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다/ 요한복음 21:1-14
요한복음 20장 말미를 보면 30-31절에 이 책을 쓴 목적이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이라는 말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런데 다시 21장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21장을 요한복음 ‘부록’이라고 부릅니다. 부록이 기록된 목적은 아마도 주후 100년경 초대교회의 상황 속에서 반드시 가르쳐야할 중요한 교훈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핵심은 15절 이하에 나오는데,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이 대목은 다음에 강론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 서론에 해당하는 14절까지의 말씀을 묵상해보겠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 베드로는 직업이 어부로 알려져 있지만, 요한복음에는 그런 기록에 없고, 또 원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의 제자로 건너온 인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요1:40) 그러므로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라고 한 말이 본업이었던 어부생활로 돌아간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공관복음서의 내용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함께 따라간 사람이 6명인데, 도마,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 그리고 익명의 2인입니다. 사실 요한복음서에는 12제자 명단이 없습니다. 본문 중에 등장하는 제자들 이름도 베드로, 안드레, 빌립, 도마, 가롯 유다,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들입니다. 그 아들들의 이름인 야고보와 요한은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세베대의 아들이 언급된 것은 21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밤이 새도록 고기를 하나도 못 잡은 것이 납득이 됩니다. 어부라는 직업은 전문직입니다. 낚싯대나 그물이 있다고 초보자가 쉽게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초보자에게도 어쩌나 한두 마리 얻어 걸릴 수는 있기에, 베드로 일행이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것은 어떤 중요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해안으로부터 약 90미터 거리에 떠있는 배를 보고, 주님께서 “무얼 좀 잡았느냐?”고 물었을 때, 제자들은 “못 잡았습니다.”하고 대답하면서도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져보라.”고 하신 말대로 해보았다가 엄청난 양의 고기를 잡아 올리게 되자, 그중 한 명인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저분은 주님이시다!”하고 외칩니다. 그 사랑하는 제자는 다른 복음서에서 요한으로 알려졌으니, 세베대의 아들 중 한 명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요한의 외침을 듣고 급한 마음에 물로 뛰어들어 주님께 헤엄쳐 달려갑니다.
잠시 후에 배를 몰고 모두들 뭍으로 올라오니, 주님께서 준비해 두신 아침식사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스승이 직접 준비한 숯불위에 빵과 생선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라.”는 주님의 말에 잡은 고기를 세어보니 153마리라고 합니다. 잡힌 생선의 구체적인 수를 언급한 이유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의미는 많다는 것과 그리고 생선의 수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세어본다는 정확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단 하나의 생선도 허투로 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요.
요한복음은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이번이 세 번째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하고픈 말씀이 무엇이었을까요? 본문에는 은유적인 표현이 숨겨져 있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간 제자들이 한 일은 ‘전도’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단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것은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직접 개입하시니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전도’란 파송 받은 사람이 파송하신 분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 전도입니다. 여기에는 죽음에서 건져내어 생명을 주는 ‘사람 낚는 어부’가 하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깊은 뜻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153이라는 상세한 숫자는 그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는 뜻이고 하나하나가 모두 다 존중받아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그 많은 고기가 그물에 담겼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물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찢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교회의 일치’가 보존되어야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라면 분열이 아닌 일치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닌 인간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교회 안에 자리 잡으면, 교회 그물은 찢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세 번째 다시 나타나서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신 이 은유적인 21장은 교회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여야 한다는 비장한 결의가 담긴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하는 제자들이 절망하지 않고 사역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또 조반을 차려서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줄 정도로 큰 위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바로 요한복은 21장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교회인 그물이 찢어지지 않도록 온 세상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간곡히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2024년 4월 21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