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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자 小痴
#4 사리뿟따 존자는 무명의 원인으로 번뇌를 들고 있습니다.
○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번뇌, 번뇌의 원인, 번뇌의 소멸,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해 이해하면, 그런 방법으로,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되고, 진정한 법에 도달합니다.”
○ “세 가지 번뇌가 있는데, 그것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입니다. 무명의 일어남으로 번뇌의 일어남이 있고, 무명의 소멸로 번뇌의 소멸이 있습니다.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입니다.”
○ 사리뿟따 존자의 설법 가운데서 눈여겨 볼 점은,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에 무명이 일어난다.’는 가르침입니다. 즉 무명은 윤회를 설명할 때 출발점이 되는 것일 뿐 이것이 근본원인이 아니며, 무명은 번뇌를 조건으로 생기는 조건발생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담마상가니[法集論]』 주석서에 의하면, 번뇌(āsava, 아사와)란 ‘흐르는 것(savanti)'이라는 문자적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종기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이나 오랫동안 삭은 술 등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마음의 해로운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정착되어 중국에서는 煩惱(번뇌), 漏(루), 有漏(유루) 등으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번뇌의 흐름은 공간적으로는 지옥에서 최고 높은 존재 즉 비상비비상처의 31가지 세상까지에 미치고, 법(dhamma)으로는 고뜨라부[種姓]의 영역에까지 흘러간다고 주석서에서 설명합니다.
○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는 감각적 쾌락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 등 세 가지를 들고 있으나, 「아비담마」에서는 사견邪見의 번뇌를 추가하여 네 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무명(avijja)은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고, 갈애(tanhā)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망(rāga)이 그치지 않고 흐르는 것을 말합니다. 무명과갈애는 12연기에서 두 가지의 뿌리가 되는 원인으로 나타납니다. 무명의 들판은 과거의 길이고, 갈애의 들판은 미래의 길입니다.
○ 욕계를 초월한 색계나 무색계의 존재에 대한 탐욕, 선禪에 대한 열망, 상견이 함께하는 갈망 등은 모두 존재를 통한 염원이기 때문에 존재의 번뇌라 합니다.
○ 번뇌의 대상이 되고 취착의 대상이 되는 법이 바로 오취온五取蘊입니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물질(rǔpa)은 반드시 번뇌와 취착이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아라한의 몸도 중생들에게는 취착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런 기준으로 보면 모든 범부의 오온은 오취온이 됩니다. 그러나 열반에 들어 있는 출세간 상태의 아라한의 4온[受·想·行·識]은 남들의 취착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 번뇌들의 멸진[漏盡]이 통찰지로 실현해야 할 법들입니다. 누진통의 핵심은 사성제를 통찰하는 것이요, 이것은 팔정도의 바른 견해의 내용이며 이 정견의 확립될 때 무명이 소멸한다는 것이 혜학의 핵심입니다.
○ 무엇을 반연하여 번뇌가 일어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모든 번뇌의 경」(M2)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을 쓰면 아직 생겨나지 않는 번뇌가 생겨나고 생겨난 번뇌는 더욱 증가한다. 그러나 이치에 맞게 정신을 쓰면(yoniso manasikāra, 如理作意) 아직 생겨나지 않는 번뇌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번뇌는 끊어진다.”
#5 사리뿟따 존자는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의 원인으로 갈애를 들고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발생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잘 알면, 그 만큼 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바르게 되어,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고, 바른 가르침을 성취합니다. 도반들이여, 어떠한 것이 괴로움이고, 어떠한 것이 괴로움의 발생이고, 어떠한 것이 괴로움의 소멸이고, 어떠한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입니까?
①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고 질병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고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함도 괴로움이고 줄여 말하자면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의 무더기[五取蘊] 모두 괴로움입니다. 도반이여, 이것을 괴로움이라고 부릅니다. ② 어떠한 것이 괴로움의 발생입니까? 거듭 태어나고자 하고 환희와 탐욕을 갖추고 여기저기서 향락을 구하는 갈애, 즉 감각적 괘락의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있습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입니다.
③ 어떠한 것이 괴로움의 소멸입니까? 그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되고 버려져서 보내버림으로써 집착 없이 해탈하면, 그것을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부릅니다. ④ 어떠한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입니까?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야말로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입니다.”
○ 사리불이 설한 3종류의 갈애란 무엇입니까? ➀ 감각적 괘락의 욕망에 대한 갈애[欲愛]란 이른바 오욕五慾의 즐거움을 탐하는 것을 말합니다. ➁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란 존재를 열망함에 의해서 인천人天의 욕계, 색계, 무색계 등 삼계의 생에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➂ 비존재에 대한 갈애[無有愛]란 존재하는 것 자체에 염증을 느껴서 다음 생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생을 원치 않는 것인데, 예컨대 유명연예인 또는 대기업 총수 등이 자살하는 것은 여기에 포함됩니다. 세존께서는 ‘무유애’도 엄연히 갈애의 하나이므로 갈애의 종류가 무엇이든 갈애가 있는 한 중생은 다시 태어난다고 설하셨습니다.
○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五取蘊]란 오온五蘊을 나의 몸과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견해입니다. 오온에 집착하면 느낌에서 갈애를 일으켜 집착하고 업을 생성하여 윤회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반면에 나의 오온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느낌에서 갈애를 일으키지 않아 느낌과 괴로움이 소멸하는 열반에 이르게 됩니다.
○ 갈애는 특별한 시간과 특별한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생활 그 자체가 모두 갈애를 일으키는 조건과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일상수행을 통해 갈애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리면 비록 즐겁고 기분이 좋은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약발이 오래가지 아니하여 소멸합니다. 그러면 그 순간 갈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갈애가 사라지면 느낌이 사라지고 거기에서 일시적인 열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6 사리뿟따 존자는 도 닦음의 순서는 계·정·혜이기 때문에 「올바른 견해의 경」(M9)에서 먼저 불선업과 선업에 대해 법문을 하셨습니다.
○ 정견은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명확히 아는 것을 말하나, 그 외에도 행위를 한 자가 행위에 대한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아는 것도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 모든 존재, 중생들은 모두 다 자기가 지은 업의 주인이자 자기 업의 상속자입니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그들은 그 업의 상속자가 되므로, 수행자는 도 닦음에 나가기에 앞서 선업과 불선업의 뜻을 정확히 알고 또 그 뿌리를 알아야 한다고 것이 이 경의 가르침입니다.
○ 이 경은 수세기에 걸쳐 오늘날까지 불교국가에서 교화의 목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중요한 경전이기 때문에 불자들은 이 경을 독송하거나 사경해서 사성제를 보는 시각을 넓혀야 하겠습니다.
○ 세존께서는 「살라의 바라문들 경」(M41)에서 꼬살라 국의 살라 마을의 바라문 장자들에게 ‘악행은 하지 말고 선행은 받들어 행하며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열 가지 악업[十不善業]을 지은 중생들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나고, 반면에 열 가지 선업[十善業]을 지은 중생들은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 설하셨습니다.
○ 재생(다시 태어남)이 인간 상태보다 상위의 세계에서 이루어질지, 아니면 보다 하열한 축생의 세계에서 이루어질지, 또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것이 행복한 삶이 될지, 불행한 삶이 될지는 전적으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신·구·의 삼업三業에 달려 있는 가르침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신·구·의 삼업三業에 달려 있는 가르침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