아난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훤칠한 키의 미남자였던 박인수는 헌병으로 복무시절 익힌 사교춤 실력으로 여성들을 유혹했는데 피해여성들의 상당수가 여대생들이였으며 국회의원과 고위관료의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혼인빙자간음죄로 몰아갔으나 박인수는 합의에 의한 것이라 항변했다. 그 많은 여대생은 대부분 처녀가 아니었으며 단지 미용사였던 한 여성만이 처녀였다고 주장하기도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명판결문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남자들은 상대방여인을 음흉한 눈길로 쳐다보기만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성희롱으로 처벌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2005년에 제정된 ‘성희롱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이라는 것을 보면 ‘성희롱이란 성범죄행위의 구성 여부와 관계없이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로서, 그 기준은 피해자의 합리적인 주관적 판단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규정해놓았다. 법리에 맞지 않는 해괴한 규정의 작동으로 일응 세상이 온통 여인천하가 되어버린 듯 보였다. 이 땅의 남자들은 이제 숨 쉬고 살아가기 참으로 힘들게 되었구나 싶어 극단적인 페미니즘(feminism)으로 치닫고 있는 듯한 사회현상이 우려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각의 그런 우려에는 아랑곳없이 곳곳에서 온갖 분탕질로 여성들을 짓밟고 희롱해온 희한한 족속들이 장안에 활개치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세상이 경악을 하고 있다.
무술년은 통영지청 서지현 이라는 여자 검사의 성추행고발 사건으로 벽두부터 어수선했다. 8년 전 상가(喪家)조문하는 자리에서 옆에 앉은 선배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상가(喪家)에서 그것도 옆에 법무부 장관이 동석한 엄숙한 자리였다는데 술집도 아닌 상가에서 당키나 한 소리냐? 말 같잖은 소리로 들려서 처음에는 언짢은 생각마저 들었다. 성격이 유별난 여검사가 조직에 트러블메이커로 늘 백안시 되어오든 중, 그동안 앙앙불락하던 것을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여 분풀이 하는 정도로 보여 졌다. 베트남 여자와 대한민국 여자가 강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할 때 남자들이 누구를 구하겠느냐? ‘베트남 여자를 구한다’라는 것이 답이다. 왜냐하면 한국여자와 잘못 엮였다가는 패가망신하기 딱 이기 때문이란다. 서지현 검사의 고발이 있고난 후 시중에 떠돌았던 넌센스 퀴즈인데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법조계에서 그런 별난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희한한 사건이 불거졌다. 지난해 연말 어느 계간지에 게재된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라는 시(詩)가 부상(浮上)이 되어 미투에 불을 지폈다. 시에서 말하는 ‘괴물’은 고은시인을 말하는 것이 곧바로 밝혀졌고 뒤따라 연극계의 대부 이윤택이 성폭력사과를 하는가 하면 명지전문대는 안마실 까지 차려놓은 퇴폐업소 음행소굴로 떠올랐다. 박중현, 조재현, 오달수, 김기덕 최일화 등 연극영화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속속 미투의 화재인물로 얼굴을 들어내었다. 문단, 연극영화계를 강타하던 미투 바람은 급기야 학계, 종교계로 번지더니 정치계까지 휩쓸고 있다. 차세대 대권주자로 참신해 보이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미투 인물로 밝혀지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서울시장에 나선다고 기염을 토하던 어떤 인사도 미투 바람을 맞고 자신은 아니라며 길길이 뛰고 있는 중이다.
조직이나 사회는 훈훈하고 따뜻하며 편안해야한다. 문화는 맛있는 음식을 담는 그릇 같은 것이고 음식을 포장한 포장지와도 같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러운 그릇이나 악취 나는 포장지로 음식을 포장할 수는 없다. 문화는 결국 인간 내면의 정신이 투영되어 각양각색으로 채색되어지게 마련인데 현재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정신은 뭔가 언짢고 찝찝하고 불쾌한 것으로 일상을 짓눌러 온다. 배타적이고 타산적이며 말초적이고 자극적이고 막장적인 방향으로 대중을 몰아가는 동안 인간 본래의 순수함과 온정은 말살되고 선하고 아름다움이 일그러져 버린 채 이기심과 적개심이 판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문학이나 연극영화계 첨단에서 사회의 방향을 선도하는 자들이 부패된 골짜기로 길을 이끌어가니 사방에 냄새가 진동할 수밖에 없다. 부패한 영혼에 의해 선도되는 문화창달은 대중을 약물중독에 빠트려 사회전체를 사악하게 만든다. 우리사회가 왜 이렇게 비틀거리느냐? 무슨 이유로 늘 개운치 못하고 찝찝한가? 그것은 이 나라가 입고 덮고 있는 문화가 지금 미투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그 더럽고 천박하고 구역질나는 정신에 의해 잘못 이끌려가고 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사회 곳곳이 썩어 자정능력을 잃어가는 이 시점에서 미투 바람이 감춰진 환부를 들어내 보여주는 듯하여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카사노바나 박인수는 호색한에 바람둥이였지만 여자들이 호방(豪放)한 그들을 좋아해 따라다녔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미투 인물들은 권력의 자리에서 비열한 짓거리로 추행과 농락을 일삼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으로 밝혀져 사회를 분노케 하고 있다.봉두난발의 귀기서린 몰골, 천박하고 탐욕스런 언행, 교활하고 음흉스런 눈빛, 벼라 별 형태의 타락한 영혼의 미투 등장인물들이 음습하기 그지없다. 반성한다면서도 무언가 반격을 위한 공작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언행들이 은연중에 나타나고 있어 소름이 끼쳐진다.
‘탄식의 다리’를 건너던 지난날 죄수들은 감방이 두려워 한숨을 쉬었다는데 오늘, ‘미투의 다리’를 바라보는 이 시대 관중들은 어이없고 기가 막혀 한숨이 나온다. 2018. 3. 7. 石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