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열한 명이서'라는 표현이 맞나요?
(또 '열 한 명이서'와 견주어 어느 쪽의 띄어쓰기가 맞나요?)
1.적법성: '맞는지 안 맞는지'의 기준이 뭘까요? 우리는 문법을 배우게 되면서 '어? 이건 지금까지 잘못 쓰고 있었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규범이나 맞춤법을 근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내가 잘 쓰고 있었고 주변 사람도 잘 쓰고 있었다면 그 표현은 한국어에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한국인의 직관에 문제가 없다면 그 표현의 문법성은 획득이 됩니다. 그럼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열한 명이서'이란 표현이 이상한가요? 제 생각엔 아무 문제가 없는 표현입니다. 많이 쓰고 있는 표현이기도 하고요.
2.띄어쓰기: '열한 명'과 '열 한 명' 중 헷갈리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십진법이 주는 착각일 뿐입니다. 물론 전자가 맞습니다. 일곱 명, 여섯 명처럼 '열한'이 하나의 단위이니 '열한 명'이라고 띄어써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십이진법을 써서 '10-열, 11-줄, 12-널'이라고 했다면 십진법의 13은 십이진법의 널하나, 20은 널여덟이 됩니다. 십진법의 '열하나'인 '줄'은 12진법에서 띄어쓰기가 헷갈릴 이유도 없지요.
백 명의 '백'이 한 덩어리이듯이 '백이십오 명'의 '백이십오'도 한 덩어리이므로 붙여 써야 합니다. 다시, '열한 명'은 수학적으로야 '열 명'+'한 명'일 수도 있고 '여섯 명'+'다섯 명'일 수도 있고 '세 명+여덟 명'일 수 있습니다. 단지 십진법으로 '열한'으로 썼을 뿐입니다. 즉, '열한'은 두 개의 형태소로 이루어진 하나의 단어입니다. 사전에 일일이 오르지 못할 뿐 한 단어입니다. 그리고 띄어쓰게 되면 수식 관계도 엉키게 되어서 한 명이 열이란 뜻인지 열 명과 한 명이란 뜻인지 열 명 또는 한 명이란 뜻인지 열한 명이란 뜻인지 굉장히 혼란스러운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열 한명'은 더더욱 말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십여 명'의 '여'는 그 수가 앞의 수보다 조금 많거나 같음을 뜻하고 결국 그 수를 가리키는 자체의 일부이므로 '십여'라고 붙여씁니다.
둘째, '열한 명이서'가 맞다면 왜 이 때 '명'이 들어가야만 하나요?
'열둘이서', '스물이서' 처럼 '명'을 뺀 채 '11명이 함께'라는 뜻을 나타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1.아주 잘 관찰하셨습니다. '셋이서' '넷이서..... 열이서... 열둘이서'는 되는데 왜 '11명이 함께'의 뜻으론 '열한 명이서' 말고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지.... 이런 관찰이 국어학을 공부하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보셔야 합니다. '열하나서'는 왜 이상하지? 여기까지 관찰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왜 '하나서'는 안 되지? 여기까지도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왜 '하나서'란 표현은 없고 '혼자서'라고 하지? 여기까지 왔다면 답은 다 나왔습니다. 어느 언어나 그 어휘가 같은 계열끼리 항상 정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셋째...아홉째..'도 그 처음은 '하나째'가 아니라 '첫째'입니다. 이렇게 전혀 다른 형태가 그 무리의 구성원을 이루게 되는 것을 '보충법'이라고 합니다. '보충법' 자체가 아주 불규칙한 면 때문에 생기므로 '하나서', '하나째'가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내기란 힘듭니다. 다만 중세국어에는 '하나째'에 해당하는 '하나차이'가 존재했습니다. '하나서' 대신 '혼자서'가 쓰이게 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충법의 존재에도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두 개가 같이 존재하다가 보충법 형태가 살아남은 경우, 원래 없던 자리에 보충법 형태가 생겨난 경우.
셋째, '혼자'는 분명 명사, 즉 이름씨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본 결과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과연 명사의 뜻풀이에 '~상태'라는 표현이 맞나요?(부사라면 몰라도?)
'상태'는 명사입니다. 명사의 뜻풀이로 쓰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사였다면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함께 있지 아니하고 홀로'에서 끝났을 것입니다.
첫댓글 와! 감사합니다. 이 글 보기 전에 저도 혼자서 '열하나서'가 안 될 이유가 없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주 안 써서 부자연스러울 뿐이지 '그 일을 열하나서 모두 해치웠다.'가 틀린 표현같지는 않는 것 같더군요.
'열하나서'가 안 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그 쓰임이 이상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하나서'란 말이 없고 '혼자서'가 대신하니까 듣기에 어색해 보이고, 무엇보다 '둘이서, 셋이서, 아홉이서' 등 숫자에 '이서'가 붙어야 사람을 뜻하게 되는데 '하나서' '열하나서'에 '이'가 결합하지 않은 것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서'의 '이'가 단순히 자음 뒤여서 붙은 것이 아니라 숫자를 사람으로 바뀌게 하는 기능이 들어있다고 보는 것이죠.('이서'에 관한 연구도 있습니다.)
'상태'가 찾아보니 명사네요? 그렇지만 '~한 상태'가 어떤 명사를 지칭한다는게 바로 이해되지 않네요? 표준대국어사전(오늘 보니 인터넷 사전이 새 모양으로 단장했더군요.)에서 형용사를 찾으니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품사'이던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속성이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품사라는 것은 '형용사'의 뜻풀이입니다. 형용사라는 용어의 품사는 '명사'입니다. '곱다'의 뜻은 '모양, 생김새, 행동거지 따위가 산뜻하고 아름답다'이지 '모양, 생김새, 행동거지 따위가 산뜻하고 아름다운 상태'가 아닙니다. '부끄럽다'와 '부끄럼'의 차이를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품사분류에서 '형태'와 '기능'전에 '의미'의 함정에 빠지신 것 같습니다. 예를 더 들면, 사면초가, 독수공방, 홀홀단신, 이런 한자성어들도 품사는 다 명사지만 어떠어떠한 상태, 형편, 지경 등을 나타냅니다.
고~맙습니다! 글을 길게 쓰다보면 밑천이 드러나긴 하지만 모르는 것은 역시 모르는 것이니 배울 수밖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