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마재고택/동상/여유당표지석]
목민심서를 통한 이정
『국제레닌학교와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은 졸업 후 각자의 나라로 귀국했을 때의 안전을 위해 모든 학생들에게 가명을 쓰게 했다.
국제레닌학교는 일본어나 조선어는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 중에는 베트남 공산당의 젊은 지도자 호치민도 있었다. 한자 발음대로 호지명으로 불리던 그는
박헌영평전[
다산이 정치적 박해를 받아 고행길인 귀양살이에서 나온 역작 목민심서는 자신의 고을 수령을 한 현장 경험과 현직의 수령들이 국민의 고혈을 짜고 탐관오리들이 많아 이를 시정하고자 지은 책이다. 목민심서는 부임赴任,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 이전吏典, 호전戶典, 예전禮典, 병전兵典, 공전工典, 진황賑荒, 해관解官의 1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방행정의 우두머리인 고을 수령이 백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잘 나타나 있다. 백성들의 어려운 삶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또한 곡산부사의 수령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백성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배부르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담겨 있다. 부정부패로 만연되어 있는 조선의 행정 상태를 개혁한다는 근본 취지가 있는 것이다. 애민정신이란 백성을 위한 정치가 꼭 필요한 것이며 이는 현재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영원할 것이다.
이정과 호치민은 국가의 근본은 국민이 잘 살수 있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첫 번째의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호치민은 평소에도 독신으로 청렴하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그리하여 죽어서도 깨끗한 정치가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호치민이 다산의 가르침인 목민심서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죽어서도 존경 받는 지도자로 남은 것이다.
다산의 목민심서는 오늘날 우리 모두의 교양서이자 필독서가 되었고, 세계평화와 백성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다산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사상가이자 학자이다. |
출처: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원문보기 글쓴이: 조은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