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시 120:1-7절
제 목 :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일 시 : 2024. 10. 13.
시편 120:1-7/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고 지배를 받습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주어지고, 공급이 있을 때 수요가 따릅니다. 따라서 공장에서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고, 농부가 아무리 좋은 농산물을 생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찾는 사람이 없으면 값은 폭락하고 인기가 없어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제품이나 농산물을 찾는 사람이 많으면 값이 올라가고 계속해서 인기를 얻어서 더 많이 팔리게 되고 더 좋은 제품으로 진화합니다. 이것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구원자가 있으며, 구원을 받아야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구원을 갈망하는 이유는 구원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오전 예배시간에 하나님은 구원자이심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시68:19-21/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거니와 21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전능하시고 강하신 구원의 하나님의 특징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 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일주일에 한 번씩, 또는 한 달이나 육 개월이나 일 년에 한 번씩, 또는 가끔씩 구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 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구원의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구원의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날마다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은 사망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사망이란 마베트 라고 하는데 죽음(자연적인, 또는 폭력에 의한), 상징적으로 염병, 멸망이라는 뜻입니다. 사망이란 자연적인 죽음도 해당되지만 여기서는 교통사고나 질병이나 각종 불의의 사고로 기한 전에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수해야 할 사람들이 기한 전에 젊어서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월호사건이 좋은 예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가리켜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망이란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각종 사고와 질병과 천재지변같은 불의의 사고로 일찍 죽는 사망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죄 때문에 영혼의 감옥인 지옥에 떨어지는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행16:31/...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3) 세 번째로 사람들을 기한 전에 죽게 만들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 원수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사람들이 왜 병에 걸리고 사고를 만나서 다치거나 죽습니까? 악한 원수 마귀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라고 할 때, 그것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 넣고 불의의 사고로 일찍 죽게 만들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 원수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시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온갖 나쁘고 불행하고 끔찍한 사건 사고들은 전부 원수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사람들은 사탄 마귀 귀신들이 없다는 거짓말에 속아서 사탄 마귀 귀신에게 온갖 괴롭힘을 당하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결국에는 지옥에 끌려가면서도 그것을 전혀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에게 온갖 사고와 질병과 불행과 고통과 죽음을 주는 원수의 머리를 깨뜨리셔서 우리를 헤치지 못하도록 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결코 어려움을 만나거나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혹시 몰라서 원수에게 공격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원수의 공격을 물리쳐 주시고 이기게 하시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더 기쁘고 즐겁고 복된 일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망에서부터 구원하시고, 사망과 온갖 불의한 사고를 일으키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 원수로부터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구원자이시며, 날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자로서 존재하십니까? 그 이유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피조물들과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르면 하나님이 구원자이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구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우리 자신들에 관한 이야기로 주제를 바꾸겠습니다.
시120편 보시면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시편 120:1-7/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1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말씀합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환난 중에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자신에게 응답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너무나 놀랍고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기독교가 종교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종교라고 부르기 때문에 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체험이 따릅니다. 기도하면 기도가 이루어지는 응답을 받습니다. 병 때문에 기도하면 병을 고침받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기도하면 문제가 기적처럼 해결됩니다. 그 외에도 사람들마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만나는 크고 작은 체험들이 있습니다. 시인도 과거에 그런 놀라운 체험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2절에서는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1절이 과거의 사건이라면 2절은 현재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건져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자신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고, 혹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상황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질병인지 사고인지 아니면 원수가 자신을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는지 모르지만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시인의 호소는 우리와는 거리가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죽음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가까이에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120편의 말씀은 남의 말씀이 아니라 나의 말씀이며, 과거에 있었던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1. 시인은 어디에서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했습니까?
2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건져 달라고 호소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의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의인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고, 의인도 위기를 만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어디에서 구원해 달라고 호소했습니까? 시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는 다름이 아니라 두 가지입니다.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입니다.
거짓된이란 레미야 라고 하는데 느슨한, 태만, 속임, 사기, 반역이라는 뜻입니다. 속임수와 사기를 의미합니다. 입술이란 라손 이라고 하는데 사람과 동물의 신체 기관인 혀를 의미합니다. 성경을 보면 타락한 인간의 혀가 얼마나 사악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패역한 혀(잠10:31), 궤사한 혀(잠17:4), 아첨하는 혀(시5:9), 해악과 괴롭히는 혀(시10:7), 방종의 혀(시12:4), 사람들을 상하게 하는 혀(시52:2), 그리고 허위를 말하는 혀(잠17:4, 잠6:17, 잠12:19, 잠21:6, 잠26:28, 시78:36, 시120:2-3, 미6:12) 그리고 혀는 채찍과 같고(욥15:5) 칼(시57:4)과 활과 화살과 같고(렘9:3, 렘9:8), 또한 독사와 같고(시140:3), 날카로운 삭도 같아서(시52:2) 재난과 멸망의 원인이 되며 사람과 하나님과 또한 이웃과의 관계를 손상시킨다고 말씀합니다. 혀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없습니다.
속이는 이란 셰케르 라고 하는데 거짓말, 속임, 사기, 실망, 허위라고 합니다. 혀란 사파라고 하는데 입술, 말, 언어, 가장자리라는 뜻입니다. 속이는 혀란 속이는 말을 의미합니다.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란 곧 타락한 인간의 언어와 말을 의미하며, 그 배후에서 사탄 마귀가 조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3: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했으며,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시인이 자신의 생명을 건져 달라고 호소하는 대상은 바로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거짓은 진리를 왜곡하고, 사람들을 이간시켜서 화평을 깨뜨립니다. 고의적으로 화평을 깨뜨립니다. 오늘날 뉴스나 책이나 유튜브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듣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비판하고 함부로 내뱉는 가짜 뉴스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인간이 만든 잘못된 종교와 신화와 미신과 진화론과 무신론 철학자들의 말과 동성애를 조장하는 차별금지법이라는 허무맹랑한 말을 듣고 맹신하는 사람들이 멸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검증되지 않는 잘못된 지식을 맹신하는 어리석음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6천년 동안 이스라엘과 인류역사를 통해서 검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입니다. 진리의 세 가지 특징은 1) 바뀌지 않고 2) 변하지 않고 3)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인류역사를 통해서 검증된 진리의 말씀을 버리고 검증되지 않은 헛된 사람의 말에 미혹되어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잘못된 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도 미혹하는 말을 듣고 이단에 빠집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하고 끔찍한 범죄는 모두가 하나님과 성경말씀을 버리고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하며, 선하고 좋으신 하나님만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2. 그러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속이는 혀가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3절에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라고 했습니다.
속이다란 레미야 라고 하는데 느슨한, 태만, 속임, 배반, 그릇된 사기, 반역이라는 뜻입니다. 속이는 이란 속임, 사기라는 뜻입니다. 혀란 라숀이라고 하는데 (사람이나 동물의) 혀, 문자적으로나(핥고 먹으며 말하는 기관),상징적으로는 수다쟁이, 악담하는 자, 말(방언), 말꾼, 혀라는 뜻입니다. 혀란 악담하는 자 또 수다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이는 혀란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협잡꾼을 뜻합니다.
이어서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라고 했습니다. 더하다란 야샤프라고 하는데 더하다, 증가하다, 더 나아가다, 계속하다, 연장하다 라는 뜻입니다. 더하다란 계속해서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속이는 혀가 하는 일은 계속해서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무엇을 증가시킵니까? 이 문장을 풀어서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위에 쌓여질 재앙은 무엇일까? 네가 도대체 어떤 징벌을 받게 될까?입니다. 따라서 속이는 혀가 증가시키는 것은 재앙과 질병을 계속해서 증가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속이는 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4절에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은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가 적을 단번에 쓰러 드립니다. 저격수들이 쏘는 총알처럼 적을 단번에 쓰러뜨리는 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로뎀나무로 지핀 불은 아주 오랫동안 꺼지지 않고 타는 것이 특징입니다. 결국 화평한 자를 속이는 악한 혀는 자신에게 재앙과 징벌을 증가시켜서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5절에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라고 했습니다.
메섹이란 야벳의 아들로서 흑해의 남동 쪽 고산지대에 살던 야만족을 가리킵니다.
게달은 이스마엘의 후손으로서(창25:13) 아라비안 반도를 누비며 약탈을 일삼던 무리들입니다. 이 두 족속들은 각각 팔레스틴의 북쪽과 남쪽지방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기자는 본 시편를 기록할 당시에 자신을 둘러 싸고 있던 자들의 호전적이고 야만적인 성격을 드러내려고 이 두 민족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특히 메섹은 겔38:2에서 이스라엘을 침노하는 이방 연합군의 지도자들 중 하나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같은 인물이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머물다란 가르티라고 하는데 영구적인 거주가 아니라 마치 여행객이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것과 같은 일시적인 체류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약탈을 일삼고 호전적이고 야만적인 사람들과 잠시 머물러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오늘을 살아 가는 우리들의 삶과도 같습니다.
3. 세 번째로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거주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시인은 자신을 죽이려는 호전적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안타까움을 호소하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6-7/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표준새번역은 6-7/내가 지금까지 너무나도 오랫동안,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구나. 7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평화를 말할 때에, 그들은 전쟁을 생각한다./라고 번역했습니다. 현대어성경 6-7/내가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너무 오랫동안 살았다. 7 내가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고자 하나 그들은 오히려 싸우려 드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무려 13년 동안이나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쫓아오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사울 왕의 사위로 왕궁에서 사울 왕과 같이 살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은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다윗은 혼자였지만 사울 왕은 3천명의 군대를 동원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좇아오는 화평을 미워하는 거짓말쟁이 사울 왕을 피해 다니는 다윗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고 가슴조리는 삶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120편을 기록한 시인이나 과거에 다윗의 삶이나 이 땅을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의 삶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윗의 삶을 보면 마침내 13년 후에 사울 왕은 적군 블레셋의 군사들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였고, 다윗이 사울 왕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서 드디어 참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인의 호소처럼 그렇게 간절히 자신의 생명을 건져 달라고 호소했던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다윗에게 참된 평화와 안정을 허락하셨습니다.
따라서 지금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생명의 위협과 여러 가지 어려움은 마침내 완전한 평화와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거쳐 가야 할 과정입니다. 본 시편과 다윗의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결국 완전한 승리를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잠시 골리앗을 이기고 많은 적들을 물리쳤지만 아직 그의 인격과 성품들이 성숙하지 않아서 13년이라는 기간을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유하면서 온갖 고난을 당했습니다. 13년의 고난은 다윗의 성품과 인격이 온전하고 성숙하게 다듬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으며 그렇게 되었을 때 드디어 참된 평화와 안정이 찾아왔습니다. 시18:1-6/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나서 기록한 시입니다. 4-5절을 보시면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6절에서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불과 능력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성품 또한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온유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참된 평화와 자유와 안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어려움과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항상 우리의 참된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예수님만을 찾고 구하고 그분에게 도움을 청할 때 완전한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참된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참된 평안과 자유와 안전은 성령의 능력과 불을 받고 우리의 인격과 성품은 예수님처럼 되어졌을 때 주어지는 완전한 구원의 복입니다. 이번 부흥회를 통해서 참된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서 완전한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시120:1-7절을 읽고 지금 현재 자신의 삶과 환경을 살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시인이 하나님은 왜 날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자라고 했을까요?
2. 시인은 어디에서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호소합니까?
3.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4.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거했던 다윗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5. 참된 평화와 자유와 안전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멘
1.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 주시기때문입니다 날마다 구원의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나아가면 날마다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2.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3.타락한 인간의 언어와 말을 의미하며 그 배후에서 사탄마귀가 조종하는것입니다
4.13년간 사울에게 쫓겨다니면서 인격과 성품들이 온전하고 성숙하게 다듬어지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사람이 되었을때 자신의 생명을 건져달라고 호소했던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의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적군 블레셋의 군사들에의해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하셔서 다윗에게 참된평화와 안정을 허락하셨습니다
5.성령의 불과 능력을 받아야하고 성품도 예수님처럼겸손하고 온유하게 되어야 합니다 또한 위기의 상황에서도 우리의 참된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예수님 만을 찾고 구하고 그분에게 도움을 청할때 완전한 구원이 주어집니다