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 보좌의 영광을 보는 사람(김다니엘)
이사야 6;1~8
1절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절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절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절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절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절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절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엘리야와 엘리사는 직접 쓴 책이 없지만 이사야부터는 책을 썼다. 예레미야는 고난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지만 이사야는 많은 대접을 받았다. 이사야는 환상을 보았다. 거기에는 스룹천사들의 날개 3쌍이 각각 눈과 발을 가리고 날아다녔다. 요셉과 다니엘은 꿈 해석을 잘 하였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나라를 살리고 기업을 살린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 진짜 선지자이다. 마음이 깨끗해야 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성전에는 하나님의 옷자락이 가득하다고 나온다. 옷을 입는 것은 여러 뜻이 있다. 옷자락은 능력이다. 스랍 천사들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천사들이다. 그들은 두 날개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자신의 발을 가리고 마지막 두 날개로만 날아다닌다. 연기는 향기이다. 하나님의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하다. 이것은 기도이다. 이사야차럼 우리는 하나님이 찾으실 때 자진해서 지원하여 순종하며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2.누가 능히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리요(김다니엘)
역대하 2;1~6
1절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 2절 솔로몬이 이에 담군 칠만과 산에 올라 작벌할 자 팔만과 일을 감독할 자 삼천 육백을 뽑고 3절 사자를 두로 왕 후람에게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전에 내 부친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그 거할 궁궐을 건축하게 한 것같이 내게도 그리하소서 4절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5절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 6절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관대 어찌 능히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다. 다윗의 소원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 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피를 많이 흘렸지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신 평화를 뜻하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다. 지금은 한사람 한사람이 성전이다. 마귀는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여러 교회를 미혹한다. 목사들도 잘못된 설교를 한다. 먼저 우리가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먼저 마음에 성전을 지어야 한다. 그러면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솔로몬은 지혜로 평화를 만들었다. 솔로몬은 평화를 만드는것이 영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지혜를 받아야한다. 우리는 전쟁하지 않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3 때를 아는 사람(김다니엘)
왕하5;20~27
20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저를 쫓아 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하고
21절 나아만의 뒤를 쫓아 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 내려서 맞아 가로되 평안이냐 22절 저가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 부터 내게 왔으니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절 나아만이 가로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저를 억제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사환에게 지우매 저희가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절 언덕에 이르러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취하여 집에 감추고 저희를 보내어 가게 한 후 25절 들어가서 그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26절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27절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 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나아만이 가져온 물건을 다 거절하는 것을 보고 게하시는 엘리사의 태도에 불만이 생겼다. 게하시는 대가를 받는것이 하나님의 뜻인줄 알고 있었다. 게하시는 위대한 선지자를 섬기는 복을 받은 사람이지만 저주를 받았다. 게하시의 결정적인 죄는 첫째 탐욕이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나누는 삶을 살라고하신다. 탐욕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스승을 몰라뵀다. 인간은 가까이지내면 얕보는 태도가 있다. 게하시도 마찬가지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스승의 말에 순종해야한다. 셋째는 회개의 기회를 놓침이다. 게하시는 엘리사에 질문에 바로 용서를 구하지 않고 기회를 놀지고 거짓을 고한다. 결정적으로는 게하시는 때를 알지 못하였다. 엘리사가 게하시를 책망할 때 때를 알지 못함을 책망했다. 우리는 깨에 때를 분별해야한다.
4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김다니엘)
렘1;11~14
11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13절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1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쓰실 때 말씀 뿐 아니라 이상과 꿈같은 이상을 보여주신다. 본문에는 예레미야가 살구나무의 이상과 끓는 가마 이상을 보았다. 살구나무는 언어유희로 살구나무는 히브리어 철자가 비슷한 지킨다 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끓는 가마는 재앙이 북에서 올것이라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이런 말씀을 받아 민족을 ㅇ위해 애타게 기도하였듯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어야한다. 바울도 예수님의 이상을 보고 전도자가 되었고 베드로도 하나님의 환상을 통해 당장은 그 뜻을 알지 못하였지만 고넬료를 전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귀도 하나님인양 거짓 선지자들을 세운다. 대표적 사례가 이장님이다. 우리가 믿음에 반석 위에 있지 않으면 분별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